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57화 (57/175)

57화

국장과 통화하는 중년 요원의 영상이 끝났다.

화면이 바뀌고, 다시 스튜디오의 앵커가 나왔다.

“보셨습니까? 저게 바로 헌터 강국이라는 우리 대한민국의 민낯입니다. 게이트 관리국의 최고 권력자가 거짓과 속임수로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통탄할 장면. 정말 암담하기 그지없는 상황입니다. 이젠 우린 누굴 믿고 게이트가 열리는 세상을 버텨야 할까요?”

앵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그가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보여드릴 영상을 보시고, 국민 여러분들께서 부디 마음의 안정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다음 화면으로 박민준이 나왔다.

“포상금은 원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됐어. 서태준도 아니고, 그런 놈을 잡아서 뭐 얼마나 받겠어? 그냥 사람들이 무사하면 그걸로 된 거지.”

영상이 끝나고.

앵커가 목소리 톤을 높여서 말했다.

“게이트 관리국의 국장이란 사람은 정보를 숨기고 국민을 기만하는데, 대한민국의 세 번째 S등급 박민준 헌터는 포상금도 마다하고, 오직 국민의 안전만이 우선이라 말했습니다. 저는 저걸 보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손수건을 든 앵커가 눈가의 눈물을 살짝 닦아내는 장면이 나왔다.

“박민준 씨 같은 훌륭한 헌터 영웅이 있기에 저와 시청자 여러분처럼 평범한 사람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박민준 씨. 당신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박민준에 대한 칭찬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에이 썅. 저것들이 뭐라고 말하는 거야? 대체 어디서 찍어서 감히 내 허락도 안 받고 저걸 다 방송에 내보내?”

“괜찮으십니까?”

“아니. 안 괜찮아. 김 비서. 저 언론사하고 앵커 당장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그리고 법에 저촉되는 게 있으면 자잘한 것도 놓치지 말고 다 고소하라고. 알았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 원 참 재수가 없으려니까.”

화가 난 국장이 다른 채널로 돌렸다.

테러로 인한 게이트 관리국 화재 장면이 나오고, 소방관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박민준 씨가 아니었다면, 제가 지금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게 어떤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네. 뒤에 보이는 건물의 불길을 잡고 있는데, 폭발과 함께 다시 건물 잔해가 저와 동료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이런, 정말 큰일 나실 뻔하셨네요.”

“그렇습니다. 그분이 나타나서 잔해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저와 동료들 전부가 죽거나 크게 다쳤을 겁니다.”

그걸 본 국장의 얼굴이 잔뜩 찌그러졌다.

“젠장할. 또 그놈 얘기야?”

화가 나서 채널을 바꿨다.

이번엔 일반인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펑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건물이 중간부터 무너졌다니까요. 박민준 헌터님이 아니었다면, 저와 제 아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예요.”

“그분이 어떻게 구해주셨다는 건가요? 당시에 수십 명이 근처에 계셨다면서요?”

“맞아요. 저와 제 아이 옆에 아마 한, 30명? 40명은 구경을 하고 있었거든요. 건물에 깔려 죽을 상황이었는데…….”

픽!

화면마다 박민준의 활약과 칭찬만 나오자, 결국, TV 꺼버린 국장이었다.

“이런. 우라질. 온통 다 그놈 얘기뿐이잖아!”

혼자 소리친 그가 리모컨을 바닥으로 던졌다.

탁! 박살 난 리모컨 파편이 여기저기 튀고.

따르릉.

대통령 직통 전화가 울리자 움찔하며 놀란 국장이었다.

‘각하도 다 보시고 연락을 하신 거겠지?’

크게 한숨을 내쉰 그가 전화를 받았다.

***

다음 날, 아침.

게이트 관리국 국장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에 대한 책임으로 저는 오늘, 게이트 관리국의 최고 책임자에서 물러나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본부에서 일어난 무차별 테러에 대한 책임에 통감하며, 그가 스스로 국장의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쫓겨나는 모양새였다.

그를 대신해서 게이트 관리국장에 임시로 지명된 사람은?

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었다.

“전임 국장님보다 경력은 부족하지만,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추후 정식으로 국장의 자리가 채워질 때까지, 제가 최선을 다해서 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걸 집에서 TV로 본 박민준이었다.

그의 부모가 안타까운 얼굴을 하며 말했다.

