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검은 옷을 입은 사내 중 하나가 초록색 지붕을 가리켰다.
“저 집인가?”
“네. 맞습니다.”
“좋아. 가자.”
“넵!”
***
삐용! 삐용!
다음 날 아침.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 박민준의 가족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어디서 사이렌이 울리는데?”
“경찰차 아니야?”
“그런가?”
아내의 말을 들은 박철수가 커튼을 열었다.
“진짜 경찰차네. 그것도 한두 대가 아닌걸?”
10대나 되는 차량이 박민준의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멈춰선 곳은 바로 옆 저택.
“설마, 우리 집이에요?”
“아니. 전부 옆집에 서는데?”
“옆집이면, 어제 그 아가씨네 집이잖아요?”
“그렇지. GI 그룹 회장댁이라고 했었지.”
“회장님이 사는 걸 알고 도둑이 들었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이 마을은 안전하다더니. 그것도 아닌가 봐요?”
“그러게. 이사 오자마자 무슨 일인 걸까?”
아침을 먹으면서도 옆집 얘기는 계속했다.
“나은 양은 괜찮은지 모르겠네.”
“강도였으면 다칠 수도 있지.”
“그럼 우리가 한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당신. 미쳤어? 우리가 거길 왜 가?”
“그래도 어제 같이 밥도 먹고, 제법 친해졌는데. 안부는 확인해야지요.”
“괜히 위험한 짓 하지 말아.”
“위험하긴 누가 위험해요?”
“저 집을 털고 나서 우리 집도 털면 어쩔 뻔했어?”
“그땐 우리 민준이가 나서서 몽땅 잡았겠지요.”
“이 사람아. 그런 말 하지 마. 강도가 얼마나 위험한데. 요즘엔 강도 얼굴을 보면, 그냥 막 죽인다고.”
“설마요.”
“설마는 무슨.”
“아무튼, 난 무슨 일인지 가서 알아볼 테니까, 당신은 여기 있어요.”
장미령이 집을 나서자, 딸 박미령도 따라붙었다.
“엄마랑 같이 갔다 올게요.”
박철수가 밥을 먹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다들 밥 먹다 말고 거길 꼭 가야겠어?”
대꾸도 하지 않고 나간, 두 여자였다.
박철수가 그걸 보고, 아들에게 말했다.
“다들 왜 저러는지. 아들아. 나 대신 네가 따라가 봐라.”
“제가요?”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한 박민준에게 그가 잘 타일렀다.
“거기 가서 엉뚱한 짓을 하지 않도록 막아야 하지 않겠니? 나은 양이나 회장님을 만나서 둘이 또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순간 움찔한 박민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건 걱정 없어요. 어차피 들어가지도 못하고 금방 다시 돌아오실 거니까.”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저런 대기업 회장 집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냥 이웃에 산다고 해서 집안으로 막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듣고 보니, 그렇구나. 내가 저 집의 사람이라고 해도, 일이 커지기 싫어서 막았겠지.”
“제 말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밥이나 드세요.”
***
홍나은의 집 앞.
경찰차만 온 줄 알았는데.
검은색 차량도 여러 대가 보였다.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남녀도 있었다.
게이트 관리국 빌런 범죄 전담반 소속 요원 소치원과 지민경이었다.
소치원이 정원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역시 부자가 사는 동네는 다른가? 정말 으리으리하군.”
“선배님. 여긴 그냥 부자 동네가 아니잖아요.”
“그렇지. 무궁화 마을에 몰래 들어오다니. 정말 간땡이가 부은 놈들이야.”
“맞아요. 겁도 없이 이 마을에 숨어들어온 것도 모자라, 감히 GI 그룹 회장님 집을 노리다니요.”
“그런 간 큰 놈들이 왜 아무것도 훔쳐 가지 않았지? 이곳에 온 목적이 뭘까?”
“혹시, 도둑맞은 물건이 있는데, 재산이 너무 많아서 미처 모르는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아니면 우리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은 걸 수도 있고.”
부자들은 원래 남에게 말 못 할 비밀이 많다고 했으니.
경찰과 게이트 관리국 요원까지 불러놓고 사실대로 알리지 못한 건 아닐까?
소치원은 그런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한편, 박민준의 엄마 장미령과 누나 박미희는?
