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정말 강하다. 그래서 너무 멋있어.”
이자벨라는 앞서 그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때도 강한 걸 알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힘을 폭발적으로 분출해서 싸우는 특성도 있다.
그런 사람은 단기간, 일대일 대결에는 무척 강하다.
하지만, 다수를 상대하거나, 시간을 끌면 약점이 철저하게 드러나기 마련이었으니.
그녀는 박민준이 무리하고 있는 거로 착각했었다.
‘저렇게 마력을 펑펑 쓰면 얼마 버티지 못할 텐데.’
이곳에는 1000마리가 넘는 개미 괴물이 모여 있었다.
처음 박민준이 싸운 괴물의 숫자는 고작 수십 마리였다.
그래서 그가 순식간에 놈들을 없앤 걸 보고, 이자벨라는 사람들과 함께 도망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은 실행되지 못했다.
알이 있는 장소에 문제가 생긴 걸 알았는지.
개미 괴물들이 말 그대로 개미 떼로 몰려왔으니.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
그저 까맣게 개미 괴물로 바다를 이뤘다.
그 위세에 눌린 이자벨라가 함께 이곳으로 잡혀 온 사람들을 이끌고 통로로 도로 들어갔다.
“어서 이쪽으로 와요. 입구가 좁으니. 여기서 최대한 막으면서 버티는 게 좋겠어요.”
열심히 말하는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박민준이었다.
그저 사람들을 대피시키려는 줄로만 알고, 알아서 조심하라며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답답했는지.
“어서 이쪽으로 오시라고요.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저 많은 괴물을 혼자 어쩔 수 있겠어요?”
이번에도 박민준은 그녀를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괴물이 잔뜩 몰려오는 곳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 상황에서 웃어? 미친 거야, 뭐야?’
히죽.
달빛 아래.
미소 지은 박민준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도저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치자. 저자가 괴물의 시선을 끄는 동안, 다른 길을 찾아보는 수밖에.’
그렇게 마음먹고 통로로 완전히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녀는 그걸 보고 말았다.
촤~악!
박민준이 앞으로 내민 검강에 의해, 일직선으로 길게 죽어 나가는 괴물의 물결을.
“말도 안 돼!”
차 여러 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으면서 동시에 곧게 뻗은 도로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쾅!
개미 괴물이 열심히 흙덩이와 돌을 물어와 만들었던 거대한 산 벽의 일부가 사라져버렸다.
‘저건 단순히 무너진 게 아니야. 그냥 사라졌어?’
흙이나 돌이 물처럼 증발할 리가 없을 텐데.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엄청난 광경에 그녀는 도망갈 생각을 잊었다.
오히려 밖으로 나와서 박민준이 만든 모습을 더욱 가까이 관찰했다.
그리고 사라진 산 벽을 보고, 깨달았다.
‘사라진 게 아니었어. 아주 고운 가루가 되어서 주변에 날렸다.’
부들.
그녀는 자신의 창을 쥔 손이 심하게 떠는 걸 느꼈다.
‘사람의 몸으로 저런 파괴력이라니. 말이 되나?’
박민준의 활약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그가 검강을 휘둘렀는데.
촤르르르륵!
그게 마치 파도가 치듯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괴물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한 수에.
박민준의 앞에 잔뜩 몰려 있던 괴물들이 대부분 죽어버렸다.
그 수가 무려 수백.
검강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거미 괴물의 몸이 마구 잘려나간 걸 알 수 있었다.
괴물이 오히려 빽빽하게 밀집해서 몰려 있었기 때문에, 피해가 더욱 커진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절반에 가까운 괴물이 겨우 그 두 수에 죽었다.
그에 놀랐는지.
기세등등하던 괴물 떼도 움직임을 멈췄다.
잔뜩 굳어서 박민준을 바라만 봤다.
그리고 그가 다시 검강을 휘두르는 순간.
미친 듯이 흩어지며 도망치기 시작한 괴물들이었다.
“어딜! 이번엔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외쳐놓고.
땡그랑!
정작 검을 손에서 놓은 박민준이었다.
그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더니.
합!
크게 기합을 내질렀다.
파바바바박!
재빨리 땅을 파서 도망치려던 괴물을 비롯해.
