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화재가 진압된 게이트 관리국.
이제 구경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취재를 나온 기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건물이 무너진 걸 더욱 극적으로 찍기 위해, 넘어오지 말라고 쳐 놓은 안전선을 건넜다.
“불은 꺼지긴 했지만, 아직 건물 붕괴 위험이 있습니다. 위험하니까 어서 선 밖으로 나가주십시오.”
또는, 헌터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면 갑자기 달려들어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했으니.
“저기, 저 사람. 본부에서 일하는 직원 같은데. 카메라 들고 어서 날 따라와요.”
다다닥.
“잠시만요.”
“뭡니까?”
“게이트 관리국에서 일하시는 분 맞지요? 그럼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기자였어? 인터뷰 안 합니다.”
국장이 절대 외부와 인터뷰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관계로, 게이트 관리국 소속 전 직원이 기자들을 피해 달아났다.
“에이씨. 그냥 몇 마디만 해주지. 왜 다들 피하는 거야?”
허탕을 친 기자가 혼자 화를 내고 있는데.
카메라맨이 반대편을 찍기 시작했다.
“갑자기 뭘 찍어요?”
“저기.”
“저기 뭐요? 어?”
카메라맨이 가리킨 방향을 보고, 기자가 눈을 크게 떴다.
사람의 머리채를 잡고 개처럼 끌고 오는 사람이 보였다.
오른손에 검을 들고 있는 젊은 남자는 바로 박민준이었다.
며칠 전 기자도 박민준과 대통령을 찍기 위해 현장에 있었다.
당연히 한눈에 알아봤고.
“성욱 씨. 조용히 따라와요.”
그녀가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인터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뛰었다.
그녀가 박민준에게 다가가는 것보다, 그가 게이트 관리국으로 오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래서 서로 길이 엇갈리고 말았는데.
“아씨. 뭐 저렇게 빨라?”
뒤따라오던 카메라맨이 또 뭔가를 발견했다.
“어? 저 사람은?”
“왜요? 또 뭘 봤어요?”
“어. 잠시만.”
그도 확실하지 않아서 카메라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놀라 눈을 부릅떴다.
“뭔데 그래요?”
옆으로 다가온 기자가 화면을 같이 봤다.
금방 그와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저거 홍석대 아니에요?”
“홍석대 맞아.”
“아니. 4년 전에 감옥에 들어간 빌런이 왜 저렇게 밖에서 잡힌 거죠?”
“탈옥이라도 했나? 그거밖에 말이 안 되잖아?”
“그럼, 테러의 목적이 탈옥?”
의미심장한 그녀를 보고 카메라맨이 긴장했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아무래도 우리 대박 난 것 같아요.”
한편, 탈출한 홍석대를 잡아 온 박민준을 게이트 관리국 소속 직원들이 크게 반겼다.
“박민준 씨! 그자를 어떻게 잡으신 겁니까?”
“그냥. 서태준을 잡으려고 하다가 얻어걸렸어.”
“네? 그냥 얻어걸렸다고요?”
“그래. 놈을 못 잡은 대신, 수상해 보이는 이놈이라도 잡았지.”
“그럼, 홍석대가 누군지도 모르시는 거였군요?”
“어. 이놈이 누군데?”
“그자는…….”
지금은 서태준이 한국 3대 빌런이니 뭐니 날뛰고 있지만, 그 전엔 홍석대가 원탑 빌런이었다.
경쟁 상대가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강한 변태였으니.
헌터와 일반인은 물론이고, 같은 편인 빌런까지 자기 마음이 내키는 대로 납치하고 죽였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피해자의 숫자만 해도 대략 100명.
그 많은 사람을 죽이는 데 겨우 5개월이었고.
너무 충격적이거나, 시체를 찾지 못해서 밝히지 못한 피해 인원이 100명 더 있을 거란 소문도 떠돌았다.
열심히 설명하던 헌터 공무원의 시선이 홍석대에게 닿았다.
팔과 다리가 부러져서 역으로 꺾여있었다.
입 주변에도 피가 흥건한 걸 보아, 얻어맞다가 피까지 토한 모양이었다.
“놈에 대해 모르신다면서, 저 지경을 만드시다니. 혹시 둘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이놈을 오늘 처음 보는 건데?”
