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수십 명의 군인이 박민준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다른 사람이라면 무척이나 긴장했겠지만, 박민준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도 딱히 위협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공격을 받는 즉시, 반격할 생각이었는데.
“어서 오십시오. 박민준 씨. 한국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겠군요.”
그의 귀에 유창한 한국말이 들렸다.
‘한국말이잖아? 그것도 발음이 너무 좋은데?’
박민준이 자길 향해 말한 사람을 서둘러 찾았다.
‘저기 있다.’
애써 오래 확인할 필요도 없이 먼저 그를 향해 다가서는 남자였다.
나이는 대략 40대 정도.
의외로 한국인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필리핀인이었고.
잔뜩 굳은 표정의 다른 군인들과는 달리, 그는 박민준과 눈을 마주치고 크게 미소 지었다.
“혹시 박민준 씨가 아닌 겁니까? 동영상에서 본 얼굴이 확실한 것 같은데?”
“나 맞아. 그런데 넌 누구지?”
무표정한 박민준을 향해 그가 고개를 크게 숙였다.
“저는 이곳의 책임자인 리오 소령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박민준 씨를 안내할 겁니다.”
“안내? 겨우 길을 알려줄 거면서 왜 이렇게 떼로 몰려나왔어?”
“이곳은 우리 정부군이 관리하는 곳이지만, 그렇게 안심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닙니다.”
“역시 괴물 때문인가?”
괴물을 죽이러 온 박민준이라.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령이 빠르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괴물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럼?”
“반군 놈들이 수시로 바다를 건너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군? 여기가 내전 지역이라는 건가?”
“맞습니다. 이젠 반군도 모자라 괴물까지 나타나는 바람에 저희 군인 말고는 아무도 살지 못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박민준이 도착한 상보앙가의 최남단은 민다나오섬과 바다를 서로 사이에 두고 있었다.
민다나오는 필리핀에 속한 아주 큰 섬이었는데, 테러리스트라 불리는 무슬림 반군들이 지배한 지역이었다.
괴물이 나타나면 자기들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일 텐데.
게이트가 열리고 난 뒤.
오히려 더욱 도발이 심해진 반군이었다.
박민준이 초음속 비행기에서 내려서 마주한 이들은 시민을 지키는 정부군 소속 군인들이었고.
그들은 수시로 테러를 일삼는 민다나오 반군 때문에,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었고, 전투 경험도 상당했다.
당연히 반군을 죽여야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다들 날이 선 눈빛을 가진 거였으니.
‘내가 괜한 오해를 했네.’
그나저나 이런 위험지역에서 괴물을 사냥해야 한다니.
‘처음부터 아주 제대로 찾아왔구나. 시작이 좋아.’
눈먼 총알에 언제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박민준이 아닌 다른 그 어느 헌터가 여길 와서 괴물과 싸우려 들겠는가?
거기다 괴물의 등급이 무려 7등급.
소수의 헌터만으로는 싸워서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자국 출신 헌터들마저 이곳에 오길 극도로 꺼렸다.
그렇게 모두에게 버림받은 지역이 되어서, 미처 고향을 버리지 못한 일부 시민만 남았다.
박민준 앞에 나타난 군인들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상부로부터 내려온 명령을 받고 억지로 지역을 지켜야 했다.
희망도 없고, 우울한 상황에서 구세주 같은 존재가 등장했다.
최근 유명해진 한국의 S등급 각성자.
그것도 세계 최고 레벨을 가진 거로 밝혀진 박민준이 이곳에 와 주었으니.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내가 온 게 그렇게 좋은가?”
“당연하지요. 저와 제 부하들 모두 기약도 없이 오지도 않을 지원을 기다리다 여기서 모두 죽는 줄 알았습니다.”
반군이나 괴물이 언제 또 나타나 자신들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공포감 속에서 두려워하던 군인이다.
그래서 더욱 박민준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리오 소령의 설명을 듣고 박민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를 턱으로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너 말고 다른 놈들은 표정이 다 썩었는데?”
“박민준 씨를 믿지 못해서 그런 걸 겁니다.”
“날 못 믿어? 왜?”
