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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82화 (82/175)

82화

앞으로 이틀 뒤.

예상보다 훨씬 이른 일정이라 조금 놀랐다.

국가에서 하는 일은 뭐든 늦지 않나?

어쨌거나 박민준은 이른 출국을 반겼다.

주말이라 집에 온 조카 김채영의 검술을 봐주는 일 말고는 딱히 바쁜 일도 없었다.

“외삼촌. 진짜 해외로 파견 가는 거예요? 괴물 퇴치 때문에?”

“그래.”

“엄마랑 할머니가 그 일 때문에 아직도 화나신 것 같던데요?”

“나도 알아. 하지만 내일은 내가 알아서 결정하는 거잖아?”

“그렇지요. 각자 자기 인생이 있으니까요.”

“넌 좀 날 이해하는구나?”

“당연하죠. 저도 처음에 헌터를 한다고 했을 때, 그 두 분이 얼마나 반대를 했었는데요.”

“그런데 허락을 받았군?”

“아니요. 그냥 가출해서 헌터 활동을 했어요.”

“가출? 두 사람이 널 그냥 내버려 두든?”

“헤헤. 안 그러면 어쩌겠어요? 그리고 제가 잘 피해 다녔지요.”

“누나도 참. 너 때문에 마음고생 좀 했겠네.”

“그걸 아는 외삼촌이 갑자기 해외를 나가세요?”

크흠.

그리고 남은 시간은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월요일이 되었다.

대통령이 직접 명령해서 박민준이 공항까지 타고 갈 차를 보내왔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니라 세 대를 보냈다.

“박민준 씨 가족분들도 어서 차에 타시지요.”

“우리도 차에 타라고요?”

“가족분들도 함께 모시라는 각하의 명령이셨습니다.”

“우리는 따로 가도 괜찮은데.”

떨떠름한 표정의 가족들에게 박민준이 미소 지었다.

“내 친구가 보냈다잖아요,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그냥 어서 타세요.”

“아니, 누가 네 친구야? 대통령님께서 보낸 차량인데?”

“내가 말 안 했나? 지난번에 걔랑 친구 먹었어.”

“얘 봐. 그런 거짓말 하면 큰일 난다. 그리고 대통령님께 걔라니? 그분이 너보다 나이도 많은데.”

“친구를 사귀는 데 나이가 중요해?”

“그건 아니지. 하지만…. 이건 좀.”

“됐고. 그만 어서 타. 다들 기다리잖아.”

박민희가 뒤를 돌아봤다.

운전기사와 수행원들이 다들 차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자.

“하하…….”

어색하게 웃은 그녀였다.

***

인천국제공항.

박민준을 기다리는 수많은 인파가 보였다.

거의 수천 명은 되었는데.

그중 일부만 기자와 인터넷 개인 방송인이었고.

팬들이 대다수였다.

그는 워낙 외부에 알려진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

이번 기회에 얼굴이라도 직접 보겠다며 찾아왔다.

박민준이 탄 차가 들어서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박민준이다!”

한편, 차에 타고 있던 박민준과 그의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놀라는 중이었다.

“어떻게 알고 사람들이 이렇게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러게요. 조용히 출국하는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우리 아들 팬이 이렇게 많았나?”

“정말 놀랍네요. 벌써 민준이를 따르는 사람이 이 정도라니.”

임시로 쳐 놓은 붉은 선 안에 차가 멈추고.

박민준이 차에서 내렸다.

파박! 팍팍!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거의 동시에 터졌다.

그 바람에 이미 해가 질 무렵임에도 순간, 대낮보다 더 밝아진 공항 입구였으니.

“아휴. 눈부셔라.”

“미리 말도 없이 플래시를 터트리면 어떡해?”

“이럴 줄 알았으면 선글라스라도 미리 준비할 걸 그랬나 봐요.”

뒤늦게 차에서 내리던 가족들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툴툴거리다가, 앞을 못 보고 비틀거렸다.

박민준 혼자 멀쩡한 상황에서, 수행원과 경호원들이 달려왔다.

“현장관리팀 뭐 해? 주변 통제 제대로 안 할 거야?”

