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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96화 (96/175)

96화

“대체 뭔데 그래요?”

“뭔지는 저도 잘. 그냥 다들 직접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괴물인 건 아니고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하늘을 날아오고 있거든요.”

“날아오고 있다고요?”

바기오의 괴물은 거대한 원숭이를 닮았다.

또한, 날개가 없으니.

하늘을 날 수도 없을 터.

그럼 다른 뭔가가 오고 있다는 건데?

대체 그게 뭘까?

괴물이 또 나타날까 두렵긴 하지만.

강한 호기심이 발동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진 못했다.

“혹시 괴물이 걱정되는 거라면, 제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리오 소령이 나가는 걸 보고.

“저분을 보니. 밖에 괴물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우리도 어서 나가봅시다.”

그때부터 다들 앞다투어 밖으로 나갔다.

붉게 노을 진 하늘.

그 아래 거대한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포대 같은 것들.

그것도 무려 수백 개나 되는 양이었다.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입을 떡 벌렸다.

“원숭이 괴물도 모자라 바람 괴물인가?”

“녀석이 우리 도시에 남은 곡식을 몽땅 훔쳐 가는 것 같아.”

그들의 말을 듣고, 리오 소령이 바로 반박했다.

“모두 동요하지 마십시오. 저건 박민준 씨가 만들어낸 현상이 분명합니다.”

“뭐라고요?”

“제가 전에도 저런 광경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 하고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여관을 향해 다가오는 속도가 무척 빨랐기 때문에.

그들이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하늘을 날아온 포대가 사람들 앞까지 도착해버렸다.

그리고 그 전에 바로 박민준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왜 다들 나와 있어?”

“왜라니요? 저런 엄청난 모습을 보고,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거? 그냥 곡식이 든 포대를 가져온 것뿐이잖아.”

“정말 저것들이 전부 곡식이란 말입니까?”

“어. 대부분 밀이 담겨있는 것 같아.”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럼.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네. 당신 덕분에 이젠 도시에 남은 모두가 굶주리지 않아도 될 겁니다.”

리오 소령이 기쁜 마음으로 뒤돌아섰다.

두 사람이 계속 한국말로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같은 의문만 가질 뿐.

다들 대화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리둥절하고, 한편으로는 당황한 그들에게.

리오가 크게 소리쳤다.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저분이 식량을 구해오셨습니다.”

“저게 다 식량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저 정도 양이면 도시에 남은 모두가 배부르게 먹어도 한동안 걱정 없이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와!

2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함성이 무척 컸다.

지금 그들은 괴물이 나타날 거라는 두려움을 잊을 정도로, 식량을 찾아서 기쁜 마음이 더 컸다.

크게 소리치며 행복해하던 그들이 슬슬 조용해지고, 다시 의문이 생겼다.

“저 많은 양식이 대체 어디에 숨겨져 있었을까요?”

“그러게. 우리가 그렇게 목숨 걸고 찾아다녀도, 제대로 된 식량을 찾기 어려웠는데?”

모두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리오가 박민준에게 물었다.

“저 많은 식량은 대체 어디서 찾아내신 겁니까?”

“재래시장 근처의 무너진 건물 속에서.”

“무너진 건물이요?”

“응. 철문이 두꺼워서 입구가 멀쩡했거든. 그리고 저것들이 전부 지하에 보관되어 있기도 했고.”

“그것참 다행이군요. 그런데 왜 우리를 부르지 않고, 혼자 가져오신 겁니까?”

“말투가 왜 그래? 곡식을 가져왔으면 됐지. 뭐가 문제인데?”

“이런 일에 힘을 소비하시면, 정작 괴물이 나타났을 때, 제대로 싸울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수백 개나 되는 곡식 포대였으니.

소령의 말은 얼핏 들으면 무척이나 타당했다.

하지만 그는 박민준의 진짜 힘을 모르고 있었다.

또한, 저 포대를 옮긴 건 그가 아니라, 바람의 정령 왕자였다.

