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박민준이 보고 있는 건 바로 전투기였다.
리오 소령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자국의 전투기를 그도 발견했다.
‘전투기? 지원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왜?’
소령이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전투기에서 두 발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괴물이 여기까지 이동하자, 우리가 죽이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한 건가?’
그래서 부대에서 레이더로 발견하고 전투기를 보낸 것 같다.
저 거대한 괴물을 죽이기 위해 쏜 미사일이라면, 엄청난 파괴력을 선보일 터.
언젠가 러시아에서도 핵을 쏴서 강력한 괴물을 죽였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도시가 방사능에 뒤덮여 아무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그렇다면 설마 핵을? 우리나라에는 핵미사일이 없는데?’
또 다른 문제는 괴물이 육지에 아주 가까이 접근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마을 주민들이 괴물을 구경하고자 아주 가까이 모여 있었고.
‘하필, 이런 때 공격명령을 내리다니! 우릴 다 죽일 셈인가?’
눈이 달렸으면, 민간인을 분명 미리 발견했을 텐데?
피해를 감수하고 그냥 공격을 감행했다는 건가?
심지어 군복을 입은 소령과 그의 부하들도 이곳에 있는 걸 뻔히 봤을 거다.
‘뭐 이런 개 같은.’
그가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미사일이 죽은 괴물에 명중해서 폭발을 일으킨다면, 여기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터.
미사일이 이미 발사되었으니.
도망치기엔 너무 늦었다.
“모두 피해. 엎드려!”
리오 소령의 처절한 외침을 듣고, 거의 대다수 마을 주민들이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었다.
괴물이 죽었는데 왜?
이젠 위험할 것도 없잖아?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뒤늦게 발견했다.
“저…. 저건!”
미사일이 이미 마을 주민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모두가 ‘이젠 죽는구나.’라고 생각하던 그때.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소용돌이치는 바람이 괴물을 향해 날아오던 미사일을 전부 감싸 안았다.
아주 높게 하늘로 방향을 바꾼 미사일이 그대로 폭발했다.
쾅! 쾅!
얼마나 위력이 강력했는지.
하늘에서 터진 폭탄의 열과 굉음을 지상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핵은 아니었군. 하지만 파괴력은 비슷한 것 같다.’
그 사이, 미사일을 쏜 전투기가 공중을 선회해서 다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저런 개새끼가. 닿을 수만 있다면 잡아서 뒤지게 패줄 텐데.’
그가 상상만 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미사일을 터트린 바람이, 하늘에 있는 전투기를 강제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전투기가 탈출하고자, 연신 엔진에서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바람을 부려서 전투기를 땅으로 잡아당기는 모습이라니.
앞서서 바다 위 떠 있던 괴물을 움직이는 걸 못 봤다면, 소스라칠 정도로 놀랐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놀랐겠지만.
땅으로 내려온 전투기에서 조종사가 내리지 않고 있었다.
그저 벨트를 풀고, 바깥을 조심히 살폈다.
그걸 본 박민준이 전투기로 다가갔다.
훌쩍 뛰어서 비행기 위에 서더니.
조종석 유리창을 박살 냈다.
조종사가 쓰고 있던 헬멧을 잡아서, 그대로 들어 올렸다.
“어어?”
놀란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걸 듣고 히죽 웃은 박민준이 조종사를 땅에 내리꽂았다.
해변은 부드러운 모래다.
하지만, 조종석의 위치는 꽤 높았고, 그가 바닥에 처박히면서 충격이 심했는지 다리가 부러졌다.
“악! 내 다리.”
부러진 두 다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조종사였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박민준이었다.
훌쩍.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그가 조종사에게 다가갔다.
퍽퍽!
그대로 말도 없이.
부러진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아!
짧은 비명을 지른 조종사가 기절해버렸다.
그대로 있으면 고통을 느끼지 못할 텐데.
박민준이 손을 내저으니.
눈을 다시 번쩍 뜬 조종사였다
그가 엄청난 고통을 다시 느끼며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
박민준이 말했다.
“누구 명령으로 미사일을 쏜 거지?”
순간, 번쩍 정신을 차린 리오 소령이 빠르게 통역했다.
