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게이트가 열렸다고?”
“그렇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무궁화 마을이라고 하던데?”
“박민준이란 남자의 집이었습니다.”
“또 그자인가?”
중년 남자가 진절머리난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주변의 인물들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조직의 무기였던 서태준이 그자에게 두 번이나 꺾였다.
한 번은 방심이라고 쳐도, 두 번은 실력일 터.
더욱이 박민준에게 그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세 번째 기회 같은 건 주어지지도 않았다.
‘처음엔 법을 따르는 자인 줄 알았는데. 설마 서태준을 죽일 줄이야.’
그런 일이 생길까 봐, 그는 서태준에게 명령을 내렸다.
박민준과 관련된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라고.
하지만, 명령을 듣지 않은 그가 제멋대로 나섰고.
기어이 적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중년 남자가 속으로 딴생각을 하면서도 귀는 열려 있었다.
부하의 보고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그곳에 나타난 게이트는 기존에 발생한 것과 전혀 다른 성질을 보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성질이 전혀 다르다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다는 거지?”
“여태껏 지구에 열린 게이트는 다수의 양극과 극소수의 음극을 띠었습니다.”
“그곳에 나타났던 게이트는 그렇지 않다는 건가?”
“맞습니다. 양극이나 음극 같은 에너지를 발산하지 않았습니다.”
“들으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중년인의 말에 주변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가 열릴 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양의 기운과 음의 기운으로 나눌 수 있다.
그게 지금껏 지구의 과학으로 파악한 상식이었다.
그런데 양극이나 음극의 에너지가 모두 아니었다니?
“제3의 에너지라도 된다는 건가?”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건 분명 이전엔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던 에너지가 분명합니다.”
“새로운 에너지라니. 관심이 생기는군.”
“그래서 말인데. 박민준이란 자에게 사람을 붙이는 게 어떨까요? 근처에서 감시하다 보면, 새로운 에너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겁니다.”
부하의 제안을 듣고, 중년 남자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거절이었다.
“박민준이 우리 일에 다시 관여하지 않는 이상. 그를 우리가 먼저 건드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에너지의 등장은 인류의 미래까지 바꿀 수 있는 대발견입니다.”
“자네 새로운 에너지가 우리 인류에게 필요하다고 보는가?”
“그렇지 않습니까?”
“당연히 아니지. 우리가 목표한 바를 이루면 기존의 에너지 자원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게 될 걸세.”
“그건 그렇지요.”
결국, 그들은 박민준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단, 자신들의 일에 끼어들면 그땐, 가차 없이 처단할 것이다.
***
이른 오전부터.
박민준의 집 앞이 어수선했다.
장비를 실은 차량이 잔뜩 몰려왔으니.
놀란 박민준 가족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민희야. 네가 부른 사람들이니?”
“아니에요. 엄마.”
“그럼 민준이가 데려왔나?”
“저도 아닌데요.”
아내와 자식들의 대화를 듣고.
박철수가 나섰다.
“당신들. 지금 남의 집 마당에서 뭐 하시는 겁니까?”
안전모를 쓴 남자가 그에게 뛰어왔다.
“여기가 박민준 씨 댁 아닙니까?”
“우리 아들 이름이 맞긴 한데.”
“저희는 박민준 씨 집의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우라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보냈다는 건지?”
대답은 다른 쪽에서 들렸다.
“제가 불렀어요.”
박철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빠르게 되물었다.
“저 사람들을 나은 양이 불렀어요?”
“네. 민준 오빠에게 보답하려고요.”
“보답?”
“네. 절 구해줬으니까, 저도 나름대로 뭔가 해드리고 싶어서요.”
죽을 위기에서 자길 구해준 박민준을 위해서, 먼저 지저분한 창고부지를 정리해 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줄 생각이었고.
“그랬군. 미리 말이라도 해 주지 않고.”
“그럼 거절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어쩔 수 없었어요. 먼저 사람을 부르시기 전에 제가 서둘러야 보답을 할 수 있으니까.”
“뭐, 고맙긴 한데. 괜히 부담이 좀 되기도 하고.”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부모님이 아니라 제 돈으로 처리할 거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홍나은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박철수도 할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박민준은 생각이 달랐다.
오히려 자신과 관여된 일 때문에 홍나은이 위험해지고, 그녀의 집 일부도 무너진 거였으니.
