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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13화 (113/175)

113화

다음 날 아침.

대통령궁 주변 지역에 군인들이 나타났다.

주사기와 아이스박스 또는 빈 병을 들고 있는 그들을 보며, 사람들은 호기심을 느꼈다.

“저걸로 뭘 하려는 거지?”

“난들 아나?”

“방역 주사라도 놔주려는 모양이지.”

“주사? 갑자기 왜?”

“왜긴. 괴물에게 잡혀갔다 돌아온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잖아.”

“아~. 병균이 옮았을까 봐. 주사를 놔준다는 거구나. 그럼 우리는 아무 상관없겠네.”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군용 차량에서 들려온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대통령령으로 급히 채혈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건강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피를 뽑겠지만, 최대한 많은 피가 필요한 상황이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적극적인 협조 바랍니다.”

구경 나왔던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고, 앞다투어 도망쳤다.

“뭐? 주사기로 우리 피를 뽑을 거라니? 저게 무슨 소리야?”

“빈 병에 피를 채우려고 들고 있는 거였어?”

“도망치자.”

“그래. 군인들이 우리 피를 얼마나 뽑을지 누가 알겠어? 잘못 걸리면 죽을지도 몰라.”

“의사나 간호사도 없이 군인들을 앞세우다니. 대통령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 같은데.”

집에 있던 자들도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 아무도 없는 척하기 바빴다.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시민들 때문에 기대 이하의 피만 모을 수 있었다.

이자벨라의 채혈 명령을 받은 국방부 장관이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래서는 목표한 시간에 원하는 만큼의 피를 모을 수 없다.”

그래서 군인들에게 강제로 사람들의 몸에서 피를 뽑도록 명령했다.

“민간인당 주사 한 개 만큼의 피를 반드시 채혈하도록 한다. 오늘 점심 전까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너희들의 피를 뽑아 달성하게 할 것이다.”

아이울 장관의 말은 효과가 굉장했다.

“꺅!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군인이면 우릴 지켜줘야지. 이래도 되는 거예요?”

“살려줘요. 빈혈이라 피를 뽑으면 안 돼요.”

길거리에 도망치는 시민과 그걸 쫓아가 피를 강제로 뽑은 군인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쾅!

문을 굳게 걸어 잠근 건물 안에 군인들이 강제로 들어갔다.

숨어 있던 사람들을 찾아내, 무작정 피를 뽑았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사람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괴소문이 퍼졌다.

“괴물에게 잡혀갔던 이자벨라 대통령과 사람들이 몹쓸 병에 걸렸다.”

“사람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더라.”

“아니야. 우리 피를 뽑아서 괴물에게 갖다 바치려는 수작을 부리는 거라더라.”

***

대통령궁.

국방부 장관에게 이번 일을 위임하고 방수열과 함께 회의를 진행하는 이자벨라 대통령이었다.

“괴물을 처리한 뒤엔, 우리 수리남 공화국에도 한국과 같은 강력한 게이트 관리국을 설립하고자 해요. 도와줄 수 있나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님과 단독 면담을 요청했던 겁니다.”

“그것참 고맙군요.”

“한국과 이 나라에 서로 도움이 될 방법을 찾을 겁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협의해나가도록 하시지요.”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던 그때.

비서실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나타났다.

“대통령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죠?”

“국방부 장관께서 일을 너무 강압적으로 처리하시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시민 폭동이 일어날 듯싶습니다.”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알아듣기 쉽게 다시 말해봐요.”

“아이울 장관께서 군인들에게 강제 채혈 작전을 명령했답니다.”

“강제 채혈?”

“네. 민간인을 발견하는 족족,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피를 뽑아내라는 말을 했답니다. 거기다 할당을 줘서 못 채우면, 군인들의 피로 목표 수치를 채우겠다고…….”

“뭐, 그런 미친 인간이!”

앞에 다른 나라 사람이 있다는 걸 잊을 정도로 화가 난 이자벨라였다.

쌍욕을 연이어 내뱉으며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네덜란드어로 둘이 대화한 터라.

방수열은 무슨 상황 때문에 저러는지 전혀 몰랐다.

그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운 좋게 근처에 있던 통역사를 만나서 이유를 물었다.

“마침 잘 만났습니다. 마침 당신을 찾고 있었는데.”

“저를요?”

“네. 대통령님이 갑자기 왜 화를 내며 사라진 겁니까?”

“글쎄요. 아마 밖의 상황 때문에 그런 게 아니실까요?”

“밖의 상황이라니요?”

“안에만 계셔서 모르나 본데. 지금 밖에 난리가 났어요. 군인들이 강제로 사람들의 피를 뽑아간다고 말이죠.”

“아! 그건 박민준 씨가 요청한 일인데.”

“그분이 피를 원한다고요? 왜요?”

통역사의 말에 답해주지 않은 그였다.

대신 혼자 중얼거리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일을 그렇게 처리하다니.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 이 일을 어서 수습하려면…….”

역시 맨 처음부터 대통령과 그 일을 요청한 박민준이 직접 나서야 했다.

방수열이 통역사를 데리고 급히 박민준을 찾았다.

“일이 더 크게 어긋나기 전에. 나와 함께 갑시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그를 따라나선 통역사였다.

***

박민준은 자기 숙소에서 머물며, 어젯밤 무리했던 몸을 완벽하게 회복하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기를 마구 사용했더니. 몸에 무리가 가긴 하는구나.’

지구로 돌아온 뒤로, 최대한의 힘을 사용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어제 살짝 무리한 것만으로도, 그의 아침 몸 상태가 별로 무척 좋지 못했다.

내공 운기를 막 끝마친 그때.

쿵쿵!

