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전화로 폭발음을 들은 국장이었다.
“방금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바로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역시나 놀란 지부장이 주위를 살피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사고가 난 곳은 경기지부 지상 주차장이었다.
폭발로 차가 통째로 날아갔는지.
불길에 휩싸인 차량과 검은 연기가 자욱했다.
그가 가까이에 있던 부하직원을 붙잡고 물었다.
“자네 무슨 일인지 봤어?”
“네. 병원에서 온 차량이 주차장에 정차하고, 동료들이 누군가를 데리고 내리려는데, 갑자기 펑! 하고 폭발했습니다.”
“차가 터졌다는 거야? 아니면 폭탄이 따로 날아왔나?”
“둘 다 아닙니다.”
“그럼 뭔데?”
“제가 봤을 때는 동료 옆에 있던 남자의 몸이 부풀었던 것 같습니다.”
“뭐야? 사람의 몸이 터졌다고?”
“네. 그렇습니다.”
“무슨 그런 개소리가 다 있어? 능력 제한 수갑을 찬 놈일 텐데. 어떻게 갑자기 어떻게 폭발해?”
“글쎄요. 그것까진 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박민준은, 지금 잔뜩 짜증이 난 상태였다.
방금 죽은 남자가 바로, 자신이 병원에서 잡은 사람 중 한 명인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국장과 통화를 마치고.
지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를 발견한 참이었다.
‘잘됐다. 저놈을 직접 고문해서 본거지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면 되겠군.’
휴대전화기를 옆에 있던 지부장에게 건네고, 차로 다가갔는데.
손목이 잘린 남자의 몸이 순식간에 부풀더니.
그대로 펑!
풍선 터지듯 터져 버렸다.
폭발력도 굉장했는데.
차량이 박살 난 건 물론이고, 놈의 옆에 있던 헌터 공무원 둘도 즉사했다.
‘그럼 다른 하나는?’
허리를 다친 여자는 여기로 데려오지 않은 듯했다.
‘병원에서 치료하고 있나?’
박민준이 병원으로 가려고 했다.
쾅!
멀리서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또 폭발이? 저긴 병원 쪽 같은데.’
눈살을 찌푸린 그가 곧장 몸을 날렸다.
옆에서 조용히 있던 소해진이 다시 그를 따라나섰다.
***
순식간에 병원 앞까지 도착한 박민준이었다.
3층이 엉망이 된 걸 볼 수 있었다.
깨진 유리 파편과 건물 잔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했지만, 아직도 활활 불길이 치솟았다.
검은 연기도 자욱했고.
별 망설임도 없이, 그가 공중으로 몸을 훌쩍 날렸다.
허공을 밟고 도약한 박민준이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길에 따라 스프링클러에서 나온 물과 불길이 한데 어우러져 흔들리더니.
휘~익!
회오리치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렇게 불길을 잡은 그가 공중을 밟으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병원 내부엔 살아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다행히 그놈 병실은 아니었군.’
남길영이 아니라, 허리를 다친 여자가 폭발한 모양이었다.
그가 복도를 통해 남길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젠장. 폭탄 테러라니?”
“대체 어떤 세력이기에? 이렇게 과감한 거지?”
폭발이 일어났으니.
다들 크게 당황한 상태였다.
헌터 공무원들이 갑자기 나타난 그를 적으로 오해했다.
“폭탄에 이어 또 기습이라고?”
“잠깐. 다들 멈춰. 저분은 적이 아니야. 우리 편이라고.”
다행히 기동 2팀 요원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가 박민준에게 꾸벅 인사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남길영을 여기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려던 참이었습니다.”
“어디로?”
경기지부가 습격받고, 용의자가 탈출했다.
그렇다면 그곳은 이제 안전하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믿을 곳이 단 한 곳뿐.
“아무래도 게이트 관리국 본부가 좋을 듯싶습니다.”
“알았다. 그럼 그자는 내가 데려가지.”
같이 있던 헌터 공무원들이 놀라서 다가왔다.
“아니. 저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
“누구 마음대로 데려가겠다고? 그러다 잘못되면?”
누가 뭐라 하든 말든.
박민준은 남길영의 이미 낚아챈 뒤였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들을 뒤로하고.
남길영과 함께 사라져버린 박민준이었다.
***
“여긴 또 어디지?”
눈을 뜬 남길영은 자신이 차로 이동 중인 걸 알았다.