“경호실장은 뭐 하는 사람이래? 임시라고 해도 갑자기, 국장을 하다니?”

“그러게. 최근 말이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임 국장이 참 제대로 된 사람이었는데. 안 그래?”

“맞아요. 게이트가 열리고 초기에 정말 고생도 많이 하고. 훌륭한 분이었는데.”

박민준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그는 카메라가 자신과 게이트 관리국 요원을 몰래 찍고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홍석대를 넘겼다.

또한, 국장과 헌터 공무원의 통화도 다 엿들었다.

자신과 국장의 전화가 방송사와 박민준에게 전부 알려졌다는 걸, 아마, 요원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자신이 찍히고 있고, 국장의 의도를 파악한 박민준이 평소와 다르게 욕심 없고, 성인군자 같은 모습을 일부러 보여줬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속아 넘어갈 정도로 완벽했고.

결국, 그게 방송을 타고 모든 국민이 보게 되었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 않아?”

“맞아. 홍석대 같은 탈옥수를 다시 잡았으니, 세금으로 몇십억을 줘도 안 아까울 텐데. 그걸 마다하다니.”

“지난번 일도 그렇고, 박민준이란 사람은 정말 영웅이 되려고 태어났나 봐.”

“누가 아니래. 완전히 멋있다니까.”

앞서서 그가 구한 사람들의 인터뷰와 더해져.

과거 오산역 사건까지 재조명됐다.

“그분이 나타난 뒤로 우리나라가 더 안전해진 건 분명해.”

“그렇지. S등급 헌터가 한 명 더 늘어났을 뿐인데. 기분이 달라질 정도로 안전함을 느끼고 있어.”

이젠 박민준이 국민 영웅의 반열에 한 발쯤 내디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존의 S등급 헌터들이 몇 년 동안 쌓은 공이 있으니.

아직은 그들을 앞서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계속 활약하면, 제일 앞서 나갈 수 있을 건 분명했다.

***

300억 원, 300평, 한강을 전망으로 둔 펜트하우스.

10명이 동시에 누울만한 크기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젊은 여성이었다.

긴 생머리를 대충 묶은 그녀가 바로 옆에 있는 남자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현민 씨. 이제 큰일 났다.”

“뭐가?”

최현민이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 인기가 모두 이 사람에게 넘어가게 생겼는데.”

“누구? 어떤 놈을 말하는 거야?”

“이 사람.”

그녀가 패드 화면을 남자친구에게 보여줬다.

박민준의 얼굴과 함께 칭찬이 가득한 뉴스들이 보였다.

“박민준? 내가 그놈보다 못하다고 나왔어? 어떤 놈이 그런 기사를 썼는데?”

“아니. 누가 꼭 뭐라 해서가 아니라. 요즘 당신 활약을 전혀 안 했잖아.”

실제로 그는 한 달 넘게 놀고 있었다.

시시하고 자잘한 괴물 따위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내가 나설 일이 있어야 나서지.”

“하긴, 6등급 괴물도 오산역 이후로 나타나지도 않고.”

“내 말이. 7등급 괴물이 나와봐라. 박민준인지 뭔지 하는 놈하고 이지원이 뭘 할 수 있겠어?”

“자기 말이 맞아. 그런 괴물이 나타나면, 결국 대한민국을 지켜줄 사람은 자기뿐이니까.”

“그래. 결국엔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게 되어 있어.”

최현민은 자신의 말에 맞장구쳐 준 애인 덕분에 기분이 살짝 풀렸다.

하지만 박민준이 나오는 화면에서 아직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정말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나보다 더 강한 건 아니겠지.’

대한민국 최초 S등급 헌터로서 정말 많은 돈과 명예, 인기를 얻었다.

다음으로 등장한 두 번째 S등급 이지원.

그녀는 어리고, 예뻤다.

그로 인해 최현민의 인기가 잠시 주춤했지만, 결국 헌터는 실력이 제일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최현민이 이지원보다 확실히 더 강했다.

그도 나중에 자신이 이지원보다 더 강하다는 걸 알고, 활동을 확 줄였다.

대중에게도 신비주의 컨셉을 밀고 있었다.

오직 블록버스터급 행사와 명품 CF를 통해서만 대중에게 얼굴을 비출 뿐, 그마저도 엄청난 계약금이 아니면 절대 출현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자 인기가 오히려 더 급등했다.

