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막 해가 질 무렵.
부아아아앙!
찢어질 듯한 배기음이 도시에 울려 퍼졌다.
할리 데이비드슨을 탄 이자벨라였다.
대통령이 된 이후로도 오토바이 타는 걸 포기하지 못했다.
극한의 속도를 즐기며,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는 쾌감이 굉장했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모여드는 개미 괴물을 죽이는 부수적인 소득도 있었다.
박민준을 찾아 나선 지금도 그녀는 창을 연신 찌르고 휘두르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괴물을 처단했다.
촥!
달리는 속도를 그대로 이용해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창끝이 괴물의 머리를 두 동강 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그녀가 뭔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건?”
수리남에 등장한 개미 괴물은 여태껏, 땅 밑에 숨어지내다가 사냥할 때만 위로 기어 나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앞서와는 전혀 달랐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개미 괴물이 도시로 몰려나와 흙과 돌, 무너진 건물 잔해 등을 물고 한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먹잇감이라면 모를까?
저걸 다 가져가서 뭘 하려는 걸까?
‘거의 1000마리는 될 것 같은데. 대체 뭘 하려는 거지?’
호기심 때문에 본래 목적을 잃어버린 그녀였다.
박민준을 찾아 돕는 일 대신.
개미 괴물의 이상행동을 추적해 관찰하기로 했다.
‘저 녀석들이 모이는 곳에 거대 괴물도 있을지 몰라.’
시끄러우면 놈들의 주의를 끌 수도 있으니.
서둘러 시동을 껐다.
이자벨라가 오토바이에서 몇 가지만 챙겨 들고, 조심이 놈들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괴물의 뒤를 밟은 결과.
그녀가 본 건 축구 경기장만 한 크기의 거대한 산이었다.
곳곳에 개미 괴물이 드나들 만한 구멍이 수도 없이 뚫려있었다.
‘괴물들이 어느새 저런 걸 짓고 있었구나. 너무 징그럽다.’
놈들이 가져온 흙과 돌을 열심히 쌓아 올리는 모습이라니.
차마 셀 수도 없을 만큼의 구멍을 보고 그녀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왜지? 더는 땅밑에서 살지 않겠다는 건가? 그나저나 저걸 계속 보고 있으니까, 전에 없던 환 공포증까지 생기겠다.’
서둘러 고개를 돌린 그녀가 생각에 잠겼다.
확실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저 안으로 들어가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개미 괴물이 천 마리가 넘는데?’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모험하기를 포기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이자벨라는 단순히 한 명의 헌터가 아니었다.
수리남 공화국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야 하는 대통령이었다.
‘우선 이곳의 위치를 알았으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자.’
견고한 계획을 짜고, 팀원과 함께 다시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한국에서 온 S등급 헌터도 있었으니.
‘그자와 함께하면 훨씬 안전할 테니까. 그때 제대로 확인해보면 되겠지.’
조용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는데.
“이런 젠장! 언제 포위당한 거지?”
수십 마리의 개미들이 후방을 막고 있었다.
눈앞의 광경에만 집중하느라.
그녀는 개미 괴물들이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것도 모르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뚫고 지나간다.’
일직선으로 길을 내고, 다른 괴물이 합류하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창을 움켜쥔 그녀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얏!
고음의 기합과 함께 창을 앞으로 내밀고 달리기 시작했다.
***
한편, 개미 괴물을 생포해서 돌아가던 박민준은 이자벨라의 창을 발견했다.
죽은 개미 괴물의 몸에 반쯤 꽂혀 있었지만, 그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창을 쓰는 헌터가 그리 많은 게 아닌 데다, 수리남에 온 뒤로는 오직 대통령인 그녀만이 창을 무기로 사용하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저렇게 자루까지 은빛으로 빛나는 창이 흔한 건 아니지.’
하지만, 대통령궁에 있어야 할 그녀의 창이 왜 지금 저곳에, 저렇게 있는 걸까?
