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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86화 (86/175)

86화

어부들에게 괴물보다 더 무서운 건 반군이었다.

물론, 몇 달 전에 나타난 괴물이 바다의 물고기를 내쫓아서 어업을 방해하고, 사람들까지 죽였다.

하지만, 민다나오에서 배를 타고 수시로 넘어오는 반군들은 괴물이 하는 짓에 더해서 육지에 있는 어민들의 재산까지 빼앗았다.

어린 아들을 납치해서 반군으로 만들고, 어린 딸들을 강제로 끌고 가 짓밟았으니.

이곳에 사는 어민들에게 진짜 괴물은 바로 같은 인간인 반군이었다.

동네 출신의 리오 소령과 함께 온 동양의 외국인이 그런 반군을 물리쳤다.

그것도 총이나 칼을 들고 싸운 게 아니라, 마치 바람의 신이 자연을 부리듯.

말과 손짓만으로 잔악한 적들을 제압했다.

그래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박민준이 손을 살짝 흔들어 보인 것만으로도 그들의 입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

“신이 보낸 영웅이다.”

“리오가 신의 사자를 데리고 돌아왔다.”

소령이 따로 박민준에게 통역해주지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전해졌으니까.

***

반군을 제압하고 난 뒤로.

한참을 바닷가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왜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 거지?”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버린 건가?”

“그것도 잘.”

“넌 한국말을 잘하는 것 말고 딱히 쓸모가 없구나?”

“죄송합니다.”

고개 숙이며 사과한 그를 구해준 목소리가 들렸다.

“소령님. 명령대로 반군들을 모두 제압해서 임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베이스캠프를 만들어야겠군.”

“전에도 왔었지만, 멀쩡한 건물 중에서는 지금의 많은 인원을 동시에 수용할만한 곳이 없습니다.”

“내가 봐둔 곳이 있어. 모두 그곳으로 가도록 하지.”

원래는 3층 건물이지만, 지금은 단층이 되어버린 공용 회관.

리오의 부대와 박민준이 이곳에 자리했다.

마을의 어른인 브룩다오를 중심으로 마을의 청년들도 여기로 모두 모였다.

그들은 박민준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당신을 위해 특별히 돼지를 잡았습니다.”

어촌마을이라 무척 귀한 돼지였고, 지금은 그마저도 몇 마리 남지 않았다.

그렇게 통돼지 바비큐와 연유를 곁들인 망고 밥까지.

“마을에서 머무실 생각이라면 우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간 아껴둔 양식을 꺼내서 대접하고, 마을 청년 카미가 자기 집을 박민준에게 양보했다.

현재 마을에서 최대한 깨끗하고 넓은 멀쩡한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카미는 어릴 때부터 친했던 동갑내기 리오 소령에게 질문할 게 많았다.

저 동양의 외국인은 누구인지.

바다의 괴물을 물리치려고 왔으면서 왜 군함이나 사냥용 장비는 따로 보이지 않는 건지?

하지만 그가 질문할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주로 브룩다오가 대표로 질문하고, 리오가 답변했다.

“자네는 정말 마을의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돌아온 건가?”

“물론입니다. 제가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네. 자네가 이곳을 원래의 평화로운 곳으로 반드시 되돌려놓겠다고.”

“이제 가능할 겁니다.”

“역시 저 외국인 청년 때문이겠지?”

“맞습니다. 낮에 보셨겠지만 아주 강한 사람입니다.”

“그땐 정말 놀라웠네. 반군을 상대로 바람을 부려서 싸우다니. 어디서 저런 사람을 데려온 건가?”

“저분은 한국에서 온 사냥꾼입니다. 여기서도 저분을 아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자네도 알지 않나? 괴물이 나타난 이후로 이곳의 모든 전기와 통신이 끊겼다는 것을.”

“아. 그랬었지요. 제가 깜빡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박민준이 돌아온 뒤에 펼친 활약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한국의 헌터라고 해봐야, 세계 최연소 S등급인 이지원 정도 알고 있을까?

그마저도 아는 사람만 알았다.

먼 해외의 일이었고, 먹고 사는 문제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박민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을 주민 중 일부는 그의 이름이 박민준이라는 걸 알면서도 신이 보낸 사자라고 불렀다.

