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소리노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를 알아본 야마다가 미소 지었다.
‘됐다. 조금 늦긴 했지만, 문제없이 왔군.’
잘 되었다는 생각에 두 팔 벌려 다가가던 그때.
그가 뭔가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 왜 빈손인가?”
그의 질문을 받은 소리노의 입에서 전혀 엉뚱한 말이 먼저 나왔다.
“우리 팀에 긴급 명령을 내린 게 바로 장관님이셨군요?”
“그래. 그런데 여기로 가져왔어야 할 물건은 지금 어디 있는가? 너무 커서 따로 트렁크에 실어놨나?”
“괴물 생포에 실패했습니다.”
“뭐야? 그럼 미리 실패했다고 보고나 할 것이지. 왜 여기 온 거야? 쓸데없이 내 시간 낭비를 하게 만들었냐고!”
“내가 원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그럼? 누가 억지로 오라고 했나?”
“네.”
“누구? 설마?”
야마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소리노가 타고 온 차 안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아무도 없는데?’
얼굴이 험악해진 그가 버럭 소리 질렀다.
“자네! 다른 사람을 태우고 온 것도 아니면서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는 대답을 듣는 대신에.
쾅!
폭발음을 먼저 들을 수 있었다.
방금 도착한 차량이 폭발한 게 아니었다.
터진 건 바로, 자신들이 수리남에서 타고 온 최신형 스텔스 초음속 비행기였다.
방금의 폭발로 비행기 앞부분이 완전히 사라졌다.
몸통도 두 동강 나고, 날개도 전부 부러졌다.
“갑자기 저건 왜 터지는 거야?! 대체 뭐냐고?!”
혹시 미국놈들이 배신했나?
일이 틀어진 걸 알고 날 버리려고?
그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에 맞춰서.
촤악.
채찍을 서둘러 꺼내 드는 모습의 링고 도노반이 보였다.
‘정말 날 죽이려는 건가?’
하지만, 링고 도노반은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활활 불타며, 까만 연기를 내뿜고 있는 비행기 쪽으로 뛰는 모습이었다.
‘저기 뭐가 있나? 비행기를 폭발시킨 테러범?’
그 순간.
펑!
아까와는 다른 둔탁한 폭발음이 들렸다.
동시에.
비행기 쪽으로 뛰어가던 링고 도노반의 몸이 반대편으로 튕겨 나가는 게 보였다.
2차 폭발인가?
비행기하고는 거리가 좀 있었는데?
“재밌군. 꼴에 날 발견했다는 건가?”
야마다는 한국어를 모르지만, 방금 들린 게 한국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갑자기 왜 한국말이 들리는 거지? 방금 누가 대체 뭐라고 한 건가?”
그가 소리노를 돌아봤다.
이곳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흥미롭다는 표정의 소리노가 턱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 그가 서둘러 뒤로 돌아섰다.
그 사이 어디를 갔는지.
링고 도노반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기고 있는 제이크 장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서 히죽거리는 박민준이 서 있었다.
“저자가 왜 여기에? 어떻게 알고? 아! 소리노! 네놈이 배신한 거냐?!”
“흥! 배신은 무슨. 당신이야말로 미국인들과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우리 팀이 잡아 온 괴물을 저 양키들에게 팔아넘길 생각이었나?”
정곡을 찔린 야마다가 흠칫 놀랐다.
뻔히 표정에 다 드러나 있는데.
억지로 거짓말을 짜냈다.
“뭘 하다니? 팔긴 누가 팔아넘겨? 그저 우리 일본제국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을 뿐이야. 아니. 너 같은 놈에게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그래. 나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지. 어차피 저기 저 한국인이 들어야 할 내용이니까.”
“네놈이 박민준을 이곳에 데려온 게 맞구나.”
퍽!
악을 쓰는 그를 소리노가 걷어찼다.
억!
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진 야마다였다.
다시 일어나려고 버둥거리던 그때.
“이건 또 뭐야?”
그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박민준을 향해 그대로 끌려갔다.
털퍼덕.