“저분들을 어서 안으로 모셔.”

“네!”

박민준의 가족들 모두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실눈을 뜨고 공항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내부로 들어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공영 TV 방송국에서 만든 스튜디오 세트장이 박민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박민준이 그냥 혼자 중얼거린 거였는데.

가까운 곳에서 대답이 들렸다.

“박민준 씨. 도착하셨군요.”

방수열이 최대한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잘 봐달라는 인사였지만, 박민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 이게 다 뭐야? 미리 말도 없이 왜 이런 짓을 벌였어?”

“제 뜻이 아닙니다. 대통령님과 국장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 인간들은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건데? 만나기만 해봐라.”

“부디 참아주십시오. 보는 눈이 많지 않습니까?”

“뭘 참아?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였는데. 아니면 설마 직접 여기 오는 건가?”

“네. 그분들도 직접 이곳으로 오실 겁니다.”

“체. 이제야 알겠네.”

“네?”

“됐어. 오래 기다리게 하면 협조 안 해 줄 줄 알아.”

“감사합니다. 다들 금방 도착하실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항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대통령과 국장이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하하. 갑작스러운 일정에 참 많이도 와 주셨군요.”

대통령은 인자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기자와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던가?

이제는 게이트 관리국의 수장이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대통령의 경호실장처럼 행동하는 국장이었다.

“카메라로 찍는 건 좋은데, 모두 각하와 안전거리를 유지하십시오. 거기! 가까이 오지 말라는 내 말을 못 들었습니까? 어서 뒤로 물러서십시오.”

그 때문에 현직 경호실장이 뻘쭘한 얼굴을 하고 어정쩡한 거리를 유지하며 구경해야 했다.

그렇게 요란을 떨면서 천천히 인사하며 들어온 대통령을 향해, 박민준이 전음을 보냈다.

[야. 뒤질래? 날 여기서 기다리게 해놓고? 지금 뭐 하는 거야? 이쪽으로 빨리 안 와?]

예전 같으면 누가 듣든 말든 대놓고 말로 했을 텐데.

친구가 된 대통령의 체면을 봐준 박민준이었다.

전음을 듣고 번쩍 정신이 들었는지.

그가 인사하던 손을 슬쩍 내렸다.

걸음도 빨라졌다.

그렇게 잰걸음으로 박민준 옆에 서서 속삭였다.

“내가 미안하다.”

“미안한 줄은 아는구나?”

“너는 관심이 없겠지만, 요즘 내 지지율이 조금 떨어져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서 말이지.”

“그래. 아무튼, 더는 안 봐줄 거니까. 후딱 끝내.”

“알았어. 저기서 사진 좀 찍고, 말 몇 마디만 하면 끝나니까. 그때까지만 참아줘라.”

끄덕.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를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대통령이었다.

최근 떨어진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해외 파견을 나가는 박민준에게 슬쩍 묻어가려는 심산이었다.

미리 말하면 절대 협조하지 않을 것 같아서 얼렁뚱땅 진행한 거였는데.

‘결과적으로 잘되긴 했지만, 저 녀석과 미리 친구 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아주 난리가 났겠지?’

대통령이 자리를 옮기면서 다시 한번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고맙다. 조금만 더 참아줘라.”

마이크가 있는 단상에선 대통령이 먼저 발언하고, 뒤이어 게이트 관리국 국장이 아주 짧고 굵게 인사만 하고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박민준이 올라갔다.

마이크 밑에 A4용지로 그가 할 말이 미리 적혀 있었다.

해외 파견에 임하는 각오와 대통령에 대한 감사,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겠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걸 보고도 무시한 박민준이었다.

“박민준입니다. 이렇게 많이 와 주실 줄 몰랐는데. 시민 여러분께서 저를 이 정도로 좋아해 주시고, 큰 관심을 주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덕분에 아주 건강히 잘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신들이 미리 준비한 내용과는 전혀 달랐지만, 의외로 무뚝뚝한 줄 알았던 그가 아주 잘 얘기한 걸 보고 깜짝 놀란 대통령 홍보실장이었다.

