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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29화 (129/175)

129화

박민준이 502호와 507호를 번갈아 봤다.

‘응? 뭐가 좀 이상한데?’

제시카 로즈의 숙소 502에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반면, 블랙 존슨이 혼자 사용한다던 507호에는 제법 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두 명이 아니라 일곱 명이나 되었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사람을 더 불러 모은 거지? 방수열 녀석. 똑똑한 줄 알았더니. 놈들이 저러는 것도 몰랐나?’

그대로 507호를 향해 쳐들어가려던 그때.

순간 멈칫 선 그가 복도 입구 쪽을 바라봤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아까 통화를 마치고, 어느새 호텔까지 온 방수열이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훌쩍 몸을 날린 박민준이었다.

“너 뭐냐? 여긴 왜 왔어?”

“박민준 씨야말로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내가 아까 말했잖아? 스폐셜 어쩌고 놈들이랑 대화를 좀 하려고.”

“박민준 씨는 영어도 잘 못 하시면서 그들과 무슨 대화를 하겠다는 겁니까?”

“너 나 무시하냐?”

박민준이 눈알을 부라렸다.

방수열이 잠시 움찔할 뿐,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How much do you understand and talk about the mainland English they speak, without really understanding what I'm saying?”

“어? 뭐라고 한 거냐? 언더스탠드 잉글리쉬 어쩌고 한 것 같은데?”

방수열이 자기가 한 말을 그에게 다시 알려주는 일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링고 도노반은 어쩔 수 없었지만, 더 이상의 폭력은 안 됩니다. 스폐셜 쓰리가 전부 한국에서 죽으면, 곤란해지는 건 당신 혼자만이 아닐 겁니다.”

“내가 언제 놈들을 죽인다고 했어?”

“아니요. 하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그들을 죽일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놈들이 링고란 녀석과 비슷한 실력이라면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서 멈추십시오. 그 둘이 죽기라도 하면, 이번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한국의 일에 관심을 두고 찾아올 겁니다.”

스폐셜 쓰리가 가진 헌터계의 상징성은 실로 대단했다.

물론 개인으로는 더 원의 위상이 더 높았지만, 그 세 명이 그간 쌓은 업적과 명성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의 죽음이 모두 한국에서 이뤄진다면, 그 진실을 파헤치고자, 온 세계의 헌터들이 찾아올 터.

그땐, 한국 정부에서도 무언가 확답을 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범인이 박민준이라고 말은 못 하지만, 미국과 공동으로 현상 수배를 걸고, 범인을 찾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니.

그 문제에 대해서 박민준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급히 호텔까지 찾아온 방수열이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민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싫은데?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아니.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을 제대로 들으신 겁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그의 태도를 보며, 방수열이 작게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네가 말한 그 두 명은 살려둘게. 대신 나머지 다섯은 죽여도 되는 거겠지?”

그의 말을 듣고.

방수열이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방 안에 둘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까? 다섯이나 더 있다고요?”

“그래. 지금 507호에 일곱 명의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어.”

“흠. 그렇단 말이죠?”

그가 박민준을 앞에 두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와 연락이 닿자마자 방수열이 윽박질렀다.

“너! 지금 어디야?”

“저요? 명령받은 대로 스폐셜 쓰리를 감시하기 위해 호텔에 있습니다.”

“그러냐? 그럼 내가 어디서 전화를 하고 있는지도 알겠네?”

“부장님은 퇴근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사무실에 계십니까?”

“나 호텔에 있다. 그것도 5층 복도 입구에 서 있지.”

잠시 침묵이 흐리고.

“아…. 죄송합니다. 배가 고파서 잠깐 룸서비스를 시켜서 먹고 있었습니다.”

대답을 들은 방수열이 목 뒤를 부여잡았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지금 당장 너희 팀 데리고 철수해.”

“지금 철수하라고요?”

“그래. 제대로 감시도 못 하는데 내가 널 왜 여기 계속 두겠냐?”

“잘못했습니다.”

“사과는 됐고. 나중에 제대로 문책받을 줄 알아.”

뚝.

전화를 끊은 그에게 박민준이 먼저 말했다.

“너도 그만 가라.”

“네?”

“부하들이 떠날 때 같이 가라고.”

“저는 박민준 씨와 같이 여길 나갈 생각입니다.”

“난 좀 더 살펴볼 건데.”

“오늘 정말 피를 볼 생각이신 겁니까?”

“아니. 그냥 놈들이 안에서 뭘 하는지만 살펴보고 조용히 집에 돌아갈 거야.”

“그 말 진짜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넌 어서 내려가라. 이렇게 있다가 너 때문에 들키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믿고 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말뿐 아니라.

그가 진심으로 박민준을 믿는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걸 보고.

피식 웃은 박민준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그가 방수열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잘 가라. 그리고 너도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다음부터는 전화를 해. 이렇게 직접 오지 말고.”

“알겠습니다.”

혼자가 된 박민준이 몸을 투명화했다.

그 상태로 507호 방문을 두들겼다.

똑똑.

문이 안 열리자, 다시. 똑똑.

몇 번을 두들기며 시끄럽게 굴자, 살짝 문이 열렸다.

비니 모자를 쓰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젊은 남자가 복도로 나왔다.

그가 주의 깊게 좌우를 살폈다.

그 틈을 노리고.

휙!

박민준이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발소리를 내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인 데다, 투명화를 한 상태라 그의 존재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what the fuck?”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짜증이 났는지.

욕설을 내뱉은 남자가 문을 쾅 닫았다.

한편, 박민준이 들어온 방 안에는 비니 남까지 포함, 총 7명의 남녀가 있었다.

