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정문 쪽은 어때? 탐지되는 게 있나?”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입구를 지키던 탐지 특성 헌터가 보고를 마쳤다.
그때, 옆에 있던 길드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좀 이상한데? 제대로 탐지한 거 맞아?”
“어디? 어느 방향?”
“방금 저쪽 나무가 흔들렸거든.”
“바람 아니야?”
“바람은 무슨. 여태 바람 한 점 안 불었잖아. 그러니까, 어서 특성으로 확인해보라고. 인마.”
“알았어.”
평소에 농담하는 동료가 아닌지라.
마력을 아끼지 않고, 탐색에 나섰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에이씨. 너 때문에 마력만 낭비했잖아. 앞으로 한 시간은 쉬어야 해.”
“뭐? 갑자기 왜 마력을 다 써버린 건데.”
“네가 하도 난리를 피우니까. 나도 진짜 뭔가 있었나 했지.”
짜증이 났는지, 동료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려던 남자가.
컥!
갑자기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특성 사용으로 힘들어하던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너 뭐야? 장난치는 거냐?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해? 억!”
동료를 살피던 그의 고개가 크게 흔들렸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그대로 앞을 향해 고꾸라졌다.
그렇게 정문을 지키던 백호 길드원 두 명이 쓰러졌다.
정작, CCTV에는 그 둘이 멀쩡히 서 있다가 그냥 기절한 거로 보였다.
홍 회장 집의 모든 감시 카메라를 살피고 있던 주희철 길드장이었다.
그가 정문 쪽 화면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어! 어떻게 저럴 수가?”
무전기를 든 그가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적이 나타났다. 앞서 말한 대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수상하면 목표가 없더라도 공격부터 한다.”
“허공에 칼질하라는 겁니까? 탐지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정문이 이미 당했다고. 그러니까, 닥치고 내 말대로 해.”
“알겠습니다.”
다혈질답게 버럭 화를 낸 주희철이었다.
그 덕분에 늦은 밤 경비를 서던 길드원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기다 동료까지 당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모두 길드장님 말 들었지? 조금만 낌새가 이상해도 공격하는 거다. 허공이고, 맨땅이고 가리지 말고 찔러봐.”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어수선함을 느끼고 잠에서 깬 홍 회장 부부였다.
백호 길드를 믿고 간신히 잠이 들었었는데.
우당탕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금속음도 났으니.
“여보! 어서 일어나봐요.”
“쉿! 가만있어 봐.”
아내의 말에 그가 조용히 일어나 커튼을 살며시 젖혔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 홍 회장의 눈이 커졌다.
“왜 그래요?”
“밖에 백호 길드 사람들이 쓰러져 있어.”
“정말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똑똑.
갑자기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이 흠칫 놀랐다.
떨리는 목소리로 상대의 정체를 물었다.
“밖에 누구요?”
“접니다. 주희철. 제가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자네였군. 어서 들어오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주희철이 검을 들고 안방에 들어왔다.
그가 빠르게 창문을 살피더니.
살짝 열려있는 커튼부터 닫았다.
그리고 긴장한 모습의 홍 회장 부부에게 말했다.
“제 부하들이 전부 당했습니다. 순식간에 처리한 걸 보면, 프로들이 분명합니다.”
“자네는 이제부터 어쩔 생각인가? 우리를 지켜줄 순 있는 거겠지?”
“네. 아직 제가 남아 있으니. 두 분만큼은 반드시 지켜드릴 겁니다.”
그 말을 들었지만 안심하지 못한 홍 회장이었다.
또한, 한집에 있는 딸의 안위도 걱정되었다.
“우리는 괜찮으니까. 자네는 이 층으로 올라가 우리 나은이부터 지켜주게.”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 나한테는 이게 있거든.”
홍 회장이 침대 밑에서 샷 건을 꺼냈다.
총을 든 손이 바들바들 떨리긴 했지만, 나름 화력을 갖추었으니.
주희철이 빠르게 말하고 사라졌다.
“그럼 제가 올라가서 따님을 데리고 이곳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한곳에 모여 있는 편이 주희철의 입장에서도 홍 회장의 가족을 지켜주기 더 좋았다.
둘이서만 남은 상황에서, 도로 불안했는지.
