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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31화 (31/175)

31화

서울의 주작 길드.

인사팀장 김정빈은 늦은 시간에도 사무실에 있었다.

위~잉! 위~잉!

책상 위에서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보고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모르는 번호? 이 시간에 누구지?”

한국 10대 헌터 길드를 오가는 주작의 인사팀장인 만큼.

그는 아무에게나 자기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핸드폰에도 이름을 입력했다.

다른 때 같으면, 호기심에라도 전화를 바로 받았을 텐데.

이번엔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스팸인가? 받지 말까?’

그가 고민하는 사이.

스마트폰의 진동이 멈췄다.

무시하고 일을 다시 시작하려는데.

위~잉!

아까와 같은 발신자 번호.

이번엔 그가 바로 받았다.

“뭐야? 왜 이렇게 안 받은 거지? 가짜 번호를 알려준 줄 알았잖아.”

상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김정빈은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혹시 박민준 씨?”

“내 목소리를 바로 알아들었군. 그날 짜릿하긴 했지. 안 그래?”

“무슨 말이 그렇습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 용건이나 말씀하십시오.”

“너 내가 전화해서 기분이 나쁜 모양이구나? 내가 괜히 전화한 모양이네?”

어째서인지, 박민준의 그 말을 듣고, 참을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김정빈은 순간,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닙니다. 전화 잘 주셨습니다. 요즘 계속 야근하느라 좀 피곤해서 그랬던 겁니다.”

“그랬냐? 이 시간에 일하고 있다니. 너도 고생이 많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용건이?”

“아. 그렇지. 네가 있는 그 주작인가 뭔가가 아주 잘 나가는 회사라면서?”

“주작 길드입니다. 전 그곳의 인사팀장이고요.”

“그래서 말인데. 너희에게 헬리콥터도 있냐?”

“당연히 헬리콥터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전용 비행기와 대형 선박도 가지고 있습니다.”

“잘됐네. 그럼 나 좀 태워줘라.”

“네?”

“잘 안 들려? 지금 바로 헬리콥터 좀 쓰자고.”

“어딜 가시려고 헬리콥터까지 필요한 겁니까?”

“강원도 태백시. 대덕산.”

“강원도요? 갑자기 거긴 왜?”

“이유까지 말해야 해?”

“물론이지요. 아무리 저라고 해도 헬리콥터를 막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비행 허가를 받지요.”

“거기 있는 내 조카가 위험한 것 같아서. 급히 가야 해. 도와줄 거지?”

“위험한 겁니까? 그냥 추측입니까?”

“내 예감에는 100%. 증거는 없어.”

“그럼 좀 곤란하겠는데요.”

“돈 줄게. 이용요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길드에서 잘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안 된다고. 그 말이야?”

순간. 김정빈이 자신도 모르게.

네. 라고 대답할 뻔했다.

하지만, 그를 주작의 인사팀장으로 만들어준 예감이 그렇게 말하는 걸 가까스로 막았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이자를 도와줘야 할 것 같다.’

잠시 고민한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좋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빌려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수원에 계신 겁니까?”

“아니. 여기 서울인데. 백호 길드라고.”

“네? 거긴 또 왜 가신 겁니까? 설마 거기랑 계약하시고 저에게 그런 부탁을 하신 건 아니겠지요?”

“당연히 아니지. 내가 그렇게 생각이 없을까 봐? 너 날 뭐로 보는 거냐?”

당연히 네가 나쁜 놈이지. 라고 속으로 욕하면서, 입으로는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럴 리가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던 겁니다. 그럼 가까우니. 여기로 와주시지요.”

“헬리콥터로 데리러 오면 안 되냐?”

“서울 시내를 이 한밤중에 미리 신고도 없이 헬리콥터로 비행하라고요? 거기다 아무 곳에나 착륙도 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내가 바로 갈게. 여기서 거기까지 어떻게 가지?”

“백호 길드 본사에서 동쪽으로 쭉 오시면 주작이 그려진 건물이 보이실 겁니다. 주작이라고 쓰여 있기도 할 거고요.”

“알았어. 금방 갈 테니까, 바로 헬기 띄울 준비해.”

