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어미인 여왕개미의 부재와 더불어.
인간의 피 냄새에 미쳐서 다른 곳에는 관심도 없는 새끼 개미 괴물을 상대하는 건.
박민준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가 검강을 휘두를 때마다 대여섯 마리나 되는 괴물의 몸통이 마구 잘려나갔다.
이자벨라를 비롯해서 그의 활약을 본 다른 사람들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 거대한 괴물을 쓰러뜨리고도 아직 힘이 남아 있다는 건가?”
“대체 저분의 마력은 끝이 없이 솟아나기라도 하나?”
“에너지 블레이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
검강을 지칭하는 말로 에너지 블레이드, 에너지 소드 등이 있었다. 딱히 정해진 이름이 없어서 각자 부르기 나름이었다.
한편, 박민준은 수리남 공화국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잘한 새끼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경험치들을 남에게 넘겨줄 순 없지.’
마침 한곳에 전부 모여있으니.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그저 기를 가득 담은 검을 휘두르면 될 뿐이다.
레벨업.
그리고 또 레벨업.
박민준이 수리남 공화국에 도착하고.
괴물 사냥으로 얻은 경험치가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아닌 다른 S등급 헌터였다면 10레벨은 올릴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
처음 천 마리가 넘는 새끼 개미 괴물을 처리하면서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의 절반을 얻었고,
오늘 7등급의 거대한 여왕개미를 사냥해서 바로 레벨업을 이뤘다.
그리고 남은 녀석의 새끼들을 잡으면서 마저 경험치를 채우고 레벨업을 또 이뤘으니.
‘이렇게 해외에 나올 때마다 한두 번의 레벨업을 이룰 수 있다면 다시 만렙을 이루는 것도 꿈은 아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거대 괴물을 사냥한다면, 10년? 아니 몇 년 안에 만렙을 이룰 자신이 생겼다.
한편, 그를 보며 감탄하던 이자벨라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민준에 비하면 너무나 약한 그녀였다.
하지만 나름대로 A등급 각성자에 수리남 최강 헌터인 만큼, 새끼 괴물을 착실하게 죽여나갔다.
한편, 자신을 돕기 위해 사냥에 나선 이자벨라를 보고.
박민준이 인상을 구겼다.
더는 창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막으며 소리쳤다.
“뭐야? 왜 끼어드는 건데? 이놈들은 전부 내 거라고. 그러니까 그만 꺼져. 멀리서 구경이나 해.”
버럭 한 그를 보며, 이자벨라는 오히려 감동의 눈빛을 보냈다.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걱정해서 나서지 못하도록 막는 거라 착각했다.
‘아직 남은 괴물이 너무 많아서 내가 다칠까 봐. 그래서 저렇게 화까지 내면서 내 걱정을 해주는 건가?’
꿈보다 해몽이라고.
그의 박력 있는 모습과 다정함? 에 반한 그녀였다.
이자벨라가 창을 거두고, 괴물이 모여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졌다.
자국의 사람들과 함께 상황을 관전하기 시작했다.
그녀와는 달리, 이 모든 상황을 드론으로 촬영 중인 한국인들은 박민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
“꺼지라니? 박민준 씨께서 저 대통령에게 사냥하는 일을 방해받았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저러다 대통령까지 없애버리는 건 아니겠지요?”
“설마?”
“왜? 저분이 못할 것 같아? 내가 소문으로 들었는데. 전임 국장님도 박민준 씨에게 당한 적이 있다고….”
부하들의 잡담을 들은 방수열이 서둘러 그들을 나무랐다.
“그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촬영에나 집중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오늘 촬영한 모든 영상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 제출해야 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만약 내 허락 없이 영상이나 소리를 유출하면, 크게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내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그렇게 만들 것이다.”
방수열은 수리남에서 찍은 영상을 잘 편집하고 포장할 생각이었다.
‘아까 같은 말은 그의 영웅적인 이미지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저런 건 대중이 알 필요가 없다.’
그렇게 박민준의 활약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더불어 게이트 관리국의 위상도 드높일 생각이었으니.
‘그 이익에 반하는 모든 건 내가 사전에 차단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방수열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기계처럼 괴물을 죽여나간 박민준이었다.
그리고 기어이.
거의 모든 새끼 괴물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피를 잔뜩 모아둔 덕분에, 도망치는 녀석들이 거의 없었다.’
