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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73화 (73/175)

73화

“자네가 그렇게 조사를 하고 싶으면 직접 그자를 소환하면 되지 않나?”

“박민준 씨를 소환하라고요?”

“왜 안 돼?”

“당연히 안 되지요. 그는 제가 부른다고 올 사람이 아닙니다.”

“네가 아니라 내가 그를 부르면?”

“그것도 안 통할 겁니다. 전임 국장님께 그를 불렀을 때도 쉽게 움직인 사람이 아니니까요.”

“음. 그렇군.”

“네. 자존심이 강하고, 안하무인이라. 그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의 말은 전혀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번엔 단번에 이해한 국장이었다.

“박민준 씨를 소환하는 대신 조사관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자네가 직접 가봐.”

“제가요?”

“자네가 얘기를 꺼냈으니. 당연히 당사자가 가야 하지 않겠어?”

“아……. 왜 또 말이 그렇게 되는 겁니까?”

“자네가 국장인가?”

“아닙니다.”

“그럼 국장인 내가 시키는 대로 해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렵나?”

“아닙니다.”

“그럼 당장 그자를 찾아가.”

“알겠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박민준을 찾아간 방수열이었다.

소해진 차장도 데려갈 생각이었는데.

“소 차장님이요?”

“그래.”

“이틀 전에 해외 출장을 가셨는데요? 설마 모르고 계셨어요?”

“아니…. 알고 있었는데. 내가 잠시 깜빡했네.”

스트레스 때문일까?

그가 자랑하던 그 좋은 기억력도 요샌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내부방침상. 그 혼자 외근 갈 수 없고.

그가 대충 아무나 데리고 가려 했다.

“나 지금 바로 나가봐야 하니까. 당장 시간 여유 있는 전투 요원 있으면 아무나 좀 불러봐.”

“알겠습니다.”

전략실에 앉아서 잠시 기다렸는데.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방 부장님. 출발하게 어서 일어나요.”

“부국장님? 설마, 저와 같이 가시려고요?”

“네. 한가한 사람을 찾았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지금 한가한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요.”

“설마요? 여기서 제일 바쁜 분이 부국장님이시지 않습니까?”

“근데 오늘은 좀 여유가 있네요.”

이지원의 의도가 의심스러운 그였다.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한 게이트 사건이라. 나름 중요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략실 부장인 자신이 나선 상황에서 부국장까지 함께 간다고?

‘부국장님이 그자에게 관심이 있나? 그래서 나와 함께 가려고?’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했지만,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젊고 유능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부국장인데.

뭐가 모자라서 세상 제멋대로인 인간을…….

“안 가고 계속 그렇게 있을 건가요?”

“아닙니다. 어서 가시지요.”

***

그 시간 박민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가족과 대화 중이었다.

“그래서 홍 회장이 이렇게 많은 물건을 직접 찾아와서 거실까지 놓고 갔다고요?”

“그래. 그분이 아니라 GI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신 놓고 가긴 했지만. 그게 그거지.”

“흠. 뒤끝이 없는 인간인가? 나 같으면 이런 걸 보내지 않았을 텐데.”

홍 회장이 아끼던 이계의 물건을 반강제로 빼앗았으니.

‘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을 텐데.’

아니면 그만큼 딸인 홍나은을 아낀다는 건가?

여태까지 봤을 땐, 그렇게 느끼지 못했었는데.

한편, 박민희는 동생의 말을 듣고 크게 의아했다.

“뭐가 뒤끝이 없다는 거야? 혹시 홍 회장님하고 너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해?”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집을 나선 박민준이었다.

홍 회장을 만나려고 했다.

낮이라 그는 집이 아닌 회사에 있었다.

대신 홍나은이 그를 맞이했다.

갑자기 찾아온 박민준을 보고 매우 당황했다.

속으로 내심 기쁘면서도 목소리는 상당히 퉁명스러웠다.

“갑자기 찾아오다니. 무슨 일인데요?”

“홍 회장을 만나려고 왔는데. 그가 지금 안에 있나?”