“괴물을 처리할 만큼 키가 크지 않고, 덩치도 작아서겠지요.”
“어이가 없군.”
“아마 저도 동영상을 미리 보지 않았다면, 저들과 마찬가지 표정이었을 겁니다.”
“너 말고 다른 놈들은 내 영상을 못 봤다는 건가?”
“아니요. 다들 보긴 봤는데, 솔직히 말하면 저도 제 눈앞에 서 있는 당신이 그렇게 강해 보이진 않습니다.”
“진짜 그렇게 느껴?”
아.
박민준의 질문을 받은 소령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닙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사과를 받고도 한숨을 내쉰 박민준이었다.
그가 자기 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그럼 최대한 빨리 괴물이나 만나게 해줘. 내가 바로 처리해주지.”
자기 실력을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기분이 살짝 나빠지긴 했지만.
괴물을 처리하러 온 거지, 이 자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온 건 아니었으니까.
‘내가 괴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알아서 기겠지.’
그런 생각도 있었고.
한편, 바로 안내하라는 말을 듣고 소령이 눈을 번쩍 떴다.
“지금 막 도착하셨는데. 곧장, 괴물에게 안내하란 말입니까?”
“굳이 시간 끌 필요도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혹시 식사나 휴식이 필요하진 않으신지요?”
휴식을 권하는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한 그가 리오 소령에게 물었다.
“괴물이 여기서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해안입니다.”
“가깝네. 그럼 다녀와서 밥을 먹기로 하지.”
“네?”
“뭘 자꾸 네네, 거려? 괴물을 처리하러 왔으니. 내 할 일을 하겠다는데.”
“저희야 감사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당신이 너무 서두르시는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쓸데없는 걱정 그만하고 어서 출발하지.”
자신감 넘치는 상대를 보고, 리오 소령이 걱정 반 기대 반의 감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영상에서 본 이자의 실력이 진짜이길 바라는 수밖에.’
박민준이 서둘러 주면 고마운 건 사실이었으니.
그가 더는 말하지 않았다.
“어서 가서 이곳으로 차를 가져와라.”
“네!”
차가 그리 멀리 있지는 않았는지.
소령의 명령을 받은 병사가 금방 돌아왔다.
정글에서도 아주 잘 달릴 법한 사륜구동의 지프였다.
소령이 직접 그에게 차 뒷문을 열어줬다.
“먼저 타시지요.”
“그래.”
탁!
차에 올라탄 박민준을 보고, 소령도 보조석에 앉았다.
뒤를 살짝 훔쳐보고, 운전석을 향해 명령했다.
“그럼, 출발해.”
“네.”
박민준과 리오 소령이 탄 차가 선두에 서고, 그 뒤로 10여 대의 차량이 따라붙었다.
당연히 그 안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타고 있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장된 도로가 사라졌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령이 뒤에 앉은 박민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뭐가?”
“더 편히 모셔야 하는데. 박민준 씨께서도 아시다시피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길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궁색한 변명을 듣고, 박민준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난 상관없어.”
대답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박민준은 차의 상하 움직임과는 달리, 아주 평온한 자세로 흔들림 없이 앉아 있었다.
리오 소령은 앞에 앉아 있었던 탓에 그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뭐지? 이곳에서 몇 년을 보낸 나조차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는 차 안인데. 저자는 너무 평온하잖아?’
어떻게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걸까?
이미 앞서 말했듯이.
자기 부하들이 왜 저자를 보고 못 미더워했는지 그도 잘 안다.
사내답지 못한 허여멀건 한 피부에 왜소해 보일 정도로 마른 몸의 박민준이라.
빌딩만 한 크기의 괴물과 싸워서 이길 거란 기대가 별로 없었다.
더욱이 미처 말을 꺼내진 못했지만, 진짜로 딱 1명만 이곳에 지원 올 줄은 몰랐다.
‘저자가 아무리 최고 레벨을 가진 S등급이라고 해도, 혼자서 그 엄청난 괴물과 싸울 수 있을까?’
혼자 생각에 잠긴 그를 향해 운전병이 목소리를 높였다.
