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박민준을 다시 찾아왔던 게이트 관리국 방수열 부장과 소해진.
그 둘은 자신들보다 먼저 온 손님이 있는 걸 알고, 대문 밖에서 기다릴 참이었다.
그런데, 번개가 번쩍이고, 굉음이 울려 퍼지는 걸 알고.
안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박민준이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검에서 번개가 솟구쳤고.
‘아까는 화염으로 이루어진 용을 하늘로 승천시키더니. 지금은 푸른 번개로 된 용을 다시 승천시킨 건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어서.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던 거였다.
“방금은 대체 뭡니까? 네?”
얼이 빠져 묻는 방수열을 보고, 담담하게 대답한 박민준이었다.
“제법 재밌는 기술을 가진 놈이 찾아왔길래, 이 검과 내 힘을 시험해본 참이었다.”
검과 자신을 시험해?
박민준이 강한 건 이미 알았다.
‘저 검도 특별하다는 말인가?’
딱히 별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데.
방수열이 그의 검을 대놓고 빤히 바라봤다.
“내 검이나 구경하러 온 건가? 뭐 하러 다시 돌아온 거지?”
박민준의 질문에 그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광경.
이미, 자신 같은 사람이 상대하기에는 박민준이 너무 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빌어먹을. 이젠 나도 모르겠다. 국장님이 직접 알아서 하겠지.’
애초에 S등급인데.
영입하든 대화 상대를 하든 임원들이 나섰어야지 않나?
고개를 작게 좌우로 저은 그가 답했다.
“원래는 당신을 다시 한번 설득해보려고 찾아왔던 겁니다.”
“그럼 지금은?”
“저 같은 사람이 말한다고, 생각을 바꾸실 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의 대답을 듣고, 박민준이 히죽 웃었다.
“네놈이 아주 멍청이는 아니구나. 그걸 지금이라도 깨닫다니.”
한쪽에 멍하니 서 있던 남길석이 슬쩍 다른 손님이 온 틈을 봤다.
그리고 서둘러 박민준에게 작별을 고했다.
‘지금이다. 어수선한 틈에 떠나자.’
어차피 일이 이렇게 흘러가 버렸고.
다른 사람마저 나타나 버렸으니.
박민준을 영입하기엔 글렀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갑자기 찾아와 민폐를 끼친 점을 형 대신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네?”
남길석이 뭔가 더 물어보려고 했다.
어디선가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자기 형 남길영의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인 걸 깨달았다.
어차피 자신이 부길드장이라.
아는 사람의 연락이면 그가 대신 전화를 받아주려고 했다.
예전에는 자주 그랬었으니까.
하지만.
‘발신자 번호 표시 제한?’
요즘 따라 점점 이상하게 굴던 형에게 이런 전화가 오다니.
그러고 보니.
자길 피해서 몰래 전화를 받던 형의 모습도 떠올랐다.
누군지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었다.
‘하필 이런 상황에서 전화라니. 누구지?’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당황한 남길석을 향해 박민준이 말했다.
“뭐 해? 혹시 내 앞에서 받으면 안 되는 전화인 건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형님에게 온 전화라, 내가 받지 않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저놈 전화라고? 그럼 당장 받아봐.”
“그건 좀.”
“그럼 내가 대신 받지. 그리고 통화가 끝나면 너와 저놈에게 번개보다 더 짜릿한 고통을 선사해주지.”
박민준의 협박에 그가 몸을 흠칫 떨었다.
‘번개보다 더한 고통이라니.’
남길석이 상대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는데.
‘난 저자가 너무 두렵다. 어떻게 사람의 눈빛이 저렇게….’
그가 마음 내켜 하지 않으면서 억지로 전화를 받았다.
연락한 상대방이 다짜고짜 말을 내뱉었다.
“아니.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 남형이 데려온 새끼가 곧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냥 연구소로 보내? 아니면 사료로 만들어? 내 새끼들이 너무 굶주렸다고. 싱싱한 고기 좀 먹이면 좋을 것 같은데.
통화내용에 놀란 남길석이었다.
박민준의 눈치를 슬쩍 보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그게 대체 다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 형이 누굴 어디로 데려갔다는 겁니까? 연구소는 또 어디를 말하는 거고?”
순간 역겨운 상상 때문에, 따로 질문하진 않았지만.
통화 건 사람이 누군가를 사료로 만들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그게 결코, 농담이 아닐 거라 여겼다.
“너 누구냐? 남형 동생인가?”
