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박민준이 다시 괴물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배 위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저분이 갑자기 왜 저러시는 거지?”
“괴물이 완전히 죽은 게 아니었어?”
“전혀 움직이지도 않는데?”
“저기 뭔가 다른 게 있나?”
“잠깐. 벌써 이쪽으로 오시는데?”
그가 괴물의 머리 근처에 잠시 서 있더니.
그대로 배를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탁. 배 위로 가볍게 발을 디딘 박민준을 향해 카미와 소령이 다가갔다.
두 사람이 축하의 말을 전하려고 했는데.
동시에 뭔가를 발견했다.
“그…. 그건 뭡니까?”
“설마 괴물의 새끼?”
박민준이 씨익 웃었다.
잘 보라는 듯.
손에 들고 있던 녀석을 앞으로 내밀었다.
“괴물의 새끼가 맞아. 머릿속에 이 녀석이 있더라.”
괴물의 자식이 맞다는 걸 듣고, 소령이 잔뜩 이마를 찌푸렸다.
“아니, 그럼 발견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이셨어야죠. 그걸 왜 여기로 가져온 겁니까?”
“아직 새끼인데 이걸 왜 죽여?”
“설마, 키우기라도 하실 겁니까?”
“당연하지. 잘 키워보려고.”
“왜요? 그건 괴물의 새끼이지 않습니까?”
“잘 키우면 괜찮지 않을까?”
“전혀요. 지금은 5kg밖에 안 나가 보이지만, 다 크면 저것만 해질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래서 키우려는 건데.”
“네?”
“평범한 문어 같으면 내가 키우려고 했겠어? 저놈처럼 크고 강해져야 키우는 맛이 있지.”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리오 소령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저건 다리만 여덟 개 달렸을 뿐, 절대로 문어가 아니었다.
그 어떤 문어가 300m나 되는 다리가 여럿 달리고, 그중 하나에서 물대포를 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자신이 직접 어미로 보이는 괴물을 죽여놓고, 그 안에서 나온 새끼를 직접 키우겠다는 발상이라니.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이야 그를 막을 사람이 없으니.
저자가 마음대로 한다고 쳐도.
우리 필리핀이나 한국 정부에서 괴물의 새끼를 키우도록 과연 허락해 줄까?
성장하면서 길들이지 못하고, 다시 사람을 해치는 괴물이 될 가능성이 더 클 텐데?
괴물을 데려가겠다는 박민준에게 불만이 상당한 소령이었다
하지만 감히 그에게 그 어떤 말을 하거나 표현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버젓이 보이는 거대한 괴물의 시체가 있었으니까.
‘저런 놈을 겨우 검 하나 달랑 들고, 혼자서 죽인 사람에게 감히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니.
괴물을 키우겠다는 그의 말도 언뜻 그럴싸해 보였다.
다 큰 괴물도 죽일 수 있는 강자인데, 새끼 괴물 정도는 알아서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새끼 괴물을 확인한 뒤로.
옆에서 말 한마디 없이, 눈치만 보던 카미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저 괴물은 확실히 죽은 겁니까? 혹시 아직 살아있거나, 죽지 않은 상태인 건…….”
“확실히 죽었어.”
“그렇군요.”
“내가 이 녀석을 데려오기 전에 확인했거든.”
“그럼 이제 다시 돌아가도 될까요? 저 거대한 괴물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까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요.”
“그래? 그럼 어서 출발해.”
“감사합니다.”
선장실로 들어간 친구를 슬쩍 보고, 소령이 박민준에게 말했다.
“그 새끼 괴물을 그렇게 계속 들고 계실 겁니까?”
“그건 왜 묻지?”
“어미가 물속에 살던 녀석인데, 여태 몇 분 동안 물 밖에 꺼내놓으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그렇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던 박민준이 선장실을 향해 소리쳤다.
“물탱크 같은 거 없나?”
당연하다는 듯.
그는 계속 한국말을 했고, 여태 통역은 소령이 해야 했다.
지금도 친구에게 그의 말을 전한 리오였다.
“카미! 저분이 이 배에 물탱크가 있냐고 물으시는데?”
“당연히 있지. 근데 그건 왜?”
“왜긴. 저 작은 괴물을 거기 넣어두려는 거지.”
“흠. 그렇군. 거기 네 발밑의 뚜껑을 열어봐. 물이 차 있으면 바로 사용해도 돼.”
영차. 끼긱!
소령이 뚜껑 손잡이를 잡고 힘을 썼다.
쇳소리를 내며 열린 그곳에 물이 반쯤 차 있는 수조가 보였다.
속을 확인한 그가 박민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에 집어넣으시면 됩니다.”
