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박민준이 귀국하고 며칠 뒤 아침.
덜컹덜컹.
끼 킥!
이른 시간부터 기계음이 요란했다.
앞마당에 건설 장비와 인력이 잔뜩 몰려와 작업하고 있었다.
거대한 수영장을 만들기라도 하려는지.
깊고 넓게 땅을 파는 중이었다.
작업에 참여한 일꾼들은 이 집의 주인이 누군지 몰랐다.
그저 돈 많은 멍청이라고 생각했다.
“부자들은 원래 특이한가?”
“뭐가 특이해? 대궐같이 크고 좋아서 난 부럽기만 한데.”
“아까 뒤편에 가보니까 이 집에 수영장이 이미 있더라고.”
“그래? 그런데 왜 또 여기다 땅을 파는 거지? 그것도 이렇게 넓고 깊게?”
무려 세로 200m, 가로 200의 넓이였다.
“이 집 자식이 수영선수라도 되나? 박태환처럼 키우려고?”
“그럼 뒤편 수영장을 쓰면 되지. 거기도 적당히 넓은데.”
“혹시 여기다 아예 워터 파크라도 만들려는 건가? 돈으로 지랄하려고 말이야.”
“그런가? 뭐 우리가 알 게 뭐야. 그냥 작업하고 돈이나 받으면 그만이지.”
“그건 그래.”
집 안에 있던 박민준의 가족도 그들과 생각이 비슷했다.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던 장미령과 박민희 모녀였다.
“대체, 민준이는 왜 또 수영장을 만들겠다는 거야? 그리고 크기가 너무 크잖아?”
“엄마. 제가 보기에는 수영장이 아닌 것 같아요. 호수를 만들려는 것 같아요.”
“호수? 그래 저 정도 크기면 그 말이 맞겠다.”
“제가 가서 민준이에게 다시 물어보고 올까요?”
“다시 묻는다고 너에게 말해 주겠니? 우리가 그렇게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줬는데.”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왜 뭘 하는지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을까요?”
“완성되면 알려준다니까. 그냥 기다리자꾸나.”
“그래요. 걔 고집을 누가 꺾겠어요. 우리 그냥 기다려 봐요.”
박민준이 외출하고 돌아왔다.
작업이 한창인 앞마당에 들어섰다.
그를 알아본 작업반장이 재빨리 뛰어왔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이렇게 뵙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작업을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작 박민준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현장을 보고, 손을 이리저리 뻗어보더니.
이상하다는 듯.
고개만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뭐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까?”
“저거 내가 말한 것보다 작게 파고 있는 것 같은데?”
“작게 파고 있다니요?”
“내가 전에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최소한 가로세로 300m 이상으로 파라고 말이야. 깊이도 최소 50m로 하고.”
“글쎄요. 저는 그냥 도면만 보고 작업을 지시하는지라. 그런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 알았으니까. 그만 가 봐. 내가 다시 전화해보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작업반장이 떠나고.
박민준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야! 너 일 똑바로 안 해?”
수화기 너머.
막 출근한 방수열이 고막을 틀어막았다.
전화기에서 귀를 조금 멀리 떼고 말했다.
“네? 아침부터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땅을 너무 작게 파고 있잖아? 제대로 전달한 거 맞아?”
“네. 가로세로 300m에 깊이 50m이라고…….”
“그런데 왜 지금 작업하는 걸 보면 200m밖에 안 되는 건데?”
“아…. 그렇습니까? 제가 알아보고 바로 다시 수정하겠습니다.”
“서둘러. 저대로 완성되면 전부 부수고 다시 만들어야 할 거야. 그땐 내가 화를 낼 거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네. 최대한 서둘러서 처리하겠습니다.”
뚝.
통화가 끝나고.
크게 한숨을 내쉰 방수열이었다.
“아니. 내가 자기 부하도 아닌데.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건데? 돈도 많으니까, 그냥 건설회사에 맡기면 되잖아?”
투덜거리면서도 할 일을 서둘렀다.
그가 급히 설계도면을 제작한 사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너 나 죽일 생각이냐?”
“뭐야? 아침부터 뭐 잘못 먹었냐? 왜 시비야?”
“너 때문에 내가 큰일 나게 생겼다고.”
“뭐가 큰일 나? 급하게 그려달라고 해서, 내가 도면도 그려줬잖아?”
“그건 고마운데, 왜 크기를 네 멋대로 줄였어?”
“아! 내가 도면을 그리다 보니까. 300m는 너무 큰 것 같아서. 적당히 줄이고 디테일에 힘을 좀 줬지.”
방수열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났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왜 자기 멋대로 그런 짓을 한 거야?
