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괴물은 언뜻 보면 개미같이 생겼지만, 다리가 훨씬 많았고, 크기도 1.5m 정도였다.
놈들을 향해, 방탄복을 입은 여자가 손에 든 창을 내질렀다.
푹!
창끝에 힘이 제대로 실렸는지.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딱딱한 괴물의 이마를 단숨에 꿰뚫었다.
그렇게 연이어 두 마리를 해치운 그녀를 향해.
동료가 소리쳤다.
“이자벨라! 뭔가 이상해.”
“뭐가? 그런 말 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죽여.”
“아니. 진짜 이상해. 내가 예상한 것보다 괴물의 숫자가 너무 적어.”
그 말을 듣고 다른 동료가 힐끔 그를 노려봤다.
검으로 괴물의 목을 자르며 소리쳤다.
“미친놈아. 지금 이게 적은 거냐? 대충 세봐도 30마리는 넘겠는데.”
“그러니까. 내 계산으로는 최소 100마리는 있어야 한단 말이지. 지금은 겨우 서른 마리 정도잖아.”
이자벨라가 말싸움하는 둘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조용! 실은 나도 아까부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그 순간.
후방에서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그 수가 무려 200마리는 되어 보였다.
앞서 남자 동료가 예상한 것과 거의 비슷했다.
“저것 봐. 내 말이 맞잖아.”
자기 말이 맞다고 외친 그를 향해 여자 동료가 윽박질렀다.
“그래서 좋냐? 지금 저놈들에게 포위되어 버렸는데.”
“좋다는 게 아니라. 젠장. 군인뿐 아니라 우리까지 여기서 다 죽겠네.”
대장인 이자벨라를 포함해서 이곳에 있는 헌터는 모두 10명.
단순 계산으로는 한 사람당 20마리의 괴물만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이곳엔 이자벨라 본인만 A등급 헌터일 뿐.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는 B등급에서 C등급 헌터였다.
심지어, 이자벨라마저도 동료들을 지키면서 저 많은 괴물을 처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저게 다 이쪽으로 몰려오면 동료들이 다 죽는다.’
그녀 혼자만 살아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헌터들이 잠시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도.
괴물들은 살육을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땅에서 솟구친 녀석들에 놀란 군인들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급급했다.
그런 그들을 괴물이 쫓아가 닥치는 대로 죽이며, 헌터들의 퇴로까지 차단해 버렸다.
원래 계획은 군인들의 지원을 받아 좁은 길로 유인한 괴물들을 차례로 격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200마리의 괴물이 역으로 헌터들을 완전히 포위한 형태가 되어버렸다.
상황을 살핀 이자벨라가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최대한 길을 뚫을 테니. 모두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
창을 강하게 움켜쥔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무기를 앞으로 내밀고,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기세가 무서웠다.
앞을 막는 녀석들을 빠르게 죽이며 나아갔다.
‘좋았어! 이대로라면, 모두를 살릴 수 있어.’
하지만, 아쉽게도 녀석들의 포위망을 계속 뚫지는 못했다.
한쪽이 무너지는 걸 본 괴물들이, 군인을 쫓길 포기했다.
대신, 죽은 동료의 자리를 메우며 헌터들만 집중적으로 노리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다수의 군인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헌터들은 절망했다.
조금은 분산되어 있던 괴물들이 똘똘 뭉치자, 그들이 마주한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이자벨라와 멀리 떨어진 쪽부터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악! 내 팔!”
“살려줘. 날 버리고 가지 마.”
괴물 입에서 길게 뻗어 나온 톱니 같은 아래 어금니를 막지 못하고, 사지가 잘려 나가는 모습이 속출했다.
자신의 잘린 신체 부위가 괴물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눈이 뒤집힌 헌터였다.
외다리가 된 그가 수류탄 안전핀을 뽑았다.
그리고 쾅!
근처에 있던 괴물과 함께 산화했다.
그렇게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이자벨라의 동료 5명이 죽었다.
남은 절반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다급하게 마음을 먹은 그녀가 마력을 마구 소모해버렸으니.
