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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20화 (120/175)

120화

“이 끈적끈적한 것들은 뭡니까? 마치 괴물의 껍질을 코팅해놓은 것 같군요?”

햇빛을 받아 미세하게 번뜩이는 여왕개미 괴물의 껍질이었다.

놀랍게도 죽은 지 며칠이 지난 뒤로도 체액이 증발하지 않고, 그대로 껍질에 달라붙어 있었으니.

“그건 그냥 죽은 괴물의 체액인 것 같은데?”

“그런가? 하지만 그게 왜 여태 남아있는 건지?”

사람들이 연이어 호기심을 보이던 그때.

링고 도노반이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괴물 체액이니 뭐니 그따위에 그만 신경 쓰고. 여기 온 목적이나 어서 확인이나 해 봅시다.”

상당히 건방진 태도지만, 장관 중 누구도 뭐라 하지 못했다.

스폐셜 쓰리라는 그의 명성 때문이었다.

대신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그러시지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바쁜 분들이니까요.”

이자벨라 대통령이 유일하게 자기 말에 동조해주자, 그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체액의 다른 효과를 확인하고 계속 관심을 보였다.

“저 괴물의 껍질에 묻은 체액의 성분을 밝혀낸다면, 이전에 지구에는 없었던 강력한 보존 물질을 발명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게 말이오. 여기 와서 괴물을 직접 보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가치를 지닌 걸 또 발견한 것 같소이다.”

괴물의 껍질이 지닌 강력한 방어력에만 집중했었는데.

이젠 그 체액마저 유의미한 가치를 지녔을 거로 판단되었으니.

‘무리해서라도 우선 괴물의 사체를 확보하는 게 좋겠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포기하기에는 괴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연구 개발 가능성이 너무 크다.’

중국의 양위몽과 프랑스의 마르샹 테리에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다행히 사전에 프랑스와 합심하길 잘했다. 오늘 일의 성사가 우리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중국과 비용을 나누면 충분히 우리 프랑스도 괴물의 사체를 확보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수리남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미리 협력하기로 얘기를 마친 상황이었다.

일본의 야마다가 그런 프랑스와 중국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흥. 내 진작에 저럴 줄 알았다.’

야마다도 사전에 가까스로 미국과 접촉했다.

다만 그는 제이크 장관이 아니라 미합중국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고 협력을 끌어냈다.

다만, 그 시기가 조금 엇갈려서, 제이크 장관과는 아직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상황이었으니.

야마다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계속 대화만 나눌 생각이 아니라면, 링고 도노반 씨의 말대로 합시다. 우선 괴물의 껍질이 정말 영상과 같은지 보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각자 금액을 생각하기로 하지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이번엔 모두가 동의했다.

링고 도노반이 담배를 꼬나물고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허리춤에 걸어둔 무기를 꺼냈다.

짙은 갈색의 긴 밧줄을 돌돌 감아놓은 모양이었다.

박민준은 그게 채찍인 걸 바로 알아봤다.

“재밌군. 어디 도굴이라도 하러 다니는 건가? 근데 생긴 건 2편에 나온 악당처럼 생겼군.”

미국의 유명한 영화의 주인공 존스 박사가 중절모에 채찍을 가지고 다녔던 게 떠오른 그였다.

상대의 외모를 비꼬는 말도 있었지만, 링고 도노반은 듣고 그냥 넘겼다.

그가 한국어로 말한 데다, 통역사가 링고의 눈치를 보고 통역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후우~

담배 연기를 내뱉은 그가 채찍을 풀어서 길게 늘어뜨렸다.

그걸 그대로 여왕개미 괴물의 사체에 휘두르려는 순간.

박민준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뭐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누가 네놈에게 멋대로 나서라고 했지?”

“내가 아니면 여기 다른 S등급 헌터가 또 있기라도 한가?”

“굳이 데려올 필요가 없으니까. 머리가 있으면 그 정도는 생각할 수 있지 않나?”

“당신을 믿고, 말이지? 흥. 1조 원짜리 물건을 사겠다고 왔으면서 상대의 말만 믿겠다니. 정말 머저리들이군.”

그러고 보니.

S등급 각성자를 동반한 미국의 제이크 장관과는 달리, 프랑스, 중국, 일본에서 따로 헌터를 데려오지 않았다.