그의 말처럼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여태, 대문 앞에서 실랑이 중이었다.
“아니. 왜 못 들어간다는 거예요? 나 옆집 사는 이웃이라니까.”
“그래서요? 이웃인데 왜 안으로 들어가신다는 겁니까?”
“이 집에 사는 아가씨가 걱정도 되고, 또,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여긴 아무나 들어가서 궁금증을 푸는 곳이 아닙니다.”
답답했는지.
옆에 있던 박미희가 끼어들었다.
“우리가 나은 양이랑 같이 밥도 먹고 수다도 떠는 친한 사이인데. 좀 들어가게 해 줘요.”
“그렇게 친하시면 댁으로 돌아가서 전화로 얘기하십시오. 그러시면 되겠네요.”
“전화번호는 아직 모르는데.”
밥까지 같이 먹어놓고, 정작 연락처 교환도 안 했구나.
후회하는 두 여자에게 남자가 비꼬며 말했다.
“그럼 진짜 친한 사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만 돌아가십시오.”
“알았어요. 가면 될 거 아니에요.”
***
얼굴이 살짝 붉어진 상태로 자기 집으로 돌아온 두 여자였다.
‘민준이 말이 맞았네. 진짜 금방 돌아왔어.’
그걸 본 박철수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는 영문을 모른다는 듯,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왜 벌써 돌아왔어? 나은 양이 거기 없었나?”
“그게 아니에요. 나은 양은 만나지도 못했어요.”
“그래?”
“네.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쫓겨났다니까요.”
“정말 너무하는군.”
“당신이 생각해도 그렇죠?”
박철수가 속으로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내와 딸의 편을 들어줬다.
“맞아. 너무들 하는군. 기껏 걱정해서 갔는데. 그렇게 쫓아내다니.”
“누가 아니래요.”
실제로 두 여자는 자신들이 쓸데없이 억지를 부렸다는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남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다.
그렇게 장미령과 박민희가 찬물을 마시며 화를 삭이고 있는데.
띵 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엄마, 내가 확인해볼게요.”
박미희가 초인종을 누른 상대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줬다.
“누군데 그렇게 막 문을 열어줘?”
“게이트 관리국 요원인데, 나은 씨의 집 사건 때문에 질문을 하겠다네요.”
“게이트 관리국? 그럼 그냥 도둑이 아니라 빌런이 다녀간 모양이네.”
소치원과 지민경이 안으로 들어섰다.
“실례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아침부터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근데 무슨 일이시죠? 나은 양 집에 정말 도둑이라도 든 건가요?”
“그건 저희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말해 줄 수 없다니요?”
“사건을 조사 중이라,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거든요. 거기다 원래 아무에게나 수사 내용을 말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우리도 할 말이 없어요. 당장 나가세요.”
“네?”
“엄마 말씀 못 들으셨어요? 어서 나가시라고요. 엄마도 나도 당신들에게 한마디도 해 줄 말이 없어요.”
방금 홍나은의 집 앞에서 쫓겨난 일로 짜증이 나 죽겠는데.
집까지 찾아와서 설명 하나 없이 질문만 하겠다니.
두 여자가 화를 내면서 게이트 관리국 요원들을 몰아냈다.
밖으로 쫓겨난 소치원이 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아니.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지?”
“그러게요. 이런 동네에 사는 사람들 같지가 않네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선배님이 그렇지 않아요?”
“난 잘 모르겠는데? 그냥 수사에 비협조적이라 그게 화가 나서 말한 것뿐이었는 걸?”
“그런가요? 아무튼, 제가 보기에는 뭔가 빽이 있어서 이 마을에 들어와 사는 졸부나 뭐 비리 문제 같아요.”
“설마? 대한민국이 전부 그렇게 굴러가는 줄 알아?”
“아니면요? 아까 보셨잖아요?”
“뭘?”
“집에 가구도 거의 없고, 텅텅 비어있는 데다가 그 집안사람들도 교양이 없어 보였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마. 네가 무슨 관상가야 뭐야?”
“제가 뭘요?”
“우리는 그냥 수사만 똑바로 하면 되는 거야. 여기 사는 사람들이 어쩌고저쩌고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알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그럼, 돌아가기 전에 다시 회장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나 더 만나보도록 하지.”
“네. 선배님.”
