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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33화 (33/175)

33화

“아! 그 남자.”

아주 미약한 신음.

괴물 때문에 여태 제대로 듣지 못했었다.

“남자? 혹시 네 남자친구도 여기 있었니?”

박민준이 새삼스럽다는 듯 얼굴을 보였다.

‘어린 줄 알았는데. 애인이라니. 진짜 다 컸구나. 하긴 20년이 참으로 긴 세월이긴 하지.’

외삼촌의 표정을 읽은 그녀가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

“여기까지 함께 도망친 사람이 저 밑으로 떨어졌어요.”

“진작 말을 하지. 지금 죽어가는 것 같은데.”

“깜빡했다니까요.”

“그래. 알았다.”

“그럼 어서 구해주세요.”

“나도 지금 그럴 생각이야.”

김채영을 안은 상태로 산비탈로 다가가더니.

그대로 폴짝 뛰어내렸다.

놀란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소리 질렀다.

꺅~

길고 날카로운 고음에 박민준의 이마가 일그러졌다.

비명이 고막을 사정없이 후벼팠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를 놀라게 할 마음이긴 했지만,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 안전하니까, 소리 좀 그만 질러.”

“몰라요. 무서워요. 눈도 못 뜨겠다고요.”

“괜찮다니까. 내가 널 놀리려고 그런 거야. 진짜 안전하다니까.”

실제로 움직임이 멈춘 걸 느낀 그녀였다.

‘제자리에서 뛰었나? 아니면 벌써 밑에 내려왔어?’

뭐가 되었든 간에. 이젠 자신이 안전할 거라고 믿었다.

‘눈만 살짝 떠볼까?’

용기를 낸 김채영인데, 다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절벽 중간에 둥둥 떠 있었으니까.

‘하늘을 날고 있어?’

그것도 얼마나 부드럽게 내려가고 있는지.

그녀는 자신이 멈춰있는 줄 알았다.

몇 초 뒤 땅에 내려서고.

그녀가 몸부림쳤다.

“내려놔요. 어서 놓으라고요.”

“알았다. 내가 장난이 좀 심했지?”

그가 짜증을 부리는 조카를 조심스럽게 땅 위로 내려놓았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녀는 오줌싸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로 무서웠다.

정색하는 조카를 보고, 그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끌었다.

“저기 있구나.”

젊은 남자가 기절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두 다리가 이상하게 꺾여 있었고.

끙끙.

곧 죽을 것 같은 신음을 입에서 흘렸다.

남자를 살핀 박민준이었다.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김채영이 천천히 다가가 그에게 물었다.

“괜찮겠죠?”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네. 다리가 몽땅 부러지고, 갈비뼈도 몇 개 나간 것 같구나. 어쩌면 머리도 다쳤을지 모르고.”

“그럼 고개는 왜 끄덕였어요?”

“이 남자가 죽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의술에 정통하지는 않지만, 이자를 도울 순 있지.”

“그럼 빨리 손을 써 주세요. 이 사람 덕분에 저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어요.”

“그래. 이미 손은 써뒀다. 이제 헬기로 옮기면 될 거다.”

“삼촌한테 헬기가 있어요?”

“아까 말한 아는 사람들의 도움이라고 볼 수 있지.”

“어디 있어요? 어서 가요.”

그녀도 평상시라면 헬리콥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괴물에게 쫓기고 싸우느라, 그걸 놓쳤다.

알았다면, 최후의 전투 대신, 헬기가 착륙한 곳으로 어떻게든 향했을 거였다.

“그럼 올라가자.”

“삼촌 혼자 어떻게요? 아까는 저 혼자라 안고 내려왔지만, 아 참. 그거 어떻게 한 거예요? 하늘을 날아서 내려왔잖아요?”

“운룡대팔식. 내가 익힌 곤륜파의 경신법이야.”

“운룡……. 뭐요?”

“무공이라고. 지금은 그렇게 알아두고. 자, 가자.”

조카를 번쩍 안아 든 그가 그대로 몸을 날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뭔가를 밟고 올라가듯.

수직으로 된 산비탈을 성큼성큼 뛰면서 위로 향했다.

“저 사람은요? 두 번 왔다 갔다 하려고요?”

“아니. 귀찮게 뭐 하러.”

“그럼?”

“저기 오고 있잖아.”

그가 슬쩍 몸을 틀었다.

덕분에 뒤를 볼 수 있게 된 김채영이었다.

그녀가 뭔가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저게 뭐야? 저 사람도 하늘을 날고 있네? ”

마치, 마술사가 다른 사람을 공중에 띄우는 것처럼.

허공에 둥둥 떠서, 외삼촌 옆에 따라붙듯 날아오는 남자의 모습이라니!

