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37화 (37/175)

37화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실력이다.

그럼 저 남자가 엄청난 안목을 지녔다는 건가?

‘이게 안목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야? 맨눈으로 봐서 재료를 어떻게 알고?’

그는 그저 이렇게 답했다.

“그냥 그게 제일 튼튼해 보였다. 내 조카의 화염에도 가장 오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골랐다고요?”

“그래. 지난번에 직접 만져보고 두들겨 봤잖아. 그때 내공도 불어넣었다. 다른 검과는 달리 내부부터 아주 단단하더군. 검의 균형이 잘 맞는 것도 알았고.”

“내공을 넣어봐서 알 수 있다고요? 그게 무슨 비파괴 검사 방사선이라도 돼요?”

“비파괴 뭐? 그게 뭔지 몰라도, 난 내공을 통해 많은 걸 알 수 있다. 무식하게 기운을 사용하는 너희들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세상에나.

박민준의 너무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그녀가 할 말을 잃었다.

김채영도 그걸 느끼긴 했지만, 지금은 그에게 선물을 받았으니.

분위기도 전환할 겸.

새로운 검을 들고 인챈트를 사용했다.

“외삼촌이 준 검을 제대로 시험해 볼게요.”

화르르.

빠르게 타오르는 검날.

조심히 휘두른 뒤 무기를 확인했다.

변형은커녕, 그을림조차 거의 없었다.

그마저도 이지현이 준 천으로 바로 닦아낼 수 있었다.

“우와! 이 정도로 튼튼한 검은 처음 봐요.”

“내가 고른 검이니까 당연하지.”

김채영이 뒤늦게 그의 검에 관심을 보였다.

“그 검도 외삼촌이 직접 고른 거예요?”

“그래. 참 빨리도 물어보는구나.”

“여기서 구했어요?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

“이것도 저 여자가 만든 검이다.”

“그럼 불에 강하겠네요?”

“아마 그렇겠지.”

“시험해 볼까요? 검 좀 잠시 빌려주세요.”

다른 사람 같으면 쉽게 자기 무기를 맡기지 않을 텐데.

그게 조카에게 검을 건넸다.

“고마워요.”

그녀가 곧장 인챈트를 사용했다.

검에 마력이 담기면서 화염이 솟구쳐야 하는데.

“이거 왜 이런 거예요?”

마력만 잡아먹을 뿐, 작은 불꽃조차 생기지 않았다.

“아무나 쉽게 다룰 만한 검이 아니지.”

“그걸 알면서 일부러 빌려준 거예요?”

결국, 포기한 그녀가 박민준에게 검을 돌려줬다.

호기심 어린 눈을 하던 이지현이 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척.

박미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딱히, 아무 말도 듣지 않았는데.

그가 이번에도 금덩이를 꺼냈다.

이번엔 두 개.

“이번엔 왜 이것밖에 안 줘요?”

“부족한가? 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대답을 듣고 이지현이 그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왜 그렇게 보는 거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박민준과 눈을 마주쳤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요.”

“뭐가?”

“내가 그 금을 받고 난 뒤에, 당신이 이번에도 딴말할 건지 알 수가 없다고요.”

“이번엔 아니다.”

“하긴 조카에게 주는 선물인데. 좋아요. 그럼 그것만 받을게요.”

사실 그녀는 금 한 개 정도를 생각했었다.

최신 합금이라 구하기 어려운 편이고, 또 그걸 제련하는 일이 쉽지가 않으니.

어쩌면 두 개?

마치 자신의 머릿속을 읽었다는 듯.

금덩이 두 개를 건넨 박민준이었다.

“이걸로 거래는 끝이다.”

“나도 알아요.”

그녀가 금덩이를 들고 박민준의 표정을 살폈다.

이번엔 정말 아무 말도 없었다.

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가 금을 양쪽 주머니에 넣었다.

김채영도 선물 받은 검이 마음에 들었는지.

탁. 달그락. 탁.

연속으로 몇 번이나 검을 뽑았다 넣고 있었다.

“정신없다. 그만해라.”

“죄송해요.”

조카를 조용히 시킨 그가 주인에게 말했다.

“오늘은 그만 가보겠다.”

“오늘 말고도 계속 또 오겠다는 건가요?”

“당연하지. 내가 아직 너보다 무기를 더 잘 만드는 사람을 찾지 못했거든.”

박민준의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에 자부심이 벅차올랐다.

자기 일을 남에게 인정받는 기분이란.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목이 뛰어난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으니.

