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수원 블루 썬더 길드.
나름대로 한국에서 알아주는 헌터 집단이지만, 최근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한 길드장 남길영 때문이었다.
길드장의 권한이 큰 건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부길드장이나 주요 간부도 모르는 일이 자꾸 벌어지고 있었다.
대규모 운영자금이 비밀리에 다른 곳에 투자된 정황이 포착되었다.
일부 고위 간부들이 그걸 항의했지만, 오히려 길드에서 쫓겨나거나 길드장과 독대 후 입을 꾹 다물었다.
방금도 남길석이 길드장인 형과 크게 다퉜다.
“형! 철진이 어떻게 했어?”
게이트 관리국 경기지부 기동 2팀장 김철진의 실종.
남길석은 자신의 친구가 사라진 걸 최근에 알았다.
그리고 아주 공교롭게도 그 시점이, 자신의 형이 그에 관해 물어본 뒤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의심이 가득한 동생의 질문에도 남길영은 뻔뻔했다.
“철진? 김철진인가 뭔가를 말하는 건가? 네 친구 일을 갑자기 나한테 왜 물어보는 건데?”
정말 모르겠다는 형의 얼굴을 보고 남길석도 헷갈렸다.
형이 한 일이 아닌가?
“정말 몰라?”
“그렇다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딜 가려고?”
“새 인재 영입.”
“누구?”
“누구긴. 오산역에서 나보다 앞서서 괴물을 잡은 놈이지.”
“그 사람이 어디 사는 누군지, 형이 어떻게 알았는데?”
“내가 명색이 길드장인데 인맥이 따로 없겠냐? 아는 사람한테 들었다. 아마 넌 말해줘도 모를 거야.”
“형의 지인 중에 내가 모르는 사람도 있어? 진짜 요즘 왜 그래? 나한테까지 비밀이 너무 많은 거 아냐?”
“인마. 내가 뭘 어쨌다고.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
김채영의 입에서 연신 투정이 나왔다.
“정말 이런 식으로 강해질 수 있다고요?”
“그래. 내가 수련했을 때와 시스템은 좀 다르지만, 결국엔 이 방법이 최고야.”
“알았어요. 하지만 일주일만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그만둘 거예요.”
“그 전에 효과가 없으면 내가 먼저 다른 걸 시도해 볼 거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어서 움직여.”
박민준의 훈련은 단순했다.
팔과 다리에 엄청나게 무거운 걸 매달고, 지겨울 정도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
단, 검에 마력을 주입한 상태로 버티면서.
세로로 내려치고, 가로로 벤다. 마지막으로 정면을 찌른다.
흔히 무림에서 삼재 검법이라고 불렀지만, 솔직히 검법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어린아이라도 처음 검을 손에 쥐면, 장난처럼 내려치고, 베고, 찔러 볼 테니까.
하지만, 박민준은 이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각성하면 힘과 지구력이 강화된다.
보통 사람은 할 수 없을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래서 각성한 힘에 휘둘리면 훈련을 게을리하게 되고, 결국, 지금의 헌터들처럼 불균형한 모습을 보이게 될 터.
운이 좋게도, 그의 조카 김채영은 아직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헌터였다.
‘이제라도 철저하게 관리하면 나쁜 습관을 없앨 수 있다.’
그는 조카가 단순히 기초 검법만 훈련하도록 두지 않았다.
보법의 중요성을 일찍 다른 헌터들의 싸움을 구경하면서 깨달았으니.
‘경신법을 직접 전수할 수는 없어도, 효율적인 보법을 몸에 익히게 하는 건, 어느 정도 훈련으로 가능하다.’
그것만으로도 적의 공격을 막고 바로 방어한다든지, 공격을 흘려보내고, 뒤를 노린다는 식의 응용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가 전에도 말했듯.
변초와 임기응변이 전투에서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조카를 열심히 굴리고 있는데.
또 다른 방문자가 나타났다.
수억 원은 될 듯한 고급 외제 차가 대문 앞에 서는 게 보였다.
거기서 내린 사람은 남자 둘.
한 명은 40대, 다른 하나는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초인종을 누르려던 중년 남자가 안을 들여다보고 소리쳤다.