그냥 박민준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그만인데.
그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친구에게 물었다.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어?”
“멍청하긴 뭐가 멍청하냐? 솔직히 200m 크기면 이미 충분하겠는데. 더 크게 만들고, 그 안에 뭘 넣으려고? 고래라도 집어넣게?”
“고래면 차라리 다행이게?”
“진짜 뭐가 있냐? 고래보다 더 이상한 거야?”
“몰라 인마. 국가기밀이라 더는 너한테 말해 줄 수 없어.”
“난 네 친구인데? 우리 베프 아니었어?”
“그래도 안 돼. 다 너를 위해서 말해 주지 않는 거야.”
“웃기고 있네. 뭐가 날 위해서냐?”
“장난이 아니야.”
방수열의 심각한 말투를 듣고, 남자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오늘 안으로 도면 수정해서 다시 보낼게.”
“고맙다. 그럼 네가 다시 보내줄 때까지 공사도 중단할 거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난 이만 끊는다.”
“야! 뭐가 알아서야. 서둘러서 다시 보내.”
뚝!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멋대로 끊어버린 친구가 자기 눈앞에 있기라고 한 듯.
방수열이 허공에 주먹질했다.
‘미친. 7등급 괴물을 민간인의 손에서 키우게 허락하다니. 아무리 박민준 씨라고 해도, 대통령님이 이건 정말 너무하신 것 같은데.’
아마 이 일을 다른 나라에서 알게 되면?
몰래 입국해서 괴물을 훔쳐 가려고 난리가 나지 않을까?
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좋지 않은 여론이 생길 수 있었다.
‘아니. 분명히 생길 거다. 괴물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괴물을 당장 죽이자고 하겠지.’
하지만 겨우 게이트 관리국 전략실 부장에 불과한 그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보안을 지키고, 오랫동안 괴물의 존재를 들키지 않는 수밖에.
***
“뭐? 땅만 파는 데도 2달이 넘게 필요하다고?”
“네. 그렇습니다. 워낙 크고 깊게 파야 하는지라….”
더욱 크고 깊게 만들라는 그의 요구 때문에, 무려 둘레 1600m의 인공 호수로 도면이 변경되었다.
“안전수칙을 고려하면 두 달은 족히 걸릴 겁니다.”
결국, 땅을 파는 일은 박민준이 직접 나서서 도왔다.
무공과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서 단 몇십 분 만에 필요한 만큼의 땅을 파냈다.
그걸 본 일꾼들이 연신 자기 눈을 비볐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자네하고 나하고 같은 꿈을 꾼다고? 그것도 같이 나오는?”
“차라리 그게 더 현실 같은데. 저런 정말 말도 안 되잖아.”
“그렇긴 하지. 저런 사람이 동료면, 돈을 무더기로 벌 수 있을 텐데.”
“우리하고 공사장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이 잘도 그러겠다.”
아무튼,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박민준의 대활약과 토목, 건설 기술의 눈부신 발달 덕분에.
겨우 며칠 만에 그의 집 앞마당에 거대한 인공 호수가 생겼다.
그리고, 그에 맞춰 탑차가 등장했다.
승용차 3대가 그 뒤를 따라 왔다.
선글라스를 끼고 정장을 입은 요원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국장님.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다행이군. 그럼 이제 일을 마무리 짓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요원들이 탑차의 뒷문을 열고, 뭔가를 조심히 꺼내는 모습이었다.
아무 표식도 없는 상당히 의문스러운 모습의 하얗고 큰 상자였는데.
한눈에 봐도 튼튼하게 잘 밀폐되어 있었다.
박민준이 상자를 보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꽉 막아놓으면 애가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나?”
“네. 최근 개발된 거라 아무 문제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제 열어봐. 무사히 잘 있는지 확인해야겠어.”
“네. 바로 확인하실 수 있도록 지금 열겠습니다.”
천천히 상자를 내려놓은 요원들이, 뚜껑에 달린 패드를 눌렀다.
비밀번호는 0987654321였다.
그걸 본 박민준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식으로 비밀번호를 정할 거면 왜 잠근 거야? 그냥 아무나 다 열 수 있겠는데?”
“이건 안에서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잠금장치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탁!
상자의 뚜껑이 열리고.
푸시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옅은 물안개가 흘러나왔다.
뀨!
이상한 소리도 들렸다.
박민준이 안을 향해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머리는 물 밖에 내놓고, 다리는 수면 아래에서 흐느적거리는 괴물의 새끼가 보였다.
“우리 수문이. 며칠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네?”
엄청나게 위험한 괴물의 새끼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다정하게 부르는 걸 보며, 요원들이 속으로 혀를 찼다.