녀석들은 본능에 지배당했다.
동족이 박민준에게 빠르게 썰려 나가는 상황에서도, 오직 사람의 피만을 탐했으니.
괴물을 전부 처리한 박민준이 방수열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서 더는 볼일이 없으니. 그만 철수하지.”
“네. 그나저나 오늘도 정말 대단한 활약이었습니다.”
“뭐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하고 있어?”
“사실 아까 당신의 검이 통하지 않는 걸 보고, 속으로 살짝 당황했었습니다.”
“나도 그래. 검강을 이겨내는 껍질을 지녔을 줄이야. 그래서 말인데, 저 괴물 시체를 잘 지켜.”
“네. 저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7등급 괴물이라고 해도, 설마 검강을 막아낼 줄이야.
그 장면이 드론이 촬영한 동영상에도 분명히 찍혔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본 모두가 저 괴물의 시체를 탐내겠지.’
게이트가 열린 이래로 신소재 대부분이 저렇게 괴물이나 그와 함께 딸려 나온 물질에 의해서 개발되거나 발견되었다.
지구에서 제일 강한 헌터의 에너지 블레이드도 막아낼 수 있는 소재라니…….
심지어 앞서서 7등급 괴물 두 마리를 단번에 절단한 그의 검인데.
그 어느 누가 욕심내지 않을 수가 있을까?
특히, 미국을 포함한 모든 강대국에서 군침을 흘리며, 저 괴물의 신체 일부라도 훔쳐내려고 혈안이 될 터.
‘바로 한국에 연락해서 지원을 요청해야겠군. 수리남의 협조도 얻어내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박민준이 수리남 공화국에서 사냥한 모든 괴물이 소유권을 한국이 가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실상은 한국이 아니라, 박민준의 소유물이 되긴 하겠지만, 저런 굉장한 가치를 지닌 괴물을 다른 나라와 공유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괴물을 제가 직접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뭐 하려고? 네가 봐서 뭘 알아?”
“혹시 잊으셨나 본데. 저도 나름대로 각성자입니다.”
“아! 그랬지.”
전투력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하지만, 나름대로 마력을 운용할 수는 있었다.
본부에 보고하기 전에 괴물 껍데기를 직접 살펴보고, 마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박민준과 방수열이 함께 여왕개미 괴물의 시체로 향했다.
가까이에서 본 여왕개미 괴물은 이미 죽은 뒤임에도 그 위압감이 대단했다.
“멀리서 봤을 때도 위협적이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녀석이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저절로 위축되는군요.”
“그래서 지금 쫄았다는 거야?”
“그럴 리가요? 박민준 씨가 바로 옆에 계시는데. 제가 뭐가 두렵겠습니까?”
어디서 웃음 포인트가 있었는지.
자길 보며 피식 웃는 박민준을 뒤로하고.
그가 괴물에게 다가가 껍질을 맨손으로 만졌다.
매끈하고 딱딱한 것이 마치 쇠를 접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마치 자동차를 손으로 만지는 것 같군.’
조금은 끈적이는 느낌도 있었는데.
‘체액인가? 아니면 방어력에 도움을 주는 또 다른 물질인가?’
그가 주머니에서 작은 뭔가를 꺼내 들었다.
스위스제 멀티툴 세트였다.
과거 미드의 주인공이 가지고 다니던 거로 유명했지만, 방수열은 그걸 직접 본 기억이 없었다.
대신 박민준이 그걸 알아봤다.
“이야. 그거 맥가이버 칼이잖아?”
“네? 뭐라고요?”
“맥가이버 몰라?”
“모릅니다. 이건 그냥 게이트 관리국 개국 15주년 때 직원들에게 나눠준 기념품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런. 그걸 왜 몰라? 딴~딴딴딴…. 노래도 유명했는데.”
이상한 박자로 흥얼거리는 그를 향해 방수열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 정말 모르니까. 잠시만 조용히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대신, 한국에 가면 나도 그거 하나 줘.”
“네? 네. 알겠습니다.”
다시 침묵이 흐르고.
방수열이 우선 칼을 그대로 괴물의 표피에 가져갔다.
당연히 흠집도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그극.
처음엔 기대한 것처럼 조금의 저항이 느껴졌다.
