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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30화 (30/175)

30화

“임무를 알려달라고요? 그건 외부인에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내 조카인데? 왜 말해줄 수 없다는 거지?”

“우리도 비밀이라는 게 있습니다. 더욱이 김채영 씨는 성인이지 않습니까? 그럼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하겠지요? 그분이 혼자인 것도 아니고, 곁에 유능한 팀원도 11명이나 있는데.”

박민준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성인이면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나이.

인원을 12명이나 보냈으면, 이쪽도 제대로 일을 처리하긴 한 듯 보였다.

“내 조카와 함께 간 자들의 실력을 네가 보증한다는 건가?”

“당연하지요. 우리 백호 길드의 전투 요원들은 모두 정예입니다. 물론, 신입인 당신의 조카분은 경험이 부족할지 몰라도.”

잠시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또 뭐가 말입니까?”

“내가 본 헌터란 놈들은 모두 약해 빠졌어. 그런 놈들을 믿고 내 조카의 안전을 맡길 순 없다.”

“그럼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정말 무례하군요. 아무리 이지원 부국장님과 함께 왔어도, 더는 편의를 봐 드릴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그만 나가주십시오.”

박민준이 엄청난 인재이지만, 그래 봤자 특별한 특성을 가진 A등급으로 판단했다.

‘저자가 S등급이었으면, 진작 TV에 대통령과 찍은 사진과 영상으로 난리가 났겠지.’

그게 주희준 부길드장의 생각이었고.

상식에도 맞았다.

여태 S등급이 나오면 늦어도 최소한 오늘까진 정체가 알려졌을 테니까.

앞서 두 명의 S등급 각성자도 그랬다.

‘A등급이 높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주제넘게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건가? 감히 우리 백호 길드가 우습게 보였나?’

헌터 일을 하면 당연히 위험이 따른다.

막말로 백호 길드가 김채영을 혼자 사지로 보낸 것도 아니지 않은가?

팀원 전체가 그녀와 동급이거나 더 높은 등급으로 이뤄졌는데.

조용히 화를 내는 그를 이지원도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부길드장님. 이분 심정을 이해해 주세요. 가족 일이니까 걱정하는 거잖아요.”

“압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기분이 좀 나쁘군요. 좋은 마음으로 도와드리려 했는데. 이건 너무하십니다. 김채영 씨가 애도 아니고. 여긴 엄연히 사기업입니다. 물론, 다른 곳보다 우리가 좀 더 공익을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저도 알고 있다니까요. 그래도 조금 더 김채영 씨의 상황에 대해 알아봐 주세요. 네?”

부길드장이 속으로 그녀를 욕했다.

‘그냥 돌아갈 것이지. 자꾸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군.’

잠시 혼자 생각하던 박민준이 이지원에게 물었다.

“내 조카의 위치는 아직 연락받지 못했나? 도와준다고 들었는데?”

“아! 잠시만요.”

폰을 꺼내 확인한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연락이 오긴 했는데. 그냥 강원도 태백시, 대덕산 부근이라고만 알려줬어요.”

산이 얼마나 크고 깊은가?

겨우 저 정도로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는 위치였고.

아무리 박민준이라고 해도, 조카를 찾아 혼자 산속을 전부 뒤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다.

휙!

그녀의 대답을 마저 들은 박민준이, 주희준 부길드장이 들고 있던 패드를 빼앗았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거 어서 돌려주십시오.”

“넌 이걸로 내 조카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지? 그렇지?”

“그걸 내가 왜 말해줘야 합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돌려주시길 바랍니다.”

박민준이 주희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아악!

자지러지는 비명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부길드장님!”

그걸 들은 백호 길드 사람들이 우르르.

로비로 뛰쳐나왔다.

“외부인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

“검까지 들고 부길드장님을 위협하고 있어.”

잠깐 사이였는데.

그 수가 무려 50명이 넘었다.

일부는 사무직이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전투 요원이었다.

수십 명이 자길 둘러싸고 있는데도, 박민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모두 돌격!”

“부길드장님을 구하자.”

말보다 몸이 앞서는 헌터들이라 그런가?

바로 박민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황한 이지원이 나서서 소리쳤다.

“잠시만요. 다들 흥분하지 말고 대화로 풀어요.”

하지만, 그녀는 외부인.

