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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63화 (63/175)

63화

질문을 받은 다크 엘프 족장은 속으로 박민준을 비웃었다.

‘원래 인간 종족의 욕심엔 끝이 없다고 하지만, 이곳의 인간은 그게 더 심하구나. 감히 우리 종족의 기술을 배우려 들다니.’

젊은 다크 엘프의 말처럼 인간은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기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자 숨기와 탐지 불가는 단순한 마법이 아니었으니.

다크 엘프 종족의 몸에 흐르는 마나는 특별했고, 오직 마신의 자식이라 불리는 그들만이 가진 고유한 에너지였다.

인간은 애초에 어둠의 마력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절대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구슬을 먼저 돌려받고, 가르쳐 주는 척 시간을 벌고 도망치자.’

마음을 정한 족장이 박민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당연히 가르쳐 드려야지요. 대신 구슬을 먼저 돌려주십시오.”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 이건 내가 기술을 배운 뒤에 너희에게 돌려줄 거야.”

흠.

족장이 짧지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의 몸으로 절대 배울 수도 없는 기술을 자꾸만 욕심부리며, 가르쳐 달라고 하다니.

그의 고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인간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한 존재.

‘저자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 종족의 기술을 진짜로 배우면?’

그건 그거대로 절대 안 될 일이었다.

‘마신께서 오직 우리 어둠의 자식들에게 물려주신 것을 인간이 익히게 둘 수는 없다.’

그건 마신을 모시는 다크 엘프에게 신성모독과도 같았다.

그럼, 결국엔 또 피를 봐야 하나?

‘저 인간을 쓰러뜨리고 나면, 과연 여기 있는 우리 종족 중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박민준이란 인간을 과연 우리가 이길 수는 있을까?

호전적이라는 다크 엘프답게 생각은 짧고 결정은 더 빨랐다.

그가 인간의 말이 아닌 자신들의 언어로 소리쳤다.

“Naudal ixzel nduarcha! (모두 저자를 공격해라!)”

“dni! Khan. (네! 족장님.)”

네 명의 다크 엘프들이 동시에 박민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정령술보다는 싸움과 검술에 더 재능을 보이는 전사들이었다.

나머지 다크 엘프들도 일제히 정령을 소환했다.

피식.

당황하긴커녕.

박민준은 비웃음을 지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적을 항해 검을 휘둘렀다.

박민준의 검강이 무려 3m.

다크 엘프들도 검에 마나를 주입했지만, 박민준의 수준에는 절대 미치지 못했다.

겨우 검기 정도나 될까?

휙!

단 한 번의 가로 베기에 두 명의 다크 엘프가 목이 잘렸다.

팍!

박민준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먼저 내지른 찌르기에 뒤를 노리던 엘프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그에게 가까이 가기도 전에 벌써, 세 명이 죽고 말았다.

탁!

그가 검을 잡지 않은 손을 내밀었다.

제일 늦게 박민준의 왼쪽을 노리던 적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당황한 다크 엘프가 눈을 부릅떴다.

그는 이곳에 온 다크 엘프 중에서 제일 강했다.

그래서 다른 동족 전사 세 명을 앞세워 상대의 빈틈을 만들고,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는데.

‘그림자 산맥, 최고의 전사인 내가 이렇게 쉽게 잡히다니?’

그는 길게 생각할 수 없었다.

우두둑!

박민준이 그의 목을 그대로 부러뜨려버렸으니까.

싸움은 근접전에서 끝나지 않았다.

동족이 죽는 시간 동안, 정령 소환을 마친 나머지 다크 엘프들이었다.

정령들에게 박민준을 공격하라 명령을 내렸다.

“ndua! (공격)”

박민준의 눈에 바람이 칼날처럼 다가오는 게 보였다.

동시에 불의 화살이 새의 모양을 하고 날아오는 것도 보였다.

“재밌군. 저것도 정령이란 말이지?”

검강을 앞세운 박민준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팡!

피시시식!

바람의 정령이 만든 윈드 커터를 박살 냈다.

불의 정령이 쏜 파이어 애로우와 파이어버드도 힘을 전혀 못 쓰고 사라져 버렸다.

박민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운이 느껴지는 허공을 향해 마저 검강을 찔렀다.