홍 회장의 아내가 남편의 팔을 꽉 붙들었다.
“여보. 놈들이 여태 집안을 뒤지기만 하더니. 왜 갑자기 사람까지 해친 걸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너무 불안해하지 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어요?”
“내가 게이트 관리국하고, 경찰에도 긴급 구조 신호를 보냈어.”
“언제요?”
“총을 꺼내면서. 그러니까 금방 우릴 도와줄 사람들이 더 몰려올 거야.”
“그럼 다행이긴 한데.”
한편, 이 층으로 올라간 주희철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홀로 둥둥 떠서, 창밖으로 향하는 홍나은을 봤다.
‘역시 투명화 특성인가?’
탐지도 되지 않는 투명화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버젓이 자기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
그가 들고 있던 검을 정면으로 던졌다.
휙!
빠르게 날아간 검이 홍나은의 허리 밑을 한 뼘 간격으로 스치며 지나갔다.
탕!
뭔가에 맞은 검이 그대로 튕겨 나왔다.
‘역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검을 받아든 그가 몸을 날렸다.
검 가득 마력을 불어넣고, 홍나은의 주변을 빠르게 긁듯이 휘둘렀다.
털썩.
순간, 바닥으로 떨어진 홍나은의 몸이었다.
‘저 상태로 떨어지면, 머리를 심하게 다칠 텐데.’
홍나은이 뇌진탕을 당할까 염려된 주희철이 서둘러 그녀의 몸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
퍽!
주희철의 목 뒤를 강하게 후려친 뭔가였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대로 쓰러졌을 텐데.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가 살짝 몸을 틀었다.
살짝 빗맞은 덕분에 바로 기절하는 건 면했는데.
뒤를 돌아본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건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빌어먹을. 내가 귀신하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아까 홍나은을 들고 있던 놈 말고도, 다른 적이 최소한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가 작정하고 미친 사람처럼 검을 내질렀다.
홍나은의 방 안 벽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가구가 박살이 났다.
그러면서 먼지도 났는데.
그 순간, 히죽 웃은 주희철이었다.
“거기 있었냐?”
푹!
드디어 그의 검 끝에 뭔가가 걸리는 감각을 얻었다.
주르륵.
검날을 타고 피가 흘렀다.
한 건 했다는 생각에 기뻐한 것도 잠시.
빡!
돌연, 뭔가가 그의 정수리를 강하게 강타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럼, 천장에 달라붙을 수 있는 놈이 있었나?
기절하기 직전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시야가 줄어드는 걸 느끼던 그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이 마을을 전담하는 경찰이 먼저 오고, 뒤이어 게이트 관리국 소속 요원들이 도착했다.
그들이 시체 11구와 머리를 심하게 다친 백호 길드장 주희철을 발견했다.
다행히, 홍 회장의 가족은 모두 안전했다.
자신들이 사이렌을 켜고 온 덕분에 적들이 도망갔다는 게 경찰의 결론이었다.
‘겁도 없이 내 집을 노리고, 백호 길드 사람들도 마구 죽인 놈들인데, 겨우 경찰 때문에 도망쳤다고?’
그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홍 회장은 감사를 전했다.
어쨌든 가족이 무사하긴 했으니까.
소치원과 지민경이 다시 홍회장의 집을 찾았다.
그들 말고도 20명이나 되는 게이트 관리국 요원들이 더 왔다.
갑자기 출동하느라, 잠도 제대로 깨지 않은 소치원이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켜고 차에서 내렸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네.”
“그럼, 저희가 집 내외부를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부디 그렇게 해주게. 그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 가족을 지켜줘.”
“당연히 그래야지요. 저와 제 동료들이 지켜드릴 겁니다.”
홍 회장을 안심시킨 그가 부하와 함께 집을 살피기 시작했다.
주변을 수색하고 흔적을 찾았지만, 이번에도 특별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지문은커녕, 발자국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남겼는데요.”
“이번에도 없어?”
“네.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게 말이 되냐? 사람이 11명이나 죽고, 그 유명한 주희철이 저 지경이 됐는데?”
“그러니까요. 꼭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한 짓 같다니까요.”
“근데 왜 갑자기 도망친 걸까?”
“경찰 말처럼 사이렌 소리를 듣고?”
“그건 개소리지.”
