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25화 (25/175)

25화

“S!”

“네?”

“에~스 라고! 우리 아들 각성 등급이 S 등급이란 말이야.”

“뭐예요? 어서 이리 줘봐요. 나도 봐야겠어요.”

“그래야지. 당신도 어서 봐봐.”

거의 빼앗듯이 남편의 손에서 등록증을 가로챈 장미령이었다.

그녀가 아들의 각성 등급을 보더니.

입을 떡 벌리고, 손등을 이마 위에 올렸다.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는 걸, 딸 박민희가 부축했다.

“엄마! 괜찮아?”

“어? 어. 난 괜찮아. 너무 놀라서 잠깐 현기증이 왔었나 봐.”

당연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을 통틀어 겨우 2명 밖에 없다고 알려진 S등급.

아들이 보여준 헌터 등록증에 S가 떡하니 박혀 있으니.

대한민국 3번째 S등급 헌터가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놀랄 판인데.

자기가 낳은 아들이라면?

“세상에! 우리 아들이 S등급이야! 어머. 너무 좋아. 아들. 엄마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어. 어떡하지?”

호들갑을 떠는 아내를 보며, 남편 박철수가 타박을 줬다.

“여보. 너무 흥분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어른이 애들 보는 앞에서 침착해야지.”

“당신은 뭐, 흥분하지 않은 줄 알아요? 지금도 목소리를 떨고 있는데.”

“내가 뭘 떨어? 그냥 놀라서 잠깐 그런 것뿐이지.”

“아니. 아빠, 엄마. 왜 싸워요. 그냥 기뻐하면 되잖아요?”

“그래. 우리 딸 말이 맞다. 우리 다 같이 기뻐하자꾸나.”

“축하해. 우리 아들.”

“그래. 나도 축하한다. 아들. 이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참 자랑스럽구나.”

박민준의 부모는 아들이 강한 헌터라는 걸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S등급일 줄은 몰랐다.

자기 자식이지만, 한국에 2명뿐인 S등급보다는 그저 막연히 A등급쯤 되려나?

A등급만 되어도 아주 강한 편이고, 또 드물긴 해도 전혀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게 상식적인 추측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보여준 헌터 등록증에 떡 하니.

적혀 있는 S등급을 보았고.

박철수의 솔직한 심정은 지금 집안을 방방 뛰면서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그 정도 기뻤다.

아마,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20년 만에 살아 돌아온 것 다음으로 기쁜 일이었을 거다.

다만, 가장으로서 눈치가 보여서 꾹 참고 있을 뿐이었지.

박민희도 동생이 S등급인 건 몰랐다.

오산역 사건을 해결하고 몇십억을 받았다는 말만 듣고, 친구들에게 자랑 전화하기 바빴다.

‘그냥 A등급일 거라고 대충 말했었는데. 애들한테 또 자랑해야겠다. 그 애들도 우리 민준이 등급을 제대로 알아야지.’

박민희가 또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잘 먹었습니다. 나 먼저 일어나요.”

“벌써? 아직 덜 먹었잖아.”

“다 먹었어. 그리고 엄마, 설거지는 그냥 둬. 이따 내가 할게.”

“그래. 조만간 외식이라도 하자.”

“당연하지. 우리가 축하해주지 않으면 누가 축하해주겠어.”

“민준이 친구들은 알고 있나? 연락은 했대?”

“몰라. 나도 지금은 걔네 번호 아무도 없어. 진작 연락이 다 끊겼거든.”

온 가족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걸 보며, 박민준도 눈이 살짝 붉어졌다.

‘다들. 저렇게 좋아해 주는구나. 역시 가족이 최고야.’

하지만, 친구들 얘기를 듣고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다들 잘살고 있으려나? 다른 놈들은 몰라도 동운이는 우리 가족하고 계속 연락할 줄 알았는데.’

누나랑 한 놈도 연락을 안 하고 살았다니.

조금 서운하긴 하네.

***

토요일 새벽.

강원도 태백시, 대덕산.

백호 길드 소속 12명이 산속에 진입했다.

“젠장. 이른 아침부터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젯밤에 도착해서 더 실컷 노는 건데.”

“거꾸로 말해야 하는 거 아냐? 놀지 말고 더 일찍 잤어야지.”

“난 놀아야 다음 날 힘이 난다고.”

“잘도 그러겠다.”

“너는 어젯밤에 뭐 했는데? 너도 호텔 방에 없었잖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흥. 네놈이 태백 길거리에서 여자들에게…….”

“미친놈이. 막내도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려고.”

대화를 하던 두 사람이 힐끗 뒤를 돌아봤다.

김채영과 눈이 마주치고.

어색한 표정을 지는 사내였다.

“전 괜찮아요. 어차피 선배들이 남자로 보이지도 않거든요.”

“그러냐?”

