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남길영은 아직 기절한 상태.
방수열이 그를 의료진에게 맡겼다.
물론 철저히 감시할 요원을 붙여두었다.
이후, 검사 결과가 나왔는지. 의사를 만난 기동 2팀 박동인이었다. 그걸 다시 방수열에게 보고했다.
“검사 결과가 어느 정도 나왔는데, 목숨에는 지장이 없답니다.”
“그럼 당장 개인 병실로 옮기도록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감시와 보안의 편의를 위해 남길영을 1인실로 데려갔다.
“둘씩 2인 1조로 번갈아서 안팎으로 교대하고, 절대로 동시에 두 명 이상 자리를 비우지 마십시오. 화장실이고 뭐고 무조건 1명만.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자가 깨어나면 수갑을 풀지도 모르니까, 그것도 잘 감시하시고요.”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난 내일 또 여기 오겠습니다.”
방수열은 계속 여기 있을 수가 없었다.
이것 말고도 처리해야 할 업무로 워낙 바빴다.
병실을 나온 그가 박민준 옆에 있는 소해진을 보고 말했다.
“나 먼저 올라갈 테니까. 소 차장은 여기 남아서 지켜보다가, 시간 되면 알아서 퇴근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였다,
마침 남고 싶었는데.
잘되었다는 얼굴이었다.
방수열이 박민준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가 책임지겠다면서? 어디 가려고?”
“물론, 이번 일은 제가 책임질 겁니다. 본부에서 업무를 보면서도, 계속 이곳 일에 신경 쓸 거고요. 하지만 오늘 밤. 대통령님을 만나는 일도 처리해야 하니 말입니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일하러 간다는데.
더욱이 박민준이 거절한 대통령의 만남을 적당히 무마하려면, 아주 바쁠 터였다.
“난 여기 남아서 저놈이 깨어나면 마저 질문이나 해야겠군.”
마력 고갈에 의한 탈진과 고문이 더해진 기절이니.
내일 아침에 깨어날 듯싶었다.
각성한 몸이니, 오늘 밤중에 깰 수도 있고.
“네. 경기지부 요원들에게도 박민준 씨의 존재를 말해놓겠습니다. 정보를 얻으면 저와 공유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그대로 떠나려던 방수열이 슬쩍 그에게 다시 돌아와 물었다.
“정말 대통령님을 만날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잠깐이라도 만나서 식사도 하시면 좋을 텐데요. 대통령님과 악수 사진도 남기고.”
대답하는 대신 상대를 빤히 바라본 박민준이었다.
침묵의 시선을 받은 방수열이 목을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그럼 진짜 가보겠습니다.”
방수열이 떠나고.
복도를 사이에 둔 박민준과 소해진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1인실이 있는 병동이라.
딱히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박민준이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반대편에 앉은 그녀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대화도 일절 없이. 시간만 흘렀다.
가만히 앉아있기 답답했는지.
소해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고 경비서는 요원 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했다.
잠시 고민한 그녀가 팔찌를 연검으로 만들었다.
슬쩍 연습하려는데.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면서, 기동 2팀 박동인이 복도로 나왔다.
그가 박민준과 소해진을 번갈아 보고 말했다.
“저희는 저녁 식사를 주문할 참입니다. 혹시 두 분 것도 함께 주문해야 할까요?”
한 명은 본부에서 나온 차장급 고위직이고, 다른 하나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던데다 방수열이 잘 모시라고 말해놓은 남자였으니.
그래서 그들을 빼놓고, 마음대로 식사도 하지 못한 기동 2팀의 4명이었다.
“난 괜찮다. 너희끼리 먹어라.”
“알겠습니다. 그럼 소 차장님은?”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저희끼리 주문해서 먹겠습니다.”
전화를 걸면서 박동인이 복도를 벗어나 사라졌다.
다시 침묵이 흐르고.
어정쩡한 자세로 연검을 들고 있던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팔찌를 만들어 차고 자리에 앉았다.
그걸 물끄러미 보던 박민준이 물었다.