더욱이 부길드장을 제압하고 있는 사내의 편 같았으니.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떼로 달려드는 백호 길드원을 보면서, 이지원이 갈등했다.

손을 써 말아?

하지만 결국, 그녀는 손을 쓰지 못했다.

나름대로 편의를 봐주던 주희준 부길드장이었지 않은가?

그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왔다면 절대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외부인을 쉽게 만나주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먼저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 박민준이었고, 지금도 이지원은 그가 좀 심하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걱정되어도, 저래서는 안 되는데. 왜 힘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거야? 나한테 맡겼으면, 대화로 잘 풀었을 텐데.’

하지만 그건 그녀의 생각일 뿐.

주희준은 절대로 이번 일을 외부에 알릴 생각이 없었다.

한편,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람들과 한쪽 팔로 싸우기 시작한 박민준이었다.

오른손으로 주희준의 어깨를 잡고 있는 터라.

지금 그는 왼손만 써서 검을 들고, 상대를 물리치고 있었다.

원래 오른손잡이이면서도 움직임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의 검 끝이 닿는 범위 안으로 단 한 명도 접근하지 못했다.

백호 길드 쪽도 잡혀 있는 부길드장 때문에 함부로 총을 쓰진 못했다.

대신 그들도 근거리 무기를 들고 싸웠다.

검, 도, 창처럼 아주 다양한 무기가 달려들었지만, 역시나 박민준이 가볍게 휘두른 검을 당해낼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무기에 마력도 주입하지 않은 것 같은데?”

“뒤에 눈이 달렸나?”

“뭐가 저렇게 빨라?”

“젠장.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어.”

“내 검이 부러졌어?!”

“내 도도 마찬가지야.”

“창날도 다 나가버렸는데? 도대체 저 검은 뭐야?”

“대체 뭐로 만들었는데, 저리 멀쩡한 거지?”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그들이었다.

자신과 동료들의 망가진 무기를 보고, 다시 박민준을 보면서 슬금슬금 공포감이 밀려왔다.

‘우리 무기 대신 날 직접 노렸으면?’

‘박살 난 건 무기가 아니라 내 몸이었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릴 봐줬다는 건가?’

‘강하다. 너무 강해.’

처음 기세는 굉장했지만.

이젠 다들 눈치만 볼 뿐.

감히 박민준을 향해 달려드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잠시 소강상태가 되자.

박민준이 주희준의 어깨를 더욱 힘주어 잡았다.

“내가 여기서 조금만 더 강하게 움켜쥐면 이놈의 어깨뼈가 으스러질 거다. 그대로 괜찮으면 계속 덤벼 보든지. 아니면 꺼져.”

박민준은 저들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고.

만약 그가 상대의 무기가 아닌 목숨을 노렸다면?

박민준에게 덤벼놓고 여태 지금껏 살아있는 백호 길드원이 아무도 없었을 거다.

하지만, 쓸데없이 시간이 지체되어서 조카를 구하지 못할까, 그게 염려되었으니.

눈치를 보던 주희준이 어깨에 가해진 힘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악!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정말 몰라서 묻나?”

“조카분의 위치라면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윽. 대신 이것부터 좀 놓아주십시오. 악!”

말을 하던 그가 또 비명을 질렀다.

“먼저 말하면 놓아주지.”

박민준이 패드를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주희준이 멀쩡한 반대편 손을 들고, 화면을 빠르게 눌렀다.

대덕산 지도가 화면에 나오고, 빨간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그 수가 겨우 5개뿐이었다.

“이제 놓아주십시오.”

박민준이 그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아파 죽겠다는 듯.

자기 어깨를 연신 문지르는 주희준이었다.

‘빌어먹을 놈.’

원망 어린 눈으로 자길 바라보는 그에게 박민준이 물었다.

“아까는 12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것도 날 속인 건가?”

“아닙니다. 그 화면의 위치도 사실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추적이 가능한 사람만 위치가 나옵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계곡 사이나 동굴처럼 위치가 잡히지 않으면 표시되지 않습니다.”

“그럼 나머지 7명은 그런 곳에 있다는 건가?”

“아마도?”

고개를 끄덕인 그가 패드를 가지고 몸을 돌렸다.

“그건 안 돌려줄 겁니까?”

“그래. 이건 내가 가져가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담겼는데.