“그래.”
리오의 말처럼 물이 필요했던 걸까?
물 밖에서 박민준의 손에 들려 있을 때는 축 늘어져 있었는데.
물탱크에 들어간 지금은 이리저리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등의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소령이 뚜껑을 다시 덮으려고 했는데.
박민준이 막았다.
“그냥 둬. 돌아가는 동안 저놈을 구경할 거야.”
“알겠습니다.”
한참을 수조의 새끼 괴물을 보고 있던 그였다.
끙끙.
어디선가 들려온 신음을 들었다.
상처에서 여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다섯 명의 반란군이었다.
아무리 그가 절묘하게 찔렀다고 해도, 시간이 제법 흘렀으니.
햇빛에 잔뜩 그은 피부를 지닌 그들이지만, 지금은 얼굴뿐 아니라 몸 전체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대놓고 귀찮다는 얼굴을 한 박민준이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총 다섯 방향이었고.
그가 한 번 손을 내밀 때마다 반란군의 상처에서 피가 바로 멈췄다.
점점 심해지던 고통 또한 더는 느끼지 못했다.
그걸 본 리오 소령이 또, 놀랐다
‘아니. 대체 저자의 능력은 어디까지인 거지?’
손짓 한 번으로 지혈을 하고, 고통을 잊게 만들다니?
지금의 모습과 더해.
아까 박민준이 물 위를 뛰었던 게 생각났다.
마을 사람들이 저자를 신이 보낸 사자라고 처음 불렀을 때, 그는 순박한 생각이라며 속으로 비웃었었다.
‘저 한국인은 각성해서 저렇게 강해진 것뿐인데. 요즘 같은 세상에 신의 사자라니. 정말이지. 저렇게 무식할 수가.’
하지만 지금의 소령은 자신이 비웃었던 마을 주민들과 같은 생각을 했다.
‘진짜 신이 보낸 사람인 걸까? 저 정도면 진짜 그렇다 해도 믿을 수 있겠는데.’
더욱이, 리오 소령은 전에 박민준이 신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땐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그 또한 사실일 수도.’
그때 반군들이 수군거리는 소리 났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저 괴물 사체 말이야.”
“그게 뭐?”
“자꾸 우릴 따라오는 것 같아.”
“조류에 밀려오는 거겠지.”
“아니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 같은 방향으로 온다니까?”
“진짜?”
소령과 반군의 시선이 동시에 배 후방으로 향했다.
괴물의 거대한 다리가 뭉쳐서 마치, 작은 섬처럼 보였다.
죽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놈이라, 조류에 따라 이동할 순 있다.
‘정말 우릴 따라오는 것 같은데? 설마 죽지 않은 건가?’
리오 소령의 고개가 박민준을 향해 돌아갔다.
그가 괴물의 죽음을 재차 확인했다고 했었는데….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박민준은 리오가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레벨업 한 걸 살피기 바빴다.
‘경험치에 이득을 줄 거라고 하더니. 겨우 한 마리 잡았을 뿐인데. 벌써 레벨업을 이뤘다.’
지금 그의 레벨은 52가 되었다.
각성자 중 세계 최초로 51레벨을 이뤘을 때와는 달리, 다른 헌터에게 알림은 가지 않았다.
대신 박민준은 앞서 레벨업과 달라진 보너스 스탯을 얻었다.
‘기존 1씩 올라가던 스탯이 이번엔 2씩 올라갔잖아? 왜지?’
그보다 먼저 높은 레벨을 이룬 사람이 있으면 물어라도 볼 텐데.
뭐든지 지구 최초가 되어버린 박민준이라.
‘이유는 모르겠네.’
앞으로 그가 레벨업을 할 때마다 남들보다 2배의 스탯을 얻게 되는 사기에 가까운 상황이었으니.
보통 사람이라면 어떤 결과에 대해 그 이유를 모르면 불안해질 텐데.
박민준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여긴 그냥 이런 시스템이겠지. 뭐, 아무튼, 스탯을 더 주니 좋군. 앞으로 레벨업 할 맛이 더 나겠어.’
그렇게 대범하게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한편, 소령은 그에게 다가간 뒤로도,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뭔가 생각이 많으신 것 같은데. 괜히 방해하면 큰일 나겠지?’
그래서 잠시 어색하게 서서 기다렸다.
드디어, 박민준의 표정이 홀가분해진 걸 보고 나서야, 그가 슬쩍 말을 걸었다.
“저기….”
“왜?”
“혹시 괴물이 죽은 게 확실합니까?”
“당연하지. 내가 두 번 확인했다니까.”