공중에서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그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야마다는 자신의 옆에 있는 제이크 장관을 봤다.
“장관님. 어서 링고 도노반을 불러서 저자를 막아주십시오.”
그의 목소리를 듣고도, 제이크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멍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뭘 보고?’
야마다가 고개를 갸웃하고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역시나, 그곳엔 나무와 돌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한편, 제이크 장관은 큰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앞서 비행기가 폭발하고.
링고 도노반이 그에게 말했었다.
“그놈이 여기 온 모양입니다.”
“누구?”
“박민준 말입니다. 너무 빨라서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흐릿하게나마 분명, 그자의 형태였습니다.”
“자네가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고?”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채찍을 빼 든 링고가 폭발한 비행기를 향해 몸을 날리는 모습만 보였다.
그리고 번쩍! 펑!
순간 반짝였다가 사라진 빛과 함께 작은 폭발음이 들리더니.
뒤로 빠르게 튕겨 나가는 도노반의 모습이 보였다.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링고!”
놀란 제이크가 서둘러 그를 향해 뛰어갔다.
이곳에서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사람이 링고 도노반뿐이었으니.
‘저놈이 잘못되면 나도 무사하지 못한다.’
그렇게 링고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목이 부러진 상태로 죽어있었다.
단 한 번, 그자와 격돌했을 뿐인데.
‘링고 도노반이 이렇게 쉽게 죽었다고?’
스폐셜 쓰리라는 명성에 결코, 걸맞지 않은 최후였다.
‘더 원도 링고를 한 방에 죽일 순 없을 텐데.’
망했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
수리남에서 15억 달러를 손해 보고.
그걸 만회하려고 찾아온 한국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S등급 헌터 링고 도노반을 잃다니.
‘난 끝났다.’
박민준이 멍청하게 서 있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대로 자석에 끌리듯. 박민준 곁으로 잡혀 온 제이크였다.
얼빠진 제이크 장관과 역시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야마다 장관을 앞에 둔 박민준이었다.
“네놈들이 수문이를 노린 건지. 아니면 미국이나 일본이 그 뒤에 있는지를 알아야겠다.”
박민준이 한국말을 내뱉었지만, 두 사람을 알아듣지 못했다.
한숨을 내쉰 그가 소리노를 불렀다.
“야! 이쪽으로 와봐.”
“네. 부르셨습니까?”
“네가 이 자식들에게 통역 좀 해라.”
“알겠습니다.”
소리노는 엘리트 요원 팀을 이끄는 대장답게 일본어는 물론이고, 한국어, 영어에도 나름대로 능통했다.
물론 여기서는 그저 박민준을 위한 통역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야마다 장관님이 최종 명령자인지. 아니면 총리님이나 또 다른 사람이 뒤에 있는 건지 묻고 있습니다. 어서 대답해 주십시오.”
눈빛을 보고 완전히 얼빠진 제이크 장관이라, 그는 일본어로만 물었다.
질문을 받은 야마다가 버럭 소리 질렀다.
“배신자 새끼. 내가 쉽게 말해줄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곱게 대답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저자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거든요.”
“흥! 웃기는 소리.”
“하는 수 없지요.”
소리노에게서 부정적인 말을 들은 박민준이 직접 나섰다.
말 대신 행동으로 야마다를 일깨워줬다.
박민준이 그의 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야마다는 죽음과 같은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온통 바늘로 된 지렁이나 뱀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감각이랄까?
앞서 소리노가 받은 고문보다는 약했지만, 일반인인 야마다가 견딜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 아니었다.
끄에엑!
그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슨 비명이. 저놈이 돼지인지, 사람인지 모르겠군.”
그가 정신을 잃으려는 걸 보고, 박민준이 다시 손을 썼다.
몸의 고통이 거짓말처럼 바로 사라지고.
간신히 흩어지던 정신을 붙잡은 야마다 장관이었다.
헉헉.
거친 숨을 몰아 내쉬더니.
대충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그가 곧장 무릎을 꿇었다.