하지만, 너무 큰 고통 때문에 대답하지 못한 조종사였다.
“아악! 다리가 너무 아파! 미칠 것 같아. 누가 날 좀 도와줘.”
도움만 청할 뿐.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박민준이 싸늘하게 웃었다.
그리고.
뚝. 뚝.
이번엔 다리를 잡고 있던 조종사의 두 팔을 부러뜨렸다.
“아아아아악!”
길고, 처절한 비명이 해변에 울려 퍼졌다.
죽을 고비를 넘긴 마을 주민들이라.
한껏 화난 상황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들도 조종사가 당하는 모습을 즐겼다.
‘우릴 죽이려고 하더니. 쌤통이다.’
하지만, 그가 부러진 다리를 걷어차고, 그것도 모자라 멀쩡한 두 팔까지 부러뜨리는 모습을 보고.
‘무섭다.’
‘너무 잔인해.’
그런 공포의 감정을 느끼며 박민준을 두려워했다.
고통으로 조종사가 또 기절했다.
이번엔 박민준이 그의 몸 여러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시 눈을 뜬 조종사였는데.
“아악! 내 팔! 내 다리! 아…. 아프지 않아?”
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기 몸을 살폈다.
기이하게 꺾인 팔과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야? 부러진 상태 그대로잖아?”
박민준이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다시 물었다.
“누가 네놈에게 미사일을 쏘란 명령을 내렸지?”
“그건….”
우물쭈물하며 말하지 못하는 조종사였다.
그걸 본 박미준의 싸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팔, 다리가 부러진 거로는 부족했던 모양이지? 이번에 네놈의 목을 비틀어주마.”
자길 죽이겠다는 말을 소령의 통역으로 듣고 나서야.
그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
‘이러다 진짜 죽는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그가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중앙에서 내려온 명령이었습니다.”
“중앙이라니? 설마 사령부에서?”
그 말을 들은 리오 소령이 통역하는 걸 잊고,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필리핀에 저런 강력한 무기가 있었던가?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라면 모를까?’
또한, 저런 무기를 필리핀에서 가졌다고 해도, 군의 아무나 사용을 명령할 순 없다.
최소한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할 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 폭탄이 저들의 목적대로 터졌으면?
마을 주민들이 전부 죽는 건 물론이고, 이 근방에 살아있는 생물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소령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박민준에게로 향했다.
‘저분이 아니었으면 정말 다 죽었겠구나.’
그리고 여기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아무도 몰랐겠지.
증인이라고는 저 미사일을 쏜 비행사와 명령을 내린 사람밖에 없으니까.
빠드득 이를 간 리오 소령이 조종사에게 물었다.
“방금 우리에 쐈던 미사일은 우리나라 물건입니까?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몰래 들여온 겁니까?”
“그건 군사기밀이라 나도 모릅니다.”
“당신이 쏘고 모른다고 말하다니?”
“정말 모릅니다. 그냥 명령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미 사지가 모두 부러진 상황.
엄청난 상처를 입고도 그는 살기를 간절히 원했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 동정심이 갈 만도 하건만.
울먹이는 조종사를 향해 소령이 싸늘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딱히 누구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조종사의 시선이 박민준에게로 향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는 명령대로 했을 뿐입니다.”
...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늙은 어머니와….”
그가 열심히 감성에 호소했다.
박민준은 어차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소령에게 통역하란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손을 내저어 조종사의 숨통을 끊어놨다.
“잘못된 명령으로 무고한 희생이 생길 걸 알았다면, 신념에 따라 항명할 줄도 알아야지. 그렇지 않나? 겁쟁이.”
비행사는 분명 미사일을 쏘면서 미리 알고 있지 않았을까?
여기 모인 민간인과 정규군이 모두 죽을 거란 걸 말이다.
그렇다면 그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바로 죽음으로써.
그게 박민준이 내린 결론이었다.
한편, 소령은 조종사의 죽음을 예상하였다.
아니, 박민준이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자신이 나서서 총을 쏠 생각이었다.
이곳은 그의 고향.
가족은 모두 죽고 없지만, 친구와 친척이 아직 살고 있다.