여기저기 흩어지는 녀석들까지.
두둥실.
동시에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 수가 무려 수백 마리.
이번에도 잔뜩 뭉쳐 있었기 때문에, 더욱 대단해 보였다.
“어어?!”
놀란 이자벨라가 눈을 부릅뜨고 입을 떡 벌린 상태로, 멍청한 소리를 냈다.
그녀 곁에 있던 사람들 역시.
이전의 썩은 동태 눈깔이 아니었다.
공중으로 떠오른 괴물들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랐다.
“괴물들이 하늘을 난다?”
“아니야. 저 손짓을 보라고.”
“응??”
“괴물이 스스로 나는 게 아니라. 저분의 손짓에 따라 놈들이 하늘에 뜬 거야.”
버둥버둥.
괴물들도 매우 놀랐는지.
온몸과 사지를 이리저리 비틀면서, 공중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이었다.
평소라면 그걸 보고 웃음을 날렸을 텐데.
이번에는 박민준도 웃을 여유가 없었는지.
미소 짓지는 않았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까지 했다.
실제로 그는 지금 상당히 힘을 쓰는 중이었다.
‘망할 괴물들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무리하는군.’
극한의 허공섭물을 이용해.
높이 더 높이.
괴물을 하늘 위로 계속 올려보냈다.
이젠 사람들의 눈에 괴물이 지구의 곤충인 개미 크기로 보일 정도가 되었다.
그 순간.
손을 아래로 내린 박민준이었다.
후드득!
마치 검은색 빗물처럼.
하늘에서 까맣게 쏟아지는 개미 괴물 떼였다.
그대로 두어도.
낙하하는 속도로 인해 땅에 닿으면서 괴물의 몸이 박살이 날 게 분명했지만.
그는 그대로 두지 않았다.
서둘러 검을 주워든 그가 하늘을 향해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샤삭! 샤사삭!
검강을 크게 만들 힘이 없었는지.
아니면 힘을 아낄 생각이었을까?
그가 작게 만든 검강을 이용해 떨어지는 괴물을 찌르고 베기 시작했다.
모든 낙하하는 괴물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이리저리 하늘을 날 듯. 움직이며 검을 쓰는 모습이었다.
이자벨라를 비롯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또 놀라야만 했다.
“저 많은 괴물을 하늘에 띄운 것도 모자라. 스스로 하늘을 날고 있어.”
“괴물들이 땅에 닿기 전에 저분의 검에 먼저 죽고 있다.”
단순히 그의 몸놀림에 감탄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자벨라는 박민준의 검술이 궁금했다.
“저렇게 빠르고 정확한 검술이라니. 대체 뭘까?”
박민준이 그걸 알아들었으면.
“곤륜파의 절기인 운룡대팔식과 태허도룡검법이다.”
라고 말해 줬겠지만, 지금은 그저 묵묵히.
검을 움직일 뿐이었다.
기어이.
개미 괴물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모두 죽이는 데 성공한 박민준이었다.
그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괴물의 시체들을 보고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의도한 대로 괴물을 모두 죽였다는 것도 좋았지만, 생각지도 않은 소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런 자잘한 놈들이라고 해도, 숫자가 많아서인가?’
제법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아마 이대로 한두 번만 더 대량으로 사냥하면 레벨업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구 최고 레벨의 박민준이라서, 필요로 하는 경험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으니.
그걸 고려해 보면, 그가 지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를 알 수 있었다.
외부에 살아있는 괴물이 없다는 걸 확인한 이자벨라였다.
자신과 함께 입구에 숨어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이젠 안전한 것 같아요. 우리도 저쪽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해요.”
박민준 곁으로 가자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기겁했다.
“저길 통과하자고요?”
“저 중에 살아있는 괴물이 있으면 어떡합니까?”
“차라리 안으로 들어가서 숨어있겠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구조대를 데리고 돌아오십시오.”
엄청나게 쌓여있는 괴물의 시체 때문인지.
사람들이 좀처럼 그녀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뒷걸음질 치며 터널 깊숙이 들어가려는 이도 있었다.
이자벨라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오히려 밖이 안전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분 곁에 있으면 보호받을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 남아 있는 괴물들은 어떻게 할 건데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군요.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알아들었으면 어서 이동해요.”