더 확실히 확인하고자 옆을 돌아봤다.
“이제 깨어났군.”
박민준과 눈이 마주치면서 그의 목소리를 듣더니.
흠칫 놀라며 경기를 일으켰다.
“당신이 또 왜 내 옆에?”
“그럼? 네놈이 다시 눈떴을 때, 어디 좋은 곳일 줄 알았나? 하와이나 발리라도 되길 바란 거야?”
그건 당연히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병원일 거로 생각했었다.
지금처럼 박민준이 옆에 있는 상상은 하지 않았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혹시 누가 날 찾아오진 않았습니까?”
“네놈을 구하려고 쳐들어온 놈들이 있었지. 그래서 널 서울로 데려가는 중이었다.”
“서울?”
“그래. 게이트 관리국 본부 감옥에 널 가둬 둘 생각이었지.”
“그럼 제발 그렇게 해 주십시오.”
누군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난 뒤로.
두려운 기색이 역력한 남길영이었다.
심지어 자길 감옥에 가둬달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박민준은 방금 생각이 달라졌다.
“아니. 네놈이 깨어났으니. 그곳에 가지 않을 거다.”
“어째서?”
“그거야 내 마음이지.”
박민준은 정체불명의 인간이 폭발하는 걸 봤다.
그건 그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부모나 누나, 조카가 놈들의 근처에 있었다면?
또는 놈들이 박민준을 노리고, 집에 찾아왔다가 폭발해버리면?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가 직접 놈들의 배후를 찾고, 다신 그런 나쁜 짓을 못하도록, 싹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아마 거기 갇혀 있을 김철진도 찾아내서 정보를 팔아먹은 건지도 물어봐야 했으니.
한편, 남길영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이었다.
“젠장. 정말 날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당장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십시오. 처벌을 달게 받을 테니. 보호해 달란 말입니다.”
“닥쳐. 너에겐 선택권이 없다. 그러니 이제 내 물음에 답해라.”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
박민준이 손을 쓰자, 남길영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끼익!
그 소리에 놀란 송하영이 차를 갓길에 세웠다.
“갑자기 서울로 가자고 사람을 귀찮게 굴 땐 언제고, 갑자기 또 왜 그래요?”
박민준 때문에 억지로 운전기사 역할을 한 그녀였다.
퇴근도 못 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뒤에서 또 난리가 났으니.
아아악!
남길영이 고통에 흐느끼면서 억지로 말했다.
“제발! 그만. 내가 그걸 말하면 몸이 터져버릴 거란 말입니다.”
그걸 들은 송하영이 불쑥 끼어들었다.
“설마? 주차장에서 있었던 폭발을 말하는 건가요? 그게 정말 사람이 폭발한 거였어요?”
“으윽. 그래. 아마도 뇌파와 반응해서 폭탄이 터지게 되어 있었을 거다. 그러니. 제발 그만해.”
박민준이 다시 손을 썼다.
고통이 사라진 남길영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저씨. 다신 그러지 마세요. 지금 내 차에서 저 사람이 터지면 우리까지 다 죽어요.”
“아니. 너희는 죽어도 나는 죽지 않는다.”
“아저씨!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세요?”
대답 대신 그가 남길영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또 뭐 하시는 거예요?”
“몸에 진짜 폭탄이 있나 확인하는 거다.”
힘이 없는지, 남길영이 작게 말했다.
“그렇게 해선 찾을 수 없습니다. 액체 형태로 피와 함께 몸속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검색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송하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아니 뭐 그런 폭탄이 다 있어요? 몸에 액체 형태로 돌아다니면서 뇌파에 반응한다고요?”
“우리가 이번에 새로 개발된 물질이다.”
“우리?”
“여기서 죽고 싶지 않으면, 더는 묻지 마라.”
“알았어요.”
터져 죽을 거란 말에 송하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소해진은 말없이 박민준을 살폈다.
‘저 사람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박민준은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내려.”
남길영을 차 밖으로 끌어 내리더니.
“그대로 움직이지 마라. 절대 입을 열지 말고.”
대답도 듣지 않고, 박민준이 그의 아랫배와 정수리에 손을 가져댔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남길영이 당황하면서도 절대 움직이거나 말을 하진 않았다.
본인도 몸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심어진 상황이라.
가능하면 그걸 제거하고 싶었다.
‘내 블루 썬더를 받아낸 사람이니. 이번에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었다.
