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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22화 (22/175)

22화

소해진이 준 약도.

그녀가 준 팔찌를 구한 장소는 서울의 인사동이었다.

연검을 팔찌로 위장했는데도 그녀 주변에서는 전혀 수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방 부장이란 자의 반응만 봐도 그걸 확신할 수 있었다.

박민준이야 엄청난 고수라 안력이 좋고, 다른 세계에서 20년간 별의별 무기를 다 보고 경험했으니,

한눈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 좋은 연검을 판매한 사람이라면 내가 원하는 검 또한, 가지고 있지 않을까?’

‘수공예품 판매점에서 그런 명검을 팔았단 말이지?’

대장간이나 무기상점도 아니고.

하긴, 대장간이라면 모를까?

한국에 무기상점이 있을 수 있나?

게이트가 열리고 그것도 많이 바뀌었을지도.

박민준이 맨손을 쥐었다 폈다가 했다.

지금 무척이나 손이 허전했다.

지구로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그는 검을 몸에서 떼지 않았었는데.

‘검술 수련도 하지 못했군.’

괴물을 죽이는 일 따위야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긴 하지만, 맨손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심지어 얼마 전. 그가 오산역에서 죽인 6등급 괴물조차도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 위로도 7등급부터 9등급까지 있다고 했나?

녀석들이 얼마나 강한지 아직 모른다.

직접 붙어보면 알 수 있을 테고,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그래도 검은 있어야 해.’

고수가 되어도 실전과 수련을 게을리하면 감각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그가 당장 이곳의 헌터들처럼 반쪽짜리 고수로 되어버리지는 않겠지만,

사냥을 위해서든, 수련을 위해서든.

여러모로 검은 필요했다.

***

인사동의 작은 수공예품가게.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작게 울리며, 손님의 방문을 알렸다.

“어서 오세요.”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등 뒤에 가방을 멘 남자,

이곳의 사장인 그녀의 경험상, 주말도 아닌 이 시간에 저런 젊은 남자가 혼자 들어오지는 않는다.

물론 전혀 없지는 않지만.

‘보통은 애인과 함께 들어와서 구경하는데. 그럼 잡상인?’

손님인 척 물건을 사는 척, 고르고 질문하다가, 자기네 물건을 납품받아보겠냐는 말을 꺼내곤 했다.

지금도 가게에 들어온 남자가 그녀의 인사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마음에 든다는 듯.

입에 잔뜩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살 생각이 없는지 그냥 도로 내려놓기 일쑤였다.

요즘 장사도 잘 안 되는데 짜증 나게.

“찾으시는 물건 있으세요? 말씀해 주시면 제가 바로 가져다드릴게요. 아니면 혹시 물건 팔러 오신 거면 필요 없으니까, 그냥 나가세요.”

피식.

재밌다는 듯, 박민준이 한쪽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웃었다.

“솜씨는 좋은데 장사는 영 아니군.”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죠?”

“연검을 팔찌로 만들어 숨길 만큼 손재주가 좋지만, 손님을 대하는 게 별로라는 말이었다.”

“연검을 팔찌로 만들다니?! 설마 해진이를 어떻게 한 건 아니죠? 걔 엄청나게 강한데? 거기다 공무원이라고요.”

“그래. 제법 싹수가 보이긴 했지.”

그가 종이 한 장을 이지현에게 보였다.

소해진이 그려준 약도였다.

둘이 제법 친했는지, 친구가 적어 줬다는 걸 바로 알아봤다.

“싹수? 걔가 여길 알려준 건 알겠는데,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검이 한 자루 필요하다. 소해진이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아니지, 네가 만든 것 중 최고의 검을 내게 다오.”

“무기 같은 건 따로 만들어 팔지 않아요. 그건 그냥 친구에게 선물해주려고 제작해본 것뿐이에요.”

박민준이 또 비웃었다.

“손님 보는 눈도 없고, 장사 수완도 형편없지만, 그것보다 거짓말은 더 못 하는군.”

“날 비웃으려고 온 거예요? 당신한테는 아무것도 안 팔 거니까 그만 나가주세요.”

자길 매섭게 노려보는데도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가게 안에 있는 작은 쇠 조각품을 손에 들었다.

“일부러 쇠를 여러 번 접어서 만들었지? 이런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주 고집이 센 늙은이를 한 명 알고 있거든.”

