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여기가 박민준 씨 댁이 맞습니까?”
“그런데요?”
박민희가 인터폰을 확인했다.
아까는 한 명밖에 안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총 3명이었다.
정장 입고 선글라스를 낀 남녀.
헐렁한 박스티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젊은 남자.
자유분방해 보이는 복장과는 달리, 인상이 상당히 날카로웠다.
“저희는 일본 게전청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네? 어디요?”
“일본 게이트 전담관리청입니다.”
“거기서 왜 우리 민준이를 찾아오신 건데요?”
“용건은 직접 그분을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박민준 씨가 옆에 계십니까?”
“그렇긴 한데. 잠시만요.”
박민희는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이었다.
게이트 관리국에서 사람이 나온 것도 모자라, 일본의 게이트 전담관리청에서 찾아오다니?
동생을 찾아온 사람이라, 자신이 함부로 문을 열어줄 수는 없으니.
그녀가 박민준을 찾았다.
“민준아. 지금 밖에….”
그녀가 다 말하기도 전에 박민준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다 들었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그냥 무시해.”
“무시하라고?”
“응. 내가 그자들을 만날 이유가 전혀 없어.”
“알았어. 네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방수열과 이지원은 그나마 그간 몇 번 만난 적이 있으니.
귀찮긴 하지만, 대화 정도는 나눠줬던 거였고.
하지만 해외에서 온 게이트 관련 부서 사람은?
‘분명, 다크 엘프 녀석이 만든 차원의 문 때문에 찾아왔을 텐데. 굳이 만나서 귀찮게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그것도 이렇게 빨리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따로 정보원이나 스파이라도 보내 놨나?’
어쨌든, 그쪽에서 궁금하든 말든 박민준은 딱히 그들을 만나서 문제를 해결해줄 마음이 없었다.
한편, 방수열은 현관문 앞에 서서,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상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지원이 뒤늦게 나오면서 뭔가 심각한 표정을 한 걸 보게 되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무슨 문제라도?”
박민준과 문제가 있었나?
그런 생각으로 물은 거였는데.
전혀 엉뚱한 대답을 듣게 되었다.
“일본 게전청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왔어요.”
“게전청에서 말입니까? 그자들이 왜?”
“잘은 모르니만, 우선은 박민준 씨를 만나려고 한 것 같아요.”
방수열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설마 영입하려고?’
그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몇 년 전 한미중일 게이트 조약을 맺었으니.
한국과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
이렇게 4개국은 타국의 신규 S등급 헌터를 만나려면, 서로 사전 통보가 필수였다.
게이트가 열린 세상에서 자국의 인재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국가 안보와 연관된 중요한 일이었으니.
네 나라 정상들끼리도 그런 의견에 일치해서 맺은 조약이었다.
원래는 한미일 3국 조약이었던 걸 중국이 뒤늦게 끼어들긴 했지만, 자국의 이익과 반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세 나라도 합류를 허락했다.
그러므로 박민준 같은 소속 없는 신규 등급 각성자에게 몰래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된 상황.
‘일본 게전청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다면, 전략실에 있는 내가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건 조약법 위반이었다.
방수열이 마침 잘되었다는 생각하며, 이지원에게 말했다.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온 줄은 모르겠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하지 않아요. 어차피 누가 와도 저 사람을 영입하진 못할 테니까요.”
“그렇군요.”
그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수열이 아는 박민준은 자기보다 강한 사람이 아니면 먼저 머리를 숙이고 누구 밑으로 들어갈 사람이 아니었으니.
***
박민준의 집 앞.
일본에서 온 세 사람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동생이 아무도 안 만나겠다네요. 그러니까 기다리지 말고, 그냥 돌아가세요.”
“네? 여보세요? もしもし(여보세요)?”
그들은 설마 박민준이 이렇게 쉽게 만남을 거절할 줄 몰랐다.
자신도 모르게 자국 말이 튀어나올 정도 당황했다.
“얘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고 거절하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여기까지 얼마나 급히 찾아온 건데. 정말 너무하는군요.”
선글라스를 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청바지를 입은 청년이 비웃음을 날렸다.