웃음 짓던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었다.

“단지 그뿐이에요?”

“아니. 저 아이의 검이 상하면 네가 AS 해줘야 하잖아. 그때도 여길 다시 방문할 생각이다.”

아니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확 올랐는데.

뒤에 말을 듣고 바닥으로 처박혔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가게를 열고 일만 하느라 내가 너무 오래 솔로였나 보다. 그냥 막 아무에게나 괜히 설렜네.’

혼자 자책하는 그녀를 두고, 가게를 나선 두 사람이었다.

막상 밖으로 나왔는데.

박민준이 곧장 움직이지 않았다.

“외삼촌 뭐 해요? 집에 안 갈 거예요?”

대답은커녕, 아예 눈까지 감아버린 그였다.

잠시 후.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은 그였다.

“이번엔 아무 일도 없군. 괴물이고 뭐고 전혀 없어.”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박민준이 조카의 차에 올라탔다.

외제 차가 아니고, 스포츠카도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좋은 국산 차였다.

“아까도 묻고 싶었는데. 넌 왜 이런 차를 모는 거지?”

“그럼 뭘 타요? 그리고 제 차가 뭐 어때서요?”

“내가 여태 본 헌터란 인간들은 모두 외제 차를 탔거든. 실력도 형편없는 주제에.”

“외삼촌이 누굴 얼마나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저 같은 C등급 헌터가 타기엔 적당한 차예요.”

“그래?”

“네. 그래요.”

퉁명스럽게 대답한 그녀가 시동을 걸었다.

차를 출발하려다 말고.

보조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삼촌은 면허도 없으면서 내 차를 가지고 뭐라고 할 자격이 있어요?”

“너도 알잖아. 내가 20년간 지구에 없었다니까.”

“그 전에 땄으면 되죠. 저도 20살이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취득했단 말이에요.”

“음……. 그때 난 어차피 차를 살 돈도 없었고. 면허 시험도 너무 어려웠어.”

“하긴. 요즘 면허는 학원만 다니면 아무나 다 금방 딸 수 있긴 하지요.”

“그래?”

조카의 말에 솔깃해진 그였다.

“네. 아마 지금 시작하면 대기자가 많긴 해도 한 달 안에 딸 수 있을걸요?”

“한 달?”

“왜요?”

“생각보다 너무 길어.”

“한 달이 길어요?”

“어. 일주일이면 될 줄 알았거든.”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네요. 제가 앞으로 교육을 많이 해드릴게요.”

“딱히 그럴 필요는 없다. TV가 있거든. 인터넷도 할 줄 알고. 야후~에 없는 게 없잖아? 너도 알지. 요즘도 제일 잘 나가나?”

“아니요. 그거 한국에서 철수한 지 오래됐어요.”

“그래? 그래도 컴퓨터로 인터넷을 할 수 있을 거 아냐?”

“그건 맞아요.”

“그럼 우리 채영이 버디 친구 아이디가 뭐니? 그건 당연히 요즘에도 인기가 있겠지? 채팅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는데.”

“아…. 몰라요. 기억 안 나요.”

“기억이 안 나? 버디 친구 안 쓰나? 그럼 요즘엔 뭐로 채팅하는데?”

“업무 할 땐 내부 메신저나 까톡 쓰고, 친구들이랑은 주로 페메를 써요.”

“까톡? 페메? 그건 또 뭐야? 아무튼, 거기도 아바타는 꾸미지?”

박민준의 말에 그녀가 할 말을 잃었다.

애써 그를 외면하며 차 시동을 걸었다.

“계속 말하면 끝도 없겠어요. 우선 집에 가서 도와 드릴게요.”

“그래. 우선 아바타부터 최신으로 꾸며보자. 신세대가 뭔지 보여주겠어. 우리 채영이 아이템까지 다 사줄게.”

이상할 정도로 갑자기 신이 난 외삼촌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그녀였다.

***

한편, 박민준과 통화를 마친 게이트 관리국 방수열 부장이었다.

그가 피곤하다는 듯,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아니,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국장님과 대통령님께서 다시 만나자는데 그걸 귀찮다고 거절해?”

그 옆에 있던 국장이었다.

통화도 엿들었는지.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건방진 놈. S등급이 되었다고 아주 기고만장하군.”

“어떻게 할까요? 대통령님이 당장 오늘 저녁에 만나자고 하셨는데.”

“자네가 직접 그놈을 찾아가서 반드시 데려와.”

“제가요?”

