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박민준의 집 마당에 임시로 꾸민 기자회견장.
대통령이 마이크를 차지하고, 열심히 침까지 튀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 뒤로 나란히 서 있는 박민준의 가족들도 보였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 세 번째 S등급 각성자의 탄생을 알리는 바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S등급을 세 명 이상 보유하게 되었으니. 명실상부한 헌터 강국으로서 국제 사회에 이바지하는 방향을 고려할 것입니다. 그럼 주인공인 박민준 군을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흥이 오른 나머지, 진행자가 할 말까지 가로챈 대통령이었다.
박민준의 소개를 직접 한 그가 살짝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 서 있던 박민준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 옆에는 가족이 함께하고 있었다.
부모, 누나, 조카까지.
온 가족이 어색한 얼굴로 서 있는 가운데, 박민준이 가볍게 주위를 살피고 말했다.
“대한민국 세 번째 S등급 각성자 박민준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강한 제가 돌아왔으니. 앞으로 아무 걱정 말고 저만 믿으십시오. 감사합니다.”
짧고 강하게 인사말을 마친 그였다.
그걸 본 비서실장이 놀라서 부하를 닦달했다.
“아니. 자네 저 사람에게 인사말을 적은 종이를 따로 전달하지 않은 건가?”
“당연히 전달했습니다.”
“근데 왜 저렇게 말하는 건데?”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박민준은 진작 자신이 대중에게 말해야 할 내용을 전달받았었다.
1장 빼곡히 적힌 내용을 대충 보고 버렸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국민을 위해 각성한 힘을 쓰며, 국민과 대통령의 기대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겠다는 개소리가 적혀있었으니까.
‘나한테 이딴 걸 읽으라는 건가? 내가 왜?’
반면, 그의 강렬한 인사말을 듣고, 당황한 진행자였다.
그가 상사와 대통령의 눈치를 보다가 빠르게 치고 나왔다.
“그럼 이제 마지막 순서군요. 대통령님께서 우리의 자랑 박민준 씨에게 감사패를 전하겠습니다.”
순금으로 만든 무궁화 장식이 달린 감사패를 들고 다시 앞으로 나선 대통령이었다.
자기 왼편에 선 박민준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그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박민준 군의 용기와 헌신에 감사를 표하며, 이렇게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언론과 국민 여러분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박민준 군.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녕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패를 건네받은 박민준이 곧장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이런 걸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었는데. 주신다니,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더욱이, 우리 가족을 위해 새로운 안전 가옥을 마련해주고, 경호팀 지원과 함께 보상금으로 현금 100억을 바로 주신다고 하니. 더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그의 말을 듣고, 대통령이 크게 당황했다.
‘내가 언제?’
그는 박민준을 이용할 생각뿐이었다.
방송을 앞세워서 별 돈도 안 드는 감사패 하나를 대충 넘겨주고, 생색은 본인이 다 낼 의도였는데.
박민준이 뜬금없이 현금 보상과 함께 경호팀 지원과 안전 가옥을 꺼냈으니.
‘이거 거꾸로 내가 당해버린 건가?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만약 이런 분위기에서 자신이 박민준의 말을 전면 부인하면?
위엄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지지율도 하락하게 될 터.
더욱이 생방송이라 편집도 없으니.
다른 나라에서 보고 얼마나 우습게 여길까?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대통령은 다급해졌다.
그가 서둘러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역시 그도 당황했지만, 대통령보다는 나았다.
비서실장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상황을 파악하더니.
바로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대통령님. 충분히 가능합니다. 진정하시고, 그냥 저자의 말대로 하십시오.]
그걸로 안정을 찾은 대통령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 관계자와 구경꾼들은 평소 보던 대통령보다 새로 나타난 박민준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걸 보지 못했다.
하지만 박민준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의도가 제대로 통했다는 걸 깨닫고, 싱긋 웃으며 대통령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언제 당황했냐는 듯.
안정적인 표정으로 변한 대통령이 미소까지 지었다.
그가 마이크를 손에 쥐고, 박민준의 말에 답했다.
“이거 제가 발표하고 싶었는데, 우리 박민준 군이 너무 기쁜 나머지 먼저 여러분께 말해 버렸군요. 하하.”
