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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58화 (58/175)

58화

갑자기 나타난 여자의 말에 대답한 사람은.

딸 박민희와 함께 한가하게 놀고 있던 장미령이었다.

“어머. 예쁘게 생긴 아가씨네? 이 근처에 살고 있는 거예요?”

“네. 맞아요. 저기 보이는 초록색 지붕이 우리 집이에요.”

“그렇구나. 우리 아들은 어떻게 알았어요?”

“당연히 알지요. 요즘 우리나라에서 저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TV는 물론이고, 인터넷과 신문까지.

사람들이 모이면 반드시 박민준의 얘기를 꺼내곤 했다.

장미령이 초록색 지붕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바로 옆집이라고 하더니. 저기구나.’

자신의 집 못지않게 크고 잘 꾸민 집인 걸 알 수 있었다.

“아가씨네 집도 정말 크네. 가족하고 같이 살아요? 혹시 남편하고 사나?”

“남편이요? 저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요. 부모님하고 동생과 함께 살고 있어요.”

남편이 없다는 말을 듣고, 장미령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어머, 부모님이 뭐 하시는 분이길래? 이 마을엔 아무나 들어와서 살 수 없다고 하던데.”

“그냥 회사를 운영하고 계세요.”

“기업을 운영하는 회장님이시구나?”

“네. 맞아요.”

젊은 여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가 안으로 들였다.

“어머. 그러고 보니. 내가 손님을 그냥 세워두고 질문만 했네. 어서 들어와서 앉아요.”

그녀도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하더니.

박민준을 슬쩍 훔쳐보고 장미령 옆에 앉았다.

그걸 본 그녀가 아들을 불렀다.

“민준아. 너도 이리 와서 앉아봐.”

“내가 왜요?”

“왜는? 널 알아보고 와준 손님이지 않니? 거기다 우리 옆집에 산다는데 인사도 안 할 거야?”

박민준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는 사이.

그녀가 젊은 여자에게 미소와 함께 차를 건넸다.

오늘 처음 본 여자인데.

유난히 친절한 엄마의 모습.

대체 왜 저러시는 걸까?

“아가씨는 이름이 어떻게 돼요? 내가 아직 그걸 안 물어봤네.”

“어머. 죄송해요. 제가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정식으로 인사했다.

“저는 홍나은이라고 합니다. 이사 오신 걸 축하드려요.”

“고마워요. 난 장미령이에요. 이쪽은 내 딸 박민희, 그리고 저긴 내 남편이고.”

가족 소개를 하던 그녀가, 자기 옆에 다가와 선 아들을 더 가까이 잡아당겼다.

“이쪽으로 좀 와. 왜 그렇게 떨어져 있어.”

그렇게 엄마과 홍나은 사이에 서 있게 된 박민준이었다.

떨떠름한 표정의 그를 두고, 장미령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 민준이. 얘가 아직 애인이 없어요. 혹시 아가씨는 나이가 어떻게 돼요?”

“엄마!”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박민준이 조금 당황했다.

‘엄마가 옆집 여자와 날 강제로 엮으려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자가 너무 어려 보이는데?

살짝 미소 지은 홍나은이 그와 장미령을 번갈아 봤다.

“저요? 저는 23살이에요. 스탠퍼드대학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있고, 방학이라 집에 온 거예요.”

“그래요?”

나이를 듣고 표정이 살짝 굳은 장미령.

사실, 그녀는 박민준의 생각처럼 옆집의 아가씨와 아들을 친해지게 만들고 싶었다.

다만, 벌써 마흔이 넘은 박민준이라.

명문 대학을 다니는 건 마음에 들지만, 그녀는 너무 어렸다.

보이는 것만큼이나 어린 홍나은을 두고 욕심부린 것에 부끄러움까지 느꼈다.

‘요즘 애들은 다 동안이라, 저 아가씨도 30살 전후쯤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어린 거였네.’

어려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어린 여자라는 걸 알고, 그녀가 마음을 접었다.

반면, 홍나은은 박민준을 똑바로 바라봤다.

“저만 나이를 밝히는 건가요? 박민준 씨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 81년생인데?”

갑자기 나이를 묻는 그녀의 질문에 박민준이 태어난 연도로 답했다.

‘내가 올해 한국 나이로 몇 살이더라?’