창의 위력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앞서와는 달리.
창을 찔러도, 괴물을 한 번에 죽이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젠장. 흥분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여기서 나도 죽겠네.’
악!
똑똑한 척 굴던 남자 동료의 비명이 들렸다.
그녀가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 거대한 괴물도 아니고, 겨우 이런 놈들에게?’
차라리 죽을 때 죽더라도.
7등급 괴물과 마주해서 싸웠으면 덜 억울할 텐데.
지금은 겨우 놈의 새끼로 추정되는 괴물에게 포위돼서 개죽음당하게 생겼다.
그녀는 자신을 수리남 최강 헌터라고 믿고,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에게 제일 큰 미안함을 느꼈다.
‘내가 죽으면, 이제 우리 국민은 누가 지켜주지.’
한 마리라도 더 죽이고 죽으리라.
강한 의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팔 힘이 점점 빠지는 걸 느껴지던 그때.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가 그녀의 귀에 들렸다.
‘왜 갑자기 하늘에서 목소리가?’
그녀가 고개를 재빨리 쳐들었다.
하늘에 떠 있는 검은 머리 동양인 남자가 보였다.
그녀는 상대를 바로 알아봤다.
‘저 사람은? 박민준!’
수리남 공화국의 대통령인 그녀가 직접 지목해서 한국 정부에 그의 파견을 요청했었다.
그리고 그의 도착과 맞춰서 괴물 퇴치 일정을 잡았다.
타국의 힘에만 의지하는 무능력한 모습이 아니라.
대통령인 자신이 나서서 괴물과 싸우는 활약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평소에도 잘해냈으니.
이번에도 멋지게 해내고, 아무 문제도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괴물도 학습 능력이 있는지.
연이어 같은 방식의 공격에 당하지 않았고.
지금 이런 위기를 맞이했으니.
꼼짝없이 포위되어 모두가 죽는 줄 알았던 상황에 맞춰.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장한 박민준이었다.
그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가로 베기를 펼쳤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검을 가볍게 그은 듯 보였는데.
그 결과는 굉장했다.
우선 수리남 공화국 대통령 앞에 있던 괴물 십여 마리가 절단되며 쓰러졌다.
그 뒤로 주르륵.
이십 마리가 넘는 괴물이 참살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굉장해! 이게 바로 S등급 헌터의 실력인가? 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하구나.”
그녀가 본 박민준의 무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저 검을 한 번 휘둘렀는데, 무려 30마리나 되는 괴물이 죽었으니.
이자벨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빠져 있는 사이.
박민준이 허공에서 내려오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쓱!
이번엔 후방에서 밀려오는 괴물 수십 마리가 쓰러졌다.
거의 동시에 괴물의 몸이 잘려 나가는 광경이란.
이곳에 있던 중, 하등급 헌턴들은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박민준의 강함이 마치 현실이 아닌 영화나 게임처럼 착각될 정도였다.
“저 한국의 헌터가 강하다는 건 이미 알았지만, 저 정도로 강할 줄이야.”
“우리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너하고 내가 동시에 같은 꿈을 꾼다고? 그게 말이 되냐?”
박민준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그가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역시나 수십 마리나 되는 괴물의 몸이 절단되어 죽는 모습이었다.
등장하자마자.
단 세 번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거의 100마리에 가까운 괴물을 죽였다.
이곳에서 대통령 헌터 일행을 습격한 괴물이 200마리 정도 되니까.
그의 손에 괴물이 거의 절반이나 죽었다는 계산이었다.
박민준은 수리남의 대통령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 눈에 이자벨라를 알아봤다.
‘괴물과 싸운다면서 전부 약해 빠진 녀석들밖에 없군.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여태 살아남은 거지? 그나마 저 여자가 좀 쓸만할까?’
한편, 이자벨라는 크게 안도하고 있었다.
‘살았다. 저자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이번엔 정말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죽었을 거야.’