“그렇다면 저 뒤를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뒤? 저놈들 말곤 아무것도 없는데?”
배 뒤편엔 쓰러진 반군들만 모여 있었다.
소령이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저었다.
“그보다 더 멀리 봐주셔야 합니다.”
“괴물 사체?”
“네. 괴물이 자꾸 우릴 따라오는 것만 같습니다. 아니, 분명 따라오고 있습니다.”
“아. 겨우 그것 때문에 뒤를 보라고 한 거야?”
“겨우라니?! 돌아가는 내내 우릴 따라오고 있다니까요?!”
“저거 내가 그러는 거야.”
“네?”
“괴물의 사체도 엄청난 돈이 된다면서? 그럼 아까 거기에 그냥 버려둘 순 없잖아.”
“그래서요?”
“내가 저걸 항구까지 끌고 가는 중이라고.”
“뭐로 말입니까? 여태 그냥 여기 서서 계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부리는 바람으로. 귀찮으니까. 그냥 그렇게만 알아둬.”
“아! 그때 그 바람.”
소령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바닷가에서 반군 150명을 제압했던 바람을 부렸던 거였구나.
하지만 금방 다시 의문 어린 표정으로 변했다.
‘저렇게 큰 괴물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바람이라니?’
대체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닌 걸까?
그는 박민준이 괴물을 죽인 일이 대단하지만, 그 뒤에 녀석의 저 거대한 사체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무척 신기했다.
아마 태풍급 바람이 불면 가능하겠지만.
놀랍게도 지금 소령이 탄 배는 물론이고, 저 뒤에도 그런 엄청난 소용돌이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방법인지 모르겠군. 그나저나 이자가 정말 인간이 맞나?’
자신이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나름대로 군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는 당연히 각성자도 있었고.
‘하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이다. 앞으로도 평생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진 않군.’
선장실에서 카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오! 이제 곧 도착할 거야. 저 나쁜 놈들 제대로 묶어놔야 하지 않겠어?”
그러고 보니.
괴물의 미끼로 사용했던 반란군을 여태 그냥 내버려 뒀다.
상처를 입은 데다 체력이 바닥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카미는 반군들이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도망치거나 딴생각을 할까 봐 한 말이었는데.
의외로 바로 동의할 줄 알았던 리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뭐?”
“저분이 계신데. 저놈들이 머리에 똥만 들어있지 않고서야 감히 도망치려고 할까?”
배 뒤편에서 누워있던 반군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도 다 생각이 있다. 저놈 말처럼 미쳤다고 도망칠까?”
“도망치다 저자에게 도로 잡힐 거면, 차라리 바다에 빠져 죽는 게 낫지.”
***
그 무렵.
마을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아저씨. 보세요! 배가 다시 돌아오고 있어요.”
지금 바다에 나가 있는 배는 오직 한 대뿐이었다.
그래서 브룩다오는 누구의 배냐며, 묻지 않았다.
“배는 무사해 보이더냐?”
“네. 아주 멀쩡해 보이는데요.”
“그것참 다행이구나.”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브룩다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제법 큰 배이긴 하지만, 괴물을 만났으면 멀쩡하지 않았을 텐데.
‘결국, 괴물 녀석을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건가?’
그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큰일 났어요.”
“왜? 배가 무사하다면서?”
“배가 괴물한테서 도망치는 중인가 봐요.”
“뭐?”
“괴물이 배를 뒤쪽에서 따라오는 것 같아요.”
주먹을 불끈 쥔 브룩다오가 밖으로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모두 대피해! 괴물이 나타났다. 녀석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그걸 들은 마을 주민들이 서둘러 바닷가를 벗어났다.
그렇게 그들이 괴물의 다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멀리 갔을 때.
박민준을 태운 배가 육지에 닿았다.
선장실에서 나온 카미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반겨주는 사람이 왜 아무도 없어?”
친구의 말에 리오도 심각해졌다.
“혹시 반란군들이 탈옥한 건가? 놈들이 문제를 일으켰는지도 몰라.”
둘의 대화를 들은 박민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들 저 위에 있네.”
“네?”
“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저 언덕에 올라가 있다고. 너희에게는 너무 멀어서 안 보이려나?”
“아. 저기. 제가 가서 모두 데리고 내려오겠습니다.”
잠시 후.
마을 주민들이 쭈뼛거리며 배로 다가왔다.
브룩다오가 대표로 박민준에게 말했다.
“신의 사자시여. 저 무서운 괴물을 사냥하시다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를 포함한 마을 주민들 모두 당신에게 영원히 감사할 겁니다.”
리오가 박민준에게 통역해주려고 했는데.
그는 이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멀리 하늘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저기 뭐가 있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