정확한 나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42살이시네요. 생각보다 엄청 동안이시다. 오빠라고 불러도 되겠는데요. 안 그래요? 민준 오빠?”

이 여자가 지금 뭐라는 거지?

그 정도 나이 차이면 딸뻘이나 마찬가지인데.

19살이나 어린 홍나은의 도발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가 웃는 모습을 보고, 그녀도 미소 지었다.

“그렇게 좋아요?”

“뭐가 좋다는 거지?”

“내가 오빠라고 불러줘서 웃은 게 아니었어요?”

“아닌데.”

“그래요? 그럼 왜 웃었는데요?”

“그냥. 어린 애가 맹랑하다 싶어서.”

“23살이면 애가 아닌데요?”

“나한테는 애로 보인다.”

찰싹!

장미령이 아들의 팔뚝을 쳤다.

박민준은 미리 알고 피할 수 있었지만, 그냥 맞아줬다.

왜 때렸는지도 알았으니까.

그걸 피하면 잔소리를 더 할 터.

“너는 말이 그게 뭐니. 젊은 아가씨가 오빠라고 불러주면 그냥 감사합니다. 그러면 되는 거지.”

“엄마. 그러면 되는 거라니요? 내가 일찍 사고 쳤으면, 저만한 딸이 있었을 텐데.”

“얘가 정말 엄마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손님 앞에서 그게 지금 할 소리니?”

작게 한숨을 내쉰 그가 도망치듯 숯불 그릴 앞으로 향했다.

“갑자기 어디 가?”

“난 가서 마저 고기나 구울게. 아버지 혼자 고기 다 태우시겠네.”

멀찍이 서서 고기를 굽던 박철수가 나직이 말했다.

“여기 안 와도 돼. 나 혼자서 다 구워도 괜찮으니까. 네 엄마 옆에 있어.”

“아버지까지 왜 그러세요?”

“내가 뭘?”

여태 아무 말도 없이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 박민희였다.

그녀가 뭔가를 보고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엄마 장미령에게 다가갔다.

“엄마, 잠깐 이것 좀 봐봐.”

“뭔데 그래?”

“우선 봐. 보면 알아.”

딸이 보여준 화면을 살피더니.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진짜야?”

“어. 동명이인이 아니면 아마 확실할걸?”

“세상에. 부모님이 회사를 운영한다더니. 여기였어?”

“그러니까 말이야. 정말 대박이지?”

속닥거리며 홍나은을 훔쳐보는 모녀였다.

당사자인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두 분. 뭘 보고 그러시는 건가요?”

“아. 그게…….”

대답 대신.

“그거 이리 줘봐.”

장미령이 딸의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그걸 다시 홍나은에게 보여줬다.

화면을 살핀 그녀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걸 보고 그러셨구나.”

“이거 아가씨 얘기 맞아요?”

“네. 저 맞아요.”

장미령과 박민희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손을 맞잡고 거의 동시에 말했다.

“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남다르더라.”

“GI 그룹 회장 따님이었네.”

멀리서 그걸 들은 박철수가 아들에게 말했다.

“저 아가씨가 GI 그룹 회장 딸이란다.”

“네? 그걸 왜 나한테 말 하시는 건데요?”

“아니. 그냥 그렇다고.”

뭔가 할 말이 많은데 꾹 참는 모습의 아버지를 보며,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에 이어서 아버지까지.’

박민준은 딱히 연애하거나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미 다른 세상에서 여자에게 질려버렸다.

이계에서 보낸 20년의 세월 동안.

그의 무공이나 재산, 무림의 명예를 노리고 달려든 여자가 수백 명.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한 여자도 수십 명.

그중 실제로 그가 사귀거나 썸을 탄 여자만 해도 두 손으로 셀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딱히, 지구로 다시 돌아왔다고 해서, 급하게 누굴 만날 계획이 없었다.

한편, 홍나은의 GI 그룹은 정말 대단한 곳이었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도 이미 대기업이었고.

전자제품을 주로 만들고 수출했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회사로 성장했는데, 기존 전자제품에서 사업을 확장.

전 세계 기업 가치 순위에서도 최근 5년 동안, 100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기술을 응용해 신제품을 개발하며 진출한 의료계와 군수업에서 대박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계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박민준도 GI 그룹이 잘 나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GI 그룹 계열사가 보였고, TV나 인터넷에도 끊임없이 광고가 나왔으니까.

