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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64화 (64/175)

64화

족장이 처음 박민준에게 투명화를 설명할 때부터 그의 이해가 남다르다는 걸 느꼈다.

“다크 엘프의 투명화는 마법이 아닙니다. 우리 종족은 그냥 본능적으로 그림자 속에 몸을 감출 수 있는 겁니다.”

마법을 쓸 때처럼, 몸의 마나를 사용하는 건 같지만, 주문을 따로 외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태양이 뜬 대낮엔 투명화를 할 수 없었다.

햇빛이 직접 들지 않는 실내나, 해가 진 뒤에만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설명을 들은 박민준이 살짝 아쉬워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실내나 밤에만 투명화가 가능하다고?”

“네. 정확합니다.”

“혹시 인공조명은 상관이 없나? 형광등 같은 거 말이야.”

그거에 대해서는 족장이 제대로 답해줄 수 있었다.

“그건 상관없습니다. 마신의 구슬을 찾기 위해 인간의 고층빌딩에 숨어들었을 때도 대낮처럼 실내가 환했습니다.”

“그래서? 조명 아래서도 투명화가 가능하다고?”

“네. 오직 진짜 태양 빛 아래서만 투명화를 쓸 수 없을 뿐. 인간이 만든 빛에는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군. 아쉽긴 해도 나쁘진 않아.”

“밤에 한정된 기술이지만, 인간의 투명화 마법으로도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장점이 우리 종족의 기술에 있습니다.”

“그게 뭐지?”

이런 제약에서도 다크 엘프의 투명화가 무서운 이유는, 바로 두 번째 이유 때문이었는데.

그건 바로 탐지 불가.

보통 탐지 마법은 투명화한 상대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다크 엘프의 투명화는 탐지 마법 같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절대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백호 길드에서 온 애들이 탐지 특성을 가지고도 너희의 존재를 알아내지 못했던 거였구나.”

“맞습니다. 인간의 마법이든 특별한 능력이든 간에, 우리 다크 엘프들의 투명화를 절대로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지구에서는 오직 박민준만이 뭔가 다른 존재가 자신과 가까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

그건 그가 마법이나 특성에 의존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거였다.

상대의 숨소리나 살기에 극도로 예민했기 때문인데.

사실상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박민준조차도.

다크 엘프의 탐지 불가 능력 때문에 그들이 숨어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었는데.

다행히, 다크 엘프들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던 정령 때문에, 박민준도 그들을 추적할 수 있었다.

‘정령이란 게 아니었으면 이놈들을 여기까지 따라오지도 못했겠지.’

다만 그걸 상대에게 말해주지 않은 박민준이었다.

자신의 약점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걸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그 정도로 오만한 것도 절대 아니었고.

세 번째, 정령술.

인간 중에서는 극히 일부만이 정령술사가 될 수 있었다.

이는 마법사가 될 확률보다도 훨씬 더 적었는데.

다크 엘프 족장이 보기에 그건 인간이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유리하게 바꾸고자 하는 파괴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매우 호전적이라고 알려진 다크 엘프 족조차 인간의 자연 파괴 속도를 감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박민준도 동의했다.

“그건 네놈의 말이 맞다.”

“그렇습니까?”

“응. 내가 20년간 다른 세상에 지내다가 지구로 돌아왔을 때, 이곳의 공기가 얼마나 더러운지 바로 알 수 있었거든.”

“그렇습니까? 우리 종족도 지구의 오염된 환경 때문에 점점 약해지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겁니다.”

“향수병보다는 생존의 문제라는 거군.”

“네. 그렇다고 고향이 전혀 그립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설명을 들은 박민준이 본격적으로 다크 엘프의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우선 처음엔 몸에 흐르는 마나를 느끼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몸 밖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시면 됩니다.”

“그게 다야? 기운을 끄집어내서 몸 전체를 감싸라고?”