그가 마력을 모아서 힘을 주는 순간.
푹!
칼날이 껍질을 뚫고 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이었다.
놀란 방수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박민준을 돌아보며 빠르게 말했다.
“헉! 이거 왜 이러는 겁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박민준이 퉁명스럽게 답했는데.
그도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아까는 날 그렇게도 애먹이더니. 지금은 저렇게 쉽게 뚫린다고?’
겨우 저 정도 강도를 지녔으면서, 아까는 어떻게 검강을 막아낸 걸까?
“저리 비켜봐.”
당황해서 멈칫거리는 방수열을 밀어내고.
그가 직접 괴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검을 쓸 필요도 없이.
박민준도 맨손으로 녀석의 껍질을 만지더니.
그대로 힘을 주는 순간.
푹!
손가락이 껍질을 박살 내면서 안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어이가 없군.”
와드득.
그가 손가락으로 껍질을 움켜쥔 뒤 그대로 뜯어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력을 불어넣었더니.
표피에 묻은 녀석의 체액이 자신의 기운에 반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괴물의 껍질도 강화되는 듯.
손아귀에서 더욱 단단하게 변한 걸 알았다.
‘내 검처럼, 이놈의 껍질과 체액이 마력이 반응한다는 건가?’
아마 마력을 흡수해서 더욱 표피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반쪽짜리 물건밖에 되지 못하겠군.’
그의 검이 단단하지만, 마력을 흡수하는 부정적인 작용 때문에 버림받았듯이.
이 괴물의 껍질과 체액도 마력을 방어력으로 바꿔주는 역할만 할 뿐이라, 처음 기대한 것보다는 가치가 많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강철보다 강한 금속이 이미 제법 많이 개발된 상황에서 굳이 마력을 소모해가면서 더 강하게 강도를 높일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반대로 껍질과 체액으로부터 마력을 뽑아낼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신소재에 연구를 위해 필요한 이계의 물질일 뿐.
당장 활용할 수 있거나 경제적으로 큰 의미가 있지는 않을 듯싶다.
한편, 아직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이자벨라였다.
그녀는 괴물의 껍질이 보인 무지막지한 방어력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저런 물건으로 무기나 방어복을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 수리남의 헌터들에게 나눠주고, 전투력을 높일 수 있을 텐데.’
수도에 나타난 7등급 괴물과 그 새끼들은 처리했지만, 아직 나라 곳곳에 남은 괴물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다.
그 괴물들은 등급이 낮은 약체지만, 수리남의 헌터들 또한 그리 수준이 높지 못했으니.
당연히 괴물의 시체에 탐이 날 수밖에.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내가 너무 섣불리 한국 정부와 계약을 해버렸구나. 100% 소유권을 넘겨주지 말고, 조금이라도 남겨놨어야 했는데.’
나라를 구해준 한국과 박민준과의 의리 때문이라도, 이젠 계약의 수정이나 파기를 절대 언급하지 못할 상황이었으니.
‘따로 저분을 만나서 부탁해보는 수밖에.’
***
괴물이 죽은 그날 오후.
오전에 일어난 일의 소문이 퍼졌는지.
와~
수리남 수도에는 기쁨에 시민들의 찬 함성으로 가득했다.
지독할 정도로 사람들을 괴롭혔던 거대 괴물과 그 새끼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거리로 뛰쳐나왔다.
서로 끌어안고 소리 지르며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중이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거대 개미 괴물이 죽다니. 믿을 수가 없어. 대체 어떻게 죽인 걸까?”
“빌어먹을 괴물 새끼들이 드디어 모두 죽었다.”
“우리 가족의 복수를 내가 직접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같은 인간의 손에 녀석이 죽었으니. 이걸로 만족한다.”
마치 축제와 같은 현장에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하나둘씩 대통령궁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팍민준!”
“이자벨라!”
“팍민준!”
“이자벨라!”
어설픈 발음으로 박민준과 자국의 대통령인 이자벨라를 번갈아 가며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대통령궁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시민들이 저렇게나 기뻐하다니. 이게 다 박민준 씨 덕분이야.’
수리남 공화국에서 볼일을 마친 그가 언제 떠날지 모르니.
그녀는 서둘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한껏 상기된 얼굴의 이자벨라가 통역사를 대동하고 박민준의 방을 몰래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