“당연히 안 계시지요. 지금은 회사에 있으실 시간이에요.”

“알았다. 그럼 밤에 다시 오도록 하지.”

자기 아버지만 찾고, 없다니까 그냥 떠나버린 박민준을 보고.

그녀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아니.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내가 진짜 그렇게 별로인가?’

여태껏, 남자, 여자 성별을 가릴 것 없이.

홍나은을 만나는 사람 누구나 그녀와 친해지길 원했다.

그녀의 배경인 집안 때문이든, 아니면 홍나은 개인의 매력 때문이든 간에.

사람들에게 상당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왔던 그녀였다.

반면, 박민준은 그녀가 대놓고 관심을 보였는데, 일부러 거리를 두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자길 무시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녀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결코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나도 저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겠어. 일찍 출국해야겠다.’

당장 비행기 표도 예매했다.

내일 오전 출발하는 비행기를 떠날 것이다.

막상 짐까지 다 싸고 나니.

어딘가 신경 쓰이는 그녀였다.

‘그래도 미리 작별 인사 정도는 하고 갈까?’

***

GI 그룹 본사까지 찾아가 회장을 만나는 건 너무 귀찮았다.

잠시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그의 의중을 떠볼 생각이라.

‘저녁에 다시 가면 퇴근했겠지.’

박민준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문 앞에 서 있는 차 두 대가 보였다.

한 대는 처음 보는 차였지만, 다른 하나는 그도 이미 차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왜 또 날 찾아온 거지.’

부국장인 그녀가 자신을 만날 일이 뭐가 있을까?

아직도 게이트 관리국에 영입할 생각을 버리지 못했나?

집 안으로 들어가니.

방수열과 이지원을 만날 수 있었다.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두 사람이 박민준을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민준 씨. 안녕하셨습니까? 외출하신 지 얼마 안 되셨다던데. 금방 돌아오셨군요.”

“오랜만이에요. 박민준 씨. 집이 참 좋네요.”

게이트 관리국 전략실 부장과 부국장이 동시에 인사를 건넸는데. 박민준은 대충 고개만 까닥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무척 놀랄 일이었다.

실제로 박민희도 동생이 좀 무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쟤가 돌아온 뒤로 너무 거만해진 것 같은데. 언제 따로 말 좀 해야겠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박민준은 저 두 사람을 자기가 만나주고, 이렇게 집에 들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량을 베푼 거라고 생각했다.

방수열과 이지원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워낙 안하무인에 제멋대로였던 그인지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날 깔보기 위해서 지금 일부러 저러는 게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저런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저 태도가 자신뿐 아니라 모든 타인에게 적용된 걸 알았으니.

또한, 박민준이 거만해도 될 만큼 굉장한 실력을 가진 사람인 게 맞기도 했고.

그래서 그가 저렇게 무례하면서도 딱히 밉지가 않았다.

“용건이 뭐지? 너희가 딱히 날 만날 이유가 있나?”

박민준이 어서 대답하라는 듯,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왜 날 봐요.”

“네가 저자의 상사이지 않나? 그러니 당연히 네가 대답해야지.”

이지원은 그냥 이유도 모르고, 정말 시간이 남았길래, 박민준이나 만나보고자 따라온 거였으니.

두 사람의 대화를 구경만 할 참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대답하는 대신 방수열에게 고개를 돌렸다.

박민준도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렸고.

두 사람의 눈빛을 받은 방수열이 서둘러 답했다.

“얼마 전, 박민준 씨의 집 바로 위 하늘에서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 일로 찾아온 겁니다.”

“그건 이미 조사원이 다녀갔는데? 별일 아니라고 결과가 나오고 끝내지 않았나?”

“그랬지요. 하지만, 그건 괴물이나 새로운 바이러스가 게이트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확인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뭔가가 또 있다는 건가?”

“네. 말이 나온 김에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말 해봐.”

박민준이 질문해도 좋다고 하자.

