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그걸 본 온 일본 요원 대장이 무전에 대고 소리쳤다.
“멈춰! 쏘지 마!”
“치!”
“녀석의 몸에 가벼운 상처 정도는 내도 좋지만, 죽이는 건 절대 안 돼.”
“알고 있어요.”
알고 있으면 뭘 하겠는가?
요원의 팔을 자른 걸 시작으로, 인간의 맛을 본 녀석이 더욱 흥분해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총을 든 요원의 몸에 달라붙더니.
우두둑!
몸의 뼈를 으스러뜨려서 즉사시켰다.
그리고 으적으적 순식간에 씹어 삼켜버렸다.
사방에 퍼진 피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건 물론이고, 비릿한 피 냄새가 주변에 가득했다.
웩!
제일 가까이 있던 동료 요원이 헛구역질했다.
그 바람에 호숫물에 입에 들어가고, 순간.
켁!
피 맛이 나는 물을 뱉어내려고 몸부림쳤다.
대장이 그걸 보고 버럭 소리쳤다.
무전이라 작게 말해도 잘 들리는데.
소리까지 질렀으니.
몸부림치던 요원의 귀에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야! 뭐 하는 거야! 어서 정신 차려! 놈의 움직임에 집중해!”
“네! 죄송합니다.”
뒤늦게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안 요원이 자세를 고쳤다.
새끼 괴물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어디 갔지?’
잠깐 방심한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딜 보고 있는 거야! 아래에 있잖아!”
대장의 경고를 듣고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댕강.
그의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었다.
그리고 다시 우적우적.
그 모습을 본 요원들은 깨달았다.
‘아무리 작은놈이라고 해도 7등급 괴물의 새끼가 맞구나. 더욱 신중하게 작전을 펼쳤어야 했는데.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요원 두 명이 사망했다.
심지어 그 둘은 B등급 각성자로, 혹독한 훈련을 거쳐서 선발한 엘리트 요원들이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농락당하면서 먹이가 되고 말았으니.
대장이 생각을 고쳐먹고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지금부터는 저놈을 죽이지 않는 선에서 전력을 다해 싸워라. 단, 마지막 마무리는 내가 한다.”
부하들의 실력으로는 생포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알겠습니다.”
남은 요원들이 동시에 무기를 꺼내 들었다.
대장을 포함해서 전원이 일본도를 사용했는데.
길이가 긴 편인 데다 베기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물속에서 사용하기 좋은 무기는 아니었다.
“와라!”
기세 좋게 소리친 부하를 향해 새끼 괴물이 달려들었다.
일본도를 휘둘러 녀석의 다리를 몇 개 잘라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합금으로 만든 도를 맨몸으로 그냥 막았어?’
마력을 담아서 휘둘러야 겨우 상처를 낼 뿐.
자르는 것에는 실패했다.
한 번 당한 뒤로는 무기의 접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은 녀석이었다.
유유히 헤엄치며 사람들을 농락하고, 치고 빠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괴물을 잡으려고 호수에 뛰어든 요원들이었는데.
이젠 반대로 괴물을 피해서 도망치기 급급했다.
“저놈에 대해 잘못 파악했어.”
“결코, 우리 상대가 아니다.”
“S등급 요원이 왔어야 해.”
그렇게 남은 시간 동안, 사냥하기는커녕 새끼 괴물이 쫓고 사람이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실패를 인정하기 싫지만, 더 이상의 작전 수행은 무리다. 여기서 철수한다.”
한 명이 또 죽고, 남은 부하마저 온몸에 상처 입은 걸 보고, 그가 후퇴를 명령했다.
대장을 따라가던 요원이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던 그때.
싹둑.
어느새 그의 뒤에 나타난 새끼 괴물이 허리를 끊어버렸다.
몸이 두 동강 난 부하를 보고, 혼자라도 살아야겠다면서 물 밖으로 서둘러 나온 대장이었다.
총 다섯 명이 왔는데.
지금은 대장인 그 혼자 살아남았다.
최고 레벨 S등급 헌터라는 박민준을 직접 만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갓 태어났다고 알려진 새끼 괴물 한 마리에 당해버렸으니.
