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레벨이 올라가면, 스탯의 추가 능력치도 각각 1 높아진다.
그러므로 원래 지구의 시스템 아래에서 각성했던 자들은 만렙을 찍어도, 스탯을 추가로 최대 99만큼밖에 올릴 수 없다.
박민준은 오늘로 51레벨을 찍었으니.
이미 찍은 99에 더해서, 앞으로도 스탯을 추가로 49만큼만 더 올릴 수 있다.
‘지구의 모든 각성자가 만렙을 이뤄도 절대로 내 스탯을 뛰어넘을 수 없다.’
거기다 다른 세상의 천마를 죽이고, 추가로 보너스 스탯 20을 얻었으니.
현재 박민준의 모든 스탯은 이미 120이 넘었다.
지구에서 박민준을 제외한 최고 레벨의 S등급이 지금 34라고 했으니.
간단한 산술만으로도 무려 86이나 차이가 벌어졌다.
그걸 다시 1레벨당 1 스탯으로 환산하면?
86레벨만큼 차이나 난다는 말이 된다.
너무 비약적인 계산인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86이란 스탯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격차인 건 분명했다.
모르긴 몰라도.
박민준이 또 만렙을 찍고 레벨 34를 만나면?
플라스틱 장난감 검을 든 5살짜리 어린아이와 자동소총을 든 성인 남자의 차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물론 박민준이 레벨업하는 사이에 다른 자들도 레벨을 올리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역시. 지구에서는 내가 제일 강한 사람이었어.’
베타 시스템에 의해서 자타공인 지구 최고 레벨을 지닌 S등급이란 타이틀을 받게 된 박민준이었다.
‘지구에서 정체를 숨기고 있는 천마 같은 놈만 없다면 좋을 텐데. 설마 그런 놈이 여기에도 있으려고?’
존재한다고 해도, 레벨이 51은 되지 않을 테니.
‘그렇다면 진작 다른 사람에게 알림이 갔겠지. 역시 레벨만큼은 내가 최고다.’
***
정치, 경제, 문화 군사에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
게이트가 열리고 세상이 한 번 뒤집힌 후에도, 여전히 최강 국가의 타이틀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각성자의 절대적 숫자와 전투력 등의 질적 측면에서도 여전히 최고를 자랑했으니.
그런 미국의 중앙 게이트 관리부.
자정 무렵이라 평소에는 대부분 사람이 퇴근하고 텅 비어 있어야 하건만.
지금은 수십 명의 사람이 한 장소에 모였다.
“대한민국의 박민준이란 S등급 헌터가 역대 최고 레벨인 51을 달성했다.”
“그에 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누고, 향후 대책과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그런 이유로 긴급회의가 열린 것이다.
미국에서 콧방귀 꽤나 낀다는 장, 차관은 물론이고, 상, 하 의원 중 일부도 이런저런 자격을 내세워서 참석했다.
정작 대통령은 현재 유럽의 우방국을 차례로 순방 중이라 미처 참석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런 어중이떠중이들 말고 이번 회의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세 명 있었다.
한 명은 당연히 중앙 게이트 관리부 장관 제이크 하워드였다.
그는 은퇴한 S등급 헌터로 10년 전 마지막 전투에서 왼쪽 팔을 잃었다.
하지만 그 대신 수천 명의 시민을 구했으니.
실력과 인품이라는 모든 측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현직 헌터였다.
첫 번째는 더원이라고 불리는 자타공인 미국 최고의 헌터.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아놀드 잭슨.
그는 자신의 이름이 너무 평범하고 심지어 조금은 촌스럽게 느껴진다고 여겼다.
그 때문에 더원이라고 불리길 원했다.
마지막 한 명은 스페셜 쓰리. 또는 최강 트리오라고 불리는 3명의 헌터 중 하나였다.
그는 별칭이나 가명 없이 본명을 사용했다.
링고 도노반.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키가 작고 볼품없는 외모였지만, 그를 무시하고 멀쩡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더원 바로 아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강자였고, 그 말인즉, 전 세계로 따져도 한 손으로 꼽히는 실력자란 말이었으니.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충분했다.
제이크 장관이 더원에 이어 링고 도노반과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내가 먼저 말하지.”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더원이었다.
그가 예전에는 세계 최고의 헌터였다.