‘그냥 계속 갈까? 아니면, 여기서 저걸 더 확인해 볼까?’
잠시 생각한 그가 푸노에스에게 명령했다.
“그놈들을 대통령궁에 있는 내 일행에게 데려가, 안전하게 가둘 때까지 지켜보고, 끝나면 알아서 돌아가.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대답 대신.
포획한 개미 괴물 두 마리를 들고, 대통령궁을 향해 날아가는 바람의 정령 왕자였다.
그걸 본 박민준이 창을 향해 다가갔다.
푹!
괴물의 몸에 박혀 있던 창을 뽑아냈다.
녀석의 상처 부위가 거친 걸 보고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마력 없이, 오직 힘으로만 창을 찔렀다.’
마력이 고갈될 정도로 싸우다가 여기서 무기를 놓친 건가?
대체 여기서 뭘 했던 거지?
‘날 따라오다가 괴물과 마주쳤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하다.
주변에 이자벨라의 시체가 없다.
또한, 이동수단도 없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아직 살아있다는 건데.’
그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전부 들으려 했다.
마침, 막 해가 진 뒤라.
길거리에 지나가는 다른 사람이나 차량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직 이동하는 괴물의 소리만 그의 귀에 들어왔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다. 놈들이 모두 한곳으로 향하고 있군.’
박민준의 모습이 흐릿해 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
‘으음. 여긴 어디지?’
이자벨라는 끝도 없이 몰려오는 괴물과 싸웠다.
큰 도로를 앞에 둔 그녀는 거기서 지쳐버렸고, 놈들보다 먼저 쓰러졌다.
‘그대로 죽었구나’ 싶었는데.
다시 눈을 뜬 그녀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내가 기절한 사이에, 해가 완전히 진 모양이구나.’
이곳은 외부가 아니라, 실내였다.
그렇지 않다면 달빛 때문에라도 이렇게 심하게 어둡진 않을 테니까.
주머니를 뒤적거린 그녀가 라이터를 찾아냈다.
담배는 진작 끊었지만, 만일을 위해서 여태 가지고 다녔다.
‘버리지 않길 잘했네.’
딱! 화르르.
라이터 불빛을 통해 그녀가 처음 본 건 괴물이 아니었다.
사방이 막힌 내부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역시 밖이 아니었어. 그런데 이들은 다 누구지?’
바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지켜주겠다고 맹세한 수리남 공화국 국민이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나이와 성별이 모두 달랐다.
“여러분이 절 구해주신 건가요?”
그녀의 질문을 받고,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그저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이자벨라와 주변을 천천히 훑어볼 뿐이었다.
어둠에 적응했는지.
작은 라이터 불빛에도 사람들의 동공이 크게 확장된 걸 알 수 있었다.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지? 어두운 곳에 오래 있었나? 눈빛이 다 왜 저래?’
답답한 그녀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윽! 안 아픈 곳이 없네.’
마력 고갈의 부작용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나가야겠어요.”
길을 찾아 움직이는 그녀를 보고.
중년 여성이 서둘러 손을 뻗었다.
“쉿! 조용히 하고 움직이지 마세요. 제발 가만있어요.”
눈치가 전혀 없지는 않아서인지
이자벨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움직임도 멈췄다.
‘저 아주머니가 나에게 저런 말을 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게 뭘까?’
길게 고민하거나 기다릴 필요가 없이.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개미 괴물이 나타났다.
놈들의 등장과 함께 사람들이 도망칠 만도 하건만.
이미 삶을 포기한 걸까?
다들 초점 없는 눈을 보이며,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닥치는 대로 입에 물고 어딘가로 향하는 괴물이었다.
“안 돼!”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던 그녀가 뒤늦게 소리를 질렀다.
괴물들이 일제히 그녀를 돌아왔다.
