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중요하고 무거운 부품은 잘려나간 상부가 아니라, 모두 전면부 엔진과 하부에 있을 테니.
차 무게가 수 톤은 나가지 않을까?
대통령의 질문에 국장이 눈알을 빠르게 굴렸다.
“자네 왜 말이 없어? 내 말을 못 들었나?”
그의 재촉에 어색한 표정으로 답했다.
“글쎄요. 당장 각하 곁을 지키는 경호실장만 해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네. 힘 하면 또 경호실장이 최고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대통령이 경호실장을 불렀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그가 들어오자, 집무실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자네 이걸 한번 보겠나?”
박민준의 영상을 보고,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놀랍군요. 저 사람은 혹시 지난번에 왔던 박민준이란 분이 아닙니까?”
그의 말을 무시한 대통령이 자기 질문만 했다.
“자네도 저렇게 할 수 있겠나?”
“맨손으로 승합차를 번쩍 들어서 집어 던지는 일 말입니까?”
“그래. 그걸 묻고 싶었네.”
잠시 고민한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저라고 해도, 저 상황에선 불가능합니다.”
“자네도 못 한단 말인가?”
“아마 저 같은 사람이 1명 더 있다면 가능할 듯싶습니다.”
급발진한 차를 막는 것만으로도 힘을 다 써 버릴 것이다.
그 뒤에 예비 동작도 없이 갑자기 차를 들어서 집어 던지기까지 했으니.
‘역시 저자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었군. 그럼 그때도 날 봐줬던 거였나?’
저 정도 힘이라면 사람의 뼈 정도는 그냥 마음만 먹어도 가루로 만들 수 있었을 터.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대통령이었다.
자기 밑에 있는 천하장사 경호실장이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니.
“자네는 그만 나가보게.”
경호실장이 꾸벅 인사하고 집무실을 나갔다.
그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박민준의 힘이 자신보다 더 강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대통령과 게이트 관리국장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여태 열심히 박민준을 은근히 헐뜯고 있었는데.
저런 활약이 또 공중파를 타고 전 국민에게 알려졌으니.
‘더 늦기 전에, 저자를 만나서 대중에게 공표해야겠군.’
자신의 위엄과 인기를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에서 3번째, S등급의 탄생은 반드시 대통령인 자신이 제일 먼저 공식적으로 알려야 했다.
“최 국장. 자네가 나서서 저자와의 자리를 내일 바로 마련해 주게. 내일 당장 만나야겠어.”
“각하께서 불러도 안 오는 인간인데. 제 말이라고 듣겠습니까?”
박민준을 이곳으로 데려오라는 뜻으로 알아들은 국장이었다.
“아니. 여기로 부를 생각이 아니야. 내가 그자의 집으로 직접 방문하겠단 말이었지.”
“각하께서 직접 말입니까?”
“왜 안 되겠나? 아쉬운 사람이 움직여야지.”
“알겠습니다. 제가 그럼 돌아가는 즉시, 내일 그자를 집에 잡아놓겠습니다.”
“자네만 믿고 내일 점심시간에 맞춰서 출발하겠네.”
“네. 저만 믿으십시오.”
대통령 앞이라 자신 있게 답하긴 했지만, 실은 자신이 없었다.
‘빌어먹을. 그놈이 외출하겠다고 하면 그걸 어떻게 막지?’
집무실을 벗어난 그가 고민에 잠겼다.
‘부국장과 친한 것 같던데. 그걸 이용하면 되겠구나.’
국장이 보조석에 앉아 있는 자기 비서에게 소리쳤다.
“당장, 부국장에게 연락해. 내일 아침 일찍 박민준을 찾아가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점심까지 잡아두라고.”
“부국장이 연락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뭐?”
“혹시 잊으셨습니까?”
“뭘 잊어……? 아! 그렇지. 오늘 해외 출장을 떠나는 날이었군.”
“네. 부국장은 지금쯤 비행기 안에 있을 겁니다.”
“젠장. 요즘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결국, 국장이 직접 박민준을 찾아가 붙잡아 두기로 했다.
‘그놈이 또 날 두고 행패를 부리진 않겠지?’
그걸 방지하고자, 부하들도 잔뜩 이끌고 갈 생각이었다.
설마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도 제멋대로 굴진 않을 거라 믿었다.
과연 그럴까?
국장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경기지부장? 참 빨리도 보고하는군.”