건물 안팎으로 박민준을 연신 훔쳐보면서 떠들기 바빴다.

“역시! 저분이 괴물을 잡으러 왔다네.”

“신의 사자가 분명해. 그러니까 우릴 괴롭히던 반군도 제압하고, 괴물도 사냥하겠다는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바다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 바다에서는 바람도 소용없을 것 같은데?”

반군은 총을 든 사람일 뿐이지만, 괴물은 차원이 달랐다.

바다에서 뻗어 나온 다리만으로 이곳에 주둔하던 해군을 전멸시키고 건물도 무너뜨렸다.

인간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을 터.

더욱이 바다에 본체를 꼭꼭 숨기고 있는 괴물을 바람으로 공격할 수 없을 텐데?

사람들의 의심이 마음속에 싹틀 무렵.

카미가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멍청이들아. 당연히 괴물을 죽이는 게 가능하지. 자신이 없으면 한국에서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을걸?”

“그런가?”

“거기다 리오가 데려온 사람이잖아?”

“하긴 마을에서 제일 똑똑한 녀석이었으니까. 다 생각이 있어서 저분을 이곳에 데려온 거겠지.”

“내 말이.”

마을 사람들의 말을 브룩다오와 리오 소령도 다 들었다.

불신하는 말을 이방인이 알아듣지 못해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박민준도 자길 훔쳐보며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척 궁금해했다.

“야. 저자들이 대체 뭐라고 하는 거지?”

리오 소령은 주민들이 했던 것 중 안 좋은 얘기는 쏙 빼고, 그에게 좋은 말만 전했다.

“반군으로부터 마을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주로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바다 괴물을 처리해 줄 거로 믿는다고도 했습니다. 신이 보낸 사자니까요.”

“신이 보낸 사자?”

“네. 박민준 씨를 이 마을 사람들이 신의 사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참 재밌군.”

소령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마을 주민들의 말 중에 대체 뭐가 재밌다는 거지?

“그게 재밌습니까?”

“그래. 내가 신이라는 존재를 직접 만나봤거든.”

“설마요?”

다른 건 몰라도 인간이 신을 직접 만났다는 말만큼은 절대로 믿을 수 없는 리오 소령이었다.

그가 믿든 말든 박민준이 그 일에 대해 더 말해주지 않았다.

이곳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었으니까.

그저 괴물이 왜 나타나지 않는 지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지원을 요청해봐. 바다에 숨은 괴물을 찾아야 내가 싸우든 말든 할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지원은 어렵습니다. 이 근처에 배를 타고 오는 건 자살행위니까요.”

더욱이 군용 함선처럼 거대한 배는 괴물의 눈에 잘 띌 테니.

아마 녀석이 나타나자마자 바로 침몰해버리지 않을까?

“마을에 멀쩡히 남은 배는?”

“배라고 부를 만큼 큰 배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지금 멀쩡히 남아 있는 어부들의 배는 엔진만 달렸을 뿐.

그저 물 위에 간신히 뜨는 나무 묶음이나 마찬가지였다.

“헬기는?”

“괴물의 다리가 몇 미터나 육지로 튀어나온 줄 아십니까?”

“흠. 250~300m?”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까 부서진 장소를 충분히 봤잖아.”

“그래서요?”

“녀석의 공격 범위만큼만 당했을 테니까. 그걸 보면 대충 알 수 있지.”

“네. 상당히 긴 다리를 지닌 괴물입니다. 거기다 녀석은 물대포 같은 것도 쏠 수 있습니다.”

“물대포?”

“녀석의 다리가 모두 긴 건 아닙니다. 유난히 짧은 다리가 몇 개 있는데. 거기서 강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와 아군을 공격했었습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아까 차에서 말씀드렸었는데요?”

“그랬나? 아무튼, 난 못 들었어.”

“아. 그럼 제가 빼먹고 말씀드리지 않았었나 봅니다.”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잠깐 생각에 잠겼던 박민준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보니까 저기 폐허가 원래는 해군기지였다면서?”

“그렇습니다. 괴물이 완전히 박살 내기 전까지는 꽤 활발한 활동을 했었지요.”

“그럼, 거기서 괴물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장비 같은 게 남아 있지 않을까? 음파 탐지기라든가?”

“잘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그럼 가서 찾아와.”