“네. 사실상 그게 전부입니다. 마나로 몸을 완벽히 감싸는 데 성공하면 투명화의 절반 이상을 이룬 겁니다.”

“그럼 나머지 절반은?”

“주변의 어둠과 하나가 된다는 의지를 발현하는 겁니다. 내가 곧 어둠이고, 어둠이 곧 나란 생각으로.”

“물아일체를 말하는 거군.”

“네? 그건 뭡니까?”

“검이 나이고 내가 곧 검이다.”

“아. 무슨 말씀인지 대충은 알겠군요. 바로 그런 느낌으로 몸을 투명화하는 겁니다.”

족장이 설명해준 다크 엘프의 투명화를 듣고 박민준이 내린 결론은?

마나를 몸에 두르고 어둠의 힘을 빌려, 다른 이의 눈을 왜곡하는 기술이었다.

‘정말 재밌는 기술이야.’

한편, 족장은 설명을 마치고 박민준의 눈치를 봤다.

그가 자기 생각에 집중하느라,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으니까.

“간단해 보이지만, 듣고 보니 참 어렵지요?”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어렵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간은 할 수 없다고 말한 거고.”

“그래. 보통 인간은 절대 따라 할 수 없을 거야. 개념을 이해해도 그걸 시도할 엄두도 나지 않을 테고.”

“맞습니다. 인간인 당신은 우리 다크 엘프 족의 마나를 가지지 못했으니까요. 배울 수가 없는 겁니다.”

“아니. 뭐가 그리 성급해. 좀 기다려봐. 나 아직 시도도 안 해 봤거든.”

퉁명스럽게 말한 박민준이 족장을 쏘아붙였다.

움찔한 그가 목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그럼 천천히 연습해 보십시오.”

마침 밤이고, 또 실내인 차고라, 다크 엘프의 투명화를 연습하기 딱 좋았다.

기의 발출은 아주 쉬웠다.

원래도 해온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내공을 끌어올려, 온몸에 기를 둘렀다.

어둠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투명화?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박민준이 익힌 무공의 근원은 곤륜파.

정파의 심법이었고, 그의 기(氣)도 따뜻한 양의 의도를 담고 있었으니.

다크 엘프의 어둠과 음의 기운을 좀처럼 찾아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걸 본 족장이 속으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역시 인간은 우리 종족의 기술을 배우기는커녕, 따라 할 수조차 없다.’

시간이 흐르고.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던 박민준의 입가에 순간, 미소가 지어졌다.

다크 엘프 족장은 그의 미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그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박민준을 빤히 바라보던 그때.

스르륵.

박민준의 모습이 족장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크 엘프 종족 특유의 투명화가 분명했다.

‘어둠의 마나도 몸에 지니지 못한 인간이 어찌?’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있던 족장이 박민준이 있던 자리로 향했다.

휘휘.

허공에 손을 뻗어 휘저었다.

툭.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 자리에 뭔가가 있었다.

더듬더듬.

마저 손으로 어루만진 그가 입을 떡 벌렸다.

“진짜 투명화를 이루다니.”

팍!

뭔가가 사납게 족장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박민준.

“왜 남의 몸을 더듬는 거야?”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말입니다. 제 감촉으로 더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제대로 한 게 맞지?”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완벽한 투명화를 보여주셨습니다.”

“당연하지. 이 까짓거 요령만 익히면 별거 아니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대체 어떻게 투명화에 성공하신 겁니까?”

“네가 가르쳐준 대로 어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지.”

“그게 그렇게 빨리 됩니까?”

“어. 너도 봤잖아. 쉽게 되던데.”

“당신은 정말 인간이 맞습니까?”

“그럼 내가 인간이 아니고 뭐 다른 거로 보여?”

족장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네. 드래곤조차도 따라 할 수 없는 게 우리 종족 특유의 투명화입니다. 그걸 다른 종족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표정과 말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박민준이 한껏 미소 지었다.

그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낸 족장이었다.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군요.”

“뭐가?”

