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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35화 (35/175)

35화

당장이라도 박민준에게 달려들 것 같은 백호 길드장이었다.

형의 돌발행동에 주희준이 속으로 크게 당황했다.

‘아무리 형이라도 저자한테 저러면 안 될 텐데.’

지난밤. 로비에서의 일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길드원 수십 명이 떼로 덤벼서 순식간에 전투 불능이 되었다.

자신도 어깨뼈에 금이 가고, 자존심이 뭉개졌다.

입단속을 철저하게 시켰고.

여태 잘 지켜왔다.

거기다 자기 형 주희철이 다혈질이라는 걸 알고 부길드장은 일부러 그걸 숨겼으니.

‘당장 복수하자고 했겠지. 아마 난리가 났을 거야.’

그래서 그냥 방심하다가 패드를 강제로 빼앗겼다고만 보고했었다.

그의 걱정처럼.

결국, 주희철이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날렸다.

탁자를 밟고 넘어가, 달려들었는데.

박민준이 손을 살짝 내미는가 싶더니.

탁!

요란하게 뛰어든 상대를 아주 간단하게 제압해버렸다.

역동적인 자세로 몸이 갑자기 굳어버린 주희철이었다.

스스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형님! 누가 옆에서 부축해 주십시오.”

“네? 네! 알겠어요.”

주희준의 외침을 듣고, 얼떨결에 그를 받아낸 김채영이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그를 떠받는 조카를 보며, 박민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놈을 뭐 하러 받아주는 거냐?”

“외삼촌. 제발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이렇게 막 난동을 부리시면 어떻게 해요?”

“난동은 그놈이 부렸지. 내가 부렸나?”

“그래도 제가 다니는 길드인데. 좋게 대해 주실 수 있잖아요.”

작게 한숨을 내쉰 그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두둥실.

백호 길드장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어? 어!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주희철이 있는 허공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입을 떡 벌렸다.

박민준이야 자신이 한 일이니 무척 담담했고.

조카 김채영도 이미 겪은 일이라, 살짝 놀라긴 했어도, 겉으로는 태연해 보였다.

주희철의 몸이 그대로 천천히 움직이더니.

놀라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벌떡 일어난 주희준이 길드장을 받아냈다.

“형! 괜찮아? 왜 대답이 없어?”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형의 모습에 주희준이 크게 당황했다.

옆에 있던 두 사람이 손을 써봤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 괜히 아무것도 모르면서 형을 마음대로 만지지 말란 말이야. 그대로 가만 내버려 둬. 나가서 의사라도 부르든가.”

“죄송합니다.”

짜증을 낸 주희준이 박민준을 돌아보고, 빠르게 물었다.

“형님에게 뭘 어떻게 한 겁니까? 왜 움직이질 못하는 건지?”

“나한테 먼저 덤벼놓고 죽지 않은 걸 감사히 여겨라.”

“그게 지금 할 말이라고? 지난밤에도 그렇고. 너무 당신 마음대로 하는 거 아닙니까?”

피식.

대놓고 비웃은 박민준이었다.

그가 기세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뭐? 내가 진짜 내 마음대로 해봐? 오늘로 백호 길드를 문 닫게 해줘?”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허풍이나 농담으로 들릴 텐데.

그걸 들은 주희철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더욱이 박민준으로부터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죽음, 파괴, 소멸.

한국 10대 헌터 길드라는 명성의 백호 길드다.

전 세계로 따져도 100위 권 안에 항상 들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 그냥 박민준의 말처럼 망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박민준 옆에 있는 조카야 괜찮을 거라고 쳐도, 태백 길드 사람들도 무척 태연한 모습이었다.

얼굴이야 놀란 상태긴 하지만, 아무런 기운도 받지 않는 듯 보였으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이냐? 왜 우리만?’

점점 강해지는 중압감에 이를 꽉 물고 버틴 주희준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빠드득.

입안에서 나는 소리까지 들렸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김채영이 자기 외삼촌을 말렸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젠 그만 하세요. 네?”

“내가 뭘? 그냥 저놈들에게 주제 파악을 시켜주는 것뿐인데.”

“절 위해서 와 주셨잖아요. 그러니 제발 그만 해요.”

두 번이나 자기를 말린 조카를 보고.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숨 막히게 하던 기운이 사라지고.

헉헉!

백호 길드의 세 사람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다만 아직도 움직이지 못하는 길드장이라.