옆에 있던 박민준이 고개를 살짝 마이크 쪽으로 가져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맙습니다. 대통령님.”
대통령도 가만 생각해보니.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놈이 제멋대로 말했으니. 나도 반대로 이용해볼까?’
씨익.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린 그가 박민준을 보며 말했다.
“우리 박민준 군이 게이트 관리국에 소속되어 헌터 공무원으로 활동할 생각이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크게 말한 그가 박민준을 보며 더 환하게 웃었다.
‘자 어때?’
당황한 박민준의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미소만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들린 박민준의 목소리.
[방금 네놈이 한 말은 너와 나 말고 아무도 못 들었어. 내가 막았거든.]
“그게 무슨 소리지?”
당황한 그가 마이크에 대고 답했다.
그러면서 주위를 살폈는데,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들이었다.
[그렇게 소리쳐도 소용없어. 내가 기로 네 소리를 전부 차단했거든.]
다른 사람들은 지금 대통령이 왜 마이크를 들고 입만 뻐끔거렸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뭐야? 마이크 고장이야?”
“가까이 있는 우리는 왜 아무것도 안 들리는 건데? 너무 이상하잖아?”
대통령 바로 옆에 있는 진행자도 당황했다.
‘이건 대본에 없었는데? 갑자기 왜 저리시는 거지?’
박민준이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대통령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그가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대통령님께서 갑자기 몸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어서 모시고 내려가시지요.”
실제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그였으니.
경호실과 비서실이 나서서 대통령을 데리고 사라졌다.
눈치 빠른 진행자가 카메라를 자신에게 향하게 하고 서둘러 말했다.
“최근 해외 순방을 다녀오시고, 급한 일정을 계속 처리하시느라 잠시 피곤함을 느끼신 것 같습니다. 대신 제가 박민준 씨와 인터뷰를 더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박민준을 향해 질문했다.
“앞으로 계획은 뭡니까? 혹시 소속된 길드나 단체는 있으십니까?”
“아니. 난 다른 사람 밑으로 들어갈 계획이 없습니다.”
“전혀 없으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나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면 모를까. 그 전엔 나 혼자 활동할 생각입니다.”
“우와. 그럼 S등급 박민준 씨가 소속될 길드엔 정말 강한 사람이 있어야겠군요.”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왜죠?”
“지구에서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박민준의 말은 모두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너무 과하다는 반응과 S등급이니 마땅히 저런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행자는 자신감이 보기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군요. 박민준 씨의 패기가 정말 보기 좋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을 하겠습니다.”
카메라를 보고 말한 그가 다시 박민준을 찾았는데.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이크에서 고개를 돌린 그가 근처 방송 스탭에게 물었다.
“박민준 씨. 갑자기 어디 갔습니까?”
스탭도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멀쩡히 서 있던 박민준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으니.
카메라를 돌려서 확인했다.
그의 몸이 잠시 흐릿해지더니.
그대로 없어진 것만 알 수 있었다.
어색한 표정의 진행자가 남은 방송시간을 채우기 위해 결국 선택한 것은?
박민준 가족과 인터뷰였다.
대통령도 없고, 주인공도 없지만, 그래서 예정보다 더욱 많은 시간 동안 방송을 차지하게 된 그의 가족이었다.
한편, 갑자기 사라진 박민준은?
***
대한민국에서 현재 가장 유명하고 위험한 빌런을 꼽는다면, 세 명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불법 닥터 최라 불리는 A등급 빌런.
성이 최 씨인 것만 알려졌을 뿐.
이름은 아직 아무도 몰랐다.
높은 각성 등급만큼이나 스탯도 탁월하지만, 그의 두뇌가 굉장히 뛰어났다.
두 번째는 광견 왕진후.
광기로 번뜩이는 눈을 가지고, 사람을 산채로 찢어버리거나, 입으로 물어뜯어 죽였다.
마지막으로 서준태.
원래는 훌륭한 헌터 공무원으로 장래가 촉망되던 인재였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종적을 감추더니.