우르르.
박민준은 이자벨라와 몇몇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봤다.
“아니. 구해줬으면, 그냥 떠날 것이지. 왜 나한테 오는 거지?”
그는 지금 진짜 괴물이 이곳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끼 개미 괴물을 잔뜩 몰살시켰으니.
그 복수를 위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기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들을 주렁주렁 자신의 곁에 달고 싶지 않았다.
결국, 박민준이 바람의 정령 왕자를 소환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프노에스에게 명령해 사람들을 대통령궁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저기 있는 사람들을 내 일행 곁으로 데려가.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터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서 마저 데려가.”
한편, 이자벨라는 박민준 곁에 부는 강풍에 크게 당황했다.
‘저건 또 뭐지? 어디서 저런 회오리바람이?’
휙!
바람이 그녀 곁을 맴돌더니.
그대로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감싸 안아 들고, 하늘을 날아 사라졌다.
혼자 남은 박민준이 눈을 감았다.
원래는 거대 괴물의 접근을 파악할 생각이었는데.
‘녀석은 오지 않는 건가?’
거대한 크기를 지닌 7등급 괴물이라 어느 정도 가까이 오면, 그가 바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존재를 감지할 수 없었다.
대신 괴물이 만들어낸 산 내부에서 인기척을 다수 느낀 박민준이었다.
‘이곳에 잡혀 온 사람은 저들이 전부가 아니었군. 저 안에도 아직 사람이 많이 있다.’
거대한 괴물이 이곳에 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구해서 떠나면 그만이다.
또한, 저 구멍 안에 괴물이 제법 남아 있는 것 같으니.
‘사람들을 구하고, 남은 괴물을 마저 처리한다.’
마음을 전한 그가 망설임 없이 바로 몸을 날렸다.
***
개미 괴물이 알을 모아놓은 장소는 하나가 아니었다.
이자벨라가 잡혀갔던 곳 말고도 두 개의 알 방이 더 존재했으니.
오직 알만을 지키고, 갓 태어난 새끼에게 사람들을 먹이로 주는 일을 담당하는 괴물들은 부지런히 자기 일을 했다.
지금도.
“꺅! 이게 다 뭐야?”
“너무 징그러워.”
“제발 누가 좀 살려줘요.”
안으로 들어온 박민준은 열심히 인기척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새끼 괴물의 먹이가 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하얀 게 전부 알인가? 정말 많이도 싸질러 놨군.”
알을 찾아냈으니.
반드시 파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당장은 저 새끼 괴물에게 잡아먹히게 생긴 사람들부터 구해야겠군.’
박민준이 가볍게 내저은 검을 따라 검환이 발사되었다.
검강을 압축해서 원의 형태로 쏘아내는 상승의 기술이라, 내공의 소모가 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박민준이 쏜 빛 덩어리가 엄청난 속도로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괴물들의 머리통이 남김없이 펑펑 모두 터져나갔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왜 갑자기 괴물의 머리통이 터진 거야?’
‘빛 덩어리를 본 것 같은데.’
‘하지만 너무 빨리 지나가서. 내가 착각했나?’
‘괴물이 죽은 걸 보면, 누가 우릴 구하러 온 건가?’
‘하지만 이곳엔 괴물이 엄청나게 많이 있을 텐데?’
각자의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했다.
하지만 금방, 자신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의구심이 사라지고,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살았다!”
“괴물이 모두 죽었으니. 우리도 여기서 살 수 있어.”
기뻐하는 그들을 향해 박민준이 말했다.
“모두 멍청하게 있지 말고, 어서 여길 빠져나가.”
뒤를 돌아본 사람들이 박민준을 발견했다.
한국말이라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이 그라는 건 알았다.
그의 검에서 밝게 빛나는 검강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분이 우릴 구해주신 분이신가 봐.”
“검에서 성스러운 빛이 흘러나오고 있어.”
“방금 괴물을 죽인 그 빛이 분명해.”
박민준이 다시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말할 시간이 있으면 여기서 빨리 나가. 내가 목숨을 구해줬으니, 나가는 일 정도는 너희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
이번에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엉뚱한 행동을 했다.
그걸 본 박민준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