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남길석은 형이 한 말을 듣고, 눈을 부릅떴다.
“정말 형이 철진이를 납치한 거야?”
동생의 중얼거림을 듣고, 남길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평소라면 절대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텐데.
너무 심하게 고통받은 데다, 동생의 말에 격분한 나머지.
그가 말실수하고 말았다.
‘빌어먹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형을 향해 남길석이 그에게 다가갔다.
“형! 왜 대답이 없어?!”
귓속말로 닦달하는 동생을 향해 그가 작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입 닥쳐. 멍청아. 지금 여기서 뭘 말하라는 거야?”
“아! 알았어.”
남길석도 자기 실수를 이제 깨달았다.
친구가 소중하다고 해도, 남길영은 결국 자기 형이다.
우정보다 피가 더 진했으니.
그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둘을 지켜본 박민준이 피식 비웃었다.
제 딴에는 귓속말을 했지만, 이미 다 들었다.
“저것들이 쌍으로 지랄하고 있네.”
“왜 우릴 괴롭히고 비웃는 겁니까? 난 호의로 당신을 영입하러 왔을 뿐입니다.”
“그래. 그래서 나도 좋게 물어보려고 했지. 하지만 제대로 대답을 못 들으면 어쩔 수 없잖아?”
“우리가 곱게 대답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란 말입니까?”
“그래. 그랬으면 너희는 가볍게 손봐주고, 그 뒤에 내 정보를 팔아먹은 놈만 제대로 족쳤겠지.”
남길영은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망할. 저렇게 지랄 맞은 놈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영입을 고려하지도 않았을 텐데.’
동생의 친구도 납치하지 않았을 거였고.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김철진이란 놈에게 당신의 정보를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릅니다.”
짝짝짝.
박민준이 손뼉을 쳤다.
“정말 대단해. 그 꼴이 되고도 거짓말을 하다니.”
덥석.
그가 남길영의 목덜미를 잡고 높게 쳐들었다.
상대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그가 사나운 눈빛을 하고 소리쳤다.
“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 구는 거지? 내 동생은 저 모양으로 만들고? 너 혹시 빌런이냐?”
박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고통을 가했다.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박민준의 손에 매달린 그가 꽥꽥 소리를 지르더니.
이내 몸이 축 늘어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게이트 관리국 소속 방수열이 홀로 박민준에게 다가와 말했다.
“설마, 죽인 겁니까?”
“아니. 기절한 거다.”
“그렇다면 그자를 저에게 넘겨주십시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경기지부 기동 2팀장 김철진의 실종이 접수되었습니다. 아까 그자의 말에 따르면 유력한 용의자인 것 같으니. 제가 데려가서 정식으로 수사하겠습니다.”
“그게 내가 네 말대로 해줄 이유는 아니다.”
박민준을 상당히 어려워한 방수열인데.
지금은 물러서지 않았다.
“박민준 씨. 당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입니다.”
“그래? 네가 뭘 어쩔 건데?”
“법을 수호하는 헌터 공무원으로서, 그런 식의 불법적인 고문과 폭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당신의 불법행위를 막을 겁니다.”
그가 소해진을 서둘러 불렀다.
“소 차장. 뭐 해. 어서 이리 오지 않고. 이자가 계속 불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면 당장 제압해. 난 가까운 지부에 연락하겠다.”
차르륵.
고개를 끄덕인 소해진이 연검을 풀었다.
박민준이 그녀에게 물었다.
“진심인가?”
끄덕.
“그럼 나도 봐주지 않겠다.”
그런 말을 듣고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상사인 방수열 앞을 가로막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싸늘하게 웃은 박민준이었다.
남길영의 목을 잡은 상태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때, 김채영이 나섰다.
“외삼촌. 무섭게 왜 그러는 거예요? 어서 그 사람 놓아주세요.”
“넌 가만 있어. 이게 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외삼촌의 말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방수열의 말을 두둔했다.
“외삼촌이 다른 세상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라도. 그런 짓을 하면 안 돼요. 법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요.”
“너까지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네. 계속 그렇게 멋대로 폭력을 행사할 거면, 나하고 싸워야 할 거예요.”
그녀가 검을 들고, 소해진 옆에 섰다.
사실 그 둘이 덤벼도 박민준에겐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남길영을 놓아주는 선택을 했다.
눈치를 보던 남길석이 다가와 기절한 자기 형을 부축했다.
박민준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날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답답하군.”
김채영이 검을 집어넣고, 그에게 다가갔다.