“장비와 일꾼들을 보내준 건 고맙지만, 거기까지만 해. 비용도 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지.”
“왜요? 제가 이러는 게 싫어요?”
“솔직히 말해서 불편해.”
그 말을 듣고, 잔뜩 충격받은 얼굴의 그녀였다.
그러든 말든.
박민준은 계속 말했다.
“그리고 저곳을 다 치우면 너희 집이 부서진 것도 함께 치우라고 저들에게 말해 놓겠다. 그 비용도 내가 처리하지.”
홍나은의 집안이 전 세계가 알아주는 부자지만, 박민준도 이미 돈이 넘쳐날 만큼 많았다.
앞으로 더 많이 벌 수 있을 테고.
그래서 그 나름대로 먼저 호의를 베푼 그녀에게 선심을 쓴 거였는데.
홍나은이 잔뜩 삐져서 말했다.
“됐어요. 우리 집은 내가 알아서 고칠 수 있으니까. 그러지 마세요. 신경 쓰지 마시라고요.”
그렇게 몸을 획 돌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걸 본 가족들이 박민준에게 뭐라 했다.
“왜 그랬어? 나은 양이 고맙다고 한 일인데.”
“넌 꼭 다른 사람의 호의를 그딴 식으로 받아들여야 했니?”
“아들아. 내가 봐도 지금은 좀 심한 것 같구나.”
어휴.
작게 한숨을 내쉰 박민준이었다.
“쓸데없이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도, 스스로 알아서 다 처리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나중에도 좋아요.”
“누가 아니래?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르잖아?”
“다르지 않아. 오히려 내가 저 여자 집을 전부 고쳐주는 게 맞기도 하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전에도 그랬지만.
박민준은 지금도 딱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잘 끝났으니. 다들 그만 해요.”
그렇게 말하고 일꾼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누더니.
곧장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은 가족들이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재는 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게 사회성이 없는 거야?”
“다들 왜 날 봐?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저렇게 꽉 막힌 남자가 아니야.”
“누가 뭐래요. 그냥 답답해서 그런 것뿐이에요.”
그날 저녁.
박민준의 집에 또 손님이 찾아왔다.
이번엔 홍 회장 부부였다.
뒤에는 비서로 보이는 사람들도 잔뜩 서 있었다.
말도 없이 찾아온 그들 때문에, 박철수와 장미령이 깜짝 놀랐다.
정작 당사자인 박민준은 어디론가 외출한 상황이었다.
“아이고. 두 분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딸아이를 구해주셨는데. 감사 인사를 이제야 드리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인사를 하는 홍 회장의 아내는 표정에 진심이 엿보였다.
하지만 홍 회장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전에 박민준과 엮인 일로 아직도 꽁해 있었다.
아마, 딸인 홍나은의 일만 아니었으면, 절대로 이곳에 오지 않았을 그였다.
그의 속도 모르고, 기분이 좋아진 박민준의 부모였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웃인데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딸 아이를 구해주신 보답으로 선물을 좀 가져왔어요. 부디 받아주세요.”
말을 마친 홍 회장의 부인이 뒤로 손짓했다.
“그럼, 가져온 물건들을 저분들 집 안까지 잘 가져다 놔요.”
“네.”
크고 작은 상자를 들고 사람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그 수가 대충 세 봐도 수십 개가 넘었다.
“뭐가 저렇게 많을까?”
“그러게요. 선물이라고 해서 한두 개쯤 주는 줄 알았는데.”
대놓고 호기심을 보인 장미령과 박민희였다.
박철수도 안 그런 척하면서 속으로 무척 궁금했다.
‘GI 그룹 회장이 주는 선물은 대체 어떤 물건일까?’
직원들이 짐을 거실에 전부 내려놓은 걸 보고, 회장 부부가 작별을 고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네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인사를 마친 박민준의 가족이 뛰다시피 거실로 들어섰다.
하나씩 상자를 들고 열었는데.
그들은 거의 동시에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엄청 오래되어 보이는 도자기와 그림.
조각상이 상자에 담겨 있었으니.
그중 하나를 골라 검색한 박민희가 소파에 주저앉았다.
금액을 보고 다리가 풀린 탓이었다.
“딸. 갑자기 왜 그래?”
“엄마, 아빠. 움직이지 마세요. 그거 하나라도 깨면 진짜 큰일 나니까.”