“그렇죠?”
***
홍 회장의 집과 몇 km 떨어진 공터.
뭔가에 쫓기듯 뛰던 그들이 주위를 살피며 멈췄다.
불안한 얼굴에는 뭔가 믿을 수 없다는 감정도 엿보였다.
“어떻게 인간이 투명화 마법을 꿰뚫어 보고, 정령을 소환 해제시킬 수 있는 거죠?”
“상대가 인간이 아니면 가능한 일이지.”
“그럼 설마 드래곤?”
“아니. 이쪽 세상에 위대한 존재가 없다는 건 이미 확인을 마쳤다.”
“아니, 드래곤이 아니면 대체 그자의 정체가 뭔데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위험한 인물인 건 분명하지.”
“그렇다고 포기할 건 아니죠?”
“당연하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반드시 그게 필요하다.”
투명화 마법.
그리고 드래곤과 정령.
지구의 평범한 인간은 물론이고, 각성한 헌터라 해도 저런 대화를 나누진 않을 터.
그들의 회색이 감도는 까만 피부만큼이나 길쭉한 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으니.
“아무튼, 내일 밤에 다시 시도할까요? 아니면 빈틈을 노려서 역으로 낮에 찾아가는 건 어떨까요?”
어린 동족의 말에 족장 칸이 고개를 저었다.
“빛은 우리 종족의 힘을 제한한다. 어둠의 힘을 빌려서 반드시 물건을 되찾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다.”
“고향으로 가고 싶어서 그 여자의 집을 매일같이 찾아간 거였어?”
갑자기 들린 외부인의 목소리에 그들이 깜짝 놀랐다.
감각이 인간보다 몇 배나 뛰어난 종족임에도, 그가 나타나는 걸 아무도 몰랐다.
족장 칸이 어둠 속을 노려보며 사납게 말했다.
“누구냐?”
“너희야말로 누구냐?”
“대답을 듣고 싶으면 먼저 모습을 드러내라.”
“그럼, 그럴까?”
그들의 눈에 검을 들고 있는 검은 머리의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박민준을 빤히 살피더니.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아까 그 인간종족이잖아?”
“그래. 아무리 봐도 이곳의 인간인 것 같은데?”
“눈동자를 봐. 저자는 모습을 바꾼 드래곤이 아니라고.”
“내 눈이 뭐?”
대답 대신 다시 질문이 들렸다.
“인간아. 왜 우릴 방해하는 거냐?”
“너희가 사람을 죽였으니까?”
“먼저 우릴 공격한 건 그 인간들이었다.”
“그냥 제압만 해도 됐잖아?”
“그러기엔 너무 강했다. 우리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 물건마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감춰 버릴 수도 있으니.”
상대의 고개를 끄덕인 박민준이었다.
“하긴 너네는 정말 특이하게 생기긴 했어. 그래서 너희 정체가 뭐라고?”
“우리는 그림자 산맥의 긍지 높은 다크 엘프족이다.”
“거기가 지구는 아니지?”
“그렇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열린 차원의 문에 빨려 들어왔다.”
“지구에 원해서 온 게 아니구나? 그래서 찾는 물건은? 그걸 가지면 다시 고향에 갈 수 있어?”
“그래. 처음엔 그 인간의 높은 탑에서 우리 물건의 기운을 느꼈다.”
“높은 탑?”
“여기 인간들은 그걸 고층빌딩이라고 부르더군.”
“아. 빌딩.”
그걸 훔치려고 했는데.
치안이 엄청나서 두 번이나 연이어 실패했다.
동족도 한 명 죽었고.
홍 회장도 놀라긴 마찬가지라.
그걸 자신의 집 어딘가에 숨겼다.
추적 끝에 다시 자신들의 물건이 있는 위치를 알고 노린 다크엘프 종족이었으니.
설명을 들은 박민준은 강한 호기심이 들었다.
‘주희철을 죽이려고 하길래, 얼떨결에 나서서 막긴 했는데. 이런 일이었구나. 정말 신기한 능력을 가진 종족이네.’
차원의 문을 여는 건,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았다.
고향으로 돌아오고자, 괜히 박민준이 그 엄청난 고생을 한 게 아니란 말이다.
잠시 생각한 그가 상대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야. 우리 거래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