‘제법이잖아? 전에도 느꼈지만, 의외로 대중과 소통이 낯설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

홍보실장이 보기에 박민준은 대중에게 보일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호감을 줄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실제 그의 성격이나 행동과는 별개로 말이다.

끝으로 포토존에서 대통령, 박민준, 국장이 나란히 섰다.

“거기, 박민준 씨 가족분들도 이쪽으로 오시지요.”

“저희도요?”

“네. 저분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여기까지 모신 겁니다.”

“아. 네.”

그렇게 박민준의 가족들도 불러서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자, 그럼 이제 기념사진 촬영이 있겠습니다.”

“네. 그럼 찍겠습니다. 하나, 둘.”

찰칵!

무사히 행사를 마친 대통령이 크게 안도하는 사이.

박민준도 가족들과 다시 작별인사를 하고 출국길에 올랐다.

“우리 아들. 제발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다녀와.”

“알았어요. 엄마.”

그의 출국을 줄곧 못 마땅해하던 장미령이지만, 공항에서만큼은 아들에 대한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누나 박민희도 마찬가지였고.

“엄마 말씀 잘 들었지? 진짜 다치지만 마라. 그러면 두 번 다시 해외 파견 안 간다는 말을 지켜야 할 테니까.”

“그래. 다치지 않고 잘 다녀올게.”

대통령이 걱정하는 그의 가족에게 다가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정말 강한 사람입니다. 그가 다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도록 국가에서도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네. 제발 그래 주세요. 대통령님. 우리 아들 좀 잘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저도 다음 일정이 있어서 그만 먼저 가봐야겠군요.”

“네. 어서 가보세요.”

대통령이 떠나고.

국장도 말없이 그와 함께 가버렸다.

박민준이 출국장을 향해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가고.

방수열과 직원 몇 명이 박민준 옆에 따라붙었다.

“넌 안 가? 또 뭘 하려고 내 옆에서 계속 따라오는 거냐?”

“저도 박민준 씨와 함께 갈 겁니다.”

“필리핀까지 따라올 거라고? 왜?”

“필리핀 쪽에서 대통령이 직접 마중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랬어?”

“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도 균형을 맞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대통령 녀석은 아까 그냥 나갔잖아?”

그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대통령은 이미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아직도 서 있던 자기 엄마와 눈이 마주치고, 어색하게 손을 한 번 흔들어 줬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눈치를 본 방수열이 괜히 자신이 미안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다른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하지 못하신 겁니다.”

“그래서 네가 대통령을 대신한다고? 그렇게 직위가 높았어?”

“아닙니다. 국장님도 함께 출국하실 겁니다.”

“그 녀석도 아까 나갔잖아?”

“대통령님을 마중하고 금방 출국장 게이트로 오시겠다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체. 다들 제멋대로군.”

박민준의 마지막 말을 듣고, 방수열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 당신만 하겠습니까? 대통령님과 국장님에게 그놈이니, 녀석이니 같은 막말을 하시면서.’

속으로 그렇게 생각만 할 뿐,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뒷감당을 할 수 없을뿐더러, 사실 방수열도 그 두 사람을 똑같이 욕해주고 싶었으니까.

‘기획실 부장인 내가 대체 어느 정도까지 직무 밖의 일에 관여해야 하는 거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박민준 전담이 된 자신을 보며,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한 그였다.

‘이러려고 게이트 관리국에 들어온 게 아니었는데.’

박민준이 그를 나쁘게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원했던 업무에서 멀어진 탓이었다.

잠시 후.

국장이 도착했다.

박민준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은 아는 그였으니.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박민준 씨. 그래도 제가 각하의 배웅은 직접 해드려야 해서.”

“나에게 죄송한 걸 알긴 아는군.”

“죄송합니다.”

국장에게 두 번이나 죄송하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박민준도 더는 그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둘의 눈치를 보던 방수열이 끼어들어 말했다.

“이젠 모두 왔으니. 마저 비행기에 타시지요.”

“그래.”

그렇게 박민준 일행을 태운 필리핀행 비행기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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