그중엔 그가 앞서 설명 들은 붉은 머리의 미녀와 금발의 댄디 중년인이 눈에 딱 들어왔다.

‘밖에서 미리 느낀 것과 같군. 그리고 저 둘이 링고란 놈의 동료인가?’

방수열이 말했던 것처럼 영어에는 젬병인 박민준이라서, 그들의 대화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대신 그들이 작전 회의를 하며, 공통으로 보고 있는 화면을 통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저건 우리 집이잖아? 위성으로 찍은 건가?’

박민준의 집을 중심으로 한 지도를 두고, 진입 경로 두 곳이 붉은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정문 우측 담장과 집 뒤편 담장 부근으로 양쪽에서 들어오겠다는 건가?’

박민준이 싸늘하게 웃었다.

‘저렇게 두 군데로 나누다니. 설마 내가 싸우다가 중간에 도망칠까 봐 저런 건가?’

지도에서 시선을 거둔 그가 스폐셜 쓰리를 포함해서 7명 전체를 천천히 살폈다.

제일 강한 건 붉은 머리.

의외로 금발은 중간 실력.

나머지 다섯도 링고 도노반과 비슷하거나 한 수 아래.

다른 사람이 그의 말을 들었다면 진심으로 놀랐을 것이다.

스폐셜 쓰리와 비슷한 실력을 지닌 다섯 명이라면 분명, 그들도 S등급일 터.

총 7명이나 되는 S등급 각성자들이 한 방에 모여있는 일이 그리 흔한 게 아니었으니.

다만, 박민준이 보기에는 일곱 명 모두 고만고만한 실력을 지닌 어중간한 놈들이었을 뿐.

‘겨우 저런 놈들이 날 죽이겠다고 모였단 말이지?’

살짝 분노를 느낀 박민준이 바로 손을 쓰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방수열의 말을 들은 게 있었기 때문에.

좀 더 확실한 상황에서 저들을 옭아매서 처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놈들을 처리하기 전에 확실히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현장에서 대체 뭘 보고 내가 링고를 죽인 걸 알았을까?

그것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당장 알아낼 수 없으니.

“Let’s go.”

회의를 마친 그들이 호텔 방을 빠져나가는 걸 보고, 박민준이 그 뒤를 밟았다.

수고스럽게 경공을 펼칠 필요도 없이.

비니 남자의 차에 몰래 올라탔다.

시동을 걸던 그가 멈칫하더니.

뒷좌석을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하지만, 투명화된 박민준이 그의 눈에 보일 리가 없었다.

‘실력보다, 제법 감이 좋은 놈이네.’

박민준이 살짝 감탄했지만, 그게 다였다.

다시 몇 번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대로 내비게이션을 켜고 차를 몰아 목표지로 향했다.

***

마을 주민이 아닌 이상, 미리 진입 허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박민준을 암살하려고 온 이들이라서, 대놓고 자기 정체를 밝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무궁화 마을 외곽 공터에 차량 일곱 대가 모두 모였다.

일행이 모두 자기 차를 타고 온 걸 보아, 일이 끝나면 알아서 각자 흩어질 생각인 듯했다.

대화도 필요 없는지.

차에서 내린 그들이 서로 얼굴만 확인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번.

GI 그룹 회장 집을 노린 다크 엘프 사건 이후로 더욱 경비가 철저해진 무궁화 마을이었다.

하지만 작정하고 잠입하는 S등급 헌터 일곱 명을 막아내진 못했다.

막아서기는커녕.

경비팀의 그 누구도 그들의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so~easy.”

비니 남이 소리를 내자, 블랙 존슨이 두 번째 손가락을 올리며 경고했다.

“Be quiet.”

“Sorry.”

“Don't forget, he's the man who killed Ringo.”

“I know.”

그렇게 스마트폰 화면을 따라가며, 박민준의 집 앞까지 들키지 않고 도착한 7명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상류층 마을이라고 하더니. 정말 별거 아니네.’

스폐셜 쓰리의 제시카와 블랙, 그리고 비니를 쓴 남자가 정문 옆 담장으로 향했다.

나머지 네 명은 담장을 빙 돌아서 집 뒤편으로 향했다.

시계를 확인한 그들이.

12시 정각을 가리키는 순간.

동시에 담장을 넘어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초호화 저택과 잘 꾸며진 정원, 그리고 거대한 인공 호수를 보고, 잠시 감탄한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온 목적을 잊지는 않았다.

금방 정색하고는 그대로 거대한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으로 향했다.

그 셋의 뒤를 따라 움직이던 박민준도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먼저 셋 중 제일 약한 비니 쓴 남자 노렸다.

어차피 투명화한 상태라 보이지 않지만.

그의 뒤로 은밀하게 접근해서, 목덜미를 후려쳤다.

퍽!

둔탁한 소리가 작게나마 울려 펴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박민준이 내공으로 막아버렸다.

기절한 남자를 바닥에 눕히고, 마저 점혈까지 했다.

‘한 놈은 끝냈고, 그럼 이번엔 저놈.’

아주 쉽게 한 명을 제압한 그가 뒤이어 블랙 존슨을 노렸다.

그 역시 앞서 동료와 마찬가지로, 박민준의 손에 당해버렸다.

스폐셜 쓰리라는 명성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간단히 처리했다.

‘이제 정문 쪽은 하나 남았군.’

혼자 남은 제시카 로즈의 뒤에 따라붙은 박민준이 조용히 손을 뻗는 순간.

휙!

몸을 빙글 돌린 그녀가 쇠꼬챙이 같은 무기를 꺼내 찔렀다.

‘펜싱용 검인가?’

길고 가느다란 검날 위로, 붉은색의 마력이 빛을 뿌리며 박민준의 얼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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