그걸 본 김채영이 다시 말해야 했다.

“길드장님도 풀어주세요.”

박민준이 대답하는 대신 손을 내저었다.

무형의 기운이 뻗어 나오더니.

주희철의 몸을 건드렸다.

순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 그였다.

윽! 하는 소리를 내며, 힘없이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형님”

주희준이 길드장에게 다가가려 했는데.

정작 본인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몸이 잔뜩 긴장했다가 풀어지면서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 옆에 있던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고.

한쪽에서 조용히 눈치를 보던, 태백 길드 사람들이 일어났다.

움직이기 전에, 슬쩍.

박민준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어서 일어나십시오.”

부축받고 나서야, 자기 자리에 앉은 백호 길드 사람들이었다.

“이젠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잠시 정적이 찾아오고.

대회의실에 숨소리만 들렸다.

그걸 먼저 깬 사람은 박민준이었다.

“무능하고 약해빠진 네놈들이 내 하나뿐인 조카를 사지로 내몰았다. 그것도 모자라, 오늘 불러다 놓고 애를 몰아붙여? 죽고 싶지 않으면 그딴 자세를 더는 보이지 마라.”

다른 때 같으면 당장 반박하고 나섰을 텐데.

백호 길드 측에서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평소의 백호 길드장 같으면 저렇게 말하는 상대의 입을 찢어놓지 않았을까?

주희철이 실제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금방 손힘을 풀었다.

그는 상대가 A등급 헌터인 자신을 가볍게 제압할 정도의 강자라는 걸 모르지 않았으니.

‘저자가 무슨 비공식 S등급이라도 된다는 건가? 대체 왜 여태 저자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은 걸까?’

아까부터 계속 느꼈는데. 저자를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박민준을 잠시 바라본 백호 길드장이다.

그가 잠시 상대를 살피고 물었다.

“당신. 혹시 오산역 게이트 사건 때 현장에 있었나?”

“그래. 내가 거기 나타난 괴물을 처리했었지.”

“역시.”

고개를 끄덕인 주희철이 자신의 멍청함을 타박했다.

‘저자를 이제야 알아보다니. 설마 희준이도 몰랐나?’

동생을 돌아보니.

‘저 녀석은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도 왜 내게 미리 말을 하지 않았지?’

주희준도 형에게 말하지 않은 걸 지금 와 후회했다.

너무 늦은 뒤였다.

‘이런 멍청한 놈. 그런 괴물을 처리한 자를 만나는 일인데. 나한테 미리 경고도 하지 않다니.’

동생에게 화가 많이 난 그였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박민준 씨. 앞서 내 무례한 행동을 사과드리겠습니다.”

“받아주지.”

“감사합니다. 그럼, 용서받았다고 알고, 제안하겠습니다. 우리 길드에 들어오시겠습니까?”

“형님!”

갑작스러운 길드장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설마 박민준이 이 정도로 강자인 걸 알았다고 해도, 다른 일을 하는 중에 영입을 시도할 줄은 몰랐다.

“그건, 거절한다.”

백호 길드장의 제안을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한 박민준을 보며, 또 놀랐다.

보통 10대 헌터 길드에서, 그것도 무려 길드장이 영입 제안을 하면 고민하는 티라도 낼 텐데.

‘저자는 정말 거침이 없구나. 아니, 이미 어느 한 곳에 영입된 건가?’

그렇다면 주작 길드나 게이트 관리국이 아닐까?

패드를 들고 간 곳이 주작이고, 게이트 관리국의 부국장과 자길 찾아왔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주희준의 예상은 빗나갔다.

백호 길드장의 물음에 그가 바로 답했으니.

“내가 너무 늦었군. 하긴, 당신 같은 사람을 미리 알았다면, 다른 곳에서 진작 영입했겠지.”

“난 그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다. 앞으로 당분간 그럴 마음이 없고.”

“어째서 그런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보다 약한 놈들의 말을 듣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거든.”

그의 너무 당당한 태도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조카 김채영마저도 그가 너무 자신감이 넘친다고 생각할 정도.

물론 그녀도 박민준이 S등급이라는 얘기는 들었다.

직접 그의 헌터 등록증도 봤고.

‘그래도 세상에 얼마나 많은 강자가 있는데. S등급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S등급 헌터가 다른 각성자들을 압도한다고 하지만, 그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전혀 없는 건 또 아니었다.