“네. 선배님들도 저를 여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야 일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자가 그녀의 말을 듣고 대놓고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뭐라 말하려는데.

팀장이 나섰다.

“잡담은 그만해라. 이번 임무가 끝나기 전까지. 사적인 말은 허용하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아침부터 고생하니, 긴장도 풀어줄 겸, 잠시 잡담을 허용했을 뿐이었다.

잠시 뒤, 목표지점에 도착할 예정이라.

집중해야 할 때였다.

제일 앞에서 GPS를 보고 있는 팀장을 향해, 김채영이 다가갔다.

“뭐지? 나에게 따로 할 말이 있나?”

“팀장님. 저쪽에 뭔가를 본 것 같아요.”

“그래? 정확히 어디서 뭘 본 건가?”

“정확히는 몰라요. 대신 수풀이 흔들리고, 발소리를 들었어요.”

“알았다. 이젠 내가 알아서 하지.”

그가 왼쪽에 있던 사내에게 말했다.

“애들 둘 데리고 가서 확인해봐.”

“알겠습니다.”

“주변까지 확인하고 바로 1시간 뒤에 무전 해. 만약 연락이 닿지 않으면 목적지로 와서 보고하고.”

“네. 팀장님.”

명령을 받은 류우주가 부하 둘을 데리고 팀을 벗어났다.

“이수영. 김민재. 너희는 나와 따로 이동한다.”

그들이 김채영이 가리킨 방향으로 들어가더니.

나무와 풀에 가려서 금방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이 떠난 방향을 보던 김채영이 팀장에게 물었다.

“저분들만 가도 괜찮을까요?”

“아니면? 여기 남아서 전체가 다 수색을 할까? 태백 길드와 목적지에서 만나기로 한 건 무시하고?”

“그건 아니지만. 잠깐 늦는다고 연락을 할 수도 있잖아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그만 떠들고, 자리로 돌아가.”

“알겠습니다. 가면 되잖아요.”

그녀가 입을 삐죽거리며 자기 자리로 향했다.

“막내라고 봐줬더니. 요즘 너무 기어오르는군요.”

“그런가?”

“네. 이번 기회에 기강을 한 번 바로 잡으시지요?”

“됐어. 적응하면 알아서 하겠지.”

부팀장은 자기 상사인 오영식이 너무 무르다고 생각했다.

‘실력은 좋은데. 너무 착해서 탈이야.’

한국에서 알아주는 백호 길드.

그는 B등급 헌터지만 특성 때문에, 거의 A등급에 준하는 전투력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겨우 20대 후반의 나이에 팀장 중 한 명이 될 정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다만,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팀을 이끈 경험이 부족했다.

성격도 상당히 무른 편이었고.

가뜩이나 태백 길드에서 동맹인 백호 길드에 손을 벌려서 긴급히 도움을 청했는데.

이렇게 경험이 부족한 팀장을 이곳으로 보내다니.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뭐 별수 있나. 나만 잘하자.’

오영식보다 10살이 많고, 당연히 경험도 더 많은 부팀장이 속으로 몰래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분주한 박민준의 집이었다.

“아들. 목욕 다 했어?”

“어. 거의 다 했어.”

“깨끗이 씻어. 대통령님 옆에 서야 하잖아.”

“같이 밥만 먹는다고 하던데?”

“전에 이지원을 보니까.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도 찍던데? 가까이 갔을 때 냄새라도 나면 실례잖아.”

“대통령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냥 편하게 갔다 올게.”

“그게 무슨 소리야? 가문의 영광인데. 가서 사진도 많이 찍고, 사인도 받아와. 아 참. 기념품도 주려나?”

박민준의 부모는 자기 아들이 대통령을 만난다는 말을 듣고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장미령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이런저런 참견을 하기 바빴다.

가족들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정작 당사자는 담담했다.

“아들. 어제 산 정장이 좀 별론데. 나가서 다시 살까?”

“왜?”

“진한 감색이 너무 우중충해. 회색이 더 낫겠어.”

장미령은 아들이 더 멋있어 보이길 원했다.

어제도 대통령을 만나면서 그냥 집에 있는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겠다는 걸 억지로 떠밀어서 정장을 사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보니.

‘왜 이렇게 칙칙하지? 어제 볼 때는 괜찮았는데.’

대통령과 만난다는 걸 일찍 알았다면, 맞춤복을 입혔을 텐데. 뒤늦게 알아서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럼 어제 말하지. 언제 나가서 또 정장 골라?”

“어차피 오늘 저녁 식사라면서. 그럼 시간 여유 좀 있잖아?”

“1시에 날 태우러 온다고 했어.”

“그럼 시간이 별로 안 남았네? 지금 바로 나가자.”

“괜찮아. 그냥 그거 입을게. 아침이나 줘.”

박철수는 딱히 아들에게 뭐라 말하지 않았다.