“다 외삼촌을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날 위해서.”
“네. 다른 세상에서 돌아와 아직 적응 못 하셨나 본데. 지금 같은 방법은 옳지 않아요.”
조카의 말을 들은 박민준이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 화염의 용과 번개의 용이 그의 집 허공을 가르고 사라진 일로 인해. 주변의 많은 사람이 구경을 왔다.
심지어 멀리 경찰차가 오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다 소해진과 눈이 마주쳤다.
박민준에게 검술을 가르침 받고, 항상 존경의 눈빛을 보내던 그녀인데.
지금은 복잡한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집 안에 있던 그의 부모와 누나도 뒤늦게 밖이 시끄럽다는 걸 알고, 나오는 게 보였다.
모두가 자신을 보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으니.
“흠. 난 정말 모르겠군. 이게 이렇게 비난받을 일인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군자검이란 분이 계셨다. 나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하향(下鄕)한 전대 무림 맹주였지.”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끝까지 들으면 다 알 수 있을 거다.”
박민준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너무 착하고 좋은 분이었어. 그런 성격으로 화경에 오른 게 기적으로 보일 정도였지. 그래서 그분의 집에 식객이 넘쳐났고 말이야.”
“식객?”
“남의 집에 손님으로 머무는 주제에 몇 날 몇 주를 놀고먹는 족속들을 말하는 거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요?”
“군자검이 전혀 모르는 젊은이가 찾아와 식객을 청했다. 당연히 받아줬고. 며칠 뒤, 그놈이 무색무취의 극독을 풀었다.”
“암살자였군요.”
“그래. 군자검께서 호의를 베푼 덕분에 자기 가족은 물론이고, 손님으로 온 자들마저 전부 죽도록 만들었다. 자! 그럼, 여기서 교훈은?”
“아무나 믿지 마라? 모르는 사람을 조심해라?”
“그래. 난 상대를 모르는데 상대는 날 알고 있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일이 또 어딨겠냐? 내 강점과 약점을 노출하고, 거기다 가족까지 위협할 놈일 수도 있는데.”
박민준의 말을 듣고, 여기 있는 모두가 동의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왜 방금 불법적인 폭력을 무자비하게 사용했는지, 그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방수열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긴 대한민국입니다. 지금은 절 믿어주십시오, 저자들을 철저히 조사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습니다.”
박민준이 방수열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네놈이 아주 멍청이는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이번 한 번 정도는 여기 방식을 따르는 것도 좋겠지.”
대답을 들은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감사합니다. 난 가까운 지부에 연락할 테니. 소 차장은 저 둘을 제압해.”
고개를 끄덕인 그녀를 향해 김채영이 다가갔다.
“나도 도울게요.”
힘이 빠진 상대라고 해도.
그녀는 혼자.
김채영이 나서서 소해진을 도왔다.
그것 말고도, 잠시나마 박민준을 비난했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외삼촌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거였을 텐데. 내 멋대로 판단하고 척을 질 뻔했구나.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그녀는 내심, 자기 외삼촌이 아까 일에 대해, 더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여겼다.
대화가 끝나고 상황이 정리되는데.
경찰차가 뒤늦게 도착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긴 했는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싸우는 사람도 있고, 무슨 용을 봤다는 말도 있었다는데.”
질문을 쏟아내는 경찰을 향해, 방수열이 다가갔다.
지갑을 꺼내더니. 그들에게 신분증을 보여줬다.
“게이트 관리국 소속 방수열 부장입니다.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들은 그만 돌아가십시오.”
그의 신분증을 확인한 경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략실 방수열 부장? 아이고. 수고가 많으십니다.”
세상이 변하고, 게이트 관리국의 힘이 굉장히 커졌다.
그런 곳의 전략실 부장이면, 자기 같은 경찰이 감히 상대할 수 없는 대상임이 분명했다.
게이트 관리국이 나섰다면, 굳이 자신들이 나설 필요가 없었고.
경찰은 괴물이나 괴현상이 아니라, 민간인을 보호하고, 일반 사건을 담당했으니까.
“혹시 저희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괜찮습니다. 그만 돌아가 보십시오.”
“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십시오.”
잠시 후.
경기지부에서 현장 요원들이 도착했다.
하필이면 기동 2팀이었다.
갑작스러운 팀장의 부재로 잠시, 주요 임무에서 배제되었다.
대신 이런 긴급출동에만 현장으로 나오고 있었다.