“그렇습니다. 혹시 형이 데려간 사람의 이름이 김철진입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네 형이 우리에게 데려온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야? 동생이면 너도 어느 정도는 알 거 아니야? 안 그래?”
형이 어딘가로 데려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개 같은 상황에서 다짜고짜 반말을 들었다.
거기다 상대가 계속 이상한 말을 하는 터라.
남길석도 화가 났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내가 알긴 뭘 알아? 그나저나 철진이 어딨어? 지금 어디 있냐고?!”
“아니. 이 새끼가 미쳤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개소리 그만하고 어서 네 형이나 바꿔.”
“형은 지금 통화를 할 수 없어. 할 말 있으면 나한테 해.”
“그럴 순 없지. 형이 오면 이따 나한테 연락하라고 전해. 빨리 전화 안 하면 그 새끼 내 마음대로 처리할 거야. 알았어?”
뚜뚜.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멋대로 끊어버린 상대였다.
“빌어먹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당황한 그가 서둘러 통화목록을 살폈지만, 방금 걸려온 것처럼 발신자 정보 제한만 간혹 보일 뿐.
남길석이 모르는 사람의 번호 같은 건,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덥석.
남길석은 자신의 어깨를 누군가 집은 걸 느꼈다.
흠칫 놀란 그가 옆을 돌아봤다.
인기척도 없이, 그의 곁에 나타나 어깨를 제압한 박민준이었다.
“내가 원래 남의 일에는 영 관심이 없거든.”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까?”
“그래. 네놈이 말한 철진이란 이름을 나도 알고 있거든. 경기지부 김철진이 내 정보를 흘렸나?”
박민준과 남길석은 거리가 제법 있었다.
‘근데 그걸 들었다고?’
박민준은 원래 자신의 정보를 누가 흘렸는지.
그걸 확인할 참이었다.
마침 상대의 전화가 울렸고.
당황한 남길석을 보고 억지로 전화를 받게 했다.
그렇게 이상한 내용을 들었으니.
더욱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말해줬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래. 네 형이라는 인간 덕분에 방금 재밌는 경험을 했지만, 그렇다고 놓치면 안 되는 일이지.”
가뜩이나 형에게서 받은 전화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이자까지 신경 쓰게 만들다니.
“알면 어떻게 할 겁니까?”
“다신 그딴 짓을 못 하게 만들어놔야지.”
그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난 모릅니다.”
형을 배신할 순 없다.
실종된 친구가 말했을 리 없지만, 혹시 사람 일은 모르니.
의리를 지킨 그가 그대로 떠나려는데.
상대에게 잡혀 있는 어깨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것 좀 놔주십시오.”
대답 대신.
꽈~악!
순간 어깨에 엄청난 압박을 느낀 그가 비명을 질렀다.
“악!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어서 이거 놓으란 말입니다.”
“대답하는 거 봐서.”
“저는 모릅니다. 형을 따라온 것뿐입니다.”
“그렇게 성의 없이 굴면, 어깨를 영원히 못 쓰게 될 거야.”
빠드득.
단순한 협박으로 끝나지 않았다.
진짜 그의 어깨에서 뼈 소리가 났으니까.
이번엔 소리치지 않고, 이를 악물고 버틴 남길석이었다.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한 그가, 억지로 대답했다.
“전 정말 모릅니다. 거짓이면 절 죽이셔도 좋습니다.”
“그래?”
박민준이 그의 몸에 손가락을 톡 가져댔다.
그리고 시작된 엄청난 고통.
남길석은 자신을 죽여도 좋다고 했지만, 이렇게 심한 고문을 받을 줄은 몰랐다.
“으악! 악!”
비명을 들은 박민준이 여태 잡고 있던 상대의 어깨를 놔줬다.
남길석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의 눈이 반쯤 뒤집힐 무렵.
다시 손을 쓴 박민준이었다.
몸의 고통이 사라지면서 정신을 차린 남길석이었다.
그런데도 어깨의 통증만은 얼마나 심한지.
아픈 부위를 움켜쥔 그가 몸을 잔뜩 굽혔다.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거기다 저자의 손은 무슨 쇳덩이로 되어있나? 정말 으스러지는 줄 알았네.’
그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박민준이 말했다.
“아직도 대답을 안 할 건가?”
아까와 같은 패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가 힘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진짜 모릅니다. 형이 여기로 날 데려왔을 뿐입니다.”
이번엔 박민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고문 수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는 잘 모른다.
실제로 당해본 적이 없으니까.
대신 이걸 당한 상대는 100명 중 80명은 모두 사실을 말했다.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넌 정말 모르는 것 같군.”
“네. 전 진짜 모릅니다.”
