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윙~윙~
곧 동이 틀 새벽 무렵.
머리맡에서 스마트폰 진동을 느끼고 잠에서 깬 대통령이었다.
급한 일이 아니면, 이런 시간에 절대 연락이 오지 않을 텐데.
‘대체 누구야? 설마 전쟁이라도 난 건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일이지만, 그 정도는 되어야 대통령의 새벽잠을 깨울 만하지 않을까?
그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발신자를 살폈다.
“박민준? 이놈이 왜?”
상대를 확인하고 정신이 번쩍 든 그였다.
얼마 전, 그는 박민준과 친구가 된 기념으로 자신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하긴 했는데. 그게 지금이야?’
계속 진동이 울리자, 그의 옆에서 자고 있던 영부인도 깨고 말았다.
“여보. 대체 무슨 일이에요? 왜 전화를 안 받고, 계속 들고만 계세요?”
아내의 말을 듣고, 그도 아차 싶었다.
혼자 생각하느라, 전화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
그가 뒤늦게 전화를 받으려고 했는데.
뚝.
스마트폰 진동이 멈췄다.
‘에이. 차라리 잘됐다. 그냥 자느라 연락 온 줄 몰랐다고 하자.’
누가 봐도 합당한 이유였다.
새벽에 깊게 잠들면 전화를 못 받을 수도 있지.
“여보? 왜 아무 말도 없으세요?”
“아무 일도 아니니까. 당신은 신경 쓰지 마.”
“이런 시간에 전화가 울린 걸 보면, 심각한 일이지 않을까요? 비서 실장이나 참모총장일 수도 있잖아요?”
“둘 다 아니야. 그러니까, 걱정 그만하고 잠이나 잡시다.”
***
한편, 대통령을 찾아가며, 그에게 전화를 건 박민준이었다.
‘대통령쯤 되면 제법 쓸만한 마력석을 몇 개 가지고 있겠지?’
원래 처음엔 주작 길드 김정빈 인사팀장을 만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개 사조직 중간 간부보다는 역시나 대통령이 더 낫다는 생각에 목적지를 바꾼 거였는데.
전화를 아예 받지 않자, 그가 잠시 멈춰서서 고민했다.
‘어떻게 하지? 그냥 찾아가서 깨워? 아니면 지금이라도 김정빈을 찾아갈까?’
그리고 내린 결론은, 대통령을 만나는 거였다.
아무래도 인사팀장보다는 그가 더 빨리 마력석을 구해줄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결정적으로, 그곳이 박민준의 집에서 더 가까웠다.
그렇게 대통령이 사는 곳에 도착했다.
당연히 경계가 굉장히 삼엄했다.
밤이 깊어서 새벽에 가까워졌지만, 오히려 경비는 대낮보다 더 많고, 근무를 서는 요원들의 눈빛도 살아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경신법을 펼쳐서 안으로 들어갔을 텐데.
‘새로운 기술을 익혔으니. 시험해 보기 딱 좋은 상황인 건가?’
박민준이 이번엔 자기 몸을 투명화하려고 했다.
그 전에 뭔가 다른 걸 발견했다.
‘이걸 지금 봤네.’
그가 알림창을 실로 오랜만에 열었다.
‘신규 스킬 획득?’
설마 족장에게 배운 기술이 스킬로 전환된 건가?
박민준이 다른 세상에서 무공을 배웠을 땐, 전부 알파 시스템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때마다 웅장한 효과음과 특수 효과를 보여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지구로 돌아온 뒤로 베타 시스템으로 갱신되었고, 새로운 기술을 익힌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베타 시스템은 신규 스킬을 얻어도 아무 효과음이 없네. 그래서 내가 몰랐구나.’
사실, 박민준은 몰랐지만, 이건 다 이유가 있었다.
무공이나 기술을 나름대로 쉽게 배울 수 있는 무림 세상의 알파 시스템과는 달리, 지구의 베타 시스템은 타인의 기술을 배울 수가 없었다.
오직 스킬북을 통해서만 가능했는데.
그건 지구에 게이트가 생긴 이래로 겨우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숫자만 등장했다.
‘아무튼, 스킬화되었다면, 사용하기 더 편하겠군.’
내공, 그러니까 지구에서는 마력이라고 부르는 기운의 관리와 스킬의 사용과 중단이 엄청나게 간편해질 터.
그가 기쁜 마음으로 스킬 창을 열었다.
- 보이지 않는 어둠의 자식들(다크 엘프 전용)
- 흔적을 남기지 않는 어둠의 자식들(다크 엘프 전용)
이렇게 두 가지가 새로 생긴 걸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투명화였고.
