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박민준.
그의 이동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단순히, 빨리 다크 엘프 족장에게 돌아가 정령술을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아.’
육감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세계에 있을 때도 이런 느낌이 들 때마다 박민준과 가까운 사람들이 위기를 맞거나 죽었다.
그리고 지구로 돌아온 지금.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과 가까운 사람은 오직 가족뿐이었다.
‘서둘러서 돌아가자.’
박민준이 내공을 아끼지 않고, 경신법에 모든 힘을 집중했다.
얼마나 빠른지.
발바닥에 땅에 채 닿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
대한민국에서 제일 안전한 동네.
그게 바로 무궁화 마을이었다.
하지만 서태준에게는 그저 조금 특이한 장소에 불과했다.
순찰 다니는 경비요원들을 만나면, 즉시 죽여서 입을 막았다.
“거기 누구냐? 이 시간에 왜 떼로 몰려다니는 거지?”
“재수 없는 놈이군. 하필 우릴 만나다니.”
“침입자다! 어서 무전을!”
“뭘 보고 있어? 어서 처리해.”
서태준이 나설 필요도 없이, 그가 데려온 부하들도 모두 일류급 암살자들이었다.
경비요원도 각성한 사람답게 제법 빠른 손놀림이었지만, 적이 너무 강했다.
먼저 무전기를 잡으려던 손목이 잘리고, 그대로 목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 시체는 보란 듯이, 대로변 가로수에 걸어놨다.
서태준 일행이 박민준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바로 옆집이 홍 회장의 저택이었고.
그 주변에 게이트 관리국 요원들이 잔뜩 모여 있었으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부하의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뜬 서태준이었다.
그리고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우리가 올 줄 알았다는 건가? 정말 제법이군.”
박민준이 한 일이 아닌데. 서태준은 그렇게 오해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우린 우리대로 할 일을 마치면 된다.”
오늘 해가 뜨기 전에 박민준의 목을 벨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놈의 가족을 먼저 죽여주마.’
서태준을 구해주면서 당분간 몸을 사리라고 했다.
그리고 절대로 박민준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들어먹을 서태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박민준의 행적을 찾아 더 미쳐 날뛰었다.
그가 이사 간 곳을 찾아내기 위해 사람까지 죽였다.
‘그날 날 죽이지 않을 걸 후회할 거다.’
잠을 자고 있을 박민준의 얼굴을 기대하며, 그가 게이트 관리국 요원들의 눈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
***
박민준의 집 차고.
족장은 여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
깨어난 다크 엘프들이었다.
정령을 강제 소환 해제당해서 충격이 제법 컸다.
하지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지닌 다크 엘프답게 불과 몇 시간 만에 정신을 다시 차렸으니.
“족장님. 여긴 어딥니까?”
“그 인간의 집이다.”
“네?”
“뭘 그리 놀라느냐?”
“우리가 어떻게 그 인간의 집에 있을 수 있습니까?”
“그가 우리에게 자비를 내렸다.”
“그렇군요.”
그 뒤로 깨어난 다크 엘프들이 자기들끼리만 수군거렸다.
“정령이 타격을 받는 순간,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어.”
“인간이 어떻게 그랜드 마스터일 수 있는 거지?”
“진짜 사람이긴 한 거야?”
“그자가 우릴 봐준 이유가 뭘까? 나 같으면 배신자를 전부 다 죽였을 텐데.”
조용히 듣고 있던 족장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쉿! 모두 조용.”
그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자.
사방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한 다크 엘프가 잠시 밖을 향해 귀를 기울이더니.
족장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군요.”
“그래. 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있다.”
“설마, 그 인간이 우릴 배신한 걸까요? 배신한 대가로 동족에게 우릴 팔아넘기려고?”
의심이 가득한 젊은이를 향해 족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릴 죽이면 죽였지. 그는 그럴 인간이 아니다. 또한, 우릴 배신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직 남아있기도 하고.”
“그게 뭡니까?”
족장이 대답하려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동족들을 향해 손을 들더니.
가만있으라는 표식을 보이고.
그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해. 혼자 어딜 가시는 거지?’
잠시 후.
젊은 다크 엘프 하나가 몰래 족장의 뒤를 따랐다.
박민준의 집안까지 아무 방해 없이 들어온 서태준 일당이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이 무척 넓었기 때문에, 놈들은 인원을 두 방향으로 나눴다.
서태준 본인은 박민준을 직접 상대할 생각이었다.