앞으로 계속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생각으로 즐거웠는데.

‘아 놔. 이제 놀고먹으면서 꿀이나 빠는 건가 싶었는데. 어디서 저런 놈이 나타난 거지?’

***

박민준의 집은 지금 이사 준비 중이었다.

서태준을 다시 놓치긴 했지만, 그건 게이트 관리국의 잘못이었을 뿐.

이전에 사로잡은 공로는 그대로 인정받았다.

또한, 서태준보다 훨씬 더 위험한 빌런 홍석대가 탈옥했고, 그자를 박민준이 바로 잡아주었으니.

국가 차원에서도 박민준에게 보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법에 따라서 박민준의 가족이 머물 수 있는 안전가옥을 즉시 제공해주었다.

갑작스러운 이사에 부모가 반대했지만, 박민준은 서두르고 싶었다.

애초에 가족들의 안전이 제일 중요했고, 자기가 잡았던 서태준이 탈옥을 해버렸으니.

‘다음에 그놈을 또 보면, 정보만 뽑아내고, 바로 죽여버려야지.’

놈이 곧장 박민준을 노리면 오히려 고맙겠지만, 그 대신 복수를 위해 가족을 노릴 수도 있으니까.

“엄마! 그런 건 그냥 버려.”

“아니. 아깝게 이걸 왜 버려?”

“어차피 가구니 뭐니. 전부 다 배치되어 있다니까.”

“그래?”

“엄마도 같이 봤잖아.”

“보기야 봤지. 하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제대로 못 봤어.”

“아무튼, 적당히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진 다 새로 사랬어.”

“누가?”

“민준이가 싹 사준다고 했으니까. 짐 좀 그만 챙겨.”

“그래? 그럼, 애라 나도 모르겠다. 그럼 아까 싼 짐만 가지고 가자.”

그녀가 서랍장을 쾅 닫더니.

바리바리 싸고 있던 가방을 팽개쳤다.

그렇게 조촐한 짐을 가지고, 새집으로 이사한 박민준의 가족이었다.

새로운 보금자리는 대한민국 두 번째 S등급 이지원의 가족들도 살고 있는 무궁화 마을이었다.

이름이 살짝 촌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곳은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높은 담장이 마을 외곽을 둘러싸고 있었고, 전원 각성자로 이루어진 전문 경호팀 20명이 수시로 안전을 확인했다.

도서관, 병원, 극장, 체육관, 프랜차이즈 음식점, 편의점, 우체국, 경찰서, 소방서 등. 마을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시설도 대부분 마을 안에 있었다.

출입은 오직 사전 등록된 인원만 가능했고, 배달이나 택배는 입구에서 받아서 확인을 거치고 따로 주소지로 전달했다.

가족이 외출 시, 요청만 하면, 경호팀에서 인원을 배정해줬다.

게이트가 열리고 괴물이 출현하며, 각성한 빌런이 범죄를 저지르는 위험 상황의 한국이라.

국가 요직에 있는 장, 차관들의 가족과 게이트 관리국 임원급의 가족도 이곳에 사는 게 꿈이었다.

실제로 이 마을에 들어오고 싶은 대기자가 1만 명이 넘었는데, 모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들이었다.

“어머머. 다시 보니까, 더 좋다. 그렇지 않니?”

“맞아요. 엄마. 이런 곳에서 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진짜 살 수 있게 될 줄 몰랐어요.”

“이게 다 우리 민준이 때문이지. 고맙다. 우리 아들.”

박민준의 가족이 살 집은 2층 단독주택이었다.

건물 면적만 대략 200평 크기였고, 앞마당에 잔디가 깔려있었다.

잘 관리된 정원수도 다수 있었고, 뒷마당에 외부 수영장과 반코트 농구장이 보였다.

너무 좋다는 소리를 수십 번 넘게 반복하는 엄마와 누나를 보며, 박민준은 새삼 자신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으로 오길 잘했네.’

가족이 좋아하는 환경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터였다,

이사 첫날.

가족끼리 축하를 하고자, 마당에서 고기를 구웠다.

박민준과 그의 아버지가 숯불 앞에서 준비하던 그때.

“어머, 박민준 씨 맞죠? 대한민국 세 번째 S등급. 옆집에 새로 이사 온다고 하더니. 그게 박민준 씨네 가족이었구나.”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여성이 담장 너머에서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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