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이 검 뭐로 만들었지?”
“그거요? 아마 게이트에서 나온 광물이었을 걸요? 근데 왜요?”
“게이트에서 금속도 나오나?”
“아니요. 정확히 말하자면 괴물의 몸에 들어있었던 거로 만들었지요.”
괴물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한 걸까?
너무 많이 부서져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대충 갑옷의 일부처럼 보였다.
그걸 고치지는 못했다.
나머지 부위가 없었을뿐더러, 그걸 원상복구 해도, 지금 같은 세상에서 그런 걸 입고 싸우려는 헌터가 과연 있을까?
중세시대도 아니고.
‘훨씬 가볍고 단단한 최첨단 소재의 방탄복이 있는걸?’
그래서 녹여서 다른 걸 만들려고 했다.
이왕이면 그녀가 좋아하는 무기로.
부서진 갑옷 조각은 어떤 금속보다 단단하고, 에너지를 흡수하는 성질을 지닌 굉장히 특이한 광물이었다.
현대 과학의 힘을 동원해서 겨우 녹였고, 검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지.’
헌터들은 무기에 기운을 불어넣고 강화해서 싸운다.
그런데 저 망할 검은 에너지를 흡수하는 성질을 지녔으니.
기를 검 안으로 밀어 넣으면, 그걸로 외부를 강화하기는커녕, 그냥 속에서 흡수해서 머금고만 있었다.
방금도 박민준이 손으로 검날을 튕기자, 둔탁한 소리를 낸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그의 수준 정도면 금속의 특성을 무시하고 마음껏 검강을 써먹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에너지가 쌓이고 또 쌓여서 주인이 원하지 않는 그 순간에 무작위로 방출해 버렸고.
소유자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 다행인 그런 이상한 무기가 탄생했다.
이지현이 만든 모든 무기를 대신 시험해 주는 사람이 친구 소해진이었다.
그런 결함을 그녀의 입을 통해서 전해 듣고, 얼마나 짜증이 났던가?
‘저걸 만든다고 괜히, 헛수고만 한 꼴이야. 내가 얼마나 힘들여서 만들었는데.’
저게 뭐가 좋다고 한참을 만지고 살피는 걸까?
무기 보는 눈이 뛰어난 줄 알았더니.
잘 아는 척만 하는 사기꾼이었나?
그렇지 않았다.
박민준은 이 검과 같은 광물로 만든 무기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건 분명, 독고 늙은이가 어린아이 주먹만큼 밖에 구하지 못했던 운석 철이다.’
검을 만들기에는 너무 부족한 양이라, 암기를 제작하는 거로 만족해야 했었다.
근데 그게 대박이 났다.
암기를 던지면, 상대의 호신강기를 흡수하면서 그걸 뚫어버렸으니까.
‘나조차도 미리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금의 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막을 수 없었다.’
무림인이 길가의 돌멩이처럼 많은 다른 세계.
그곳에서도 박민준이나 그에게 죽은 천마 정도가 아니면, 단순히 기의 방어막으로 막을 수 없는 무기였다.
그런 엄청난 걸 가지고 통째로 검을 만들었으니.
박민준이 아는 한 가장 강한 광물이라 귀찮게 내공을 주입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기를 그냥 흡수해서 언제고 도로 뱉어버릴 뿐이니까.
그러니 그냥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그럼 강기도 막아낼 수 있고, 상대의 검도 쉽게 박살 낼 수 있다.
물론, 어쭙잖은 무림인에게 이걸 쥐여주면.
“뭐 이런 개 같은 무기가 다 있어?”
라고 툴툴거리며 다신 손에 쥐려 하지 않겠지만.
박민준에게는 다신 없을 보물이었다.
“이 검으로 하지.”
그의 말을 듣고, 이지현이 속으로 기뻐했다.
‘제일 쓸모없는 검을 고르다니. 역시 아까는 허세였어.’
겉으로는 태연한 척, 그에게 말했다.
“한 번 고르면 다신 무를 수 없어요. 진짜 그걸로 할 거예요?”
“그래. 난 이게 마음에 든다.”
“좋아요. 원래 그건 제일 힘들 게 만든 거지만, 당신에게는 이번만 특별히 팔도록 할게요.”