얼마 전 박민준이란 한국인 S등급 각성자가 레벨 51을 찍은 게 시스템에 의해 알려졌으니.
현재는 그 타이틀을 강제로 빼앗겼다.
당연히 여기 모인 그 누구보다 할 말이 많았다.
또한, 그가 반말하고 나서도 딴지를 걸 사람이 없었다.
한편,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침묵하고, 자길 바라보자, 더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아시아 놈이 최고 레벨을 달성했다고 해서 이렇게 회의까지 열다니. 다들 왜 그리 난리를 피우는 거지?”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않나? 자네보다 레벨이 17이나 높은 각성자가 탄생한 건데.”
링고 도노반이 불쑥 끼어들었다.
“내가 듣기로 그는 무려 40살이라고 하던데. 그럼 탄생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을까요?”
“지금 자네 말장난을 하자는 건가?”
“당연하지요. 잭슨의 말처럼 모두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여기 모여 있으니.”
“도노반! 자네 너무 말을 막 하는군.”
“진짜 막말을 해볼까요? 다들 쥐새끼처럼 여기 모인 주제에 대책이니 뭐니….”
쾅!
더원이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가 몽땅 부서지지 않고, 정확히 손바닥만큼 구멍이 뚫렸다.
“닥쳐. 내가 말하고 있는데 멋대로 끼어들지 말란 말이야. 아무리 너라고 해도 나한테 죽는 수가 있어.”
“어디 한번 해보시든가? 자신 있나? 전직 세계 최강 헌터 아놀드 잭슨?”
“저 새끼가 진짜!”
키가 무려 190cm가 넘는 더원과 170cm가 조금 안 된다는 링고 도노반이 서로 가까이 맞붙었다.
실제로는 더원보다 30cm는 더 작았으니.
‘저렇게 보니. 체구가 정말 작군.’
‘170은커녕 160도 간당간당하겠는데?’
링고의 키에 대한 소문이 전혀 안 맞았지만, 여기서 그걸 대놓고 언급하거나 따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자리에서 저 두 사람이 작정하고 싸우면, 아주 크게 난리가 날 터.
아마 회의장이 박살 나는 건 당연하고, 건물까지 무너질지도 몰랐다.
하나둘 몸을 사리고, 슬쩍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사람까지 생기려던 그때.
상황을 파악한 제이크 장관이 중재에 나섰다.
“거기 두 사람. 진짜로 싸울 거면 이번 회의가 끝나고 내가 특별히 자리를 자로 마련해주지. 그때까지는 좀 참아주겠나?”
아무리 막 나가는 두 사람이라고 해도, 존경하는 제이크 장관의 말은 통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이 서로 밀치며 떨어졌다.
“운 좋은 줄 알아. 오늘이 네 생일이나 마찬가지니까.”
“너야말로. 이번 기회에 더원이란 이름을 다신 못 쓰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저분을 봐서 내가 참는다.”
다시 발끈했지만, 다행히 다시 싸움까진 번지지 않았다.
제이크 장관이 그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두 사람 모두 4개국 조약에 대해서 알고 있을 거야.”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꺼내는 겁니까?”
“혹시라도 자네들이 나 몰래 그자를 만나러 갈까. 그게 걱정되어서 하는 말일세.”
정곡을 찔렸다는 듯.
그의 눈을 피하는 더원이었다.
반면 링고 도노반은 장관에게 질문부터 했다.
“그 한국인의 일격에 아오야마 겐조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었다던데?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사실이네.”
“세상에. 그렇다면 난 절대로 그놈과 맞붙지 않을 겁니다.”
그는 아오야마 겐조와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자신이 스페셜 쓰리라고 불리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으니.
‘그런 놈을 한 방에 죽였다고?’
링고 도노반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더원은 그와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흥. 그래 봤자, 겁 없이 날뛰던 원숭이 새끼 한 마리 죽인 것뿐이지 않나?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상당히 건방지고 인종차별이 가득 담긴 발언이라.
제이크 장관이 바로 경고를 날렸다.
“자네. 제발 그 입 좀 조심하게. 여긴 다 같은 편이지만, 자네의 그런 언행은 결코, 자네와 조국에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젠장. 당신도 내가 우습게 보여? 당장 그 김치 냄새 나는 놈을 죽이면 더는 나에게 그런 말을 못 하겠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더원이었다.