방수열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그날 열린 게이트를 당신이 만들어 낸 겁니까?”

정말 예상 밖의 질문이라,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듣다가, 화들짝 놀라버린 이지원이었다.

‘세상에? 방 부장이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저 사람이 게이트를 열었냐고 물어본 거야?’

반면, 질문을 받은 박민준은 제법이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역시 이놈은 다른 녀석들보다 훨씬 똑똑하단 말이지. 그 게이트가 인공적으로 열린 걸 알았다는 건가?’

박민준이 방수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을 보고, 지금 자신을 떠보고 있다는 걸 간파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번지수가 틀렸어. 그 게이트가 열린 건, 내가 한 일이 아니다.”

그의 대답을 듣고, 이지원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죠? 저도 방 부장이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당신에게 하나 싶었어요.”

방수열은 여전히 박민준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당신이 게이트를 열지 않았단 말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다 된 건가?”

“아니요.”

“아니라고?”

“네. 그 게이트를 연 게 당신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열었을까요?”

“그건 왜 나한테 묻는 거지?”

“당신은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훗.

‘역시 똑똑한 놈이군.’

박민준이 속으로 상대를 칭찬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해주진 않았다.

그 일에 자신이 깊게 관여하기도 했고.

차원의 문.

그러니까, 여기서 게이트라 부르는 다른 차원의 통로를 인공적으로 열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

‘아마 세상이 발칵 뒤집히겠지.’

인간 말고 다른 지적 존재가 지구에 머물렀었다는 것 또한 밝혀져서 좋을 게 전혀 없었다.

이미 떠나버린 다크 엘프의 존재를 굳이 세상에 드러낼 이유가 없단 말이다.

“그냥 감으로 묻는 건가? 아니면 무슨 증거라도 있나?”

박민준이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질문하자, 방수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증거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기존에 없던 에너지가 검출되었기에 물어본 것뿐입니다.”

“새로운 에너지?”

“네. 그날 당신의 집 위에 열린 게이트는 여태껏 지구에서 열렸던 모든 게이트와는 전혀 다른 에너지를 발산했습니다.”

다크 엘프 족장 칸이 마신의 구슬을 사용해서 마법으로 연 차원의 문이라.

앞서 열린 게이트하고는 당연히 근본부터 달랐다.

‘그걸 알았단 말이지. 게이트 관리국도 아주 쓸데없는 곳은 아니었네.’

고개를 끄떡인 박민준이었지만,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나도 그걸 느꼈다. 하지만 더는 너에게 해줄 말이 없다.”

“그렇습니까?”

“응. 나도 아는 게 없거든.”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혹시 그날 열린 게이트가 나중에라도 다시 열릴 일이 있겠습니까?”

“전혀. 그럴 일은 절대 없다.”

세상에 남은 다크 엘프가 또 있고, 거기에 마신의 구슬이 한 개 더 존재한다면 모를까.

절대로 그와 같은 차원의 문이 열릴 일은 없었다.

박민준의 확답을 듣고, 걱정을 덜었다는 듯.

방수열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상대에게 그렇게 말한 방수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국장님. 듣고 싶었던 대답을 어느 정도 다 들었으니. 이제 여기서 더 볼일은 없습니다. 그만 일어나시지요.”

“그래요?”

뭔가 바로 알아듣기 어려운 내용이 나와서.

대화가 길어질 줄 알았는데.

너무 금방 끝났다는 생각에 조금 아쉬운 그녀였다.

‘이렇게 금방 돌아갈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오지 않는 건데.’

사실 박민준을 만나서 딱히 뭔가를 하거나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먼저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부하를 보고, 그녀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그만 갈게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보기로 해요.”

“굳이? 너와 내가 서로 얼굴이나 보려고, 일부러 만날 사이는 아니지 않나?”

“아. 그렇죠.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나도 그냥 작별 인사말이었어요. 안녕히 계세요 대신 말이죠.”

“그래. 잘 가라.”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도망치듯 부하를 따라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띵! 동!

다른 손님이 박민준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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