“그럼, 네가 아니라 저기 기절한 놈이 나에 대해 뭔가 알고 찾아온 거겠지?”
“그럴 겁니다. 형이 당신에 대해 뭔가 들었다고 했습니다.”
서둘러 대답한 남길석이었다.
‘내가 형을 팔아먹은 꼴이 된 건가? 그냥 계속 모른다고 할걸.’
그러기엔 박민준이 너무 무서웠다.
고통도 너무 심했다.
당장이라도 자기 어깨가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박민준이 몸을 떨고 있는 그를 내려다봤다.
“그럼, 저놈을 깨워서 물어봐야겠군.”
“형님은 지금 마력 고갈로 기절했습니다. 병원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그냥 병원으로 데려가겠다?”
“어차피 자연회복 될 때까지 며칠은 의식이 없을 겁니다. 그때 다시 물어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면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을 거다.
박민준과 싸우든지, 아니면 아예 종적을 감추고, 당분간 몸을 사리든지.
하지만 박민준은 상대에게 시간을 더 줄 생각이 없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박민준이 남길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남길석은 그가 자기 형에게 뭔가를 하려는 걸 봤다.
다른 때 같으면 막았을 텐데.
지금은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서, 일어날 수도 없었고.
번쩍.
박민준의 손길이 닿더니.
기절한 남길영이 눈을 떴다.
“으음. 뭐지? 내가 기절했었나? 왜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은 거야? 길석이 어딨어?”
“형. 나 여기 있어.”
옆을 돌아본 그의 눈에 초췌한 몰골의 동생이 보였다.
“넌 또 왜 그래?”
형제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만. 네놈들이 안부 인사나 하라고 널 깨운 게 아니다.”
흠칫.
그는 목소리만 듣고도 상대가 누구인지 않았다.
“왜 우릴 잡아 둔 거지? 내가 당신을 쓰러뜨리지 못했다고 해도, 영입만 못 한 것뿐이잖아?”
“너. 나에 대해서 김철진에게 듣고 온 거냐?”
“누구?”
남길영이 모른 척 연기했다.
박민준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누구냐고 물었던 그때.
남길영의 눈빛이 작게 떨린 걸 봤다.
“거짓말이군.”
“무슨 소리지? 내가 왜 거짓말을 해?”
“두고 보면 알겠지.”
박민준이 발로 톡 건드렸다.
“더럽게 발로 뭐 하는……. 악!”
순간, 엄청난 고통을 받은 남길영이었다.
이미 탈진했던 상태에 몸의 고통이 더해지자.
그는 오래 견딜 수 없었다.
다시 기절했다.
그걸 박민준이 건드려서 도로 깨웠다.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네놈은 기절도 할 수 없다.”
“뭐야? 대체 나한테 왜 이래?”
“김철진이 내 정보를 너에게 팔았나?”
“김철진이면 내 동생 친구 놈 같은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난 몰라. 모른다고.”
박민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절하는 바람에 고통이 부족했군. 그럼 다시 시작하지.”
“그게 무슨. 으악!”
어째서인지.
이번엔 정말 기절도 하지 못했다.
정신을 잃을 것 같으면, 귀신같이 알고 박민준이 그를 깨웠다.
죽음과 같은 고통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이를 악물고 버티더니. 결국, 그가 눈을 뒤집어 깠다.
입에 게거품까지 문 남길영.
그걸 본 동생 남길석이 박민준에게 매달렸다.
“제발 그만하십시오. 이러다 형이 죽겠습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절대 안 죽일 테니까. 아직은.”
친절하게 답해준 그가 남길영에게 다시 발길질했다.
퍽!
이번엔 강하게 얻어맞는데.
오히려 그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발길질이 아프긴 해도,
대신, 엄청난 고통이 사라졌으니까.
살 것 같다는 표정의 그를 향해, 박민준이 물었다.
“네놈이 기절한 사이에 전화가 왔었다. 그자가 김철진이에 대해서도 이미 말했단 말이지.”
“뭐? 그게 사실이야?”
“그래. 네놈이 직접 전화를 안 받아서 연구소로 데려갈 거라고 전하라더군.”
연구소라는 말을 듣고, 당사자인 남길영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그의 동생도 깜짝 놀랐다.
‘아니 진짜, 어떻게 통화내용을 전부 엿들은 거지?’
한편, 남길영은 그가 연구소라는 단어를 언급하자 깜빡 속아 넘어갔다.
“이런 개자식이. 내 허락도 없이 누구 마음대로 그런 짓을.”
말을 하던 그가 흠칫 놀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