두 번째는 탐지 불가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두 가지 신규스킬 모두 숙련도가 따로 없었다.
‘숙련도를 따로 올릴 수 없는 패시브 스킬이네? 이런 것도 있었나?’
20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마도, 다크 엘프 종족이 살던 세상의 기술이라.
그곳에는 숙련도 개념이 없어서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닐까?
박민준도 그렇게 추측할 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역시 세상은 넓구나. 어쨌든 숙련도를 올릴 필요가 없으니. 더욱 잘된 일이다.’
나중에 정령술을 익히면 그건 또 어떻게 될까?
숙련도가 없으면 참 좋을 텐데.
계속 서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가 천천히 정문으로 다가갔다.
높고 넓은 철문을 훌쩍 넘었다.
탐지 불가를 사용해서 당연히 소리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입구를 지키던 요원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역시 잡기술도 많이 익혀두면 다 쓸모가 있다니까.’
어차피 강해서 힘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쓸데없는 충돌을 피하거나, 시간을 아낄 필요도 있었다.
그런 때, 이런 투명화 기술이 박민준에게 이득을 줄 터.
그가 대통령을 찾아 건물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동안, 단 한 명도 침입자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CCTV에도 찍히지 않았고, 오히려 이곳에 와서 예상하지 못한 장점까지 발견했다.
다크 엘프에게 배운 투명화가 건물에 곳곳에 설치된 적외선 감시 시스템까지 그냥 무시해 버렸으니.
‘이건 정말 좋은데.’
사람뿐 아니라, 기계까지 속일 수 있다니.
이전에, 다크 엘프 종족이 GI 그룹 홍 회장의 집을 몰래 숨어들었을 때는 1층 입구의 등이 켜진 적이 있었다.
그때 다크 엘프들이 투명화와 탐지 불가 기술을 사용했었는데. 그중 하나가 제대로 인기척을 감추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반면, 박민준은 배운 지 몇십 분 만에 원 종족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홍 회장의 집보다 훨씬 뛰어난 탐지 시스템이 있는 이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탐지에 걸리지 않았다.
아마, 족장이 이걸 알았다면, 심각하게 자기 종족에 대한 자부심이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박민준과 그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제집 안방처럼 돌아다니던 박민준이 드디어, 대통령의 침실을 발견했다.
자다 깨서 더욱 깊은 잠에 빠진 그였다.
자기 침실에 외부인이 온 것도 모를 정도로 단잠을 자던 대통령을 박민준이 흔들어 깨웠다.
“야. 잠깐, 일어나봐.”
“누…. 누구냐?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딸깍.
대답 대신 방에 불을 켠 박민준이었다.
처음엔 암살자나 외국의 스파이가 온 줄 알았던 대통령이었다.
뒤늦게 밝아진 방에서 친구의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적어도 자신은 박민준에게 죽을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만약 저놈이 날 죽일 생각으로 여길 찾아왔으면, 아까 미리 연락도 하지 않았겠지.’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다만, 박민준의 성격을 파악하진 못했다.
박민준이 그를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그가 깨어나기 전에 미리 목을 자라버렸을 것이다.
이미 살아서 박민준을 보고 있는 이상, 그가 상대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게 증명되는 꼴이었으니.
박민준에게서 눈을 돌린 대통령이 아내를 살폈다.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곤히 자고 있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가 침대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박민준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너 이게 무슨 무례냐? 남의 안방에 불쑥 숨어들다니?”
“너야말로 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건데? 진작 받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 아니야?”
“나한테 전화했었어? 언제?”
진작 알았으면서.
그가 정말 몰랐다는 얼굴로 자기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
부재중 전화가 뜬 걸 확인하고, 놀란 척 굴었다.
“진짜네. 나한테 전화했었구나. 근데 이거 새벽이잖아? 이러니까 내가 연락 온 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지.”
피식.
박민준이 그를 보며 대놓고 비웃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속았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
하지만, 상대는 박민준이었다.
그는 뻔히 상대가 수작 부리는 걸 알면서도,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줬다.
그걸 따져봤자, 시간만 낭비할 뿐.
원하는 게 있어서 찾아온 건 사실이니.
그냥 바로 본론을 꺼냈다.
“너 마력석 좀 가지고 있냐?”
“갑자기 그건 왜?”
“그냥 내가 필요해서. 있으면 몇 개만 줘라.”
“몇 개나 필요한데?”
수량을 묻는 상대의 질문에 그가 볼을 긁적이며, 대충 답했다.