박민준을 올려다보며,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미국의 제이크 장관이 저를 협박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의 헌터에게 속은 것 같으니. 손해를 만회하는 일로 그가 가진 괴물을 훔치자고 말입니다.”
자신이 먼저 제안한 일을 가지고, 제이크 장관에게 덤터기를 씌우다니.
만약 제이크가 알아들었으면, 펄쩍 날뛰며 손가락질했겠지만, 그는 일본어를 전혀 몰랐다.
그저 간신히 정신을 차린 뒤로, 박민준의 눈치를 보며, 상황을 모면할 생각뿐이었다.
오히려 열심히 말하는 야마다를 보고, 기특하다 여겼으니.
‘야마다 저놈이 저렇게 길게 말하는 걸 보니. 제대로 변명하는 모양이군.’
야마다의 말을 듣고도, 박민준은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네놈의 눈빛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
“내 눈빛이요? 아니, 겨우 그런 거로 저를 판단하시다니요?”
“또한, 목소리도 안정적이지 못하고. 그건 결코, 두려움 때문이 아니야. 거짓말을 해서 긴장해서 그런 거지.”
“아…. 아닙니다. 맹세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박민준이 그를 무시하고, 제이크에게 말했다.
“야. 옆에 있는 놈이 모든 책임을 너한테 돌리던데. 너는 그걸 어떻게 생각해?”
“내가 무슨 책임이 있다는 건지? 한국에 먼저 오자고 한 건 야마자 저 인간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냥 확실히 하려고 물어본 것뿐이야.”
제이크의 말에는 억울함만 있을 뿐 거짓이 없다고 느낀 박민준이었다.
그가 빙글 몸을 돌렸다.
야마다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네가 이번 일의 주동자구나. 일본의 다른 놈이 시킨 게 아니었어. 네가 저 소리노란 놈에게 명령을 내렸던 거야.”
“그게 아니라니까요. 전 정말 억울합니다.”
“차라리 계좌를 추적하고 수리남의 대통령을 추궁했으면, 지금보다는 날 더 압박할 수 있었을 텐데.”
박민준은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책을 세워 뒀었다.
하지만, 그 일에 직접 연관된 일본과 미국의 장관 둘이 모두 자신의 앞에 있으니.
“대체 왜 이런 무리수를 둔 걸까? 뭐가 그리 급해서? 사기 좀 당했다고 자국에 돌아가면 사형이라도 당하나? 미국과 일본이 그런 나라는 아니잖아?”
“전혀 아닙니다. 그저 공을 세워서 실수를 조금이라도 상쇄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건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기 제이크 장관이 먼저 하자고.”
“닥쳐. 넌 무슨 말만 하면 거짓말이네?”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건데요?”
어휴.
한숨을 내쉰 박민준의 눈에 불타고 있는 비행기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인적이 전혀 없는 장소이고, 한국인 목격자도 없는 듯하니.
박민준이 야마다와 제이크 장관을 보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내가 좀 사기 친 게 있어서 이렇게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그게 뭡니까?”
야다마는 그의 미소를 오해했다.
자기를 살려준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빠각.
박민준이 그의 목을 비틀어버렸다.
그걸 보고 놀란 제이크 장관이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이다니? 그것도 일국의 장관을?”
“너도 죽을래? 아니면 좀 닥치고 있을래?”
그 말을 듣자마자.
제이크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본 박민준이 놀라서 토끼 눈을 한 소리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푹!
“왜?”
“내 걸 노렸는데. 널 살려둘 이유가 있나? 더는 이용 가치가 없으니. 그만 죽어야지.”
“억울….”
박민준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도 그의 손에 죽었으니.
그게 무척 억울했는지.
소리노가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죽었다.
그 뒤로, 야먀다 장관의 일행을 모두 처리한 박민준이었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제이크는 두려움에 오줌까지 지렸다.
젊어서는 헌터 영웅이었던 그였지만, 지금은 그저 늙고 약해진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그를 두고, 박민준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야. 당장 여기로 좀 와라. 응? 여기가 어디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