“네. 준비해놓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김정빈은 자신의 셔츠가 흠뻑 젖은 걸 알았다.

‘빌어먹을. 그 인간이랑 통화만 했는데도. 이렇게 되다니.’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나 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가 빠르게 셔츠를 갈아입고, 사무실을 벗어났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길드장을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헬기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

“갑자기 왜 헬기를 써야 한다는 거지?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김정빈이 본인도, 자신이 어딘가 불안해 보이긴 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길드장이 보기에도 그는 정상인 아니었다.

“제가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모양이군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박민준이란 사내를 돕기 위해서 당장 헬기를 써야 합니다.”

“그자가 누군데?”

“잊으셨습니까? 그자는 대한민국에서 3번째로 탄생한 S등급 헌터입니다.”

“아아. 그자? 근데 왜 그자가 자네에게 헬기 지원을 요청해? 전에 내가 물어봤을 때는 다신 상종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영입도 영영 물 건너갔고?”

그는 자신이 박민준에게 당한 일을 숨겼다.

당연히, 경기지부 임원이 당한 일도 길드장에게 말하지 않았다.

김정빈은 자신의 약점이자 치부를 남에게 드러낼 정도의 바보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게 같은 편이라고 할지라도.

“그랬었지요. 하지만, 그건 그때 제 착각이었습니다. 그분이 저를 친한 친구라고 여기시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도 저에게 도와달라 말한 거고 말입니다.”

“그래? 그럼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남았다는 건가? 그자를 영입할 수 있겠어?”

김정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놈은 그저 날 부려먹으려 들 뿐, 우리 길드에 가입할 생각은 없을 텐데.’

그래도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지라.

대충 둘러댔다.

“그것까진 잘. 하지만 도와주면 무조건 이득이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해? 괜히 남 좋은 일만 하는 거일 수도 있지.”

“저를 믿으십시오. 그자를 도우면, 우리에게도 분명 좋은 일이 될 겁니다.”

“뭘 믿고 확신해?”

“그냥 저의 감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별로 안 남았을 겁니다. 서둘러서 허락해 주십시오.”

잠시 고민하던 주작 길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번엔 자네 말대로 하지. 이왕 도와주는 거 적극적으로 지원해줘. 원하는 건 최대한 다 들어줘 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자네를 믿고 있는 거 알지?”

“물론입니다. 목숨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그만 나가봐. 아니지. 나도 그자를 좀 만나 봐야겠네.”

“아….”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아닙니다. 그분이 좀 특이한 성격이라.”

“왜 이래. 나도 한 성격 하는 거 몰라?”

주작의 길드장 운찬.

그는 A등급 각성자였고, S등급을 제외하면 나름대로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 능력을 자랑했다.

지금은 길드를 운영하는 데 더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당장이라도 필요하면 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울 준비가 돼 있었다.

다툼을 즐기는 체질이라고 할까?

그걸 아는 김정빈이라.

억지로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렇지요…….”

“그럼 어서 가지. 자네가 앞장서.”

“알겠습니다.”

마침, 그에게 박민준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지금 입구에 도착했어. 넌 준비 끝났나?”

“네? 거기서 벌써 이곳까지 오셨다고요?”

잠시 몇 분 대화를 나눴다고 백호 본사에서 여길 도착했단 말인가?

‘차를 타고 와도 이렇게 빠르진 못할 텐데?’

박민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래서 준비 안 됐어?”

“아닙니다. 지금 막 허락을 받은 참이었습니다. 조종사만 부르면, 바로 타고 가실 수 있습니다.”

“알았어. 그럼 내가 옥상으로 가면 되나?”

“네. 맞습니다. 그곳에 헬리콥터가 있으니까요. 통화가 끝나면, 제가 문을 열어드리라고 말해놓겠습니다.”

“됐어. 난 그냥 올라갈게. 그럴 시간에 빨리 조종사나 불러. 금방 오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그도 지금 같은 건물에 있습니다.”

“알았어. 그럼 나도 바로 올라갈게.”

“네? 네.”

무슨 신선한 개소리일까?

굳이 문을 안 열어 줘도, 알아서 혼자 옥상으로 올라올 수 있다고?

통화를 마친 그가 바로 헬기 조종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히 옥상으로 오라고 전하고.