곤충을 닮은 괴물이라고 해서, 낮은 지능까지 닮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는 이번에 자신이 괴물을 너무 무시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서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다.’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준 박민준에게 이자벨라 일행이 다가갔다.
“박민준 씨 맞죠?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의 감사 인사를 받은 박민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 영어가 아닌 것 같은데. 방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그의 한국말을 듣고, 이자벨라도 당황했다.
“네? 죄송하지만 제가 한국어를 전혀 못 해요. 혹시 네덜란드어를 알아들을 수 있나요?”
그녀가 영어로 말했으면, 박민준이 전부는 아니어도, 대충 일부라도 알아들었을 텐데.
아쉽게도 대통령인 그녀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과거 수리남 공화국이 네덜란드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이 나라의 대표 공용어가 네덜란드어인 까닭이었다.
둘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하는 사이.
방수열 일행과 수리남 장관들도 이곳에 도착했다.
아이울을 비롯한 그들은 마구 조각나 죽은 괴물의 사체를 보며, 깜짝 놀라는 모습들이었다.
“세상에!”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이 많은 괴물을 우리 대통령님께서 전부 죽였을 리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저기 저 한국 헌터가 이 많은 괴물을 처리한 걸까요?”
반면, 한국에서 온 게이트 관리국 소속 방수열 일행은 그나마 박민준의 진짜 실력을 아는지라.
괴물의 숫자에만 놀랄 뿐.
그걸 죽인 사실에는 감탄만 했다.
“이렇게 많은 괴물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니. 우리 박민준 씨가 아니었으면, 어쩔 생각이었지?”
“방 부장님. 그래서 저분이 아까 그런 말을 했나 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
“네. 그렇습니다.”
방수열이 박민준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려고 했는데.
압도적인 박민준의 무력에 놀란 괴물들이 서둘러 땅을 파고 숨기 시작했다.
그걸 본 사람들은 다행이라고 여기며 안전함을 느꼈다.
“휴. 괴물들이 역부족을 느끼고 도망치려나 봅니다.”
“정말 다행이군요.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기적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반면, 박민준은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저것들을 그냥 도망치게 내버려 둘 순 없지.’
땅속으로 숨어버린 탓에 도망치는 전부를 잡을 수는 없지만, 가까이 있는 괴물의 일부라도 죽일 방법이 그에게 있었다.
박민준이 오른발을 들더니.
기를 가득 모아서 그대로 땅에 내리찍었다.
콰~앙!
엄청난 굉음이 길게 울려 퍼지면서 동시에 땅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강한 지진이 발생한 것처럼.
박민준을 중심으로 충격파도 퍼져나갔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자빠지거나,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한차례 폭발적인 기운이 휩쓸고 지나가고.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방수열이 그에게 물었다.
“방금은 뭡니까? 갑자기 왜?”
“땅속으로 숨은 녀석들에게 내공 맛을 좀 보여줬지.”
“내공 맛이요? 설마 땅 밑에 숨은 괴물도 공격할 수 있는 겁니까?”
“딱히 보이지 않아서 그냥 마구잡이로 기운을 땅속에 퍼트린 거야. 얻어걸린 녀석이 많으면 제법 죽었겠지.”
“이번엔 저도 정말 놀랐습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 인공지진을 발생시키다니요.”
“뭘 그렇게 놀라? 사실은 더 강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방금은 내 힘의 사 분의 일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그게 정말입니까? 겨우 1/4의 힘이라니?”
“여기 나 혼자 있었으면, 땅을 아예 뒤집어 놨겠지. 지금은 너희가 다칠까 봐 참은 거야.”
어디까지 저 말을 믿어야 할까?
방금도 무서울 정도로 땅이 흔들렸었는데.
정말 최선을 다하면 천지가 뒤집히는 건 아니겠지?
이번엔 방수열조차 그의 말을 반신반의했다.
“너 내 말을 못 믿냐?”
“그럴 리가요. 다만, 너무 비현실적이라. 머리로는 이해해도 그걸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냐? 그럼 됐고.”
한편, 수리남 공화국 사람들은 박민준이 한 일 때문에 다시 경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