부하들에겐 박민준의 가족을 사로잡으라고 명령했다.
“난 2층으로 올라가 보겠다. 너희는 1층을 먼저 뒤지고, 날 따라 위로 올라오도록.”
“네!”
그가 알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실제로 2층엔 박민준과 그의 조카 김채영의 방이 있었다.
1층엔 그의 부모와 누나 박민희의 방이 있었다.
서태준이 발소리도 내지 않고 조심히 계단을 올라갔다.
첫 번째 방문을 열었다.
여자 화장품 냄새가 그의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여긴 아니군.’
서태준이 다음 방을 여는 순간.
자신이 찾던 박민준의 방인 걸 확신했다.
검을 앞세우고, 침대를 향해 곧장 다가갔는데.
‘여기도 없잖아?’
푹! 푹!
잔뜩 짜증 난 그가 애꿎은 침대를 검으로 마구 찔렀다.
순식간에 박살이 나서.
팅! 스프링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흠칫.
놀란 서태준이 빠르게 몸을 돌렸다.
‘젠장. 괜히 쫄았잖아.’
상대를 확인하고 애써 담담한 척 굴었다.
자기 부하들이 박민준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2층으로 올라온 거였다.
“그게 다야?”
“네. 이 집에 있는 사람은 이들이 전부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서태준이 박민준의 부모와 누나를 살폈다.
두려움에 떠는 세 사람.
그걸 보고, 히죽.
기분 나쁜 미소를 지은 그가 박민희에게 다가갔다.
“박민준은 지금 어디 있지?”
“너 누구야? 누군데 왜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상대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대답은 사납게 하는 걸 보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간의 가족답구나. 아주 재수 없고, 싸가지도 없어.”
“뭐? 너야말로 인성이 개쓰레기라 이런 짓을.”
짝!
서태준을 노려보며 말하던 박미희의 얼굴이 빠르게 옆으로 돌아갔다.
얼굴을 맞았는데도 그녀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눈알을 부라리며 서태준을 노려봤다.
“좋아. 너무 고분고분하면 재미가 없을 뻔했는데. 놈이 오기 전에 좀 즐겨볼까?”
서태준이 입술을 혀로 핥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더럽고 역겨운 모습을 본 박민희가 뒷걸음질 치려고 했는데. 서태준의 부하가 그녀의 팔을 양쪽에서 꽉 움켜쥐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몸부림쳤다.
“가까이 오지 마. 이 개자식아. 내 동생이 오면 너흰 다 죽었어. 아주 갈가리 찢어 죽일 거라고.”
그녀의 말이 예상외였는지.
서태준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하지만, 박민희에게 다가가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예쁘게 생겨서 입이 아주 거치네. 이거 더 달아오르는데.”
“안 돼!”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문 그녀가 발길질을 시도했다.
서태준이 그녀의 발목을 낚아챘다.
“좋아. 언제까지 계속 날뛰는지 두고 보자고.”
말을 하던 그가 갑자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휙!
뭔가 거친 바람이 서태준의 등을 지나쳤다.
동시에.
그의 곁에 있던 부하 둘이 눈을 부릅뜨더니.
거의 동시에 목이 잘려나갔다.
툭. 툭.
주인 잃은 머리통 두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태준이 여태 쥐고 있던 박민희의 발목을 놔줬다.
그리고 재빨리 뒤돌면서 검을 내질렀다.
“드디어 왔구나.”
박민준이 돌아온 줄 알고 그렇게 소리친 거였는데.
정작 아무도 없었다.
“뭐지?”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가 순간 방구석을 노려보고 빠르게 달려들었다.
마력을 가득 담아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챙!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그의 검을 튕겨냈다.
“역시. 거기 숨어 있었구나.”
서태준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휙! 휙! 챙!
검날이 주로 허공을 갈랐지만, 가끔 뭔가가 닿는 소리가 났다.
‘빌어먹을. 투명화 특기를 가진 놈인가?’
그에 짜증 난 서태준이 결국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야! 늙은이들의 두 팔을 잘라 버려. 어디 그걸 보고도 저놈이 계속 숨어있나 보자.”
“네.”
투명화를 한 상태로 시간을 벌고 있던 족장이 크게 당황했다.
그는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상황만 살필 생각이었다.
자기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끼어들 의도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박민준의 가족이 몹쓸 짓을 당할 때, 족장이 그냥 구경했다는 걸 그가 알게 되면?