“찾아도 소용없습니다. 배에 실어서 바다로 나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넌 가서 그걸 찾아오기나 해.”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 해가 밝으면….”

“아니. 지금 당장 가라고.”

“네.”

누구 말이라고 거역할까?

그는 맨손으로 바람을 부리고, 150명이 넘는 반군을 홀로 제압한 사람인데.

‘괴물을 처리해 줄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지. 무슨 생각인지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당장은 저분이 시키는 대로 따르자.’

그렇게 몇 시간 뒤.

14인치 모니터와 음파탐지용 장비를 들고 돌아온 소령이었다.

“빨리 돌아왔네? 근데 그게 전부야?”

딱 봐도 너무 오래돼서 작동이나 제대로 될까?

그럼 의심이 드는 장비였다.

“죄송합니다. 그나마 멀쩡히 작동하는 음파 탐지기는 이게 전부입니다.”

“어이가 없네. 아무튼, 작동은 하는 거지?”

“물론입니다. 제가 확인하고 가져온 겁니다.”

“좋아. 그럼 반군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네?”

“그놈들이 이쪽 섬에 살지 않는다면서? 그럼 배를 타고 넘어왔을 거 아니야.”

“그렇습니다. 제가 그 생각을 미처 못했군요.”

“녀석들의 배를 찾아서 장비를 싣고 괴물 사냥을 떠나는 거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서 반드시 놈들이 숨겨놓은 배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겠습니다.”

“좋아. 그럼 난 계속 쉬고 있을 테니까. 출항 준비를 다 마치면 그때 날 불러.”

“네. 금방 준비를 마칠 테니. 편히 쉬십시오.”

그렇게 감옥에 가둔 반군을 찾아간 리오 소령이었다.

제압된 상황에서도 아주 기가 센 놈들이라.

좀처럼 그의 말을 들어 먹지 않았다.

“네놈들이 타고 온 배는 어디에 숨겼지?”

“네 어미 배 속에 있을걸?”

“그따위 말을 하다니. 죽고 싶나?”

“그럼 죽여보든가? 어차피 우릴 여태 살려둔 걸 보면, 죽일 마음도 없는 거잖아?”

“그건 내 의지와 상관없다.”

“그럼?”

“그분이 너희를 살려줬기에 나도 따랐을 뿐이다.”

“그분? 설마 아까 그 외국인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분께서 너희들이 타고 온 배를 원하신다.”

“진작 그렇게 말을 하지. 우리가 타고 온 배는 동쪽 절벽 아래 숨겨놨다.”

“이렇게 쉽게 말해 준다고?”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그런 존재에게 개길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까.”

반군들도 이곳의 마을 주민들처럼 박민준을 보통 사람으로 안 봤다.

물론, 원주민들과는 달리, 각성자일 거란 예상은 했지만, 그처럼 강력한 헌터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가 자신들의 목숨을 쥐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협조만이 유일한 살길이라는 판단이 선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

반군의 배에 장비를 싣고 출항 준비를 마쳤다.

“배는 누가 몰 거지?”

“제 친구 카미가 할 겁니다.”

“믿을 수 있나?”

“네. 마을에서 알아주는 어부입니다. 이 근처 바다를 녀석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지요.”

드디어 괴물을 사냥하러 떠나는가 싶었는데.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가서 반군 몇 놈을 배에 태워.”

그가 반군 몇 명을 추가로 배에 실으라고 명령했다.

“어째서 말입니까?”

“혹시 바다에 나가서도 괴물이 안 나타날까 그래.”

“네?”

“놈들을 미끼로 쓸 거라고. 그러니까 싱싱한 놈들로 몇 명 태워.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 소령이 기꺼이 그의 명령을 수행했다.

소령이 직접 보기 좋은 덩치를 지닌 반군 녀석들을 다섯 명 골랐다.

“저기 있는 다섯은 나와 함께 배에 탈 것이다. 포박한 상태로 배에 실어라.”

“네. 소령님.”

그는 비겁하지는 않았다.

외부인에게 도움을 받고, 친구를 사지로 보내면서 안전한 곳에 남을 생각이 없었으니.

그렇게 당황하고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반군 다섯과 리오 소령, 선장이 된 카미. 그리고 박민준을 태운 배가 바다로 출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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