연속으로 세 번을 연거푸 찌르고 난 뒤에야 검을 거두었다.

강한 타격을 받은 정령이 강제로 소환 해제당하자, 그걸 소환한 다크 엘프들이 고통을 받았다.

우욱! 윽!

입에서 피를 토하거나, 심지어 기절한 놈도 있었다.

다크 엘프 중 멀쩡한 건 오직, 족장뿐이었다.

박민준을 쓰러뜨리지 못한 걸 보고, 족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내 판단 실수로 최고의 전사와 아이들만 죽고 말았구나.’

절망하고 자포자기한 그를 향해 박민준이 다가갔다.

아직 눈을 뜨지 않았지만, 족장은 죽음을 느꼈다.

‘그래.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저런 강자의 손에 죽는 걸로 만족한다.’

그는 인간이 자신을 죽일 거라고 확신했었는데.

정작 공격은 없었다.

대신 목소리가 들렸다.

“야. 빨리 눈 안 떠! 어디서 어울리지도 않게 폼 잡고 있냐?”

번쩍.

서둘러 눈을 뜬 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질문했다.

“날 죽이지 않을 겁니까?”

“어.”

“어째서입니까?”

“당연하지. 내가 너희를 죽여서 얻는 게 뭔데?”

아무것도 없다.

엄청난 기운을 가진 마신의 구슬인지 뭔지.

‘그걸 팔아서 돈을 벌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미 돈이라면 수백억도 넘게 가진 박민준이었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그 이상 돈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약속하고도 감히 자신에게 덤빈 게 가소롭긴 하지만, 그 죄를 묻고자 놈들의 전사 네 명을 죽였다.

나머지 살아남은 약골들도 피를 토하고 기절해 버렸으니.

이제 혼자 멀쩡한 다크 엘프 우두머리를 상대로 자신이 원하는 걸 얻고자 결심한 박민준이었다.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물건을 넘기고, 재밌는 기술을 배우는 게 훨씬 이득이다.’

박민준이 속으로 철저하게 자신의 이득만 생각하고 말한 것도 모르고.

다크 엘프 족장은 그에게 매우 감동했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웠다.

자랑스럽게 여기던 긍지마저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먼저 배신했건만, 이렇게 쉽게 용서해 주다니. 저 인간이 다크 엘프인 나보다 더 낫단 말인가?’

동족 4명이 죽었지만, 그건 그가 보기엔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박민준이 겨우 그 정도만 죽이고, 나머진 살려 줬으니.

다크 엘프인 자신이 배신당했다면, 그 대상을 죽일 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키우던 개까지 전부 처리했을 터.

그런 다크 엘프의 관점에서 보면, 박민준이 족장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국, 족장이 무릎을 꿇었다.

박민준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뭘?”

“우리 종족의 기술은 특별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익히지 못하는 거고. 절대 익혀서도 안 됩니다.”

“그걸 누가 정한 건데?”

“네?”

“너희가 특별해서 인간이 익힐 수 없다는 것 말이야.”

“그거야 당연히 마신께서….”

“신이 직접 말해줬다고?”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고대로부터 전해진 책자에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난 또 네가 신하고 진짜 대화를 나눈 줄 알았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필멸자가 감히 신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는 없다.

그게 족장의 상식이었다.

“어. 난 신이란 놈하고 대화를 나눠 봤거든. 그래서 아무나 가능한 줄 알았지.”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자칭 신이라고 하긴 하더라. 그놈이 날 다른 세상에서 지구로 다시 돌려보내 줬으니.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족장은 박민준이 달리 보였다.

‘필명자의 몸으로 신과 대화를 나누다니. 역시 보통 인간이 아니었구나.’

경외 어린 족장의 눈을 보고 그가 말했다.

“나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고, 너는 동족을 이끌고 너희 세계로 돌아가. 그렇게 끝내자.”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마신께서…….”

“그 마신이란 놈이 너희 세계의 신이잖아? 그럼, 여기서 너희가 한 일은 아마 모르고 있을 거야.”

“과연 그럴까요?”

전능한 마신이 모르는 일이 과연 있을까?

의구심이 잔뜩 들었지만, 족장은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었다.