“그런데 저런 꼴로 만드셨다고요?”
“어. 입에 걸레를 물었는지. 질문에 욕으로 답하더라? 그래서 교육 좀 해줬지.”
박민준은 서태준을 다시 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녀석의 목소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환자의 신음과 함께 저질스러운 목소리로 협박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서태준과 함께 도망친 놈이면 뭐가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며 녀석이 탄 차를 막았는데.
“개 잡것이 눈깔의 먹물을 쪽 뽑아서 콧구멍에 쑤셔 넣어버릴라. 왜 길을 쳐 막고 지랄이야? 어쭈? 아직도 안 비켜? 팔을 잘라서 똥꼬에 확 박아버려?”
그때부터 욕설이 시작되었다.
껄껄 웃은 박민준이 녀석을 죽기 전까지 패고, 기절하면 깨워서 또 팼다.
나중엔 자기도 맞아 죽겠다고 생각했는지.
“아이고.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발이라도 핥겠습니다.”
결국, 박민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빌었다.
녀석을 그 정도로 두들겨 패고도 욕을 얻어먹은 화가 안 풀린 그였으니.
“너 같은 놈은 내 손에 죽을 가치도 없다.”
녀석이 또 기절할 때까지 때린 박민준이었고, 게이트 관리국 본부까지 개처럼 질질 끌고 돌아왔던 거였다.
박민준에게 기절한 홍석대를 건네받은 요원이었다.
“감사합니다. 박민준 씨.”
그에게 능력 제한 수갑을 바로 채웠다.
“죄송하지만, 잠시 전화 좀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홍석대를 잡았으니. 바로 보고해야 해서요.”
“그렇게 해.”
요원이 국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박민준에게 양해를 구하고, 구석으로 향했다.
거리를 충분히 벌렸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전화를 걸었다.
“국장님. 탈출한 빌런 중에 홍석대를 다시 잡았습니다.”
“뭐야? 홍석대를 벌써 잡았다고? 어떻게?”
“박민준 씨께서 녀석을 직접 잡아 오셨습니다.”
“그자가?”
“네. 우연히 녀석을 발견하셨답니다.”
잠시 잠잠하더니.
국장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지금 옆에 누구 있어? 기자나 외부인은?”
“지금 혼자 있습니다.”
“박민준은?”
“그분은 지금 저 멀리 떨어져 계십니다.”
“그래? 그럼 보고 마치고 나면, 당장 홍석대 얼굴부터 가려.”
“네? 어째서 말입니까?”
“야! 홍석대를 놓친 걸 남들이 알아봐?! 우릴 뭐로 생각하겠어?”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연쇄 살인마.
그것도 A등급 각성에 살인에 특화된 특성까지 지녔다.
큰 피해를 입고 간신히 잡았는데.
이번에 또 놓쳤다는 말이 나오면?
“아아.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돌아가면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좋아. 녀석의 얼굴을 가리고 바로 지하 감옥에 처넣어.”
“그 뒤엔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박민준 씨에게 설명과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답은 무슨. 그냥 네 선에서 적당히 고맙다고 말이나 해주고, 그냥 무시해버려.”
“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 그놈에게 포상하고, 외부에 알려지면 좋겠어? 그냥 조용히 끝내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하지만 도망친 다른 빌런들은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그놈들이 탈출한 것도 외부에 숨길 거야. 그리고 최대한 조용하게 다시 잡아들여야지. 내 말 알아들었어?”
“네. 알아들었습니다.”
“그럼, 지금 전화 끊고 바로 행동해.”
전화 보고를 마친 헌터 공무원이 박민준의 눈치를 봤다.
‘저분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지? 국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너무 무례한 일이 될 텐데.’
하필이면 왜 자신이 이런 일을 맡게 되었는지.
국장을 저주하면서, 그가 억지로 입을 열었다.
“저기. 박민준 씨. 우리는 이만 이자를 데리고 감옥으로 가봐야겠습니다.”
“그렇게 해. 어차피 서태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는 놈이더라.”
흔쾌히 허락하는 박민준을 향해, 게이트 관리국 요원들이 크게 허리 숙여 감사를 전했다.