언제부터인가 빌런과 헌터를 가리지 않고, 죽이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최근 청룡 길드 소속 A등급 헌터 박용탁을 죽였는데.
놀랍게도 서준태 본인이 직접 말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방송에 얼굴을 드러내고, 자랑한 것이다.
“내가 두 얼굴의 박용탁을 죽였다. 그놈은 생각보다 별로 강하지도 않더군. 내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어.”
예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기애가 엄청나게 강해진 모습.
그 서준태가 지금 아주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자청해서 박민준을 죽이기로 한 서준태는 기회를 엿봤다.
그러다 대통령과 목표물이 함께 긴급 생중계 방송한다는 걸 알고, 급히 찾아온 터였고.
비밀 조직의 넘버원 암살자이자, 관심종자인 그에게 그보다 더 주목받을 장소가 없었으니.
‘이런 기회가 바로 찾아오다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새로 등장한 S등급을 죽인다. 이거 정말 짜릿해서 참을 수가 없구나.’
그렇게 박민준의 집 앞에 도착해서 대중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박민준을 죽일 생각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대통령이 혼자 뻐끔거리다가 갑자기 자리를 피해버렸다.
‘이런 젠장. 이러다 기회를 놓치겠어.’
지금이라도 빨리 박민준을 죽이고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그가 살기를 품고, 움직이는 순간.
목표물인 박민준이 사라지더니.
덥석.
컥!
누군가 그의 목이 강하게 조였다.
서준태는 목을 조른 손의 주인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박민준? 내가 자길 노리는 걸 어떻게 알고?’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섰고, 박민준과 둘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장소가 박민준의 집하고 30m 정도 떨어진 거리라.
마당에 집중하고 있는 방송사와 관계자는 그곳 상황을 전혀 몰랐다.
대신 외곽에 있던 구경꾼과 일부 언론사에서 그걸 목격하게 되었으니.
“우리 영웅이 왜 갑자기 저기서 남자의 목을 조르고 있는 걸까요? 대체 저자의 정체가 뭐길래?”
“보십시오. 대한민국 세 번째 S등급 헌터 박민준이 지금 구경하던 민간인의 목을 조르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걸까요? 아니면 본색을 숨기고 있던 빌런인 건 아닐지?”
“그렇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S등급 빌런이 탄생하게 되는 순간일 겁니다.”
제멋대로 마구 떠드는 사람들을 두고, 박민준과 서준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박민준은 그저 자신을 향해 살기를 분출한 남자를 잡았을 뿐이었다.
원래 평소라면 그가 이 정도로 과민반응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가족이 곁에 있는 상황이라.
조금의 의심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 했다.
서준태는 상대를 죽일 생각만 했을 뿐인데, 그 대상에게 역으로 제압당해서 그게 당황스럽고, 어이없다는 감정이었다.
‘이 새끼 뭐야? 내가 자기를 죽일 걸 어떻게 알았지? 진짜 뭘 알고 이러는 건가?’
눈알을 굴리는 상대를 향해 박민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뭐 하는 놈이냐? 왜 날 죽이려고 했지?”
질문한 박민준이 상대의 눈을 살폈다.
반면, 서준태는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이 새끼가 진짜 뭘 알고 날 제압했구나.’
하지만 어떻게?
설마 살기를 느꼈던 건가?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살기는 눈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단어 그대로 상대를 죽이겠다는 기운이지 않은가?
그걸 느낄 수 있고, 또 이렇게 빨리 반응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신이겠지.’
그래서 서준태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툭툭.
그가 박민준의 손을 건들며 말했다.
“갑자기 왜 나를? 우선 이것부터 좀 풀어…줘. 숨 막혀 죽겠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목소리를 쥐어 짜낸 그였다.
그걸 들은 박민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목이 느슨해지는 걸 느끼는 순간.
서준태가 상대를 죽이려 했다.
‘잘 걸렸다 이놈.’
마침 아주 가까운 거리.
이 정도라면 아무리 S등급이라고 해도 절대 피할 수 없다.
아니, S등급 할아버지가 와도 불가능할 터.
그가 박민준을 향해 기습 공격을 시도했다.
상대의 미간을 뚫어버릴 생각이었는데.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