“여기가 박민준 씨 댁입니까?”
훈련하던 김채영이 동작을 멈췄다.
“또 외삼촌을 찾아온 손님인가 봐요.”
고개를 끄덕인 그가 손을 대문 쪽으로 내저었다.
철컥.
문이 열리고.
그대로 허락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이었다.
박민준과 눈이 마주친 그들이 고개를 숙였다.
다시 빠르게 고개를 쳐든 남길영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이고. 박민준 씨. 여기 계셨군요. 제가 운이 참 좋군요.”
“넌 또 누구냐?”
“저를 기억 못 하시는군요. 지난번 오산역 사건 때 저도 현장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박민준의 눈에는 그가 딱히 눈에 띌 만큼 강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 거기 있었던 S급 헌터 이지원 정도는 되어야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았을 터.
“너 같은 떨거지가 거기 있었던 걸 내가 어떻게 기억하지?”
모멸감을 느낀 남길영이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말이 조금 심하신 것 같은데. 난 대(大) 블루 썬더 길드의 남길영 길드장입니다.”
그가 떵떵거리며 자기소개를 했지만, 박민준은 전혀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옆에 있던 김채영이 놀랐다.
“파란 번개의 남길영.”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남길영이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박민준을 바라봤다.
“그래도 다행히, 당신 옆에 날 아는 아가씨가 있군요.”
자신이 나름 유명하다는 걸 자랑하면서 그를 영입하겠다는 말을 꺼내려고 했는데.
박민준이 그걸 싹 무시하고, 조카에게 말했다.
“뭐 해? 하던 거 계속해야지. 왜 멈춘 건데?”
“손님이 오셨잖아요?”
“누가 손님이야? 저 떨거지들?”
“떨거지라니요? 외삼촌, 저기 저분은 A등급 각성자에 번개 특성을 가진 선배님이세요.”
“번개?”
“네. 저도 실제로는 못 봤지만, 푸른색 번개를 손에서 뿜어낸다고 하던데요?”
하하하.
갑자기 크게 웃은 남길영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멋대로 끼어들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래서 내가 블루 썬더라고 불리는 겁니다.”
그는 자기 특성이 아주 강하고 독특하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자신이 이끄는 길드명 블루 썬더도 거기서 따온 거였고.
비록 A등급 각성자이지만, 특성 덕분에 S급에 버금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박민준도 이번엔 관심이 좀 가는 모양이었다.
“번개를 쓰는 사람은 나도 본 적이 없는데.”
다른 세상에도 번개를 이용한 무공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튼, 넌 계속 수련해.”
“알았어요.”
조카에게 계속하라 말한 그였다.
그대로 남길영에게 다가가더니.
“어디 그 블루 썬더라는 걸 나에게 써 봐.”
“네?”
“네 특성을 날 향해 마음껏 사용해 보라고.”
“지금 제정신입니까? 아무리 자신감이 넘쳐도 그렇지, 내 번개를 맨몸으로 맞아보겠다고요?”
“그래.”
“난 당신을 영입하려고 온 겁니다. 싸우려고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혹시 거짓으로 그런 명성을 얻었나?”
박민준은 상대가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자, 살짝 도발했다.
거기 제대로 걸려든 남길영이었다.
원래는 상대를 영입하려고 왔는데.
‘졸지에 태워죽이게 생겼군.’
그는 박민준이 아무리 오산역에서 큰 활약을 보였다고 해도, 자신의 번개를 막아낼 거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세상에 내 번개보다 강한 인간은 없어.’
적어도 아무 장비도 없이, 인간의 몸으로 견딜만한 힘이 아닌 건 분명했다.
“날 도발해서 자살할 생각입니까?”
“뭘 망설여?”
박민준은 몰랐지만, 그의 특성에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위력이 강한 대신, 마력 소모가 엄청났다.
자칫 잘못하면 마력 고갈로 탈진하거나 쓰러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이러지 말고 저와 대화를 나눠보시지요. 아주 좋은 영입 조건을 제시하겠습니다.”