그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
빌런이 국가기관을 습격했다.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닌 게이트 관리국 경기지부였고.
지하 유치장에 가둬둔 용의자까지 놓쳤으니.
이대로 적들을 한 명도 잡지 못하고 도망쳐버리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또 없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지부장은 국장에게 보고할 정신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부하들을 향해 빽빽 소리치기 바빴다.
“다들 나가! 한 명도 빠짐없이 나가서 놈들을 잡으라고. 못 잡으면 모두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죽든지, 너희들이 죽든지 할 거니까. 알았어?”
그렇게 열불을 내고 있는데.
게이트 관리국 정문에 강풍과 함께 누군가 불쑥 나타났다.
한 손에 피 흘리는 남자를 들고 나타난 박민준이었다.
주변을 수색하던 송하영과 소해진이 그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
“아저씨!”
툭.
들고 있던 남길석을 두 여자 앞에 내던졌다.
널브러진 그를 확인한 송하영이 눈을 크게 떴다.
“남길석이잖아?! 어떻게 잡았어요?”
그것도 이렇게 빨리 잡을 수 있는 건가?
박민준이 굉장한 건 이미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바로 잡아 왔다고?’
감탄하는 송하영과는 달리, 소해진은 무표정했다.
그녀는 남길석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냥 박민준이 활약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저 사람이 실전에서 싸우는 걸 내가 봤어야 했는데.’
그걸 놓쳤으니.
이만저만 실망한 게 아니었다.
한편, 남길석이 잡혀 온 걸 보고받은 경기지부장이었다.
“뭐야? 박민준이 누굴 잡아 왔다고?”
“도망친 남길석을 생포해서 돌아왔습니다. 그자를 탈출시킨 자들은 전부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어서 내려가 봐야지.”
그길로 자기 집무실이 있는 꼭대기 층에서 1층까지 서둘러 뛰어 내려왔다.
박민준을 좋지 않게 생각하던 지부장이었는데.
지금은 자기 구세주나 다름이 없었다.
병원에서의 기습을 거의 혼자 막아낸 사람이 박민준이라고 들었다.
또한, 뒤이어 벌어진 사상 초유의 게이트 관리국 지부 습격 사건의 범인들을 처단하고, 탈출한 용의자까지 잡아 왔으니.
‘기자들이 세부사항을 전부 알아내기 전에 먼저 일을 수습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 하늘이 날 돕는군.’
미워 보이던 박민준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방송국 헬기가 나타났다.
‘젠장. 왜 이렇게 빨리 나타난 거야? 어떻게 알았지? 어떤 놈이 연락했냔 말이다.’
그가 옆에 있던 비서에게 서둘러 언론을 막으라고 명령했다.
“자네가 책임지고 저들을 막아. 우리 지부의 명예를 지키란 말일세.”
“제가 무슨 힘으로?”
“알아서 좀 할 수 없나? 어서 가! 가라고!”
“네네.”
억지로 쫓기듯 떠난 비서였다.
그걸 본 지부장이 크게 미소 지으며 박민준에게 다가왔다.
이번엔 그를 적당히 구워삶고, 이곳에서 쫓아낼 생각이었다.
“하하. 자네가 이번에 아주 큰 일을 해냈군.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어. 처음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아 보였거든.”
그가 뭐라 하든 말든.
박민준은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저 김철진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을 허무하게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혼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양쪽에서 터진 문제를 전부 해결했으니.
으스댈 만도 하건만.
의외로 이번엔 그도 잘난 척을 하지 않았다.
대신 빠르게 주변에 명령을 내렸다.
“병원에 내가 잡아둔 녀석들이 있다. 혹시 모르니.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심문해라.”
“알았어요. 아저씨.”
송하영이 빠르게 대답하고 움직였다.
그걸 본 지부장이 발끈해서 나섰다.
‘아니, 지금 누구 앞에서 내 부하한테 명령질이야? 잘했다고 칭찬했더니. 지가 대장이라도 된 줄 아나?’
차마 박민준에게는 화를 내지 못하고, 만만한 자기 부하에게 소리쳤다.
“송하영 씨! 내가 버젓이 여기 있는데. 자네 지금 누구 명령을 듣고 행동하는 건가?”
지부장의 큰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목을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줄 알면, 어서 저자를 다시 유치장에 데려가 가두도록 하게.”
“거긴 전부 망가졌는데요?”