‘계약이고 뭐고, 놈이 약속을 지키지 않겠지. 오히려 나에게 책임을 물을 거다. 간신히 살아남은 세 명의 아이들도 전부 죽이겠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섰다.
하지만, 서태준은 족장이 그동안 상대한 인간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주 강하고, 비열했다.
당황한 족장이 박민준의 부모를 구하려고 다가가는 순간.
서태준과 그의 부하들이, 주변 공간을 총공격했다.
놀란 족장이 서둘러 몸을 뒤로 뺐지만, 너무 늦었다.
그의 왼팔이 잘리고, 배에 구멍이 뚫렸다.
깊은 상처 때문에 강제로 투명화가 풀리고.
족장의 모습이 모두 앞에 드러났다.
“뭐야? 뭔데 저렇게 생겼어? 짐승과 교배한 흑인인가?”
상대를 조롱한 그가 족장의 검을 걷어찼다.
힘없이 손에서 무기를 놓친 그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내가 죽으면 남은 아이들은 영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텐데.’
족장이 동족에게 미안함을 느끼던 그때.
방 입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다 뭐냐? 왜 남의 방에서 싸우고 있어?”
서태준이 빠르게 몸을 획 돌렸다.
그리고 다짜고짜 기합과 함께 달려들었다.
“이 얏!”
박민준은 상대가 서태준인걸 이제 알았다.
엄청난 기세로 다가오는 그를 보며, 오히려 크게 반겼다.
서태준의 공격을 가볍게 검으로 쳐내고,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컥!
엄청난 기세에 비해서,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잡혀버린 서태준은 그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뭐 이렇게 강한 놈이 다 있지?’
지난번에는 방심해서 당했다.
하지만 오늘은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민준을 보자마자, 기습적으로 달려들어서 우위를 점할 생각이었는데.
보기 좋게 당해버렸다.
박민준이 손에 힘을 더 강하게 주며 말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이놈이 제 발로 내 집에 찾아오다니. 정말 운이 좋군.”
“지…랄 하지…마라.”
억지로 쥐어짜며 소리친 서태준을 보며, 박민준이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
그리고 그대로 꽈드득!
서태준의 목을 부러뜨려 버렸다.
헉!
그걸 본 서태준의 부하들이 깜짝 놀랐다.
처음엔 거칠게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이내 차츰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박민준의 가족을 붙잡고 있으니.
자신들은 괜찮을 거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완벽한 오판이었다.
오히려 박민준은 그들을 더욱 잔인하게 죽일 생각이었으니.
“감히 내 집에 들어와서 내 가족을 건드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는데, 적에게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가까이 오지 마. 안 그러면. 컥!”
“왜 그래? 악!”
제일 먼저, 박민희의 팔을 양쪽에서 잡고 있던 두 명의 팔고 다리가 동시에 잘려나갔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는데, 정작 박민희에게는 닿지 않았다.
무형의 막이 생기고, 피가 튀는 걸 차단했다.
그렇게 누나를 구한 박민준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부모를 잡고 있던 세 놈이 움찔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탁!
벽에 등을 기댄 녀석들이 박철수와 장미령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거기서 움직이지 마. 계속 가까이 오면.”
이번에도 놈들은 끝까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박민준이 들고 있던 검을 집어 던졌다.
엄청난 속도라, 적들은 동료가 그 검에 머리를 꿰뚫린 걸 뒤늦게 알았다.
“씨발!”
욕설을 내뱉은 한 명이 박철수의 목을 진짜로 찌르려 했다.
하지만 그건 시도로 그쳤다.
언제 다가왔는지.
그의 손목을 낚아챈 박민준이었으니.
와드득!
그가 상대의 손목을 부러뜨리고, 자기 아버지를 구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은 박민준이었다.
파심권.
주먹을 내질러, 마저 왼편을 공격해 어머니를 잡고 있던 놈의 심장을 박살 냈다.
심장이 갈가리 찢어졌으니.
당연히 즉사였다.
그렇게 가족을 모두 구한 그였다.
이제 남은 적은 단 한 명.
박민준이 천천히 적에게 다가갔다.
“괴…. 괴물 같으니. 가까이 오지 마. 제발.”
순간, 오줌까지 지린 상대를 보며, 박민준이 싸늘하게 웃었다.
“내가 그렇게 두렵나? 그럼 내 가족을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말을 하던 그가 뭔가를 느낀 듯.
‘어?’
빠르게 뒤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