그건 박민준이 이곳에 있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수리남에 있다면 굳이 자국의 S등급 헌터를 귀찮게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쓸데없는 일로 우리나라 최강 전력의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다. 어차피 물건을 팔려면 현지에서 그자가 직접 나서겠지.’

또한, 그때 박민준의 실력을 간접적으로나마, 구경할 기회가 될 것이니.

링고 도노반과 박민준이 대치한 상황을 두고, 한 사람만 빼고 모두가 흥미로운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둘이 붙으려는 건가?’

‘이것 참 운이 좋군.’

‘이번 기회에 저 둘이 정말 싸웠으면 좋겠는데.’

제이크 장관만이 불편한 얼굴을 하고, 그 둘을 노려봤다.

잠시 고민하더니.

“링고. 자네는 그만 물러나게.”

“네? 나보고 이제 와 빠지라는 겁니까?”

“그래. 저자가 이곳에 있으니. 그보고 직접 시험해보라고 하면 되지 않나?”

“젠장. 그럼 내가 여기 왜 온 겁니까? 그냥 미국에서 쉬게 둘 것이지.”

“그건 내가 미안하게 되었네.”

얼굴을 와락 구긴 링고 도노반이 채찍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걸 반쯤 돌돌 말았을 때.

박민준이 그에게 말했다.

“야. 그냥 네가 해라.”

“뭐? 갑자기 무슨 변덕이냐?”

의심 가득한 상대의 눈빛을 받고, 박민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내가 괜히 널 막아서 의심을 산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

“어. 내가 혼자 나서서 괴물의 껍질 방어력을 시험하면 나중에 딴소리가 나올 수도 있잖아?”

“그건 그렇지. 좋아. 그럼 간다.”

제이크 장관이 자길 말릴까 봐 걱정된 그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채찍에 손을 다시 가져갔다.

5m 길이의 채찍을 공중에서 대여섯 번 둥근 형태로 휘휘 돌리더니.

순간 마력을 가득 담아서 괴물의 껍질을 강타했다.

휙! 짝!

링고 도노반의 솜씨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

채찍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껍질에 명중하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채찍 끝이 껍질에 닿으면서 찰진 소리를 내긴 했지만, 단지 그게 다였다.

조금의 흠집이나 균열도 내지 못하고, 채찍에 맞기 전 모습 그대로였으니.

그걸 본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떡 벌렸다.

“영상을 통해 미리 보긴 했지만, 정말 저렇게 강할 줄이야.”

“저걸 견뎌내다니. 믿을 수가 없군.”

“스고이! 과연 이곳에 직접 온 보람이 있소이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순수하게 감탄하는 프랑스, 중국, 일본 장관들이었다.

반면에 제이크 장관은

‘링고의 저 공격은 5cm짜리 두께의 철판도 단번에 찢어버릴 수 있는데…. 저렇게 상처 하나 내지 못한단 말인가?’

심지어, 박민준 이전에 세계에서 제일 강하다고 했던 더원마저도 저 링고의 공격을 맨몸으로 막을 수 없었다.

‘저 정도면 정말 세상에서 제일 강한 물질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저런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괴물과 단독으로 싸워서 이기다니.

‘박민준 저자는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거지?’

처음엔 괴물 껍질의 방어력에 놀라던 그들이었다.

그러다가 결국엔, 그런 강력한 표피를 지닌 7등급 괴물을 물리친 박민준에게 다시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박민준은 자신의 계획이 제대로 통했다는 걸 알고, 속으로 미소 지었다.

사실 그는 링고 도노반을 대신해서 괴물의 껍데기를 시험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원래는 박민준이 직접 시범을 보일 생각이었지만, 링고가 이 자리에 따라온 순간부터, 그의 행동을 예상하고 계획을 바꿨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상황을 유도했으니.

링고 도노반을 흥분시켜서 주의를 흐트러트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잠시 그에게 집중시켰다.

그리고 순간 틈을 봐서 몰래 괴물 껍질에 자신의 내공을 가득 들이부었다.

‘이제 기운이 빠져나가기 전에 저놈이 공격하면 끝이다.’

그렇게 자신을 대신해서 링고로 하여금 괴물의 껍질을 공격하게 했다.

박민준의 의도대로 그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채찍을 휘갈겼다.