여전히 함께 다니는지.
강인석과 송하영이 방수열에게 다가왔다.
그가 상대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했다.
“전략실 방 부장님? 여기서 부장님을 뵙다니.”
“날 아는가? 미안하지만, 자넨 누구지?”
“기동 2팀의 강인석입니다. 절 기억 못 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예전에 본부에 갔을 때, 부장님을 두어 번 뵌 적이 다니까요.”
“그렇군. 아무튼, 빨리 와서 다행이네. 어서 저자들을 경기지부로 데려가게. 나도 바로 따라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요원 절반은 수원 블루썬더 길드를 찾아가 길드장실 컴퓨터를 가져오라고 하게. 필요한 서류는 자네들이 이동하는 동안 내가 바로 처리하지.”
“네. 그럼, 인원을 둘로 나누겠습니다.”
“혹시 지원이 필요하면 즉시 나에게 보고하게. 그래도 되겠지?”
“네. 어차피 저희 팀장님이 안 계시니.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강인석과 송하영이 남 씨 형제에게 수갑을 채웠다.
이번에 새로 개발된 물건으로, 각성자의 능력을 대폭 감소하는 구속 도구였다.
이미 몸에 힘이 없던 그 둘이라.
힘을 제한하는 수갑을 차고 축 늘어져 버렸다.
“선배님. 최신형 수갑이 저 정도로 효과가 있는 줄 몰랐어요.”
“나도 몰랐어. 조금만 더 효과가 강하면 위험하겠는데.”
“그러게요.”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저 남자?”
“네. 아. 저 아저씨는 왜 여기 있는 걸까요?”
“방 부장님과 함께 있는 걸 보면, 우리와 같은 게이트 관리국 소속이 된 걸까?”
“글쎄요. 제가 듣기로는 S급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럼 공식 발표를 더 일찍 하지 않았을까요?”
두 사람과 눈을 마주친 박민준이었다.
자길 향해 고개를 숙인 상대를 보고도, 그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도 임무를 수행 중이라 더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남길영과 남길석 형제를 차로 데려가면서도 대화는 계속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아무튼, 저자는 더 신경 쓰지 말고, 임무에 집중해.”
“잡담은 선배님이 먼저 시작했잖아요?”
“시끄러워. 이자들이 우리 팀장님의 실종과 연관이 있다니까. 놓쳐서는 절대 안 돼.”
“블루 썬더 길드면 나름 큰 길드인데. 정말 그런 나쁜 짓을 했을까요? 뭔가 오해가 있을 것 같아요.”
“그만. 말을 아껴. 어차피 수사하면 다 알게 되어 있어.”
기절한 형과는 달리, 남길석은 아직 정신이 멀쩡했다.
그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겁니다. 우리 블루 썬더 길드는 절대 그런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강인석이 그를 알아봤다.
현장에도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최근에도.
“당신. 우리 팀장님하고 친구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내가 전에 몇 번 본 것 같은데?”
“맞습니다. 나도 당신들을 지난 오산역 게이트 사건 때본 것 같군요.”
“그럼, 팀장님과 친구이면서 그분을 해친 겁니까?”
“오해라니까요. 우리 형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습니다.”
방수열이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 왜 용의자와 대화하는 겁니까? 뭉그적거리지 말고, 어서 빨리 차에 태우십시오.”
그렇게 블루 썬더 길드의 남씨 형제가 떠나고.
방수열도 그 뒤를 따라가려고 했다.
박민준이 허락도 받지 않고, 그의 차에 올라탔다.
“잠깐, 나도 같이 가지.”
“왜 우릴 따라오신다는 겁니까?”
“너희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생각이다.”
“저를 믿는다면서요?”
“난 다른 사람을 100% 믿지 않는다.”
“그럼 저는 몇 프로입니까?”
“50%”
“겨우 그 정도입니까? 그럼 다른 사람은요? 소 차장은 어떻습니까?”
“50%”
그의 말을 듣고, 소해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어진 다음 말에 그나마 작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그나마 몇 번 만난 너희니까 절반이라도 믿는 거다. 가족이 아닌 다른 놈들에 대한 내 믿음은 그냥 0%거든.”
“그것참 고맙군요.”
“알았으면 어서 출발해.”
“네.”
박민준을 태운 차가 게이트 관리국 경기지부로 향했다.
***
한편, 남길영에게 연락했던 남자는?
전화를 끊고 잠시 고민하더니.
자기 상관에게 보고했다.
“남길영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