한마디로, 홍나은은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나 스스로 똑똑해서 미국 명문대에서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는 미모의 여성이었다.

잠시뿐이지만, 장미령을 대하는 태도로 보아, 성격도 괴팍하지는 않은 듯 했다.

그래도 박민준은 딱히 그녀에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박민준을 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나간 세 여자였다.

주로 장미령과 박민희가 질문하고, 홍나은이 답했다.

이곳 마을 생활이 어떤지.

그녀의 미국 유학 이야기.

부모의 회사에 대한 궁금증까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어느새 두툼한 고기도 다 익었다.

와서 먹으라고 손짓하는 남편을 보고.

장미령이 홍나은에게 물었다.

“아직 점심 안 먹었죠? 우리하고 같이 먹을래요?”

“네. 그럼 저야 고맙죠. 사실 늦게 일어나서 아침도 못 먹었거든요.”

“젊어도 끼니는 잘 챙겨야 하는데. 마침 고기도 다 구운 것 같으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그렇게 박민준의 가족과 홍나은이 점심 식사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그녀가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고, 장미령이 눈웃음을 지었다.

“어쩜. 나은 양은 복스럽게도 잘 먹네.”

“제가 너무 잘 먹죠?”

“깨작거리는 것보다 그게 오히려 보기 좋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옆에 있던 박민희가 부럽다며 말했다.

“나보다 더 잘 먹는 것 같은데. 나은 씨는 어떻게 그렇게 날씬해요?”

“저도 먹으면 살이 찌는 체질이에요. 매일 이렇게 먹는 건 아니고. 또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랬구나. 난 또 타고난 줄 알았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계속 먹어도 살이 찌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맞아요. 그럼 정말 좋을 텐데.”

고기를 먹는 건지 마는 건지.

박민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본 박미희였다.

“왜 벌써 일어나? 더 먹지 않고?”

“많이 먹었어. 배불러.”

박민준이 자리를 떠나자.

홍나은도 식사를 마쳤다.

집으로 들어가는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저도 그만 가볼게요.”

“왜요? 더 먹고 놀다 가면 좋을 텐데.”

“잠깐 인사만 드리고 갈 생각이었는데. 제가 너무 오래 여기 있었나 봐요.”

박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은 양이 우리하고 처음 만났는데, 불편했겠네.”

“그건 아니에요. 너무 잘해주셔서 편하게 잘 먹고 쉬었다가 가는걸요.”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조심히 가요.”

“네. 감사합니다. 아버님.”

“아버님? 허허. 듣기 좋네.”

혼자 중얼거리는 박철수를 두고, 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녀가 홍나은을 배웅해주고 돌아오겠다며 나갔다.

***

그날 저녁.

홍나은의 집.

텅 빈 집에서 거의 혼자 시간을 보낸 그녀였다.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도 회사를 공동운영하고 있었고.

21살의 남동생은 따로 나가 살아서 낮에는 집에 가족이 없었다.

‘심심해. 이럴 줄 알았으면, 귀국하지 않고 그냥 미국에 있는 건데. 여행이나 다닐걸.’

가정부를 통해서 옆집에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거길 찾아간 거였는데.

박민준을 만나고 호기심이 발동한 그녀였다.

‘요즘 한국에서 제일 화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

조금 가볍긴 했지만, 그의 부모와 누나도 좋은 사람들 같았다.

가족끼리 북적거리는 분위기도 거의 처음? 오랜만인가?

아무튼, 그 느낌이 좋아서 식사까지 함께하고 말았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한 그녀의 부모였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잘 쉬었니.”

“네. 그리고 옆집에 누가 이사 왔는지 아세요?”

“우린 모르겠구나. 중요한 일이 아니면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꾸나. 오늘 좀 일이 많아서 피곤하네.”

“알았어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고맙다.”

오늘 그녀가 부모와 나눈 대화는 이게 다였다.

잔뜩 지친 얼굴로 대충 딸에게 인사한 두 사람이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다시 혼자가 된 그녀가 쓸쓸하게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

그리고 자정.

어두운 그림자들이 박민준이 사는 무궁화 마을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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