“날 영입하고 싶은가? 그럼 덤벼. 날 이기면 블루 썬더인지 뭔지 하는 네 밑으로 들어가지.”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난 나보다 약한 놈 밑으로 들어가지 않아. 날 이기면 무보수로 네 밑에서 일해주지.”
“좋습니다. 대신 죽어도 좋다는 각서라도 받고…….”
“그딴 건 필요 없다.”
“어째서 말입니까?”
“어차피 네가 날 어찌할 수 없을 테니까.”
빠드득.
이번엔 남길영이 진심으로 열 받았다.
그가 몸의 마력을 전부 특성에 쏟아붓기로 마음을 정했다.
‘저런 말을 듣고 꽁지를 빼면 내가 남길영이 아니라 다길영이다. 아주 새까맣게 태워 죽여주지.’
그럼 탈진을 겪고, 심하면 기절하거나 자신도 상처를 입을 수 있지만, 옆에 동생이 있으니.
그걸 믿고 힘을 발휘했다.
파 박.
박민준을 향해 양손을 빠르게 펼친 그였다.
그대로 하 앗!
강한 기합을 내뱉자.
파지지지직!
그의 몸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듯 보이더니.
번쩍! 콰르릉.
굉음과 함께.
파란빛의 번개가 박민준을 향해 쏘아졌다.
김채영은 외삼촌이 그걸 피할 줄 알았다.
이미 그가 엄청나게 빠른 걸 알았으니.
하지만 박민준은 검을 뽑더니.
그대로 앞으로 내민 게 다였다.
쾅!
금속으로 된 검으로 번개를 받아내면서, 폭발음이 들렸다.
거기 있는 모두가 그의 죽음 또는 엄청난 부상을 예상했다.
정작 당사자인 박민준은 눈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모든 걸 태워버릴 듯 보였던 번개였는데.
검 주변에서 맴돌 뿐.
검에 그을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또한, 그를 감전시키지도 못했으니.
‘어떻게 이런 일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남길영이 눈을 부릅떴다.
‘이럴 리가 없어. 이건……. 이렇게 무기력하게 끝날 순 없어.’
그가 마지막 남은 마력까지 쥐어짰다.
푸른 번개 특성을 획득한 이래로, 지금처럼 많은 기운을 표적 하나에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
사실, 그 누가 봐도 이 정도의 번개라면?
지난 오산역 사건 때 나타난 6등급 괴물도 물리칠 만한 힘이라고 느꼈을 거다.
그 정도로 엄청났고.
남길영이 굉장한 자신감을 보였던 거였는데.
지금은 그저, 자신이 가진 모든 기운을 쏟아붓고, 그대로 기절해 버린 게 다였다.
반면, 그의 모든 번개를 받아낸 박민준은?
그가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머리 위 하늘 쪽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검이 머금고 있던 번개가 빠르게 분출되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릉!
굉음을 내면서.
정말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뻗어 나가더니.
몇 초 뒤에 정적만이 감돌았다.
박민준이 조용히 검을 내리고.
놀란 김채영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에게 뛰어갔다.
“외삼촌! 괜찮아요?”
“당연하지.”
별거 아니라는 듯.
그가 작게 웃으며 검을 살폈다.
‘채영이에게 사준 검보다 이 검이 열에 더 강하다.’
만약 조카의 검으로 저 번개를 받았다면?
중간에 검날이 녹아내리고, 그걸 쥐고 있던 자신까지 감전되고 말았을 터.
물론 그땐 따로 번개를 상대할 방법이 있긴 했다.
한편, 담담한 박민준과 기뻐하는 김채영과는 달리.
엄청난 충격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
기절한 자기 형을 안고 있던 남길석.
아무리 S등급이라고 해도, 형의 블루 썬더만큼은 절대 받아낼 수 없을 거라고 여겨왔었다.
그런데 상대가 별다른 특성 발휘나 움직임도 없이, 검을 가볍게 내밀어 받아내 버렸으니.
“어떻게 이런 일이!”
형의 실패가 자신의 실패라는 듯.
크게 좌절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지켜보고 놀란 두 사람이 있었다.
“아니. 세상에. 방금 뭐가 하늘로 날아간 겁니까? 전기 몬스터라도 나타난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