“그럼 수갑을 채워서 빈방에 집어넣으면 되잖아.”
“알겠습니다.”
송하영이 남길석을 잡아끌었다.
손목에 다시 능력 제한 수갑을 채우고 건물로 향했다.
그걸 슬쩍 본 지부장이 박민준에게도 말했다.
“자네도 수고했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만 가보도록 하게. 어서.”
그는 박민준을 돌려보낸 뒤. 그가 한 일을 축소하고, 그걸 자신이 적당히 가로챌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박민준이었다.
“싫은데. 네가 뭔데 나한테 가라 마라 명령질이야?”
“아니! 내가 지부장이라고. 이곳의 총책임자란 말일세.”
“그래서 뭐? 그렇다고 네놈이 내 상사도 아니잖아?”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연신 후려친 지부장이었다.
‘아이고. 저걸 그냥 확!’
역시나 이번에도 속으로 욕할 뿐.
상대가 두려워서 함부로 뭐라 하지도 못했다.
박민준이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너 전략실 방수열 번호 아냐?”
“그건 왜 묻는 거지?”
“내가 그놈 번호를 몰라서. 여기 일을 알려주기로 했었거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경기지부장도 자신이 상부에 아무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우라질.’
그가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내가 잠시 급한 용무를 깜빡했군. 잠시 실례하지.”
구석으로 향한 그가 눈치를 보며 통화를 시작했다.
“아이고. 국장님. 죄송합니다.”
“왜 이제야 전화하는 거야? 지금 언론이 난리 난 거 알아 몰라?”
“언론이요?”
“자네도 몰랐어?”
“죄송합니다. 여기저기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제가 너무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다 수습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거 자네가 수습한 것도 아니잖아?”
“네? 그걸 어떻게?”
순간 말해놓고 후회한 지부장이었다.
“자네 목격자 인터뷰도 안 봤나?”
“아직 못 봤습니다.”
“참나. 내가 자네를 믿고 경기지부를 맡겼는데. 지금 이게 뭔가? 어?”
“죄송합니다. 어쨌든 간에 박민준이든 누구든 잘 수습되었으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국장님. 그놈이 마침 옆에 있으니. 제가 적당히 구슬려서 돌려보내겠습니다. 그 뒤에 놈이 한 일을 우리 게이트 관리국의 공으로 만들면…….”
“뭐? 박민준이 자네 옆에 있어?”
“그렇습니다만?”
“어서 바꿔봐.”
“지금 말입니까?”
“그래.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체 뭘까?
국장이 왜 저놈을 찾는 거지?
의문이 가득한 상태로 박민준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뭐지?”
“국장님일세. 자네를 바꿔 달라는군.”
“그놈이 왜 나를?”
“나야 모르지. 직접 받아보면 알지 않겠나?”
고개를 끄덕한 그가 전화를 받았다.
“뭐야?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어?”
다짜고짜 반말하는 그에게 순간 욱한 국장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신에게 내린 명령이 있었으니.
애써 참고 말했다.
“자네가 이번에 수고가 많았네.”
“네놈을 위해서 한 일이 아니다.”
그걸 듣고 또 욱했다.
후~후~
심호흡하며 다시 화를 가라앉힌 국장이었다.
“대통령님께서 내일 점심에 자네를 만나고자 하네. 내일 시간 되지?”
“아니. 바쁜데.”
“무슨 급한 일이 있나?”
“내일 낮에 대청소하기로 했거든.”
“아니. 지금 걸 말이라고 하나?”
“나한테는 그게 네놈들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야!”
결국, 화를 참지 못한 국장이었다.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박민준도 가만 듣고 있지는 않았다.
“뭐?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그렇게 말한 박민준이 멋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뚝.
뚜뚜.
그가 목 뒤를 부여잡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런 개자식 같으니. 내가 말하는데 감히 전화를 먼저 끊어?”
그가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크게 씩씩거리더니.
정작 상대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른 말을 내뱉었다.
“여보세요? 박민준 씨. 내가 정말 미안하네. 방금 일부러 화를 낸 건 아니고. 아무튼, 내일 대통령님께서 자네 집을 직접 방문하실 계획이니까……. 자네 지금 내 말 듣고 있나?”
“국장님. 접니다.”
“뭐? 그놈이 아니라 왜 자네가 전화를 받는 건데?”
“이게 원래 제 폰.”
지부장이 뭐라 답하려는데.
쾅!
휴대전화 너머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