박민준의 내공이 아직 괴물의 껍질에 작용하는 상황에서 아주 당연하게도, 링고의 마력이 담긴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그 말고는 아무도 몰랐으니.

짝짝짝!

다들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제일 열심히 손뼉을 치던 야마다가 모두에게 말했다.

“괴물의 방어력이 확실하다는 걸 알았으니. 다들 잠시 쉬면서 공개 입찰할 준비를 마치도록 합시다.”

프랑스의 마르샹 테리에가 그 말에 제일 먼저 반응했다.

“그렇게 합시다. 10분이면 충분하니. 그 뒤에 다시 진행하는 거로.”

프랑스와 한편인 중국의 양위몽이 그의 말을 바로 받아쳤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여긴 좀 더운데? 차에 가서 에어컨이라도 틀고 있어야겠군.”

그가 먼저 차로 들어가더니.

스마트폰부터 꺼냈다.

“나도 차에 들어가서 시원하게 앉아 고민해봐야겠소.”

눈치를 받은 마르샹도 서둘러 자신의 차로 향했다.

그렇게 두 나라가 먼저 움직이는 걸 보고.

일본의 야마다가 제이크 장관에게 대놓고 접근했다.

어차피 다른 두 나라가 자리를 여기 피해서 여기 없으니.

‘오히려 더 잘된 건가? 이 틈에 제이크 장관에게 말을 건네야겠군.’

야마다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링고와 서둘러 대화 중인 제이크 장관이었다.

“자네 괜찮나? 너무 무리한 모양이군.”

실제로 링고 도노반의 얼굴이 창백했다.

“몸은 괜찮습니다. 그냥 좀 놀랐을 뿐입니다.”

괜찮다고 하면서도,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괴물의 껍질을 공격할 당시.

그는 일부러 담배까지 꺼내 물고, 여유로운 척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긴장한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할 순 없지. 제대로 내 실력을 보여주지.’

그렇게 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채찍에 가득 담았다.

필생의 적을 앞에 두고 있다는 생각으로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쳤는데.

결과는 무척이나 허무했다.

타격 부위에 작은 상처 하나 내지 못했으니.

사실 그건 기존의 여왕개미 괴물의 방어력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여서 그런 것뿐이었다.

박민준의 내공이 가진 순도 높고 농축된 기운을 잠시나마 보유한 괴물의 껍질과 체액이었으니.

오히려 괴물이 죽기 전보다 2배 이상 강한 방어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는 박민준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덕분에 괴물의 사체가 가지는 가치는 앞서 시험하기 전보다 훌쩍 올라가게 되었다.

크크 흠.

둘의 대화를 엿들은 야마다가 헛기침하며 끼어들었다.

그게 상당히 불쾌한 링고 도노반이었다.

그가 뭐라고 쏴붙이려는데.

그걸 감지한 제이크 장관이 먼저 나섰다.

“정말 오랜만이오. 야마다 장관. 그동안 잘 지내셨소?”

“아. 네. 덕분에.”

뭐가 덕분이라는 건지.

속으로 비웃음이 터진 제이크였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나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시오?”

“네. 그렇습니다.”

“그럼 어서 말해보시오.”

야마다가 말하기 전, 옆에 있는 링고의 눈치를 심하게 봤다.

그걸 본 제이크 장관이 손을 내저었다.

“괜찮소. 이자는 내 사람이나 다름없으니. 그냥 말해보시오.”

“그렇습니까? 스폐셜 쓰리의 링고 도노반이 장관님 사람이었다니. 정말 놀랍군요.”

“그런 말은 그만하고, 어서 본론이나 꺼내 보시오.”

“네. 실은 우리 일본과 미국이 이번 일에 협력하기로 사전협의가 되었다는 걸 말씀드리려고 온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정말 아직도 연락을 못 받으신 겁니까?”

“무슨 연락을?”

제이크 장관이 뒤늦게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대통령으로부터 여러 개의 메시지가 잔뜩 와 있었다.

일본과 자신이 미리 대화를 끝냈으니.

그쪽에 이번 일을 맡기고 한발 뒤로 빠지라는 얘기였다.

“내가 이걸 미처 확인하지 못했군.”

“지금이라도 봤으니. 그걸로 된 거지요.”

“그래서 당신네 일본과 우리 미국이 뭘 어떻게 협력하자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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