“원래부터 말을 못 하는 건가? 아니면 후천적인 거야?”
상대방에게 상당히 실례가 될 수 있는 말인데.
실제로 소해진은 그런 질문을 받고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박민준이 말하면 별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는 말을 할 수 있었군. 그럼, 사고라도 당했나?”
끄덕끄덕.
“그렇군. 그럼 치료를 받으면 다시 말을 할 수도 있는 거네?”
이번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상황.
더는 말을 시키지 말라는 거로 받아들인 박민준이었다.
뚜벅뚜벅.
박동인이 사라졌던 계단에서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소해진은 그가 돌아오는 거로 생각하는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계속 뭔가 생각에 잠겼다.
박민준은 달랐다.
눈을 지그시 감더니.
주변에 집중했다.
번쩍 눈을 뜬 그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아까 그자가 아니야. 전혀 다른 사람이다.]
소해진은 갑작스럽게 박민준의 목소리가 자기 머릿속에 들리는 걸 깨달았다.
놀란 눈으로 자길 쳐다보는 그녀를 향해, 그가 다시 전음을 보냈다.
[전음이라는 무공이야. 놀랄 시간이 있으면 싸울 준비나 해. 내가 밖을 맡을 테니. 네가 병실 안으로 들어가. 알았어?]
복도는 넓고 길다.
계단까지 포함하면 길이 세 갈래.
병실은 좁고 입구도 하나뿐이니.
박민준이 뚫리지 않으면, 안전할 터.
소해진에게 싸우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그녀를 보호할 생각이었다.
아니, 자신이 싸우는 데 걸리적거릴까 봐 미리 치우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나저나 몰려오는 놈들이 전부 제법인데? 기척을 숨길 줄 아는 건가?’
이곳에서 만났던 헌터들과 다른 결이다.
‘또한, 이건 살인을 전문으로 하는 암살자의 기운이 분명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민준의 코엔 진한 피 냄새가 벌써 풍기고 있었다.
소해진이 그의 말에 따라 순순히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박민준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그녀도 잘 알고 있었으니.
괜히 자신이 그의 말을 거역해봤자, 방해만 될 거라고 느낀 모양이었다.
드르륵. 탁.
소해진이 병실로 들어가자마자.
계단으로 나타난 6명의 남녀였다.
가장 앞선 중년 남자가 박민준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만난 놈은 복도에 두 명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왜 하나뿐이지? 여자는 화장실이라도 갔나?”
말을 마친 그가 뒤로 손짓했다.
고개를 끄덕인 여자가 일행에서 떨어져, 화장실로 향했다.
그 순간.
박민준이 여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냥 맨 손이었을 뿐인데.
휙!
창문이 모두 닫혀있는 복도에 강풍이 불었다.
쾅! 굉음과 함께.
화장실로 가던 여자의 허리가 꺾이더니.
그대로 가까운 벽에 몸을 처박고 기절해버렸다.
아마 죽었을지도?
그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중년인은 물론이고, 나머지 4명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식스를 한 방에?”
피식.
그걸 들은 박민준이 대놓고 비웃었다.
“식스라니? 너희들 무슨 독수리 6형제라도 되냐?”
“뭐?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냐?”
“어릴 때 만화도 안 보고 살았냐? 독수리 5형제 몰라?”
당연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런 순간에 그걸 물어본 게 이상한 거였으니까.
혼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박민준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지금 그 모양 그 꼴로 사는 거겠지. 안 그래? 이 암살자 새끼들아.”
박민준의 말을 듣고, 중년인이 빠르게 무기를 빼 들었다.
챙!
날이 잘 선 일본도.
도를 두 손으로 앞으로 내민 그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저놈은 내가 맡겠다. 너희들은 표적을 구해서 탈출해라.”
“넵!”
챙~!
거의 동시에 무기를 뽑아 든 네 명이었다.
검을 든 세 명, 도를 든 사람은 한 명이었다.
박민준의 시선이 그들 4명에게 향한 순간.