The one.

더원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있다.

현재 알려진 미국 최고의 헌터.

그리고 Special Three.

스페셜 쓰리. 또는 최강 트리오라고 불리는 3명의 헌터가 그 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 네 명은 다른 S급들보다 월등히 강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하하. 자신보다 약한 사람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대회의실 가득.

적막을 깨는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호탕하게 소리 낸 주희철이었다.

그가 돌연 무표정한 얼굴로 박민준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내 자리를 준다고 하면? 그럼 우리 백호 길드에 들어오겠습니까?”

“형님!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왜? 내가 길드장인데. 이런 일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건가? 정말 그래?”

“네. 당연히 안 됩니다. 우리 백호 길드는 형님만의 것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길드원의 몫이란 말입니다.”

둘이 말싸움하려는 걸.

박민준의 대답이 말렸다.

“그 또한, 거절한다.”

그 말을 들은 태백 길드장이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내가 지금 무슨 대화를 듣고 있는 거지? 다들 제정신이긴 한 건가?”

“그러게 말입니다. 대덕산 사건을 처리하자고 불러놓고 지금 이게 상황인지.”

백호 길드장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물었다.

“태백 길드장님은 내가 지금 미쳤다고 생각합니까?”

“그럼 아닙니까? 저자를 오늘 처음 본 것 같은데. 길드를 내어주겠다니요?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태백 길드가 여태 그 모양 그 꼴인 겁니다.”

“뭐요? 지금 막말하는 겁니까?”

“아니요.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저 박민준이란 사람을 직접 보고도 날 이해하지 못하다니. 그럼, 태백 제일 길드에서 머물다가 끝나고 말 겁니다.”

“말이 너무 심하군요. 난 당신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렇게 계속 사십시오. 난 나대로 기회를 잡을 테니.”

“기회라니. 대체 무슨 말인지.”

화를 내는 상대를 보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주희철 길드장이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머리가 있어도 생각이란 게 없는 건가?’

그는 박민준처럼 빠른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 같다.

어디 그뿐이랴?

‘세상에 그 누가 손가락 하나로 나를 제압할 수 있을까?’

아니, 사람을 손 하나 대지 않고 공중에 몸을 띄울 수 있나?

염력을 가진 S등급 헌터라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주희철 자신이 절대 그자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염력이나 스피드는 둘째치고, 그가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심지어 스페셜 쓰리라고 불리는 자들을 만났을 때도,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만약 박민준 같은 강자가 백호 길드의 새로운 주인이 되면?

세계 최고의 길드로 성장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가족을 위해 대형 길드와 서슴없이 맞서고, 그걸 홀로 감당해낼 실력을 겸비한 사람이 또 있지 않다면 말이다.

상황이 잠시 이상하게 흘러가긴 했지만.

박민준이 실력을 보여준 덕분에 일이 더 빨리 진행되었다.

그처럼 강한 사람이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란 주희철의 말 때문이었다.

이번 회의를 주최한 백호 길드장이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걸 반대할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었고.

박민준도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데 굳이 딴지를 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딱히 도움이 된 건 또 아니었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파충류를 닮은 약해빠진 괴물을 그냥 다 썰어버렸다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길드장 주희철이 다시 김채영에게 물었다.

“저분의 설명은 충분히 들었으니. 이제 김채영 씨에게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괴물이 굉장히 지능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던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겠습니까?”

“마치 누군가 놈들을 조종하는 것처럼 느껴졌었어요.”

“어떤 부분에서 말입니까?”

“놈들이 유리한 상황인데도 갑자기 도망치고, 불리한 상황에서 일부러 죽으려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였거든요.”

마치 충성심을 시험하겠다는 듯.

또한, 놈들이 제일 먼저 가장 강한 사람부터 먼저 노린 것도 수상하다고 했다.

“역시 그렇군요. 우리도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정말요?”

백호 길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의 시체는 물론이고, 괴물들마저 몽땅 사라졌습니다. 괴물이나 다른 누군가가 현장의 흔적을 지운 게 분명합니다.”

“누가 왜 그런 짓을?”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조사하면 알게 되겠지요.”

“그렇군요.”

“아직 피곤할 텐데. 수고 많았습니다. 오늘마저 쉬고, 내일 출근하십시오.”

“진짜요? 감사합니다.”

***

조카와 함께 건물을 나선 박민준이었다.

마치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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