길드장과 함께 위로 가려고 했는데.

그의 상사, 운찬이 창문을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방금 뭐가 지나가지 않았어?”

“네? 창밖으로 말입니까?”

“그래. 검은 물체가 휙! 하고 지나간 것 같았는데. 어두워서 내가 잘못 봤나?”

“새라도 보신 모양이군요. 계속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올라가시지요.”

“그래야지.”

그렇게 옥상에 도착했는데.

먼저 그곳에 올라와 있는 사람이 있었다.

‘옥상 문이 잠겨있어서 내가 열고 들어왔는데?’

조명이 역으로 비춰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뭐 이렇게 늦어? 저자가 조종사야?”

“박민준 씨? 정말 여길 올라오셨군요?”

“그게 뭐 대수라고. 내가 좀 급하니까. 어서 출발하지.”

“알겠습니다.”

크크 흠.

옆에서 낸 기침 소리를 듣고 김정빈이 서둘러 그를 소개했다.

“잠시만요. 여기 계신 이분이 바로 우리 주작 길드의 운찬 길드장이십니다.”

인사팀장을 통해 자기를 알린 그가 직접 나섰다.

“뭐, 이미 절 알고 있었겠지만, 내가 주작의 운찬입니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나도 널 만나서 반갑다.”

“혹시 여기를 뛰어 올라오신 겁니까? 아까 창밖으로 내가 뭘 본 것 같은데. 그게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나 맞아.”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네 말이 뭔지 알았으니까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지. 그리고 헬기는 고맙게 잘 쓰마.”

운찬의 말을 대충 받아준 그가 곧장 조종사를 닦달했다.

“조종사 양반. 어서 출발하지. 뭐 해? 지금 바로 날아가자고.”

운전석에 서둘러 앉은 조종사가 슬쩍 눈치를 봤다.

그와 눈을 마주친 김정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합니다.”

두두두두.

그렇게 얼빠진 표정의 길드장 운찬을 두고, 박민준이 탄 헬기가 날아가 버렸다.

“뭐야? 진짜 그냥 가버린 거야?”

“네? 네. 급하다고 해서 제가 바로 출발시켰습니다.”

“자네!”

“네. 말씀하십시오.”

고개 숙인 그를 한참 바라보더니.

절레절레 머리를 흔든 길드장이었다.

“흠.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다음에 얘기하지.”

“헬기 사용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나저나 참 대단한 사람이군.”

“그렇지요. S등급이라 그런지, 성격도 보통이 아닙니다.”

“아니. 성격이 아니라. 실력을 말한 건데. 자네도 다 들었지 않나?”

“뭘 말입니까?”

“건물 외벽을 타고 뛰어 올라왔다는 그자의 말.”

“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장치라도 쓴 게 아닐까요? 설마 맨몸으로 올라왔으려고요?”

“이제 생각난 건데. 전에 거대 다발 거미 사건 기억나나? 왜 인터넷에 잠깐 떠들썩했는데.”

“기억납니다. 그럼 박민준 씨가?”

“동일인물이겠지. 정말 잘된 일이야.”

“네?”

“아직 계약이 안 됐으면 다시 시도해봐. 우리가 최대한 다 지원해 준다고 설득해보라고.”

“아……. 네. 알겠습니다.”

“대답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닙니다. 그냥 몸이 갑자기 추운 것 같아서요.”

“나보다 젊은 사람이 벌써 이런 날씨로 감기에 걸리면 쓰나. 그럼 어서 여기서 내려가지.”

“감사합니다.”

먼저 내려가는 길드장이 아닌 헬기가 떠난 허공을 바라본 김정빈이었다.

‘아이고. 그 인간을 다시 만나서 설득하라고? 차라리 사표를 낼까? 아……. 그건 아닌가?’

***

태백시. 대덕산.

정신없이 도망치던 두 사람이 거대한 나무를 발견하고 그 위로 뛰어올랐다.

헉헉!

김채영이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옆에 있던 남자가 손으로 그녀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읍! 읍!

놀란 김채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을 돌아봤다.

쉿!

그가 조용히 하라며 자기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숨어 있는 나무 밑으로 뭔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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