푸노에스가 바람을 일으켜서 수백 명이 해야 할 일을 홀로 해냈으니.

박민준이 소비한 내공이 막대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다 그의 계산에 포함되어 있었다.

바기오에 도착했을 때.

무너진 호텔에서 괴물의 크기와 특징을 미리 파악해 뒀다.

또한, 괴물이 주변을 파괴한 흔적을 통해서, 녀석이 가진 힘을 미리 가늠할 수 있었다.

‘정령 왕자를 부려도 남은 기운으로 녀석을 충분히 처치할 수 있다.’

그런 자신감으로 박민준이 혼자 이런 일을 벌인 거였으니.

“그건 네가 날 몰라서 하는 말이고.”

“그럼 아직도 힘이 많이 남아 있단 말입니까?”

“당연하지. 넌 내가 아직도 그 정도 계산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힘을 쓰는 바보로 보여?”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걸 알았으면, 다신 그따위로 나에게 말하지 마. 두 번 봐주진 않을 거니까.”

“잊지 않겠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오 소령이 반성하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런 그에게 박민준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됐고. 어서 고개 들어. 지금 그러고 있을 때야?”

“네?”

“네?는 무슨. 내가 곡식을 가져왔으면, 이제 그걸 나눠주는 건 네가 할 일이잖아? 아닌가? 그것마저 내가 해야 해?”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지요.”

박민준이 바람의 정령 왕자에게 명령했다.

“푸노에스! 네가 가져온 걸 저쪽에 전부 잘 쌓아놔. 그게 다 끝나면 알아서 돌아가고.”

이번에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하늘에 둥둥 떠서 멈춰있던 곡식 포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관 입구 근처로 내려와 보기 좋게 차곡차곡 쌓였다.

그 엄청난 광경에 사람들이 또 감탄했다.

“이건 기적이야!”

“정말 굉장해! 저게 전부 식량이라니.”

“S등급 헌터가 대단하다고 듣긴 했는데. 설마 저런 일도 가능할 줄이야.”

“직접 보면서도 내 눈을 믿을 수 없어.”

“바람에 명령을 내리다니. 저분은 신의 자식임이 분명해.”

삼보앙가의 어촌에서는 박민준을 신이 보낸 사자라고 불렀다.

이곳 바기오의 도시에서는 그를 아예 신의 자식이라고 부르는 이가 생겼다.

리오 소령이 식량을 가져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도시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이곳으로 오라는 말을 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그가 큰 목소리로 말했음에도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다들 식량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러분. 식량은 넉넉합니다. 어차피 저분이 괴물을 죽일 때까지만 버티시면 되니까.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가져가십시오.”

이번에는 한 사람이 대답했다.

여관에서 대표로 나서서 말했던 중년 남자였다.

그의 어깨에도 이미 40kg짜리 밀 포대가 들려 있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최대한 많이 알리겠습니다.”

뚱한 표정을 한 리오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식량을 챙긴 사람들이 돌아가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못 믿겠다는 얼굴로 몇 명만 오는 게 보였다.

“이곳에 오면 정말 식량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겁니까?”

“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이 식량을 받아가길 반복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소문이 제대로 퍼졌다.

이번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사람이 몇 명 없을 때는 질서를 지켰다.

지금은 서로를 경쟁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앞다투어서 식량을 쌓아둔 곳으로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밀 포대가 저기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전부 공짜다!”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주인이야!”

“내가 먼저 잡았어. 저리 꺼져.”

“흥! 꺼질 거면 네가 비켜. 이건 내 거야.”

배고픔에 굶주리던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지.

서로 먼저 가져가겠다고 싸움까지 일어났다.

그걸 보다 못한 리오 소령이 권총을 꺼내 들었다.

하늘을 향해 겨누고.

탕!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가 울리면서, 사방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놀라서 자신만을 바라보는 시민들을 향해, 소령이 크게 소리쳤다.

“다들 지금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제발 싸우지 말고 서로 양보하며 돕도록 하십시오.”

그의 말을 듣고,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소령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게 못마땅한지.

리오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더 크게 냈다.