“저기. 소령님?”
“왜?”
“뒤에 계신 분이 소령님을 아까부터 불렀습니다.”
“그래? 내가 잠시 딴생각하느라 못 들었군.”
미안한 표정을 한 소령이 서둘러 뒤를 돌아봤다.
“무슨 일입니까? 도착하려면 아직 더 가야 합니다만?”
“지루해서, 질문을 좀 하려고 했지.”
“이젠 잘 들을 테니. 어서 말씀해 보십시오.”
“아까부터 의아하다고 느끼는 건데. 주변이 왜 이렇게 멀쩡하지?”
“네?”
“아니. 7등급 괴물이라면서. 그런 것 치고는 숲이나 건물이 너무 그대로잖아?”
질문을 받은 리오 소령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대답하지 않고 자길 빤히 바라보는 그를 향해 박민준이 다시 물어봤다.
“왜 그렇게 보는 건데?”
“설마, 괴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여기까지 오신 거였습니까?”
한국이 헌터 강국이라고 하더니.
자체조사는커녕.
우리가 보내준 자료를 저자에게 전달조차 안 했다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제 와서 저런 질문을 할 리가 없지 않나?
소령의 의구심은 박민준의 대답을 듣고 단번에 지워졌다.
“어? 어. 자료를 받긴 했는데, 귀찮아서 안 읽었거든.”
“네? 귀찮아서 확인을 안 했단 말입니까?”
“어차피 어떤 놈이고 만나면 다 죽일 건데, 뭐 하러 그런 데 시간을 뺏겨.”
“그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만들어낸 자료인데. 너무 쉽게 말씀을 하시는군요.”
“누가 자료를 만들기 쉽다고 했어? 그냥 그게 없어도 괴물을 처리하는 데 별문제 없다고 한 거였지.”
“그렇다면 지금은 왜 그런 질문을 하셨던 겁니까?”
“그거야, 그냥 멍하니 차를 타고 가니까. 심심해서 물어본 거였지. 뭐라도 들으면 좀 낫잖아?”
“심심해서요?”
“그래. 이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다른 질문할 거리도 없고, 그냥 눈에 보이는 걸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거였는데.”
순간 혈압이 올라갔는지.
리오 소령이 목 뒤를 잡고 주물렀다.
‘우리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저자에게는 겨우 심심풀이라는 건가?’
저런 태도를 지닌 주제에 대체 왜 한국에서 먼 이곳까지 와서 괴물과 싸우려는 거지?
도착하고 나서 봤을 때부터 줄곧, 희생이나 봉사 정신 따윈 보이지도 않는 사람인데.
크게 한숨을 내쉰 소령이 박민준에게 대답은 해줬다.
‘저런 인간의 손에 이 지역의 안전과 평화가 달렸다는 건가?’
속으로 아무리 뭐라 해도 이곳에서 자신들이 찾을 희망이 결국엔, 한국에서 온 그밖에 없었으니.
“괴물은 해안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럼, 바다에서만 사는 괴물인가?”
“네. 아마도 해양형 생물인 듯싶습니다. 몸통은 바다에 숨기고 있으면서, 길고 거대한 다리만 육지로 뻗어서 파괴를 일삼았습니다.”
“오징어나 문어 같은 괴물이라는 거네?”
“글쎄요. 몸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아무도 없어?”
“정확히 말하면, 몸통을 보고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요즘엔 드론 같은 게 있지 않나? 위성이라든가?”
“놈은 단 한 번도 몸통을 물 밖으로 내보인 적이 없습니다.”
“그럼 그놈이 7등급인 건 어떻게 알아낸 건데?”
“외부에서 잠시 조사하겠다고 온 사람들이 나중에 피해 상황만 보고 제멋대로 판단한 겁니다.”
실제로는 괴물이 몇 등급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괴물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바닷속으로 직접 들어가야 했고, 그래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었다.
박민준이 소령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드디어 다 왔군요. 이제 내리시면 됩니다.”
어쩐지 도착을 알리는 소령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빠져있었다.
무척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차에서 내리려던 박민준은 창밖의 광경을 보고, 잠깐 멈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