반면, 박민준은 확신하고 말했다.

“네가 여기서 나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고, 원래 세상에 돌아가서 입만 꾹 다물면 돼.”

“그렇군요. 여기 함께 있는 동족들은 죽거나 기절해서 그걸 알지도 못할 테니까요.”

박민준이 일부러 유도한 일은 아니지만, 상황이 아주 적절하게 잘 맞아떨어졌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아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결정이 빠른 족장이었다.

박민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 제가 가르쳐 드린 기술을 익히지 못해도 약속은 지켜주셔야 합니다.”

족장의 말에 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당연하지. 잘 가르쳐줬는데, 내가 익히지 못한 걸 누구 탓을 하겠어.”

그 말인즉.

잘못 가르쳐서 자신이 못 배우는 거라면, 그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미도 되었으니.

족장은 멍청하지 않았고.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했다.

“마신에 맹세하겠으니. 이번엔 절대로 당신을 속이지 않을 겁니다. 최대한 성의껏 가르쳐 드리겠나이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서두르는 그를 보며, 족장이 살짝 당황했다.

“여기서 이렇게 바로 시작하자는 말입니까?”

“왜? 안 돼?”

“그건 아니지만, 곧 해가 밝아올 겁니다.”

“그래서?”

“당신은 상관없지만, 다른 인간들이 우릴 보게 되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게 다크 엘프들이 여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이유였다.

인간과 다른 이계의 종족.

만약 정체를 들키게 되면, 죽이거나 사로잡으려 들 거다.

마신의 구슬을 연구했듯이.

다크 엘프의 몸도 반드시 해부하고, 파악하려 들 터.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모든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배격하고, 이용하려 드는 종족.’

족장의 말을 듣고, 박민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좋아. 마침 적당한 곳이 있으니. 날 따라와.”

장소를 옮기는 건 좋지만, 동족의 시체와 기절한 다크 엘프들이 문제였다.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었으니.

아무리 족장이라고 해도, 이 많은 인원을 혼자 옮길 수는 없었다.

그걸 파악한 박민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 몇 명까지 옮길 수 있냐?”

“이들을 옮기는 일을 도와주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그래니까 말해봐.”

“네 명입니다.”

두 명은 양쪽 옆구리에 끼고, 두 명은 정령을 소환해서 들고 가게 할 참이었다.

“그럼 나머지는 내가 들고 가줄게.”

시체 4명은 족장이 들고 옮겨도, 나머지 인원이 3명이었다.

“기절한 3명을 어떻게 당신 혼자 옮긴다는 말입니까?”

정령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고개를 끄덕인 족장이 시체들을 먼저 챙겨 들었다.

그리고 박민준을 바라봤는데.

입을 떡 벌리고 깜짝 놀랐다.

박민준의 손짓에 따라 기절한 동족 세 명의 몸이 허공으로 떠 올랐으니.

“뭡…. 뭡니까? 정령은 절대 아닐 테고. 설마 마법?”

“무공이라는 거다.”

“무공?”

“그래. 네놈의 저 정령술하고는 다르지만, 그럭저럭 쓸만하지?”

“네. 정말 대단하군요.”

“그만 감탄하고 어서 따라와.”

***

박민준의 집.

차고에 도착했다.

그곳은 매우 넓어서 차를 동시에 10대나 주차할 수 있는 실내공간이었다.

지금은 겨우 한 대만 있었고, 빈터에 다크 엘프들을 옮겨놨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동족을 살핀 족장이 박민준에게 다가갔다.

“이제 시작하시지요.”

“좋아. 여긴 안전하니까. 편히 마음을 놓아도 좋아.”

족장은 박민준에게 세 가지 기술을 가르쳤다.

첫 번째는 투명화, 두 번째는 탐지 불가.

세 번째는 정령술이었다.

“이렇게 가르쳐 드리겠지만, 세 가지 기술은 모두 우리 종족 특유의 마나를 바탕으로 합니다.”

“알았다니까. 그걸 몇 번이나 말하는 거야.”

족장이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진짜 시작합니다.”

사전에 경고했던 것처럼.

그가 배울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없이, 박민준을 가르친 족장이었는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얼빠진 표정으로 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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