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스폐셜 쓰리의 링고 도노반이 실종되었다.
열흘 가까이 그의 모습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처음 일주일간 그가 보이지 않았을 때만 해도, 미국의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올라오던 그의 SNS 트위스터 계정마저 업로드가 멈췄으니.
“SNS 중독자이자 관심종자인 그가 이렇게 오래 잠수 탈 리가 없다.”
“그의 신상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해.”
링고 도노반의 열렬한 팬들은 한국에 주목했다.
“한국에 있다며 올린 사진을 끝으로 그가 활동을 멈췄다.”
“하필이면 그날 비행기 폭발 사고도 있었다던데?”
“둘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미국 각성자 협회나 정부에서도 그 어떤 발표를 하지 않았으니.
“비행기에 타고 있었는데, 사고가 나서 죽은 거라더라.”
“아니다. 링고 도노반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거다.”
“최악의 빌런과 싸우다가 납치당했다던데? 지금 잡혀서 고문받고 있을 듯.”
온갖 추측성 논란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폐셜 쓰리의 나머지 두 명이 한국에 입국했다.
공식적인 일 때문이 아니라 사적인 이유라며,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움직였다.
다만, 미국의 S등급 헌터가 무려 두 명이나 입국하는 일이라, 미국과 한국 정부에서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미중일 게이트 조약 때문에 일본과 중국에도 알려야 하지만,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한국과 미국에서도 비밀을 지켰다.
최근 벌어진 스텔스기 폭발 사고 때문이었는데.
한국의 경우, 범인이 박민준인 걸 뻔히 알고 있어서 일부러 그 사실을 숨겼다.
미국은 복잡하게 엮일 외교 문제 때문에 입을 꾹 다물고, 최대한 신중하게 상황을 관찰하기만 했다.
물론, 우방국인 한국에서 사고 치지 않겠다는 두 S등급 각성자의 약속을 사전에 받아내긴 했지만 말이다.
***
한국 게이트 관리국 본부.
박민준으로부터 당분간 해외 출장을 나가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오랜만에 본업에 열중하는 방수열이었다.
그런 그를 국장이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방 부장. 똘똘하고 영어에 능통하면서 입이 무거운 사람으로 한 명 정도 차출해봐.”
“설마 저를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자네가 직접 자원하겠다니 정말 다행이군.”
“네? 제 말의 어디가 자원이라는 뜻인 겁니까?”
“3시간 뒤에, 인천공항으로 가면 자네가 맞이할 사람들이 입국할 거야. 가서 문제 생기지 않게 잘 관리해.”
“대체 누가 입국하는 겁니까? 부장인 제가 나서야 하는 일이 맞습니까?”
“어. 제시카 로즈와 블랙 존슨을 상대해야 하거든.”
“누구요? 설마 스폐셜 쓰리가 한국에 온다는 겁니까? 왜요?”
“그냥 휴가라던데.”
“휴가요? 근데 왜 우리가 나서서 그 둘을 마중 나가야 합니까?”
“비행기 폭발 사고 현장에 들르고 싶다는 말을 전해왔거든.”
“단순히 휴가가 아니란 말이군요.”
“그래. 놈들이 뭘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걸 똘똘한 자네가 안내할 겸 옆에 붙어서 알아보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공항에 간 방수열이었다.
그 옆에는 소해진 차장도 함께했다.
앞서 두 번의 해외 출장에서 제외된 그녀를 방수열이 동행시킨 이유는 이번 일이 박민준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소 차장이라면 믿을 수 있지.’
더욱이 박민준의 일이라면, 그녀도 절대 비밀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옆에서 방수열이 보기엔 그녀가 박민준을 스승으로 여기는 것 이상으로 호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으니까.
또한, 상대가 S등급 둘이라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실력이 좋은 부하가 필요하기도 했다.
A등급이 S등급에 비하면 많이 약하긴 하지만,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테니까.
‘만약 문제가 생기면, 최대한 빨리 박민준 씨에게 알려야 해. 소 차장이라면 내가 문자나 연락할 시간은 만들어 주겠지.’