탁!

땅에 발을 디딘 박민준이 조카를 땅에 내려놨다.

기절한 남자는 아직 공중에 뜬 상태.

그대로 옆으로 쭉 밀려나듯 움직이더니.

괴물의 피가 만든 웅덩이를 피해서 바닥에 눕혀졌다.

“외삼촌~”

“왜 그렇게 불러?”

“방금은 또 어떻게 하신 거예요? 아깐 무공을 배웠다더니. 마술도 배웠어요?”

기절한 남자가 스스로 날아왔을 리가 없다.

분명, 외삼촌이 그렇게 만들 걸 거다.

그녀는 그렇게 확신했다.

“마술이 아니야. 이것도 무공이지.”

“방금도 무공이라고요? 그럼 뭐라고 불러요? 공중부양?”

조카의 말에 그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허공섭물라고 불러야 맞아.”

그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실상은 엄청난 일이었다.

만약 무림인이 그 광경을 봤다면 이렇게 말했을 터.

“무림 맹주께서 다른 사람을 품에 안고, 운룡대팔식을 펼치면서 수장 높이의 절벽을 날아 올라오셨다.”

“정말 대단한 경신법이 아닌가? 어찌 혼자 몸도 아닌 것을.”

“어디 그뿐이오? 경신법을 쓰는 동시에 허공섭물로 무려 성인 남자 한 명을 뒤에 달고 오셨으니.”

“과연 정파제일인이라. 우리 맹주님이 아니라면 그 누가 저런 경지를 선보일 수 있으랴?”

“무림 맹주님의 내공이 3 갑자를 넘어섰다고 하더니. 결코, 허언이 아닌 듯하오.”

“3 갑자? 내가 보기에는 5 갑자는 될 듯싶소.”

“그게 가능하오? 어찌 인간의 몸으로.”

1 갑자에 60년이니.

3 갑자면 180년이고.

5 갑자면 무려 300년이다.

100년도 겨우 살까 말까 한 인간인데.

저런 엄청난 내공을 몸에 지닌다는 건 분명, 굉장한 일이었다.

특히나 무림인이 허공섭물을 쓰더라도, 그저 술잔을 공중에 띄우거나, 술병의 술을 손대지 않고 따르는 허세 정도나 부릴까?

저렇게 큰 남자를 오랫동안 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마 무림 전체를 통틀어도 한 손에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다 경신법도 썼고.

아! 그러고 보니. 중간에 입을 열고 대화도 하셨네?

과연, 최소 3 갑자의 내공이 맞는 듯싶다.

***

박민준의 집.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인데,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장미령과 박철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딸 박민희는 손녀 일 때문에 급히 서울로 올라갔다.

“여보. 우리 채영이는 괜찮은 거겠지요?”

“당신 좀 가만히 앉아 있어 봐. 그렇게 서서 왔다 갔다 하니까. 나까지 다 정신이 없고 불안하잖아.”

“아니. 당신은 마음이 편해서 그렇게 앉아 있는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우리 손녀 걱정 때문에 불안해 죽겠다고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라고 채영이 걱정이 안 되는 줄 알아? 말을 말아야지. 나 원 참.”

손녀에 대한 걱정으로 집안 분위기 차가워졌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띵 동.

무거운 고요함을 깨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새벽이라 유난히 크게 울렸지만, 어차피 자는 사람도 없으니.

오히려 반겼다는 듯.

장미령이 걸음을 재촉했다.

“누구세요?”

“엄마 나야. 채영이도 같이 왔어.”

“그래? 정말 다행이다.”

“어, 다행이지. 이제 문 열어줘.”

“알았어. 그런데 민준이는? 함께 안 온 거야?”

“옆에 있어.”

“그럼, 말을 해야지. 괜히 또 걱정했잖아.”

“미안해. 근데 문 안 열어 줄 거야?”

“아아. 지금 열었어.”

집안으로 들어온 딸과 손녀를 맨발로는 아니고, 서둘러 슬리퍼를 신고 맞이하러 나온 장미령이었다.

뒤늦게 슬그머니 따라 나온 박철수도 보였다.

“엄마 추운데 뭐 하러 나왔어? 아빠도 나왔네요?”

무사해 보이는 그들을 보고, 장미령과 박철수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뭐 하러 나오긴. 내 새끼들 보려고 나왔지.”

“무사하니 다행이다. 네 엄마가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 물론, 나도 그렇고.”

박민희가 눈물을 글썽이며, 마주 미소 지었다.

“그렇게 걱정했어요? 죄송해요.”

“네가 왜 죄송해?”

잔뜩 지쳐있는 김채영이 두 사람에게 다가가 안겼다.