“그냥 알아서 줘. 대신 좀 좋은 거로 챙겨주면 돼.”
“뭐 할 건데?”
“그냥 좀 주면 안 되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 내가 너한테 돈을 받을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가능하잖아?”
마력석 몇 개를 그냥 줄 거란 말에 박민준이 미소를 지었다.
“적당히 값을 치를 생각이었는데. 공짜로 주겠다니. 고맙군.”
“그랬냐? 정말 마력석 값을 줄 생각이었어?”
“이젠 아니지. 그러니까 가지고 있으면 좀 줘봐.”
“알았어. 금방 가져다줄게.”
자고 있는 대통령을 새벽에 제멋대로 불쑥 찾아와 물건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절대로 요구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민준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는 어쨌든 자기 친구였고.
또 엄청나게 강한 대한민국 세 번째 S등급이었으니까.
‘도움을 주면 반드시 한 번쯤은 내 체면을 살려 주겠지?’
대통령이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지만, 박민준도 딱히 상관이 없었다.
그도 상대에게 받은 만큼 도와줄 생각이었으니까.
“역시. 너에게 찾아오길 잘한 것 같군.”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다른 놈에게 가려다가 네가 더 나은 것 같아서 일부러 찾아온 거였거든.”
“다른 사람 누구?”
“나한테 잘못한 게 있어서, 당분간 부려먹을 수 있는 녀석이 하나 있어.”
***
한편,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태 잠도 자지 않고 야근하던 김정빈이 몸을 흠칫 떨었다.
“뭐지? 갑자기 왜 오한이. 요즘 내가 너무 무리했나?”
피곤함을 느낀 그가 하던 일을 멈추고 소파에 누웠다.
‘한숨 자고 일어나야지, 더는 안 되겠네.’
***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비서실에서 상자 3개를 들고 나타났다.
“각하. 말씀하신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고맙네. 그럼 그거 나에게 주고, 그만 돌아가 쉬게.”
이유를 묻고 싶었던 비서실장이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하고 쫓겨났다.
대통령이 상자를 다시 박민준에게 건넸다.
“자. 받아라. 네가 원했던 마력석이다. 좋은 걸 골라서 가져오라고 했으니까. 품질은 믿을 만할 거야.”
“고맙다.”
상자의 재질과 크기는 모두 같았는데.
대신 안에 들어있는 마력석의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어서 확인해 봐.”
“그래.”
한 개는 크고, 두 개는 처음 것보다 작았다.
그는 마력석을 처음 봤기 때문에 뭐가 좋은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눈으로 확인만 하고 상자를 닫았다.
“그럼, 이만 가봐야겠다.”
박민준이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떠나려고 했는데.
대통령이 그를 붙잡으며 물었다.
“잠깐만. 그냥 가지 말고, 내 말을 들어봐.”
“뭔데?”
“서태준이 최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더라.”
“그놈이? 어디서?”
“어제 서울에서 놈을 봤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겁도 없이 다시 나타났단 말이지?”
“그래. 놈이 누굴 노릴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나? 날 노리면 그놈은 죽은 목숨인 거야.”
“그래? 그럼 다행이고.”
“놈이 계속 살고 싶으면 날 피해 다녀야 할걸? 잠깐이라도 마주치면 내가 반드시 죽여버릴 거니까.”
어차피 놈을 사로잡아 봐야, 탈옥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죽이는 게 확실하게 후환을 없애는 일이이라.
“자신감이 넘쳐서 좋긴 한데. 그래도 조심해. 놈의 곁에 투명화 특성을 가진 부하들도 있다고 하더라.”
“그건 나도 알아. 그리고 이제 그런 놈들은 내게 아무 위협도 되지 못해.”
전에도 그랬지만, 이젠 박민준도 투명화를 할 수 있다.
“그럼, 잘 가라. 다음엔 이렇게 찾아오지 말고. 필요한 게 있으면 미리 문자를 해. 알았어?”
“알았다. 다음부턴 그렇게 하지.”
박민준이 떠나고.
대통령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경호실장을 긴급 호출하고, 크게 혼을 냈다.
“아니. 경호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영문을 모르는 경호실장은 무척이나 당황했다.
그런 그에게 대통령이 설명도 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시끄럽고. 내일 해가 뜨면 당장 여기 보안 시스템부터 갈아엎어. 장비도 전부 최신으로 교체하고, 인력도 두 배로 늘리라고.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
박민준이 대통령을 만난 시각.
무궁화 마을.
서태준이 부하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놈 가족이 여긴 산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부하의 대답을 들은 그가 히죽 웃으며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