‘나 대신 죽여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 거지?’
아무리 잘못해도, 외국인이 남의 나라 군인을 즉결 처형했다.
그건 분명, 외교 문제가 될 텐데?
리오는 그가 걱정되면서도, 겨우 소령에 불과한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저 마음속으로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빌어줄 뿐이었다.
***
필리핀 마닐라 공항.
박민준이 돌아왔다.
이곳에서 출발할 때와는 달리.
다인용 소형 비행기를 타고 왔다.
그리고 그 혼자가 아니라, 처음 보는 필리핀 군인도 있었다.
그의 도착 소식을 들은 국장과 방수열이 나와서 그를 반겼다.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셨군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함께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박민준 씨께서 무사하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박민준이 당연히 무사히 돌아올 줄 알았다.
7등급으로 예상되는 괴물이라고 해도, 두 사람은 그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구입니까? 여기 군인이신가? 계급이 소령 같은데?”
“너희는 알 것 없어.”
“아. 네.”
떨떠름한 표정을 한 방수열이 소령을 다시 살폈다.
그가 두 손으로 뭔가를 들어 안고 있었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하지?
손가방은 아니고.
제법 무거워 보이는 뚜껑 달린 물통?
저런 걸 왜 들고 있을까?
무거우면 잠시 내려놓을 만도 한데.
무슨 소중한 것이 들었다는 양.
계속 품에 안고 있었다.
어째 저자의 표정이 보니.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박민준이 무서운 걸까?
아니면 저 가방에 다른 뭔가가?
“그럼 저분이 손에 들고 있는 건 뭡니까?”
“그것도 너희가 알 필요 없다.”
별생각 없이, 미소를 짓고 있던 그들이었는데.
계속 퉁명스러운 박민준의 표정을 보고 그제야 의아함을 느꼈다.
그는 이곳에 온 목적을 이뤘다.
괴물을 죽이고 돌아왔는데, 왜 불만 가득한 얼굴이란 말인가?
“어디 불편하십니까? 혹시 부상을?”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군.”
“우리가 뭘 모른다는 말입니까?”
“모르면 됐어.”
퉁명스럽게 말한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누굴 찾으십니까?”
“여기 대통령.”
“그분은 지금 다른 일이 있어서 이곳으로 바로 오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떠날 때 직접 배웅까지 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일? 흥. 날 만나기 싫어서 오지 않은 건 아니고?”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박민준 씨가 간 곳에서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돌아오기 직전에 아주 재밌는 일이 있었지. 불꽃놀이를 봤거든.”
“불꽃놀이요? 아. 현지에서 괴물 처치를 축하하려고 폭죽을 터트렸던 모양이군요.”
“그래. 아주 대형 폭탄이었지.”
“폭탄이요?”
“됐고. 당장 그놈이나 만나게 해줘.”
“그놈이면 설마? 대통령을 말하는 겁니까?”
“그럼 내가 지금 누굴 만나고 싶겠어?”
“흠….”
아주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방수열이었다.
국장도 옆에서 불편한 기색을 잔뜩 보였다.
정확히는 몰라도, 필리핀 정부가 박민준의 심기를 건드린 건 분명해 보였다.
‘멍청하긴. 감당할 수 없을 텐데.’
그가 욕은 했지만, 속으로 크게 걱정했다.
박민준이 마음대로 굴면서 이곳의 대통령을 죽이기라도 하면?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외교 문제가 일어날 텐데.
국장의 염려는 곧 현실이 될 것 같았다.
“당장 그놈에게 날 데려가. 아니면 너희가 그놈 대신해야 할 테니까.”
방수열과 국장이 동시에 몸을 흠칫 떨었다.
‘저자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대신하라고?’
‘절대 그럴 순 없지. 외교 문제고 뭐고 우선 데려가자.’
원래 그들은 박민준이 돌아오면 다른 계획이 있었다.
그가 사냥한 괴물 사체의 처리와 필리핀과 한국 정부에서 추가로 받을 보상에 관해 대화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상황을 맞이한 지금.
박민준을 데리고, 필리핀 대통령을 만나러 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었다.
소령도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