“그러니까 그냥 몰래 들어가서 조사하자니까. 그놈이 뭐라 하며 나서면 내가 막으면 되잖아??”
“그건 안 될 말입니다. 사실 지금 이렇게 몰래 찾아온 것만 해도….”
딸깍.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문이 열렸다.
처음엔 들어오라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안에서 나온 사람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방 상……? 방수열 씨가 왜 여기에?”
“그러는 기시다 씨는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여기 누가 사는 줄 알고 있습니까?”
두 사람이 서로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 게이트 전담관리청의 미래전략기획 팀장 기시다 노부.
한국 게이트 관리국 전략실 부장 방수열.
서로 자국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 조직 내에서의 직위도 거의 같은 두 사람이었으니.
반면, 서로 하는 생각은 조금씩 달랐다.
‘기시다 같은 사람이 여길 직접 오다니? 박민준 씨가 그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었나? 조약법을 어길 정도로?’
‘방 상이 여길 왜 와 있는 거지? 설마 한국도 그걸 파악했나?’
방수열은 상대가 박민준을 노리고 온 줄 알았다.
자국의 인재를 몰래 만나려는 현장을 잡았으니.
당연히 상대방을 적대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대로 해명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박민준 씨를 왜 만나려고 한 겁니까?”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한국의 새로운 S등급 각성자를 노리고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를 말해 보십시오. 적절한 이유인지는 내가 듣고 판단할 겁니다.”
“그게…….”
잠시 고민한 그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얼마 전, 이곳에서 열린 게이트 때문에 온 겁니다. 그게 뭔가 이상해서 말입니다.”
대답을 듣고, 방수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첫 번째는 우선은 박민준 때문에 온 게 아니라는 이유를 들었고, 또, 두 번째는 일본이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너무 빨리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새로운 에너지의 방출을 일본에서도 감지했단 말인가?’
게이트 관리국 내에 일본의 첩자가 있었나?
아니면, 여기서 발생한 에너지를 그 먼 일본에서 직접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인가?
둘 다 그렇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첩자가 있다면 정말 큰일이었고, 일본에서 관측해서 알았다면, 한국의 기술을 한참 뛰어넘는 일이 될 테니까.
한편, 이지원은 둘의 대화보다 다른 데 더 관심이 갔다.
정장을 입은 일본인들 옆에 조금 떨어져서 서 있는 젊은 남자.
그리고 그 또한 이지원을 대놓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가 먼저 이지원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당신 같은 여자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상대의 유창한 한국말을 듣고 그녀가 살짝 놀랐다.
“당신 아오야마 맞죠? 일본인이 아니었어요?”
아오야마 겐조는 일본의 S등급 헌터였다.
나이는 20대 초중반으로 알려졌고, S등급 중에서도 실력이 제법 뛰어난 편에 속했다.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한 두 사람이라, 서로 바로 알아봤다.
한편, 이지원의 질문을 받은 아오야마가 피식 웃었다.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어? 나야 당연히 일본인이지.”
“왜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는 거죠? 방송에서는 한 번도 한국말을 한 적이 없잖아요?”
“그건 내 개인 사정이니까, 노코멘트하지.”
“그럼 여긴 왜 왔어요?”
“일 때문에? 총리가 저 꼰대들을 나보고 지켜주라 하더군.”
그걸로 대화가 끊어졌다.
방수열과 기시다의 대화도 거의 마무리되었다.
“아무튼, 우리 일본은 박민준 씨를 노리고 온 게 아닙니다. 단순히 조사 목적을 가지고 왔을 뿐이니. 좋게 넘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바로 떠나겠습니다.”
“지금 바로?”
“네. 박민준 씨가 만나 주지 않는다고 하니. 이곳을 조사하는 허락도 받지 못할 테고. 그렇다면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참 잘된 일이군요. 여기서 바로 떠난다면 나도 더는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화가 그렇게 끝나고.
실제로 기시다 일행이 먼저 이곳을 떠났다.
방수열과 이지원은 아직 남아서 대화를 나눴다.