박민준을 만나러 가라는 말에, 방수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럼, 밑에 그 많은 부하 직원들을 두고, 내가 직접 가?”

“아닙니다. 제가 가야지요. 그럼 소해진 차장을 데리고 지금 바로 그자를 찾아가겠습니다.”

“소 차장은 왜?”

“그자와 소 차장이 나름대로 친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 그놈이 말도 못 하는 사람이랑 언제 친해졌대? 수화라도 할 줄 아나?”

자기가 말해 놓고 재밌다는 듯.

아무렇게 의미 없는 손짓을 하면서, 혼자 웃음을 내비쳤다.

그런 국장을 보며 방수열도 질려버렸다.

‘이렇게 생각 없고 무식한 인간이 국장이라니. 나도 참 상사복도 없지. 언제쯤 다른 국장이 오려나? 제대로 된 인간이 오긴 할까?’

망할 놈의 게이트 특별법 때문에.

국장의 정년은 아직 멀었다.

5년마다 임기 재연장도 가능하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가 당분간 잘릴 일이 전혀 없을 거란 점이 방수열에게는 절망이었다.

그가 소해진을 호출했다.

“소 차장. 지금 바쁜 일 없으면 나와 함께 잠시 어디 좀 가지.”

***

아주 다행히도 박민준의 집에서 그를 만난 방수열이었다.

“역시. 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여긴 또 어쩐 일이지?”

“오늘 저녁 만찬에 박민준 씨를 모셔가기 위해 왔습니다.”

“그건 내가 아까 거절했을 텐데.”

“전화로 거절당해서 제가 직접 온 겁니다.”

“바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나저나 저 여자는 왜 또 온 거야?”

소해진을 보고도 생각보다 반가워하지 않은 그였다.

‘뭐지? 둘이 좀 친해진 게 아니었나?’

박민준이 보인 예상 밖의 태도에 방수열이 당황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2인 1조로 다녀야 해서 데려온 겁니다.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그럼 그만 귀찮게 굴고 꺼져.”

“어떻게 그런 말을.”

“내 저녁 시간을 그 인간들과 낭비하고 싶지 않아.”

“그 인간들이라니요? 국장님과 대통령님이십니다.”

“그래서 뭐? 그자들이 원하면 날 언제든 오고 가라 할 수 있다는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방수열은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려 했다.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살기를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를 찍어 누르던 엄청난 기세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정말 사람이긴 한 건가?’

방금은 정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기절해버렸을 수도.

한편, 소해진은 뭔가 갈등하는 눈치였다.

박민준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설렜었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듯.

무관심한 그의 태도를 접하고, 그녀의 기가 확 죽었다.

박민준은 잠시 그녀의 검을 봐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계속 연을 이어갈 생각 따윈 없었다.

그래서 방수열과 그녀를 동시에 내보내려 했다.

“소 차장. 뭐 해요? 어서 따라 나오지 않고?”

소해진이 상사의 말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넌 왜 안 나가? 저 녀석의 말 안 들려?”

대답 대신.

차르륵.

팔찌를 꺼내서 연검으로 만들었다.

하늘하늘.

기존에 그녀가 선보인 절도 있던 연검술이 아니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박민준의 검술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런, 소해진에게서 신선함을 느낀 그였다.

‘자신만의 검을 버리고 날 따라 해보겠다고?’

좋은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정답은 아니다.

당장 봐도 소해진의 검은 그를 따라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그걸 얻은 대신, 상대를 제압할 힘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팔랑거리는 여유로움 속에 벌침이 숨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이 오로지 힘만 잔뜩 빼는 데 집중하다니.

“그게 아니야. 내가 힘을 빼라고 말했다고, 그런 식으로 검을 휘두르다니. 생각이 없나?”

멈춰 선 그녀가 자기의 검을 박민준에게 건넸다.

“갑자기 찾아와서 날 귀찮게 하는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가 연검을 받아들었다.

박민준이 검술을 펼쳤다.

이번엔 전에 보여준 연검술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앞서는 곤륜산을 자유롭고 여유롭게 나는 나비 같았는데.

지금은 절도있는 모습이었다.

휘! 휘~익! 휙! 휙!

연검의 부드러운 칼날이 이리저리 거침없이 움직이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었다.

그의 검이 곤륜산의 나무를 뒤흔들며, 뿌리째 뽑을 듯한 태풍과도 같아 보였으니.

그걸 본 소해진이 충격에 빠졌다.

‘전혀 달라. 이분이 전에 보여준 검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