“그래. 이쪽이다. 이놈들아! 사람들을 놓아주고, 나하고 신나게 놀아보자. 그리고 그 대가로 네놈들 목숨을 거둬주마.”
사람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기세등등하게 소리치긴 했는데.
‘아! 내 창이 어디 갔지?’
라이터만 쥐고 있을 뿐.
자신의 손에 무기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누워있던 자리를 빠르게 확인했지만, 무기가 될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마력도 모이지 않고, 몸에도 힘이 전혀 없었다.
‘내가 이렇게 멍청했다니. 대책도 없이 소리부터 질렀구나.’
당황한 그녀가 그대로 정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괴물과 맨손으로 싸우나 싶었는데.
그대로 지나쳐서 통로를 빠져나갔다.
“미안해요. 내가 반드시 여러분을 구하러 돌아올게요.”
뒤에다 대고 소리치던 그녀가 더는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체구가 작은 그녀가 간신히 서서 지나갈 만큼 좁은 통로를 개미 괴물들이 가득 서서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망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하루에 두 번이나 이런 꼴을 당하다니.
눈을 질끈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덥석.
괴물이 입이 자신의 허리를 문 걸 느꼈다.
죽일 생각은 없는지.
그대로 물고, 어디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녀가 도착한 곳은?
‘여긴? 이게 다 뭐지?’
하얀색 공?
아니다.
겨우 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
이건 괴물의 알이구나!
개미 괴물의 알이 잔뜩 모여 있는 외부였다.
어둡기는 하지만, 달빛 때문에 주변을 대강 볼 수 있었다.
알이 꿈틀거리더니.
껍질을 벗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으웩. 너무 징그러워!’
정작 괴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이면서, 막 태어난 녀석을 보고는 헛구역질하는 그녀였다.
막 껍질에서 나온 녀석들이 잡혀 온 사람들을 향해 다가갔다.
‘먹이로 주려고, 산 채로 잡아놓은 거였구나. 나도 그래서 죽이지 않았던 거였어.’
빌어먹을. 망할. 뭐 이런 개같은 일이.
온갖 욕설을 속으로 내뱉은 그녀였다.
감히 괴물 주제에 사람을 이렇게 취급해.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온 새끼 괴물의 입을 손으로 잡았다.
남은 힘을 짜내서 그대로 좌우로 크게 벌렸다.
쫙!
녀석의 길게 찢어져서 즉사했다.
히히.
미친 사람처럼 웃는 그녀를 향해 개미 괴물들이 다가왔다.
‘이젠 진짜 죽겠구나. 그래도 한 놈은 잡아 죽였네.’
자신이 죽는 모습을 끝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날카로운 괴물의 입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뭔가가 보였다.
‘사람? 반짝이는 저건……. 내 창이잖아?’
누굴까?
내가 잃어버린 창을 들고, 이곳에 혼자 나타나다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자벨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국에서 온 S등급 헌터.
지구 최강이자 최고 레벨로 알려진 각성자.
“박민준!”
그녀의 중얼거림에 답하기라도 하듯.
“한국말도 모르면서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외국인은 또 처음이군.”
박민준이 뭐라고 했는지.
이자벨라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젠 죽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다.
그리고 이곳에 잡혀있는 자신의 국민도 살 수 있을 것이다.
휙!
그녀를 향해 창을 던져준 박민준이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젠 너 스스로 지켜라.”
그렇게 말을 내뱉은 그가 검강을 발현했다.
순식간에 사방이 환해질 정도로.
크고 화려한 모습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박민준이 사람이 아니라, 신성하고 눈 부신 빛을 뿜어내는 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죽을 위기에서 나타나준 신이 분명해.”
“어서 저 괴물들을 물리쳐 주세요.”
“그리고 우릴 구해주세요.”
이번엔 박민준이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 있는 괴물을 남김없이 죽일 생각이었으니.
붕~.
그가 몸을 날리며, 검강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