중년 남자가 빈틈을 발견했다는 듯,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의 움직임과 맞춰서 병실을 향해 우르르 뛰기 시작한 4명이었다.
“어딜!”
박민준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에, 병실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엄청난 속도다! 방금 저자의 동작을 놓쳤어.’
박민준을 공격하려던 중년 남자가 달리던 동작 그대로 중간에 멈춰 섰다.
혼자 싸울 생각을 바로 버리고.
부하들을 향해 손짓했다.
[협공!]
중년인을 포함한 다섯 명이 동시에 박민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앞. 뒤. 좌. 우.
사방에서 동시에 공격이 들어왔다.
그럼 남은 하나는?
몸이 투명해지면서 자취를 감췄다.
“신기한 기술이네?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건가?”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를 부리는 박민준이었다.
그걸 본 중년인은 강한 확신이 들었다.
‘흥! 아무리 빨라도 결국 인간의 몸. 지금 공격은 절대 막지 못한다.’
박민준의 정면으로 자신의 일본도를 강하게 찔렀다.
휙!
그뿐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오는 공격도 매우 정확하고 날카로웠다.
휙! 휙!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양옆과 뒤에서도 더 들렸을 정도.
저 중 하나라도 찔리면 치명상을 입을 터.
하지만 박민준은 알았다.
‘사방의 네 놈은 그냥 미끼다. 진짜 공격은 아까 사라진 그놈이다.’
그리고 그놈은 바로.
“여기 있었군.”
박민준이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를 향해 찔러오던 검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고.
대신 박민준이 뛰어오르면서 내지른 검에 뭔가가 걸렸다.
팅! 푹!
한 번은 뭔가를 막는 소리였고.
두 번째는 뭔가를 찌르는 소리였다.
실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복도 천장이었는데.
지금은 사람의 형체가 드러나면서 붉은 핏자국이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억울하다는 얼굴로 숨을 거둔 남자였다.
땡그랑.
그가 들고 있던 도가 복도 바닥에 떨어졌다.
박민준이 남자의 몸과 함께 천장에 틀어박았던 검을 뽑았다.
주르륵.
피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죽은 남자의 몸이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 위로 떨어졌다.
나머지 네 명은 프로였다.
동료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무기를 재차 찔러오는 모습이었다.
중력에 의해 다시 밑으로 내려올 박민준을 노린 거였는데.
그가 허공을 밟고 자길 노린 검을 차례차례 피하며 반격까지 가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한 번에 한 명씩.
손목이 잘리거나, 목이 잘리면서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그렇게 공중에서 4명을 쓰러뜨린 박민준이 드디어 땅에 발을 디뎠다.
중년인이 잘려나간 오른손을 보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시선을 박민준에게 향한 그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투가 천장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투는 B등급 각성자로, 투명화는 물론이고, 그 상태에선 소리도 내지 않는 특성을 가졌었다.
암살자가 되기에 정말 딱 좋은 특성.
중년인 다음으로 강한 사내였고, 단 한 번도 실수하거나 실패한 적이 없었다.
방금도 박민준의 정수리를 내려치려는 투의 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었는데.
대체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중년인의 질문을 받은 박민준이 살짝 미소 지었다.
검에 묻은 피를 시체의 옷에 문지르며 닦아내더니.
이렇게 답했다.
“은둔술이라고 아냐? 암살자 놈들에게 그걸 하도 당했더니. 이젠 인기척과 살기에 너무 예민해져 버렸어.”
“인기척과 살기를 느꼈다고? 그럴 리가?”
“왜 못 믿겠어? 하긴, 하마터면 나도 놓칠 뻔했다니까. 어떻게 사람이 숨소리나 심장 뛰는 소리도 내지 않을 수 있는 거지?”
“그게 투의 특성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 모두에게서 기척을 숨길 수 있었지.”
그걸 들은 박민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깝네. 미리 알았으면 저렇게 쉽게 죽이지 않았을 텐데.”
“그건 또 무슨 소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