‘망할! 우리 다섯이 나서면 충분할 거라고 하더니. 엉터리 정보 때문에 내 부하들만 죽어버렸군.’
원래 같으면 죽은 부하의 흔적을 지우고 귀환해야 했다.
하지만, 모두 잡아먹혀 버린 터라, 굳이 그런 수고를 안 해도 된다는 점이 그의 유일한 소득이었다.
‘장비는 어차피 물속에 가라앉았을 테니. 다른 사람이 찾을 수 없겠지. 그냥 이대로 떠나자.’
그냥 혼자서 조용히 움직이던 그때.
“너 뭐냐?”
집에 돌아온 박민준이 그를 발견했다.
박민준을 알아본 대장 소리노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저자가 왜 벌써 돌아온 거지?’
그가 죽은 동료의 복수를 박민준에게 대신하고자, 들고 있던 일본도에 남은 마력을 모두 쏟아부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박민준은 그를 막지 않았다.
“죽어라! 내 부하들의 목숨값이다.”
일본 억양이 섞인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듣고, 상대의 국적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일본인인가? 그나저나 정말 무식하게 덤비는군.”
하얀빛을 뿌리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일본도를 박민준이 맨손으로 잡아냈다.
“어떻게?”
“도강도 아닌데 뭐. 그냥 손에 기를 두르고 잡으면 돼.”
대장 소리노의 실력은 도기와 도강의 중간 단계에 불과했다.
자길 우습게 보는 상대에게 화가 난 소리노가 재차 도를 휘두르려고 했는데,
박민준의 손에 잡힌 도를 도무지 빼낼 수가 없었다.
도를 양손에 쥐고 끙끙대는 그를 향해, 박민준이 다른 손을 내밀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였다.
‘내가 왜 갑자기 움직이지 못하는 거지? 어라? 말도 안 나오잖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한 소리노를 보고, 박민준이 피식 비웃었다.
그리고 재차 손을 움직였다.
소리노는 상대의 손길이 닿은 순간, 몸에 열이 나는 걸 느꼈다.
‘이건 또 뭐지?’
처음엔 따뜻했는데.
점점 뜨거워지더니.
나중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상대의 고문에 대항하는 훈련을 받은 소리노였다.
‘하지만 이런 건 처음이다.’
몸에 화상을 입혀가면서 훈련을 하지는 않으니.
당연히 처음이었다.
그래서 도저히 몸의 고통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아아악! 하고.
마음껏 소리라도 지르면, 조금 나을 것 같은데.
그마저도 입이 움직이지 않아서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은 그가 기절하기 직전.
박민준이 다시 손을 썼다.
거짓말처럼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소리노의 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맛이 어때? 넌 좀 고문에 익숙해 보여서, 색다른 방법을 써 봤는데. 아주 화끈했지?”
“미친놈!”
“재밌네. 그런 고통을 겪고도 첫마디가 욕이라니.”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이냐?”
“기껏 아혈을 풀어줬더니. 욕하고 헛소리만 하고 있네? 아무튼, 좋아. 그럼 다시 시작하자.”
“아…. 안 돼!”
박민준의 손길이 다시 소리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이미 두 번째이지만, 결코, 적응할 수 없었다.
아아악!
차라리 날 죽여라!
연신 악을 쓰고, 비명을 지르는데, 입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고통을 이기지 못한 소리노의 눈이 뒤집혔다.
그의 눈에 흰자만 보이는 걸 확인하고.
박민준이 다시 손을 썼다.
이번엔 소리노가 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거칠게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는 듯.
싸늘하게 웃은 박민준이 말했다.
“누가 널 보냈지? 날 노린 건 아닐 테고. 수문이를 훔쳐 가려고 한 건가?”
“수문이? 그게 대체 누구지? 설마 괴물에 이름을 붙여준 건가?”
“그래. 귀여운 생김새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아?”
“그 끔찍한 괴물이 뭐가 귀엽다는 건가?”
“근데 너 말이 좀 짧다? 다시 혼나야겠네.”