“왜? 많이 비싼 거야?”
“저 도자기 있죠? 그거 3억이래요. 그 옆에 그림은 12억이고.”
그런 물건이 담긴 상자가 수십 개였으니.
가격도 가격이지만, 수집품으로 가치가 있어서, 돈을 준다고 바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었다.
“세상에. GI 그룹 회장이라 그런가? 통이 엄청 크구나.”
순수하게 감탄하는 남편이나 딸과는 달리.
장미령은 순간 딴생각이 들었다.
‘아까 보니, 나은 양이 우리 애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내가 어떻게든 해봐야겠네.’
***
박민준의 집에 생긴 게이트를 두고 두 번째로 큰 관심을 보인 곳은 게이트 관리국이었다.
새로 부임한 이태원 국장은 전직 대통령 경호실장이라, 이전 국장보다 현장 경험이 부족했다.
한 명을 지키는 일은 능숙하지만, 괴물을 상대하고, 빌런을 추적해 잡아들이는 일은 아직 낯설었으니.
기존 직원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하건만.
전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부하의 보고를 받으며 한 그의 생각은.
‘대통령님에게 어떻게 보고하지? 날 믿고 이 자리를 맡기셨는데. 그분에게 실망을 드릴 순 없다.’
같은 것뿐이었다.
상관이 대놓고 딴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자, 결국, 방수열 부장도 속으로 열이 잔뜩 올랐다.
‘기존 국장님보다 더한 놈이 왔어. 그분도 제멋대로였지만, 그래도 게이트 관리국이 어떤 곳인지는 개념은 잡혀 있었는데.’
지금의 국장은 방수열에게 큰 실망한 안겨주고 있었다.
오직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해서 게이트 관리국이 존재 한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똥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더니. 또 다른 똥차가 온 기분이네.’
하지만 노련한 방수열 부장이라,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국장님?”
“왜?”
“제 말을 제대로 듣고 계신 겁니까?”
“당연하지.”
“그럼 조사 요원을 다시 정식으로 파견해서 박민준 씨의 집 주변에 초정밀 검사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네. 당연하지요.”
“괴물이 나온 것도 아니고. 금방 나타났다가 그냥 스스로 사라져 버렸다면서?”
“게이트 탐지팀에서 올린 보고서를 보지 않으신 겁니까?”
“그거? 아침에 봤는데? 그게 왜?”
“기존에 발견되지 않은 에너지원을 사용한 게이트였다고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도 국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그야 당연하지 않나?”
“네?”
“게이트 자체가 지구의 것이 아니잖아. 그럼, 거기서 나온 에너지도 기존과 다를 수도 있지. 그게 뭐 대단한 일인데?”
“아…….”
방수열은 말문이 꽉 막혔다.
‘이런 무식한 인간을 봤나.’
보고서를 앞장만 보고 덮은 게 분명했다.
게이트 탐지팀장이 새로운 국장에게 잘 보이고자, 정성을 다해서, 무려 A4용지 100장이 넘게 상세한 보고를 올렸는데.
‘그가 여기 없는 게 다행이군.’
아마 자괴감이 들어서 스스로 사표를 던지지 않았을까?
방수열이 잠시 침묵하는 사이.
국장이 다른 주제를 먼저 꺼냈다.
“그가 GI 그룹 회장의 딸을 구했다던데?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조사가 필요한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기존의 게이트는 에너지와 이 계의 존재를 내보낼 뿐. 흡수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네. 그러시겠지요. 아무튼, 이번 게이트는 사라지기 전까지, 주변의 모든 에너지란 에너지를 다 빨아들였습니다.”
“블랙홀 같은 건가?”
“블랙홀은 알고 계셨군요.”
“내가 그런 것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아? 나도 대학 나온 남자야. 비록 수도권은 아니지만, 4년제 정시로 들어갔다고.”
“그것참 훌륭하십니다.”
대한민국에서 초엘리트인 방수열이다.
난다긴다하는 두뇌를 가진 인재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란 말이다.
그건 그의 앞에서 4년제를 정시로 들어갔다는 자랑을 하고 있었으니.
‘아. 나도 이제 여길 그만둘까?’
국가에 대한 헌신이고 뭐고 그만 쉬고 싶어진 그였다.
그런 방수열에게 국장이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