“정말이지. 방심할 수가 없군요. 저들이 이렇게 은밀히 움직이고 있을 줄이야.”
“나도 옆에서 들었는데. 저들이 박민준 씨를 노리고 온 건 아니잖아요? 게이트 조사라고 하던데?”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순진하시군요.”
“제가요?”
“네. 기시다란 사람을 잘 아신다면,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나도 알아요. 그 사람이 게전청의 미래전략팀장이잖아요.”
“또한, 아주 기만적인 인간이기도 하지요.”
“기만적이라고요? 어떤 부분에서요?”
“앞에서는 아주 예의 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는 온갖 수작을 부리는 남자입니다.”
또한, 로비의 달인이기도 했다.
일본과 자기 조직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는 잔인한 인간.
그게 방수열이 알고 있는 기시다 노부였다.
‘어쩌면 그가 S등급 헌터인 아오야마 겐조를 데려온 이유도 따로 있을지 몰라.’
방수열이 다시 박민준을 찾았다.
“왜 또 날 보자고 한 거야?”
“밖에 찾아온 사람들에 관해 알려드리려고 다시 왔습니다.”
“그 일본인들?”
“네. 그자들은….”
정보를 주려는 그의 말을 박민준이 귀찮다는 듯 잘랐다.
“됐어. 그런 말을 하려거든, 그냥 가.”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신 조심하십시오.”
“고맙긴 한데. 너 나에 대해서 그런 걱정은 하지 마라.”
역시나 상당히 자신감이 넘치고 제멋대로인 사람이다.
상대의 성격을 뻔히 아는 방수열이 더 말하길 포기하고 그대로 그냥 떠났다.
밖에서 기다리던 이지원이 금방 도로 나온 그를 보며 물었다.
“왜 벌써 나왔어요?”
“제 조언은 필요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억지로 말해줬어야지요. 미리 알고 있어서 나쁠 게 전혀 없는데.”
“아무튼, 전 이만 본부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부국장님은 어떡하실 겁니까?”
“나요? 나는 알아서 할게요.”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조심히 가요.”
방수열이 떠나고.
이지원도 차에 들어가더니.
출발하지 않고, 운전석에 앉은 상태로 눈을 감았다.
‘뭔가 이상해. 어차피 오늘은 더 할 일도 없으니까. 여기서 좀 기다려 볼까?’
그녀는 아오야마 겐조가 굉장히 폭력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거기다.
‘방 부장 말을 들으니. 기시다라는 사람도 무슨 목적이 있어서 이곳에 온 게 분명해. 어쩌면 아오야마가 박민준 씨와 싸울지도 모르지.’
한국 게이트 관리국 부국장으로서 일본의 게이트 전담관리청을 견제할 책임감을 느꼈다.
다시 시간이 흘렀지만 결국.
기시다 일행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아무 일도 없었네. 나 혼자 괜히 오바했어.’
그녀는 박민준의 집 앞에서 그대로 떠나려 했다.
그때 다가오는 누군가를 봤다.
‘설마 아오야마?’
해가 저물긴 기다렸던 건가?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살폈다.
붉을 켜지 않은 상태라.
어둠을 뚫고 상대를 확인했는데, 실루엣이 남자가 아니었다.
긴 머리를 가지고 몸의 선이 얇은 게 여자 같았다.
띵 동!
자연스럽게 초인종을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저 홍나은인데요. 잠깐 박민준 씨를 만날 수 있을까요? 할 말이 좀 있어서요.”
“알았어요. 문 열어줄게요.”
“아니요. 잠깐 나와주셨으면 하는데요.”
“그래요? 그럼 민준이 보고 바로 나가라고 할게요.”
“감사합니다.”
인터폰으로 대화하는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가 역시 여자네. 그런데 홍나은? 아! GI 그룹.’
이지원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바로 상대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홍나은도 충분히 저명한 여자였으니.
‘GI 그룹 회장 딸이 왜 박민준 씨를 만나는 거지? 둘이 어떻게 알고?’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이라고 해도, 이런 시간에 단둘이 만나지는 않을 텐데.
그녀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박민준이 밖으로 나왔다.
그걸 본 이지원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