당장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는 그의 행동을 보고, 제이크 장관이 서둘러서 말했다.
“어딜 가려는 건가?”
“다 알면서 뭘 묻는 거지? 가서 김치를 갈가리 찢어놓을 테니까. 당신은 그냥 잠자코 구경이나 해.”
“자네. 그런 짓을 하면, 국제 조약법 위반이라는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건가?”
“알 게 뭐야? 설마 조국이 날 버리기라도 하게?”
“내가 한국 정부에 공식적인 만남을 먼저 요청해 볼 테니. 부디 좀 참아주게.”
“정말?”
“그래. 우연히 만나서 싸우게 되는 것까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겠나?”
“흐흐. 이제야 말이 통하네. 그럼 나야 좋지. 이왕이면 전 세계에 생중계해달라고. 그거 가능하지?”
제이크 장관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더원을 잘 달래서 돌발행동을 막기는 했지만, 이런 비열한 수는 원래 그의 생각이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미국의 대통령이 그에게 전화 통화로 내린 명령이었으니.
“일본에서 아주 난리가 났어. 그 망할 조약에 얽매여서 대놓고 복수도 못 하고 있다고 말이야.”
“하지지만 그건 일본의 각성자가 먼저 공격을 했다고…….”
“그게 진실인지 알 게 뭐야? 아무튼, 이번에 우리가 동맹국의 큰형 노릇을 제대로 해줘야겠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회의에서 제대로 된 대책에 나오지 않으면, 한국의 박민준을 제거하는 결정을 내리라고 했다.
그 도구로 사용할 인물이 바로 미국의 더원이었고.
‘빌어먹을. 지금도 곳곳에서 괴물이 튀어나와 국민을 죽이고 있는 판국이거늘.’
동맹국끼리 그 잘난 자존심이 뭐라고.
괴물들과 싸울 최종병기들을 서로 싸우게 할 생각인 건지.
중앙 게이트 관리부의 책임자로서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시키면 따라야 하는 게 그의 신분이었으니.
착잡한 마음으로 회의를 마쳤다.
***
미국의 요청을 받은 한국은 무척이나 난감했다.
“뭐? 미국에서 박민준 원해? 그와 더원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게 해달라고?”
한창 떠오르는 국민 영웅 박민준을 미국의 영웅과 만나게 한다는 취지는 좋았다.
동맹국으로서 서로 최고의 헌터가 손을 잡고 국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게 다는 발언을 하게 한다는 거였으니.
하지만, 그런 미국의 발언 뒤에 숨겨진 더러운 생각을 알아차린 방수열이었다.
“절대 안 됩니다. 미국에서는 지금 박민준 씨를 노리고 수작을 부리고 있습니다. 둘이 만나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날 겁니다.”
그가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섰다.
이번엔 대통령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 나도 그 둘을 만나게 할 생각이 없네.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소중한 인재를 어설프게 잃을 순 없지.”
미국의 요청을 단번에 거절한 것이다.
다만 말과는 달리, 속내는.
‘그 미친놈이 더원에게 먼저 덤비거나 심지어 죽이기라도 하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는 박민준이 세계 최강 각성자라는 미국의 더원을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는 박민준이 또라이 짓을 할까 봐 거절한 거였으니.
어떻게 해서든 그 둘을 더욱 못 만나게 할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자신들의 요청을 거절하자, 미국 측도 더는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더 말했다가는 억지를 부린다는 모양새가 될지도 몰랐으니까.
자신들의 검은 속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문제를 두고.
미국 대통령과 중앙 게이트 관리부의 제이크 장관이 독대했다.
“한국에서 미리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그렇게 거절한다면, 다음 방법을 쓰는 수밖에.”
“꼭 박민준이란 자를 죽여야 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이건 우리 미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일세. 동맹국 일본의 요청도 무시할 수 없고.”
“한국도 우리의 동맹국입니다.”
“하지만 일본보다는 이익이 되지 않지.”
“그건 그렇지만.”
“그만. 자네는 조국의 안위와 번영을 위해서 몸을 바친 사람이지 않나? 나 또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걸세.”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예전에 제3국에서 우리에게 요청한 그 건. 아직도 유효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