“아…! 아닙니다. 묻는 말에 성실히 답할 테니. 제발 그것만은.”
“좋아. 그럼 다시 묻지. 네 소속과 여기 온 목적에 대해 말해.”
“대일본제국 특별공작부 소속 중령 소리노 다케다입니다. 여기 있는 7등급 괴물의 새끼를 생포해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좋아.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은? 일본 총리인가?”
“정확히는 저도 모릅니다. 그냥 상부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을 뿐입니다.”
“그래? 근데 너 혼자 온 거야? 아까 부하들의 복수 어쩌고 했잖아? 그놈들은 어딨어?”
박민준은 소리노를 발견하고, 다른 인기척도 느끼려고 했다.
하지만 전혀 감지되는 게 없었으니.
‘투명화에 기척을 감출 수 있는 놈들이 또 온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물어본 거였는데.
그가 들은 대답은 전혀 달랐다.
“저 물속에 있는 괴물 새끼에게 모조리 당했습니다.”
“그래? 생각보다 제법이네. 아직 어려서 쓸모가 없을 줄 알았더니. 벌써 밥값을 하네.”
소리노는 박민준의 말을 듣고 몸에 소름이 돋았다.
부하를 네 명이나 잡아먹은 괴물을 칭찬하다니.
‘무슨 그런 말을. 정말 사악하구나. 최악의 냉혈한이다.’
박민준의 감정 없는 눈빛을 보고, 그게 결코, 자신의 착각이 아니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저런 자의 물건을 노리다니. 상부에서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우릴 보낸 것부터 이번 일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박민준이 돌아오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어야 했는데.
이렇게 벌써 집에 와서 마주한 것부터 일이 틀어진 거였다.
이후로도.
고분고분.
박민준의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한 소리노였다.
“우리 수문이를 훔쳐 가면, 어디로 갈 생각이었지? 다음 접선 장소가 있을 거 아냐?”
“경기도입니다.”
“야. 경기도가 얼마나 넓은데.”
“정확한 위치는…. GPS에 나와 있습니다. 그걸 확인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워낙 시간에 쫓겨서 진행한 임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모양이었다.
“그게 GPS야?”
“맞습니다.”
“이리 내놔.”
박민준이 소리노의 GPS기기를 빼앗았다.
스마트폰처럼 생긴 기계를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그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일본어잖아?”
“네. 당연히…. 가 아니라, 일본에서 쓰던 걸 가져와서 그런 겁니다.”
박민준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신이 혼자 GPS를 조작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소리노에게 다시 넘겨줬다.
마저 그의 몸에 걸린 점혈을 모두 풀어주고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접선 장소까지 네가 날 안내해.”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모시겠습니다.”
원래는 몸이 자유로워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결하도록 훈련받았다.
하지만 소리노는 이미 박민준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제대로 생각할 수조차 없었으니.
그가 시키는 대로 GPS 화면상의 목적지를 향해 그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
경기도의 인적이 전혀 없는 공터.
중형 비행기 한 대가 착륙해있었다.
그 옆에 임시 천막을 치고, 앉아 있는 무리도 있었다.
일본의 야마다 장관과 그의 부하들.
미국의 제이크 장관과 링고 도노반이었다.
담배를 피우던 제이크가 비행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군. 어떻게 들키지 않고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거지?”
“요즘 비행기에 스텔스 기능 정도는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군. 근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됩니다.”
야마다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무척 초조한 상황이었다.
사실 비행기에서 미리 보고 받은 것에 따르면, 지금쯤 진작 만남이 이뤄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왜 나타나지 않는 거지? 작전에 실패했을 리는 없을 테고, 여기 오는 중간에 문제가 생겼나?’
소리노 팀은 10번 이상의 특수임무에 모두 성공했으니.
그래서 야마다는 그들의 실패를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그저, 중간에 차가 고장 났거나, 한국에 익숙하지 않아서 길을 잠시 헤매는 정도만 예상했으니.
그가 멀리 자동차 불빛을 보고 미소 지었다.
“저기 오는 모양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노 팀과 7등급 괴물의 새끼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