“외국인들이 보고 있는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괴물을 잡을 때까지만 버티면 되니까. 다들 제발 욕심부리지 마십시오.”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울먹이며 소령에게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아이들이 지난 이틀 동안 한 끼밖에 못 먹었습니다. 그래서 욕심을 부린 겁니다. 아마 이곳에 온 대다수가 저와 비슷한 상황일 겁니다.”

크게 한숨을 내쉰 소령이 여인을 향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다들 힘든 상황이라는 걸 나도 압니다. 하지만 외국인이 보는 앞에서 이런 추태를 부리는 건 제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는 모두 질서 있게 가져가십시오.”

그의 말이 끝나고.

어지럽게 엉켜있던 사람들이 억지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방수열과 국장이 보기에는 지금도 그다지 질서 있게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앞선 상황보다는 훨씬 나았다.

자신들끼리 싸우거나 서로 짓밟지는 않았으니까.

식량을 챙긴 사람들이 박민준을 향해 크게 허리 숙여 감사를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이들이 먹을 식량을 가지고,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신께서 우릴 위해 보내준 영웅입니다.”

물론 필리핀말이라 박민준이 바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행동으로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한편, 박민준은 사람들이 모인 걸 이용하기로 했다.

‘괴물이 재래시장 근처에 없었으니. 내가 아직 가지 않은 외곽 지역이나 아예 도시 밖의 산맥 어딘가에 있을 거다.’

그러니.

여기 온 사람 중 누군가 한 명은 괴물의 이동을 목격했을 터.

박민준이 리오 소령을 통해 모두에게 질문했다.

“혹시 괴물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여기 있습니까? 재래시장 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녀석을 본 사람 말입니다.”

식량을 챙기느라 정신없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 모두가 그의 말에 주목했다.

그리고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여기서는 아마 제가 괴물을 제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일 겁니다.”

“괴물이 언제 어디로 갔는지 말해보십시오.”

“어제 오후에 하도 배가 고파서, 목숨을 걸고 재래시장에 갔다가 녀석이 떠나는 걸 봤습니다.”

“그래서 그놈이 어느 방향으로 갔습니까?”

“서남쪽입니다.”

“서남쪽?”

“네. 그쪽 산맥이 제일 험하거든요. 그래서 야생동물도 많은 지역입니다.”

박민준이 듣기엔 괴물이 사람을 모두 잡아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아예 바기오 중심부를 떠나서 산맥으로 향한 거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방수열이 보기에는 그럴 가능성이 적었다.

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이라고 해도 결국, 녀석은 원숭이과입니다. 그러니 한 번 정한 자기 영역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방수열이 이곳의 괴물에 대해 최대한 조사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괴물이 원래 영역 보존 본능이 강하지만, 이번 괴물은 특히 그게 더 심하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고?”

“잠깐 산맥에서 사냥하며 야생짐승을 잡아먹고는, 다시 자기 보금자리인 도시로 돌아올 가능성이 제일 크다는 겁니다.”

“그럼 녀석이 도시로 돌아오길 기다리자는 거야?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데?”

“네. 박민준 씨가 괜히 도시 밖으로 괴물을 찾으러 나갔다가, 서로 길이 엇갈리면 큰일일 테니까요.”

최악의 경우.

박민준이 도시를 떠나고, 반대로 괴물은 도시로 들어올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박민준이 먼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시 방수열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네 말이 맞군.”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그래. 괴물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지.”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모두가 박민준의 말을 듣고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아까 박민준이 돌아봤던 곳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국장의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둠을 뚫고 거대한 뭔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다들 이젠 보이지? 저기 녀석이 오고 있잖아.”

방수열이 뭔가 깨달았다는 얼굴로 혼잣말했다.

“아! 곡식과 사람이 이곳에 모두 몰려 있으니. 괴물이 그 냄새를 맡고 이쪽으로 온 거구나!”

괴물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한국말을 모르는 현지 주민들도 그걸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괴물이다!”

“괴물이 다시 나타났다.”

“모두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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