“한 번 팔면 끝이다. 무슨 말을 해도 너에게 돌려주지 않을 거다.”
“당……. 당연하지요. 근데 그건 왜 말하는 거예요? 내가 판매한 무기를 다시 돌려달라고 할 사람처럼 보여요?”
“아니. 그럴 사람은 아니지. 그렇지 않나?”
“네. 저는 그런 치사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럼 이제 이 검은 내 것이다. 자 받아라.”
그가 금괴 3개를 이지현에게 던지려 했다.
합치면 3kg.
행여나. 자기가 저걸 다 못 받으면 깨질까 염려된 그녀였다.
“어딜 던지려고요?”
“그럼?”
“그냥 그 옆에 내려놓으세요. 그럼 내가 알아서 가져갈게요.”
“그렇게 해주지.”
금괴들을 대충 내려놓은 그가 검을 다시 살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
검을 꼭 쥐고 미소를 머금은 그의 모습을 보고, 금을 챙기러 왔던 이지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설마 저게 이 금괴들보다 더 값지다는 거야?’
이것들의 가치가 무려 240,000,000원은 될 텐데?
궁금함을 참지 못한 그녀가 그에게 다가가 슬쩍 물었다.
“그렇게 좋아요? 아주 검을 껴안고 뽀뽀도 하겠어요.”
“그래.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도 싶구나.”
“그 정도라고요?”
“네가 이 검을 만들어놓고도 그 특별함을 모르는 건가?”
“잘 알지요. 세상에서 제일 단단할지 모르는 에너지 흡수 재질의 광물 검.”
“그래. 잘 알고 있군. 그런데 설명이 필요한가?”
순간 그렇다고 대답할 뻔한 그녀였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입을 열지 못했다.
피식.
그런 그녀를 보고 박민준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이 검은 네 말처럼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검이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절대 파괴할 수 없을 거다. 아마, 그놈 정도면 가능할까?”
“그놈이 누군데요.”
“아주 강하고 나쁜 놈이 있었다.”
“사람이긴 하죠?”
“그래. 그 녀석도 사람이었지. 그래서 죽일 수 있었다.”
“그럼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이 망가뜨릴 수 있다는데. S급 헌터 아니 빌런이려나?”
그녀의 뒷말은 무시하고 그가 답했다.
“그놈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존재니까.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 무슨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요?”
“당연하지. 지구에서 내가 제일 강하다.”
그녀는 그냥 농담으로 물어본 거였는데.
당연하다는 듯, 너무 당당하게 대답하는 박민준이었으니.
‘이 사람과 계속 대화하다가는 나도 이상해지겠어.’
계약도 마쳤겠다.
가게 문도 열어야 하니.
그만 내보내야겠다.
“알았어요. 이젠 더 볼일 없죠?”
“내 대답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데?”
“상관없어요. 더 안 들어도 괜찮으니까. 그만 나가주세요.”
“그렇게 하지.”
이지현이 가게 문을 열고. 곧장 문을 나서는 그였다.
아무 미련도 없고, 오히려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는 박민준을 보고, 그녀가 결국 참지 못했다.
“그 검이요. 정말 저 금괴들보다 더 가치가 있어요? 진짜로?”
“그래. 내가 너였다면 저런 금괴 100개를 줘도 안 팔았을 거다.”
“100개요? 에이. 그거 나 놀리려고 괜히 그러는 거죠?”
“마음대로 생각해라. 그만 가보도록 하지.”
박민준이 씨익 웃었다.
이번엔 비웃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더 기분이 나쁘지?’
그가 떠나고.
혼자 남은 이지현이 생각에 잠겼다.
금괴 하나가 8천만 원이니까, 100개면 80억?
뭐야? 정말 80억을 줘도 안 팔았을 거라고?
정말인가?
아니면 날 놀리려고 그런 말을 한 걸까?
마지막에 또 웃은 걸 보면, 반은 날 놀리려고 했던 것 같은데.
비웃음은 아니잖아?
아. 모르겠다.
우선 이걸 팔아서 가겟세부터 내자.
사들이길 미뤄뒀던 재료도 실컷 사고.