***
GI 그룹 회장댁에 사람들이 다녀가고.
다음 날 오전.
“어머님. 박민준 씨. 안에 계세요?”
손님이 오기엔 이른 시간인데.
박민준의 집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어머. 나은 양. 아침부터 웬일이에요?”
“그게…. 제가 박민준 씨하고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혹시 어제 일 때문에 그래요? 진짜 집에 도둑이라도 들었어요?”
“네. 비슷한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도움을 받고 싶어서 찾아온 거예요.”
“잘 왔어요.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와요.”
장미령은 자신의 궁금증을 풀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자기 마음에 들었던 홍나은이 아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녀가 홍나은에게 커피를 만들어주겠다고 말하고 아들 박민준부터 불렀다.
“아들! 손님 왔으니까, 어서 거실로 나와봐.”
2층에 방이 있는 박민준이라.
혹시나 아들이 자기 목소리를 못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소리쳤다.
그래서 장미령의 목소리가 집안 가득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박민준이 1층으로 내려오고, 덩달아 놀란 박민희도 함께 내려왔다.
“손님이라니? 또 요원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이 왔어? 어? 그게 아니네. 나은 씨였구나.”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그녀를 향해 박미희가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다가섰다.
박민준도 고개를 까닥하긴 했지만,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GI 회장 집 딸이 굳이 날 찾아와 도움을 청하다니? 이거 뭔가 귀찮은 일이 될 것 같은데.’
그 정도 재력과 권력을 가진 집안이면, 굳이 박민준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잔뜩 고용할 수 있었을 터.
물론, 그 어떤 사람을 구해도, 박민준보다 실력이 많이 떨어지겠지만, 겨우 도둑이나 강도를 잡는 일이라면 충분히 잘해낼 각성자가 많지 않을까?
민간 헌터 길드에 의뢰해도 되고, 그에 앞서서 게이트 관리국도 나선 모양이던데.
그 사이.
장미령이 직접 내린 커피를 그녀에게 건넸다.
“나은 양. 여기 커피.”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받아 든 홍나은이 커피잔을 들고 미소 지었다.
“향이 참 좋네요.”
“그래요? 나은 양이 부잣집 아가씨라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에이. 저는 아무 커피나 잘 먹어요. 남들은 원두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데, 전 맛 구별도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요? 지난번에 내가 잘 봤네.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더니만.”
“그게 맞아요.”
멀뚱히 서 있는 아들을 보고, 그녀가 일부러 홍나은 옆자리를 권했다.
“뭘 그렇게 서 있어. 어서 거기 앉아. 민희야. 너는 내 옆에 앉고.”
슬쩍 눈치를 본 그녀가 엄마와 눈을 마주쳤다.
박민준과 홍나은 뒤에 서서 몰래 한쪽 눈을 찡끗하며 웃었다.
“알았어요. 엄마. 내가 옆에 앉을게요.”
그녀는 동생 박민준이 행여 먼저 자기 자리에 앉을까, 서둘러 의자를 빼고 엉덩이부터 들이밀었다.
둘의 행태를 보고, 박민준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그렇다 치고, 누나까지 왜 저러냐?’
홍나은이 계속 서 있는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전 괜찮으니까 어서 앉아주세요.”
“봐라. 나은 양도 괜찮다잖니. 어서 앉아라.”
어차피 대충 얘기를 듣고, 바로 거절할 생각이라, 박민준이 그녀 옆에 앉았다.
‘귀찮게 남의 일에 끼어들 필요가 없지. 괜히 엮이다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될라.’
그녀가 슬쩍 박민준을 훔쳐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입술을 적셨다.
그러고도 몇십 초나 지나서야 본론을 꺼냈다.
“엊그제 밤이었어요. 부모님은 피곤하다고 바로 주무셨는데, 저는 잠이 안 와서 테라스에 나가 바람을 쐬고 있었거든요.”
“그게 우리가 이사 온 날이죠?”
“맞아요. 밤바람이 좋다고 느끼면서 조용히 불도 켜지 않고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순간 아무도 없는 1층 입구에 불이 켜지는 거였어요.”
그곳은 동작 감지 센서로 작동하는 등이 달려 있었다.
거기다 열 감지도 더해진 최신형이었는데.
아무도 없는데도 갑자기 불이 커졌으니.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