투명화는 그렇다 쳐도, 기척을 숨긴 건 대체 어떻게 한 걸까?

그건 족장이 아직 그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었는데.

그가 투명화된 박민준의 몸을 직접 손으로 만지지 않았다면, 거기 있는 줄 몰랐을 정도로 완벽한 탐지 불가 기술이었다.

“인기척을 어떻게 숨길 수 있었습니까? 제가 방법을 알려드렸던가요?”

“아니. 이왕 투명화에 성공한 김에, 그냥 내 방식대로 시도해봤지. 그게 통했나 보군.”

끄덕.

“아주 제대로 인기척을 감추셨습니다. 실로 놀랍군요.”

족장은 그저 놀랍다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민준으로서는 오히려 처음 투명화를 이뤄내는 게 더 어려웠을 뿐.

그 뒤에 기척을 숨기는 건 너무 쉬었다.

애초에 그는 자신의 기를 발출해서 일정 공간을 외부와 차단하는 일을 즐겼다.

그가 만든 기의 장막 안에서는 누가 소리를 지르거나, 기운을 발출해도 외부에서 감지할 수 없었으니.

“어차피 투명화를 하려면, 온몸에 기를 둘러야 하잖아?”

“그렇지요.”

“그럼 투명화된 상태에서 피부를 둘러싼 기에 장막을 두를 때처럼 응용했을 뿐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족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뭐 상관없잖아? 통했으면 된 거지.”

박민준의 대답에 그가 동의했다.

“그렇긴 합니다. 결과가 같다면 방법이 중요한 건 아니지요.”

이제 한 가지만 남았다.

바로 정령술.

족장은 사실 박민준이 여기까지 배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투명화와 탐지 불가 기술을 적당히 가르쳐 주다 보면, 저자가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포기할 줄 알았는데.’

이젠 밑천까지 다 털리게 생겼다.

‘이러다 저자가 정령술까지 배워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박민준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 결과가 어떤지는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동족들의 죽음.

운이 아주 좋게도, 상대가 자비를 베풀었지만, 두 번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혼자 생각에 잠긴 그에게 박민준이 닦달했다.

“뭐 해? 이젠 나에게 정령술을 가르쳐줘야지.”

“지치지도 않으시는 겁니까?”

어둠의 마나를 타고났다는 다크 엘프조차, 처음 투명화를 이루면 그대로 탈진해 버린다.

몸 전체에 마나를 두르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고.

또 거기다 어둠을 받아들이는 건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또한, 인기척을 숨기는 건 마나와 심력 두 가지를 동시에 필요로 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노련한 다크 엘프들이 아니면 오래 유지할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다음 배움을 청하는 인간을 보게 되었으니. 족장은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겨우 이 정도로 지칠 리가 있나?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정령 부리는 방법을 가르쳐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긴 했는데.

정작 족장이 바로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가 허리춤에 걸린 가죽 주머니 속을 확인하더니.

낭패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무슨 문제 있어?”

“그게…. 죄송하지만, 정령술을 바로 알려드릴 수 없겠습니다.”

“왜?”

“정령술을 처음 배우려면 필요한 재료가 없습니다.”

“그게 뭔데?”

“마나석입니다.”

“마나석? 혹시 마력석을 말하는 건가?”

“네. 인간들이 그렇게 부르더군요.”

별일 아니라는 듯.

박민준이 그에게 말했다.

“잠시 기다려봐. 내가 마력석을 가지고 돌아올게.”

“네.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다리긴 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닐 텐데요?”

“나한테 다 방법이 있어. 넌 그냥 기다리면 돼.”

휙!

박민준이 그렇게 말하고 곧장, 족장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투명화가 아니었다.

그냥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 거였다.

그걸 본 족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런 엄청난 스피드를 가졌으면서 우리 종족의 투명화를 탐낸 이유가 뭐지? 욕심이 많은 걸 보면 인간이 맞긴 한가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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