피켓도 없이, 입국장에 서서 기다린 방수열과 소해진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비공식 입국이라, 자신들의 이름을 쓰지 말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워낙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닌 두 사람이라, 분명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건 어쩔 수 없다는 건가?’
그의 눈에 마치 패션모델 같아 보이는 두 외국인이 보였다.
검은 원피스를 입고, 길고 탐스러운 붉은 머리를 찰랑거리는 제시카 로즈와 몸에 딱 맞는 남색 수트를 입은 금발 남자.
선글라스를 끼긴 했지만, 조금만 관심을 두면 금방 그 둘의 정체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저럴 거면 왜 비공식 입국이라고 한 거야? 진짜 소문처럼 관심종자들인가?’
속으로 욕한 그가 미소를 지으며 둘을 반겼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게이트 관리국 전략실 소속부장 방수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소해진 차장입니다.”
제시카가 알겠다며 고개만 까닥했다.
블랙 존슨은 미소와 함께 방수열에게 먼저 악수하자며 손을 건넸다.
“반갑습니다. 안내인을 요청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부장님 같은 사람이 직접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두 분이 오시는데, 당연히 제가 나와야지요.”
사실 공식행사였으면, 국장이 직접 나왔어야 할 만큼 스폐셜 쓰리의 위상이 대단했으니.
그런 걸 생각하면, 블랙 존슨보다 제시카의 반응이 더 현실에 맞았다.
그녀에게 방수열은 그저, 평소에는 안중에도 없고 평생 올 생각도 전혀 없었던 한국이란 나라의 부장 따위였으니까.
방수열과 대충 인사를 나눈 블랙 존슨이 소해진에게 관심을 보였다.
“반갑습니다. 미스 소.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블랙 존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실제로 보니, 더 잘생겼지요? 하하.”
제 딴에는 농담을 한 건데.
상대가 침묵했으니.
당황할 만도 한데.
그는 자연스럽게 어색한 분위기를 넘겼다.
“미스 소가 제 앞이라 긴장한 모양이군요. 뭐 앞으로 천천히 친해지면 되니까. 그럼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역시나 그녀가 말없이 고개 인사만 했다.
이번에는 눈살을 구긴 블랙 존슨이었다.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걸 본 방수열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소 차장은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은 못 합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괜한 오해를 할 뻔했습니다.”
변명을 듣고 그제야 표정이 풀린 그였다.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한 방수열과는 달리.
소해진은 블랙 존슨의 눈빛을 보고 거리감이 생겼다.
‘잠깐이지만, 날 향한 살기가 무서웠어.’
그녀는 상대가 겉으로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상대를 죽이고도 남을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긴 그런 실력과 마음가짐을 가졌기 때문에 스폐셜 쓰리라는 칭호까지 생긴 거겠지만.
‘방금 맞붙었으면, 내가 저자의 공격을 얼마나 오래 막을 수 있었을까?’
먼저 공격하면 달라지려나?
예전이라면 절대 아니라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글쎄.
저 둘을 꺾지는 못해도, 터무니없이 쉽게 지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박민준에게 몇 번의 가르침을 받은 뒤로, 실력이 부쩍 성장한 걸 스스로 느끼고 있었으니.
다만, 그 뒤로 실전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확신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럼 어디부터 모실까요?”
“비행기 사고 현장부터 안내 바랍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따라오십시오.”
***
박민준의 집.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외부인이 몰래 진입한 일을 두고, 그가 고민에 빠졌다.
‘이번엔 수문이를 노렸지만, 다음엔 내 가족을 노리는 놈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있을까 봐, 무궁화 마을로 이사한 건데.
딱히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세계의 존재인 다크 엘프들은 예외라고 쳐도, 일본 놈들이 벌써 두 번이나 담장을 무단으로 넘었으니.
‘저 녀석이 성장하면 내가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수문이가 성장해서 물 밖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아무도 몰랐다.
1년 아니면 10년? 어쩌면 100년이 필요할지도….
그래서 박민준은 해외로 나가 7등급 괴물 사냥하는 일을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우선 이 문제부터 해결하고, 마음이 놓이면 출장을 재개해야겠다.’
확실하게 하려면, 믿을 수 있는 경호를 항상 집에 두는 게 낫겠지만, 박민준은 자신이 아닌 다른 인간을 딱히 믿지 않았다.