그는 박민준의 손에서 뻗어나 온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을 느꼈다. 그게 자신의 몸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박민준의 몸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걸 지켜보는 두 여인은 무척이나 신기함을 느꼈다.
‘대체 뭘 하는 걸까?’
왈칵!
남길영이 갑자기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런데 그 색이 일반 피보다 무척 연했다.
마치 다량의 물에다 피를 조금 섞었다고 할까?
남길영도 피를 토해 놀라긴 했지만, 아프기보다는 오히려 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친 얼굴의 박민준이 손을 떼며 말했다.
“이제 됐다.”
“네? 뭐가 됐다는 겁니까?”
“방금 네놈의 몸에 있던 불순한 기운을 모두 배출했으니. 더는 몸이 터지지 않을 거란 말이다.”
“설마?”
“그럼 이제 확인해 볼 차례인가?”
“정말입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네놈에게 선택권은 없다. 이제 내 질문에 답이나 해라.”
그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박민준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손목에 찬 수갑 때문에 힘이 보통사람처럼 변했다.
그게 없었더라도 상대를 쓰러뜨리고 도망칠 수는 없을 터.
반은 자포자기한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서 질문하십시오.”
“김철진이 있는 곳은?”
“화성시에 있는 오래된…….”
말을 하다 말고 잠시 망설인 그였다.
여기서 더 말했다간 몸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공포가 아니었다면, 진작 박민준의 고문에 입을 열었을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박민준이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내가 널 죽이지 않는 이상, 넌 절대 죽지 않는다.”
어딘가 이상한 협박인데.
그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방금도 박민준이 피 액체를 토하게 만든 뒤로 몸이 한층 가벼워진 걸 느끼고 있었다.
다시 용기를 가진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정신병원입니다. 지금은 폐쇄된 그곳에 연구소가 있습니다.”
끝까지 말한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펑!”
깜짝 놀란 남길영이 눈을 번쩍 떴다.
입으로 터지는 소리를 낸 박민준을 보며 그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 장난치신 겁니까? 네?”
“그래. 아주 재밌었다.”
뭔가 더 말하려는 그를 박민준이 잡아끌었다.
다시 차에 태우고 송하영에게 말했다.
“이자가 김철진이 있는 곳으로 안내할 거다.”
몸이 터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
이젠 그가 못할 말이 없었다.
뒤를 돌아보는 송하영을 항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 말이 맞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남길영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처음엔 운영비를 지원받으면서 놈들과 가까워졌습니다.”
“운영비?”
“네. 까다로운 조건도 없이, 무려 100억을 선뜻 내어주더군요. 그런 큰돈을 주겠다는데 굳이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받고 김철진을 납치했나?”
“살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몸이 터져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놈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도 사실 괴로웠다.
심지어 같은 블루 썬더 길드에 속한 자들도 놈들에게 갖다 바쳐야 했으니.
그럴 때마다 사람을 최대한 살려보려고 노력은 했었다.
특히, 김철진은 동생의 친구였으니.
박민준에 대해 알아내고 그냥 내버려 두려고 했었다.
그걸 또 어떻게 알고, 납치를 명령한 놈들이었고.
적당히 상황을 봐서 중간에 김철진을 따로 빼돌리려 했는데.
박민준을 만나서 이런 상황까지 와버렸다.
그리고 그는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네가 말하는 놈들의 몸에는 전부 폭탄이 있는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직급이 낮은 자들에게 강제로 심어놓을 뿐, 높은 자리에 있는 놈들은 자기 의지로 가담한 듯 보였습니다.”
운전하던 송하영이 질문했다.
“그럼 우리 팀장님은 아직 살아계신 건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내가 그 사람만큼은 절대 나 없이 건들지 말라고 경고했으니까요?”
“당신 말을 그자들이 듣겠어요? 억지로 한패가 되었다면서요?”
그가 박민준을 힐끔 훔쳐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래 봬도 A등급 헌터입니다. 거기다 놈들도 이젠 저를 완전히 자신들과 한패라고 믿는 듯했습니다.”
정말 충실히 놈들을 위해 일했다.
그래서 잘못도 많이 저질렀고.
다신 빠져나올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남길영은 지금 새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저기 저 좁은 언덕길로 들어서면 됩니다. 계속 가다 보면 금방 정신병원 건물이 보일 겁니다.”
그의 말에 따라, 더욱 빠르게 차를 몰던 송하영인데.
돌연, 뭔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