그의 방문을 거칠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아침 내내 밖이 어수선한 것 같던데. 그 일 때문인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귀찮은 그가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동으로 문고리가 돌아가고, 문이 열렸다.

‘무공이 삶의 질을 이렇게 높여준다니까. 역시 뭐든 배워둬야 해. 얼마나 편하고 좋아.’

혼자 미소 짓고 있는 그의 눈에, 방수열과 통역사가 보였다.

“다행히 여기 계셨군요. 너무 조용해서 안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방수열이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걸 다 들은 박민준이 미간을 손으로 주물렀다.

“일을 그렇게 처리했다고? 여기 국방부 장관이면 그 할아버지잖아? 아주 완전히 또라이였네.”

“그래서 말인데. 박민준 씨께서 직접 나서 주셔야겠습니다.”

“내가? 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잠재우고, 평화적으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가 나서서 여기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라는 거구나. 하지만 내 말을 들을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통역사를 데려오지 않았습니까?”

“아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수리남 사람들에게 난 그냥 외부인일 뿐이잖아?”

“여기 사람들에게 당신은 그냥 외부인이 아닙니다.”

“그럼 내가 수리남 명예시민이라도 되냐?”

“이런 상황에서 그런 농담을 하시다니요?”

“못할 게 또 뭐 있어? 내 마음이지.”

“아무튼, 박민준 씨께서 직접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해주면 상황이 바로 종료된 겁니다.”

“확신해?”

“네. 확신합니다. 쓸데없는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꼭 당신이 나서 주셔야 합니다.”

“좋아. 그럼 귀찮긴 하지만, 내가 움직여주도록 하지.”

그렇게 박민준이 대통령궁을 나섰다.

그리고 이미 밖에 나와 있던 이자벨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시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혼자 열심히 노력하고 떠들었다.

하지만, 이마 시민들에게 선입견이 생긴 뒤라.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흥! 우릴 지켜달라고 대통령으로 뽑아줬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쳐?”

“괴물에게 피를 갖다 바치려고 이젠 별 수작을 다 부리는구나? 누가 속을 줄 알고?”

“악녀! 넌 대통령 자격도 없어. 지금 우리 엄마가 강제로 피를 뽑혀서 의식을 잃었다고. 여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단 말이야.”

이자벨라가 연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미안해요. 내가 이런 명령을 내린 게 아니에요. 절대 강제로 채혈하라고 하지 않았다고요.”

“웃기는 소리. 군인들이 명령을 받았으니까 저러는 거잖아!”

“그게 아니라니까요. 내 말 좀 믿어줘요.”

역시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정치적 기반이 시민이었던 이자벨라에게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사람들을 설득하길 포기한 그녀가 국방부 장관을 소환했다.

그리고 참았던 화를 풀려는 듯. 그에게 마구 소리쳤다.

“당신 미쳤어요? 왜 상황을 이렇게 안 좋게 만들었어요?”

“저는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뭐라고요?”

“최대한 빨리 많은 양의 피를 모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요. 하지만 내가 언제 강제로 사람들의 피를 뽑으라고 했어요?”

“시민들이 협조하지 않으니. 저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뿐입니다. 대신 저렇게 많은 피를 빠르게 모을 수 있었지요.”

화를 내는 이자벨라에게 자신이 모은 피를 자랑스럽게 가리켜 보인 아이울 장관이었다.

과연 강제라 그런지.

많은 피를 모은 상태였다.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가뜩이나 괴물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친 시민들이잖아요? 저렇게 많은 피를 강제로 마구 뽑으면 누가 좋다고 하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자발적인 참여만 요청하면 언제 피를 저렇게 모을 수 있었겠습니까?”

“시민들이 협조를 안 하다니? 그것부터 이상해요.”

“뭐가 이상합니까?”

“우리가 왜 피가 필요한지. 시민들에게 사전에 제대로 설명하긴 했어요?”

“그건…. 아마 부하들이 잘 설명했을 겁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둘에게 박민준 일행이 다가갔다.

그들을 본 이자벨라가 애써 화를 가라앉혔다.

‘짜증이 나 죽겠는데 여긴 왜 나온 거지? 통역사까지 데려왔잖아?’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고치고 박민준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세요? 지금은 좀 바쁘니까. 나에게 할 말이 있으면 나중에 하도록 하세요.”

“지금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방수열?”

고개를 끄덕인 방수열이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우리도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님을 도우려고 이렇게 온 겁니다.”

“날 도와주기 위해 왔다고요?”

“네. 대통령님과 박민준 씨가 사람들 앞에 나서서 제대로 상황을 설명하면, 금방 상황이 종료될 겁니다.”

“내가 이미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요.”

“그건 대통령님 혼자 말해서 그랬을 뿐입니다. 박민준 씨가 함께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질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물론입니다. 그러니, 어서 저 차에 올라타시지요.”

확성기가 장착된 군용 트럭에 올라탄 박민준 일행과 대통령이었다.

그녀가 먼저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해서 떠들었다.

그리고 박민준의 말을 통역사가 대신 사람들에게 전했다.

방수열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저 여자가 또 나와서 우릴 기만하고 있어.”

“이번엔 외국인까지 옆에 데리고 나왔네.”

이런 상황에서도 방수열이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민준 씨가 구해준 사람들이 수백 명입니다. 여기에는 별로 없는 것 같으니. 그들이 최대한 많이 모인 지역으로 가시지요.”

그렇게 어젯밤 그가 구해준 사람들이 잔뜩 머물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불만은 이곳도 굉장했다.

“기껏 구해주더니. 피를 이렇게 많이 뽑아?”

“우리 피가 필요해서 구해준 척한 건가? 괴물이나 당신들이나 무슨 차이가 있어?”

방수열의 예상과는 달리.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다.

그가 드디어 당황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이런…….”

그때 박민준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차 밖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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