배신을 밥 먹듯이 당했던 다른 세상의 경험을 통해, 이득을 좇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으니.
물론 정의를 위해서라거나, 맹목적으로 충성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도 보긴 했지만, 그건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그렇게 고심하며, 며칠 동안 집에 틀어박혀 빈둥거리던 그때.
방수열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내가 당분간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연락해야만 했습니다.”
“그래? 그럼, 무슨 일인지 말해봐.”
“링고 도노반의 동료 둘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놈들이 왜? 설마 뭘 알고 왔다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알았다면 저에게 비행기 사고 현장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비행기 사고 현장을 보여 줬다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현장 정밀 조사에도 밝혀지지 않을 걸 그 둘이 잠깐 본다고 뭘 알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건 모르지.”
“네?”
“가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감각이 뛰어난 놈들이 있거든.”
“아무리 그래도, 과학 수사를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겁니다.”
“정말 그렇게 확신해? 그 둘은 특성이 뭐야?”
“제시카 로즈는 식물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블랙 존슨은 검술이 뛰어나다고 하더군요.”
“검술이 뛰어난 건 특성이 아니잖아? 그것도 몰라?”
“사실 그자에 대해서는 의외로 밝혀진 게 없습니다. 그냥 강하다는 것 외에는….”
“그럼 그놈이 뭔가를 발견했을 수도 있겠네. 그렇지?”
“아까는 그런 생각을 못 했었는데. 지금 박민준 씨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확실히 말해. 뭔가 이상한 점이 없었어?”
“그런 건 없었습니다. 알았으면 절 그냥 보내줬겠습니까? 소 차장도 옆에 있었지만, 다른 낌새를 못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니. 저는 못 믿고, 소 차장이 한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난 둘 다 100% 믿지 않아. 하지만 그 애의 감각은 믿지.”
“소 차장의 감각이요? 저하고 뭐가 다릅니까?”
“다르지. 넌 똑똑하지만, 엄청나게 둔하고, 걘 보기 드물 정도로 예민하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절 둔하다고 하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습니다.”
“모르겠으면 어쩔 수 없고. 아무튼, 그 둘은 지금 어딨어?”
“아까 서울에 있는 호텔에 데려다줬습니다.”
“내일도 같이 움직일 거야?”
“아니요. 사고 현장을 안내했으니. 더는 함께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건 게이트 관리국의 원래 계획하고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입국부터 출국까지 안내를 핑계로 항상 따라다니면서 그 둘을 감시하는 게 본래 목표였으니.
방수열의 대답을 듣고,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모르면 직접 부닥쳐보는 것도 좋겠지. 놈들이 묵는 호텔의 정확한 호수를 말해봐.”
“알려드리면, 직접 가서 만나려고요?”
“그냥 대화만 할 거야.”
“정말입니까?”
“응.”
“알겠습니다. 그럼…….”
전화를 끊고, 박민준이 집을 나섰다.
‘대화로 좋게 풀리면 굳이 나도 폭력을 쓸 이유가 없지. 하지만 놈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아마 그런 그의 생각을 알았다면, 방수열이 그렇게 쉽게 두 사람의 숙소를 알려주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다른 방법을 먼저 생각해보자고 시간이라도 끌었겠지만, 이미 화살은 쏘아졌다.
“뭐든 알아서 잘하는 박민준 씨라 믿고 말해주긴 했는데, 이 찜찜한 기분은 뭐지?”
방수열이 뒤늦게 찜찜한 느낌의 실체를 깨달았다.
“아! 박민준 씨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데? 미국인인 그 두 사람하고 무슨 대화를 나누겠다는 거야? 설마 몸의 대화 같은 걸 만한 건가?”
놀란 그가 서둘러 호텔로 향했다.
링고 도노반이 죽은 상황에서, 스폐셜 쓰리에 속한 나머지 두 명마저 한국에서 사망한다면?
‘그땐 걷잡을 수 없다.’
***
서울의 H 호텔.
투명화한 박민준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제시카 로즈와 블랙 존슨의 방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복도에 섰다.
‘그럼 누굴 먼저 만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