어딘가 찜찜하면서도 금을 보고 흐뭇한 그녀였다.
***
가게를 나선 박민준이 주위를 살폈다.
‘내가 대놓고 검을 들고 있는데도 전혀 상관없다는 건가?’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저 잠깐 그와 검을 향해 눈길만 줄뿐, 아무도 피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건 예전보다 좋군. 다행이야.’
게이트가 열리고 무기 소지가 허용되었으니.
이젠 다들 익숙해진 모양이다.
당당하게 검을 든 그가 주위를 살폈다.
헌터 등록증을 받았겠다.
마음에 쏙 드는 검까지 새로 구했으니.
‘어디 괴물 좀 나타나지 않으려나?’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그의 감각에 온갖 소리가 들어왔다.
행인들의 발자국.
대화하거나 통화하는 소리.
자동차와 오토바이 엔진음.
그리고.
“여기에 돈 담아. 어서!”
“알았어요. 제발 쏘지 마세요.”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강도질.
괴물은 아니지만, 상관없다.
눈을 번쩍 뜬, 박민준이었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행인이 많은 인사동 길이지만, 닿을 듯 말 듯.
교묘하게 피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줄지 않았다.
***
은행 입구 통로를 막고 서 있는 수상한 남자 둘.
손에는 총을 들고 있었고.
근처에 오토바이도 보이지 않는데, 헬멧을 쓰고 있었다.
이들은 B급 빌런 봉희준의 부하였다.
그는 각성한 힘으로 오직 은행만 전문적으로 털었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잡힌 적이 없었다.
두목인 그가 너무 강한 데다, 얼마나 신속하게 범행을 저지르는지,
경찰이 출동해도 항상 뒷북만 쳤다.
망을 보던 사내가 안쪽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3분 남았습니다. 그만 즐기고 다들 어서 나오십시오.”
그가 다시 정면을 바라봤을 때,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너 갑자기 왜 그러고 있어?”
옆에 서 있던 동료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는데.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듯 보였다.
“야. 이 또라이야. 일할 때 내가 장난치지 말라고 했지?”
평소에도 장난질이 심해서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다.
거칠게 욕설을 내뱉은 그가 동료의 엉덩이를 차려고 했는데.
따끔.
목 부위에 이상한 느낌이 들더니.
‘어? 몸이 움직이지 않아?’
동료처럼 그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장난친 게 아니었어? 대체 뭐지?’
정면으로 몇 미터 떨어진 거리.
검을 들고 있는 젊은 남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빌어먹을. 근처에 헌터가 있었나?’
저 거리에서 내 몸에 뭐 어떻게 한 거지?
된통 잘못 걸렸다고 생각한 순간.
남자의 모습이 흐릿해지나 싶더니.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휘잉~
시원한 바람이 그의 곁을 휩쓸고 지나갔다.
‘방금 내 옆에 뭐가 지나간 것 같은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으니.
확인할 수도 없다.
대신 은행 안에 있는 동료들의 소리는 들을 수 있었는데.
“넌 또 뭐야?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헌터라도 되시나 본데? 근데 검을 들고 뭘 어쩌겠다고?”
“몸에 벌집 만들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거 내려놔라.”
두목 봉희준의 비명과 함께 총소리가 들렸다.
“내 팔! 저 미친놈이 내 팔을 잘랐어. 내 팔이 잘렸다고.”
“형님! 다들 뭐 해?! 어서 저 새끼 죽여!”
“그래. 두목님의 복수를 하자. 다 갈겨.”
뚜두두두두!
연발로 쏘는 총소리에 이젠 상황이 종료될 거라 믿었다.
더욱이 자신의 두목 봉희준은 무려 B등급이지 않은가?
‘아까는 두목님이 방심해서 당한 걸 거야.’
하지만 그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으악!”
“윽!”
익숙한 비명이 두 번 더 들리고.
총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가 싶더니.
두목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괴물 새끼. 가까이 오지 마. 더 가까이 오면 이년 머리통이 날아갈 줄 알아.”
이미 잔뜩 겁을 먹은 듯.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자기에게는 악과 깡밖에 없다고 말했던 두목인데?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