대신 거실에 앉아, 아들과 아내를 지켜봤다.

한편, 누나 박민희는 딸이 통화가 잘 안 된다며 아침부터 계속 울상이었다.

“새벽에 산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벌써 문자고 뭐고 답장이 안 와. 아빠. 우리 애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예끼! 그런 소리 하면 들어오던 복도 도로 도망친다. 우는소리 하지 말고, 차분하게 기다려.”

“아빠는 손녀 걱정도 안 돼?”

“걱정이야 되지. 하지만 네 엄마가 아침부터 저렇게 정신없게 구는데. 너까지 그래야 하겠니?”

“알았어. 가만있으면 되잖아. 근데 정말 괜찮겠지?”

“괜찮을 거라니까. 거기 채영이 혼자 가는 것도 아니라면서?”

“응. 20명이 갈 거라고 했어. 아니 12명이었던가?”

“그럼 됐지. 믿고 차분하게 기다려.”

정신없이 오전이 지나가고, 드디어 점심이 되었다.

국산 고급 검은색 세단 G99가 박민준의 집 앞에 정차했다.

“들어갔다 바로 나올 테니까. 시동 끄지 말고 기다리세요.”

“알겠습니다. 부장님.”

게이트 관리국 방수열이 보조석에서 내렸다.

원래는 뒤에 타지만, 오늘은 박민준을 태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항상 보조석에 타던 소해진이 함께 오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수열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띵! 동!

“누구세요?”

“게이트 관리국 전략실 부장 방수열입니다. 박민준 씨를 모시기 위해 왔습니다.”

“네. 잠시만요. 문 열어드릴게요.”

안으로 들어선 방수열을 보며 박민준이 말했다.

“너 부장이라면서?”

“아! 박민준 씨. 절 기억하고 계셨군요.”

“당연하지. 근데 제법 한가한가 봐? 아니면 네가 내 전담인가?”

“맞습니다. 제가 당신의….”

그가 방수열의 말을 잘랐다.

“됐고.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아닙니다. 그럼 가시지요. 밖에 차를 대기시켜 놨습니다.”

“알았어. 너 먼저 나가봐.”

“네. 그럼 천천히 나오십시오.”

장미령이 주방에서 소리쳤다.

“커피 물 다 끓였는데? 벌써 나가려고?”

“지금 바로 갈 거야. 그리고 괜히 커피 같은 거 줄 필요도 없어. 자기들이 아쉬워서 날 데리러 온 건데, 뭐.”

빠직.

방수열은 목 뒤가 뻐근해지는 걸 느꼈다.

‘아니. 이럴 거면 날 왜 들어오라고 한 걸까? 난 그냥 밖에 있으라 하고 자기가 알아서 나올 것이지.’

투덜거리던 그가.

다시, 가만 생각해보니.

들어오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민준의 누나도 귀찮다는 말투로 문만 열어줬다.

그보고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라는 소리도 안 했다.

‘소해진 차장은 왜 저런 인간을 좋은 사람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던 거지? 아주 개싸가지인데.’

이런 대접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엘리트 방수열이라, 박민준을 대할 때마다 적응할 수 없었다.

‘정말 나하고 안 맞는 인간이다.’

하지만 뭐 별수 있나?

위에서도 유능한 자신을 믿고, 대한민국 3번째 S등급 박민준을 상대하도록 맡긴 것을.

이왕이면 영입도 시도해 보라는데.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

서울 게이트 관리국 본부.

하늘에서 봤을 때, 무궁화 모양으로 건물 여럿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앙의 건물이 바로 국장이 머무는 핵심전략관이었고.

박민준이 탄 차가 그곳에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고개를 까닥한 그가 차에서 내렸다.

주위를 살핀 그가 보조석에서 내리는 방수열에게 물었다.

“왜 아무도 없어? 국장이나 부국장은?”

“네? 그분들은 당연히 개인 사무실에 계실 텐데요? 아니면 국장님실에 함께 기다리고 계시려나?”

“건방지군. 함께 대통령을 만나러 가자고 날 불러놓고, 마중조차 안 나오다니.”

“우선 사무실로 올라가시지요.”

“싫다. 내가 아쉬운 게 뭐가 있다고 그자를 만나야 하지?”

보상금을 받거나 계약을 하면 모를까.

지금은 박민준이 국장을 만나러 저 위까지 귀찮음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

그의 돌발행동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방수열이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정말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에게 박민준이 말했다.

“너도 더는 할 말이 없는 건가? 그럼 난 나대로 알아서 가지.”

진짜 그대로 떠나려는 박민준을 두고, 방수열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진짜 또라이다. 설마 국장님이 마중을 안 나왔다고 저렇게 나올 줄이야. 진짜 혼자 가려는 건가? 그건 막아야 할 텐데.’

그때,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