‘방 부장님 말처럼 정상이 아니군. 빨리 저 괴물을 넘기고, 떠나는 게 좋겠다.’
그가 품속에서 패드를 꺼냈다.
“괴물을 무사히 넘겨드렸으니. 여기에 사인을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박민준의 사인을 받은 요원이 급한 일도 없으면서 서둘러 말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 그리고 방 부장님께서 따로 연락을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괴물 새끼를 살피느라.
박민준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냥 빨리 가라는 듯.
손을 내저은 게 다였다.
요원들이 도망치듯 떠나고.
박민준의 가족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무슨 상자야? 이상하게 생겼네?”
“안에 뭐가 들었어?”
“무슨 최신형 아이스박스처럼 생겼구나. 그것도 초대형으로,”
질문을 쏟아내는 가족들을 향해.
그가 말없이 괴물 새끼를 들어 보였다.
박민준의 부모와 누나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문어야? 필리핀에 갔을 때 산 건가? 국제 배송이라 이제 받은 건가 본데. 특이하게 생겼네.”
“그러게. 외국 문어라 그런가? 생긴 게 정말 특이하네. 다리도 일반 문어랑 다른데?”
“내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는데. 문어가 참 귀엽네요. 그렇죠? 엄마?”
“아니. 난 좀 징그러운데. 우리 딸 저런 걸 좋아하는 거였니?”
“저 머리를 잘 보세요. 반들반들하니 빛나는 게 너무 귀여워요.”
생김새에 주목하는 두 여자와는 달리.
박철수는 입맛을 다셨다.
“그거 삶으면, 며칠은 술안주 걱정 없이 먹을 수 있구나. 아들아. 그거 오늘 저녁에 먹을 거니?”
“여보! 주말 아침부터 또 술 얘기에요?”
“아빠! 저렇게 귀여운 걸 어떻게 잡아먹겠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셨다면, 정말 실망이에요.”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문어를 잡았으면 싱싱할 때 먹어야지. 그럼 키우나?”
서로 다투려는 가족들에게 박민준이 말했다.
“이건 잡아먹지 않을 겁니다.”
“역시. 그렇지. 네가 웬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잘 생각했어.”
“그리고 이건 문어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
“필리핀 삼보앙가에서 잡은 괴물의 새끼예요.”
그의 말을 듣고, 모두가 놀랐다.
“뭐?! 괴물 새끼?”
“네. 많이 놀랐죠?”
“당연하지. 그거 당장 죽여버리자.”
“안 돼요. 내가 키울 거예요. 그럴 생각으로 가져온 거란 말입니다.”
“너 미쳤어? 괴물 새끼를 키우겠다니. 지금 그게 말이 되니?”
“왜 안 돼? 잘 키워서, 이 녀석이 우리 집을 지키도록 만들 겁니다.”
“뭐? 그 괴물이 언제 클 줄 알고? 그리고 집을 지키는 게 필요하면 차라리 개를 길러.”
“각성자를 잡아 죽일 수 있는 개가 있으면 고려해볼게요. 그전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요.”
박민준의 말처럼, 수문이의 어미는 무려 7등급 괴물.
그가 아니고서는 그 어떤 각성자도 혼자서 상대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
이대로 무럭무럭 크면, 그보다 더 듬직한 존재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
질색하는 장미령과는 달리.
박민희는 그의 생각을 반겼다.
“저 녀석은 커져도, 지금과 생김새는 비슷하겠지?”
“맞아. 크기만 커질 뿐. 모양은 지금 하고 같아.”
“그럼 난 찬성. 저걸 키워서 우리 집을 지키게 하자.”
장미령이 자기 자식들을 보고,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쟤들을 어떻게 키웠기에. 저런 생각을 하는 거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남편을 슬쩍 바라봤다.
‘키우지 못하게 하면, 저이가 당장 잡아먹겠다고 하겠지? 그걸 나보고 요리해달라고 할 테고. 그건 정말 싫어.’
그녀가 반대하려던 마음을 바꿨다.
어차피 아들이 죽인 괴물의 새끼이니.
문제가 생기면 다시 제압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깔려있었다.
“어쨌든 그게 뭐든 간에. 나도 찬성할 테니까. 너희 아빠가 잡아먹기 전에 어서 호수에 넣자.”
“네. 저도 그러려고 서둘러서 저걸 만든 거였어요.”
그 소리를 들은 박철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 그 문어 새끼를 키우겠다고 저렇게 큰 인공호수를 만들었단 말이냐? 그리고 저건 민물이잖아?”
아차?!
박민준이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괴물과 호수를 번갈아 바라봤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가 방수열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