“할머니! 할아버지. 걱정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헌터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라.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래. 우리 강아지. 무사해서 다행이다. 고생 많았어.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외삼촌 덕분에 이렇게 멀쩡한걸요. 전혀 다치지 않았어요.”

괴물의 무기에 살짝 허벅지를 베이긴 했지만, 아까 서울에 도착해서 치료를 받았다.

피부만 베인 거라, 금방 나을 거라고 했다.

흉터가 좀 남겠지만, 다행히 잘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딸과 손녀를 확인한 그녀가 아들을 살폈다.

“넌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중간에 전화라도 주지 않고. 아니면 전화를 좀 받든가.”

“죄송해요. 충전을 안 하고 나갔더니. 배터리가 다 돼서요.”

“평소에 충전 좀 잘하고 다녀. 이번처럼 또 급한 일 생기면 어쩌려고.”

“알았어요. 채영이가 많이 피곤할 텐데. 다들 어서 들어가요.”

“그래. 그게 좋겠다.”

박민준의 말에 모두가 자리를 옮겼다.

정말 피곤했는지.

김채영은 대충 씻고 잠이 들었다.

나머지 가족은 소파에 앉아 자세한 얘기를 나눴다.

“어떻게 된 거야? 좀 자세히 말해봐.”

“민준이가 헬기를 빌려 타고 태백으로 갔대요. 거기서 우리 채영이를 구해서 돌아온 거예요.”

“헬기? 그런 걸 네가 어떻게 빌려? 대통령님이 도와준 거야?”

“그 인간은 별 도움도 되지 않았어요. 딱히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왜?”

“그냥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무슨 그런 대답이 다 있어?”

박철수가 중간에 끼어들어 물었다.

“그럼, 헬기는 어디서 난 건데? 설마 훔친 건 아니지?”

“아니에요. 내가 부리는 종. 아니, 아는 사람이 있어요. 그자에게 말해서 급히 빌려 탔어요.”

“갑자기 빌려달라고 했는데, 정말 허락해줬다고? 대체 누군데? 우리도 아는 사람이야? 헬기가 있으면 엄청 부자일 텐데.”

“아마 두 분은 모를걸요? 채영이라면 알려나? 아무튼, 굳이 아실 필요도 없는 인간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장미령이 다시 아들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우리 채영이는 왜 연락이 안 됐던 거니? 정말, 큰일이라도 생겼던 거야?”

“괴물이 나타나서 도망치느라 전화가 망가져서 연락을 못 한 걸 겁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직접 들으세요.”

걱정할까 염려돼 거짓으로 대충 둘러댔다.

어딘가 미심쩍은 장미령이 딸에게 다시 질문했다.

“민준이 말이 사실이니? 정말 별일 아니었던 거야?”

“네? 네. 그렇겠지요. 저도 서울에서 기다리다가 만난 거라,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요.”

“그렇구나. 아무튼, 잘 풀려서 다행이다.”

“네. 맞아요.”

한편, 박민준은 어머니의 질문을 받고 생각에 잠겼다.

‘너무 이상해. 단순히 괴물이 많이 나타났다고 그 많은 헌터가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해?’

아까 들은 조카 김채영의 말에 따르면, 그녀도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고 했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도마뱀은 개별로는 겨우 2등급.

하지만 주로 수십 마리가 뭉쳐서 다니기 때문에, 떼를 지어서야 겨우 4등급에 턱걸이할 수 있는 놈들이다.

그저 그런 괴물인데, 무려 A등급 헌터가 포함된 베테랑 전투 요원 30명이 몰살당하다시피하고, 2명만 살아남았다?

더욱이 태백 길드까지 따지면 인원이 더 많았을 텐데.

누가 봐도 수상하지 않을까?

아마 박민준이 조카를 도우러 가지 않았다면?

증인도 없이, 그저 4등급 괴물 떼에게 당해서 생긴 참변으로 상황이 종료되었을 것이다.

‘죽은 자들의 무능함이나 방심만 탓했겠지.’

하지만, 김채영에게 들은 팀장은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경험은 부족해도 단독 전투력은 정말 A급이라고 불릴만했으니까.

***

해가 뜨고.

백호 길드에서 다시 헬기가 떴다.

그걸 타고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길드장 주희철과 부길드장 주희준이었다.

“정확히 어디야?”

“저쪽입니다. 형님.”

박민준에게 돌려받은 패드의 기록을 확인하면서 사건 장소로 향했다.

“정말 여기가 맞는 거야?”

“네…. 형님. 분명 여기가 맞는데. 이것 참. 이상하군요.”

현장을 보고는 동시에 어리둥절해진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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