“당신 덕분에 최악의 빌런 홍석대가 도망치는 걸 막을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알았어. 그만 가봐.”
“포상금은 원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됐어. 서태준도 아니고, 그런 놈을 잡아서 뭐 얼마나 받겠어? 그냥 사람들이 무사하면 그걸로 된 거지.”
박민준의 말에 헌터 공무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란 말인가? 개 같은 국장보다 이분이 진짜 헌터이지.’
마음이 뭉클해진 요원이 그에게 경례했다.
“일동 차렷. 경례! 바로.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래. 이번엔 제대로 가둬서 다신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나머지 놈들도 내가 우연히 발견하면 잡아줄게.”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말한 헌터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이 떠나고.
박민준이 아주 빠르고 은밀하게 왼쪽 골목을 살폈다.
입구에 물건이 쌓여있고, 내부는 그늘져서 안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박민준은 뭔가를 본 눈치였다.
그도 요원들의 뒤를 이어 떠나고.
골목에서 살금살금 밖으로 나온 기자와 카메라맨이었다.
“성욱 씨. 전부 다 찍었지? 녹음도 잘 됐고?”
“당연하지요. 아주 선명하게 찍고 녹음도 아주 잘 되었습니다.”
“좋았어. 그럼 바로 방송국으로 돌아가서 오늘 저녁 특집 방송을 준비해 보자고.”
“네. 가시지요.”
***
[게이트 관리국, 최악에 직면하다]
[사용 출처도 밝히지 않는 깜깜히 예산이 무려 1000억. 그런데도 빌런에게 무방비로 당한 게이트 관리국. 정말 이대로 괜찮나?]
[대한민국, 과연 테러로부터 안전한 나라인가?]
[게이트 관리국은 철밥통? 이런 상황에서도 자리 지키나?]
[결국, 시대에 뒤처진 국장이 문제.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자극적이기만 하면 다행이다.
도발과 조롱이 가득한 뉴스의 머리말들을 보고 두통을 느낀 국장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국장일 때 이런 일이 터지다니. 망할 언론들은 왜 또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반면, 박민준에 관한 기사는 칭찬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희망은 박민준. 새로운 바람이 부는가?]
[공격받은 한국의 서울. 박민준 고군분투.]
[혼자 활약한 S등급. 최현민. 이지원은 대체 어디에?]
그리고 최근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은 다른 두 명의 S등급 헌터를 비방하는 글도 간혹 보였다.
게이트 관리국 부국장 이지원은 지금 해외에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저런 글을 쓰다니.
그럼, 다른 S등급 헌터인 최현민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국장도 알지 못했다.
애초에 게이트 관리국 소속이 아니었고.
새 빛 길드라는 민간단체의 수장이라.
국가와 국민의 평화와 안위보다는 자신과 소속 길드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니.
‘최현민 그놈은 7등급 이상 괴물이 나타나야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려나?’
자리에도 없는 사람을 혼자 욕하던 그에게 쾅쾅!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누구야?”
“국장님. 큰일 났습니다.”
국장의 비서가 아주 다급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무슨 일인데?”
“지금 거기가 아니라, 다른 채널을 보셔야 합니다.”
“왜?”
비서가 대답 대신 국장실에 있는 TV 채널을 황급히 바꿨다.
- 게이트 관리국에서 홍석대를 제외하고도 얼마나 많은 빌런을 놓쳤을지. 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몇 초만 뉴스를 봤을 뿐인데.
정신이 혼미해진 국장이었다.
“이거 뭐야? 누가 내부 정보를 흘린 거야? 어?!”
“내부 직원이 흘린 게 아닙니다.”
“그럼?”
비서가 대답하려고 하는데.
TV 속 아나운서의 말이 먼저 들렸다.
“그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조 기자가 취재한 영상을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게이트 관리국의 추악한 현실을 지금 바로 보시지요.”
몰카로 찍은 듯한 영상과 함께 중년 남자 요원의 통화 장면이 나왔다.
“국장님. 탈출한 빌런 중에 홍석대를 다시 잡았습니다.”
당사자인 국장은 부하가 자신과 통화한 장면인 걸 바로 알았다.
화면을 보고 얼빠진 국장이 비서에게 중얼거렸다.
“아니, 저걸 어떻게 찍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