물론 암호로 잠겨있긴 하지만, 절대로 외부인의 손에 넘겨줄 순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엉망이 된 백호 길드원들에게 다시 덤비라는 말도 못 하고.

명령은 한다고 과연 저자를 제압할 수 있을까?

‘기습이 아니라 미리 이런 상황을 알았다면 이렇게 당하진 않았을 텐데. 하필 이 시간에 와서 갑자기 이러다니.’

백호 길드의 저력을 제대로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당했다는 생각으로 그는 크게 분노했다.

눈알을 굴리던 그가 이지원에게 다가갔다.

“부국장님. 이런 상황을 원하고 저자를 우리에게 데려온 겁니까? 저는 호의로 대했는데. 지금 이게 다 뭡니까?”

작게 한숨을 쉰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정말 미안해요. 나도 저분이 이럴 줄은 몰랐어요.”

아니,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난동을 부릴 줄은 몰랐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지원 씨를 봐서라도 여기서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해줄 수 있습니다.”

“정말로요?”

“네. 대신 저 사람의 손에서 패드를 빼앗아주십시오.”

“저도 그러고 싶은데.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네? 왜 못한다는 겁니까? 아니 혹시 지금, 이 상황에서도 우릴 안 도와주시겠다는 말입니까?”

“저야 당연히 지금 상황을 끝내고, 저분과 부길드장님을 동시에 돕고 싶지요.”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패드만 돌려주시면 잘 끝날 겁니다.”

“못해요. 내가 저분을 이길 수가 없어요.”

“진심입니까? S등급인 당신이 특성을 써도 저자를 못 이긴다고요?”

그녀는 신체적 능력이 다른 S등급보다 떨어지지만, 특성은 정말 강하다.

백호 부길드장도 그걸 언급한 거였고.

“내가 특성을 써서 저분과 제대로 싸우면 이 건물이 무너질 텐데요? 그래도 되나요?”

“그건 당연히 곤란하지요.”

아무리 패드가 소중하다고 해도, 건물에 비할까?

‘근데 이 여자가 계속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설마 저놈도 S등급이라도 된다는 건가? 아니면 왜 못 이겨?’

결국, 그가 이지원마저 못 믿겠다는 말을 했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아무리 이지원 씨라고 해도 더는 봐 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 도와서 저자를 제압해 주십시오. 물론, 건물은 안전하게.”

주희준의 말을 들은 그녀가 돌연, 표정을 바꾸었다.

그동안 미안하다는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살짝 화가 나 있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요? 진심이에요? 아니면 지금 상황 때문에 헛소리한 건가요? 제대로 답하세요.”

그녀의 말을 들은 주희준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잠시 미쳤었구나. 지금 누굴 협박한 거지?’

그는 지금 상황이 너무 꼬였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침착하던 자신이 잠시 무너졌을 정도로.

속으로 몇 번 한숨을 내쉰 그가 그녀에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가 말이 헛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네?”

“저도 알아요. 저분이 심하다는 걸요. 제가 잘 타일러 볼게요.”

“감사합니다.”

고개 숙인 백호 부길드장을 뒤로하고.

이지원이 박민준에게 다가갔다.

“얘기 다 들었죠? 위치를 알았으니까. 이젠 그걸 부길드장님에게 돌려주세요.”

“내가 거길 찾아가는 동안 위치가 바뀌면? 그땐 어쩔 거지?”

“아! 그렇네. 여기서 태백까지 바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줄 수 없다. 내 조카를 찾고 돌려주도록 하지.”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몸을 빙글 돌렸다.

“부길드장님. 아무래도 저 패드를 잠시 빌려주셔야겠어요.”

주희준에게 대답을 듣고 다시 뭔가 말하려는데.

그가 아무 말도 없이,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게 보였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저자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먼지처럼 없어졌다고요.”

“네?”

놀란 그녀가 다시 몸을 돌렸다.

박민준이 서 있던 자리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가 들고 있던 패드도 함께 사라졌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주희준이 조용히 상황실로 향했다.

“패드 위치 실시간으로 파악되지?”

“네. 가능합니다.”

“그럼 어서 추적해.”

타다닥. 타. 탁!

자판을 열심히 누른 직원이 바로 패드의 위치를 보고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서쪽? 태백시는 동쪽이잖아? 왜 반대편으로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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