“뭐 하는 분인데요?”

“대장장이. 온갖 무기, 특히, 검을 기막히게 만들었지. 세계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말을 듣고 이지현이 자기도 모르게 반응했다.

“정말 한국에도 그런 분이 계셨어요?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죠?”

“다른 세상에 있다.”

“아! 죄송해요.”

그녀는 박민준이 말한 노인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실상은 말 그대로 다른 세상에서 잘살고 있었지만.

‘그 늙은이가 아마 나보다 오래 살 거다.’

무림인들에게 하도 온갖 욕을 처먹었는데, 그는 자기가 만든 무기를 팔 때 돈으로 받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하거나, 영약을 달라고 했다.

내가 나이를 먹었나? 요즘 몸이 찌뿌둥해서 말이지. 마침 너한테 소환단이 있다고 하던데 정말이야? 그럼 하나 줘봐.

그렇게 몸에 좋은 영약을 밥처럼 먹었으니.

아주 오래 건강할 거다.

‘지금도 잘살고 있겠지? 독고 영감탱이?’

잠시 추억에 잠겼던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뭔가를 꺼내 들었다.

번쩍!

조명을 받고 눈부심을 유발한 물건은 1kg짜리 금괴였다.

자신의 정보를 팔아먹은 박만용에게 받은 것 중 하나.

반짝이는 금을 보고 이지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걸 나에게 왜 보여주는 거죠?”

“당연한 걸 묻는군.”

“내가 만든 검을 그걸로 사겠다는 건가요?”

“그래.”

“......그래도 안 되겠어요. 내가 만든 무기로 누가 죽을 수도 있잖아요?”

박민준이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검술을 수련하고,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검을 사려는 거지만, 필요하면 거침없이 사람도 죽일 테니까.

“왜 대답이 없어요?”

“사실이니까.”

“그럼 역시 안 되겠어요. 당신에게 검을 못 팔아요. 아니 안 만들어 줄 거예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가 품속에서 다시 뭔가를 꺼냈다.

이번에도 번쩍.

박민준이 금괴 하나를 보여줬다.

‘저거 한 개만 해도 8,000만 원일 텐데. 2개면 1억 6천이잖아?! 아. 요즘 장사도 안 되는데. 저것만 있으면.’

밀린 가겟세(보증금을 까면서 버티고 있다)도 내고, 재료도 살 수 있을 텐데.

그녀의 눈에 탐욕이 엿보였다.

하지만 결국 이지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만든 무기로 살인이라니!”

“소해진은? 그 여자는 사람을 안 죽일 것 같나?”

그녀는 헌터 공무원이다.

괴물을 상대하는 일을 하겠지만, 빌런이라 부르는 자들을 상대하는 경우도 있을 터.

이제 그 정도는 박민준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애는 괴물과 싸우거나 수련을 위해서만 내가 선물해준 무기를 쓰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렇군. 하지만 그 애는 나에게 너를 소개해 줬다. 그건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몰라요. 그건 나중에 내가 직접 물어볼게요.”

“내가 대답하지. 너는 지금 자신을 속이고 있다.”

그녀가 침묵했다.

박민준이 가게를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안에 있는 물건들은 무기를 제작할 때 필요한 기술이 가미되어 있지. 넌 이걸 만들면서 연습을 했던 거야.”

“그래요.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더는 부정하지 않겠어요.”

“그럼 이제 검을 팔 텐가?”

“아니요. 그래도 안 돼요.”

“대장장이들은 전부 고집쟁이들인가? 하여간.”

그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리고 다시 주머니에서 세 번째 금괴를 꺼냈다.

“그럼, 이것도 주겠다. 내가 만족할 만한 검을 한 자루 주면, 이건 모두 네 것이다.”

금괴 3개면, 총 2억 4천만 원이다.

박민준은 무기를 살 때 제일 멍청한 짓이 돈을 아끼는 거라 여겼다.

목숨을 건 결투라도 생기면, 당장 의지할 수 있는 게 몇 없다.

자신이 익힌 무공, 그간의 경험, 그리고 무기.

비슷한 수준의 상대가 적이라면 무기의 차이에서 승패가 판가름 날 수도 있다.

그게 곧 죽음과 삶을 결정하는 거였고.

박민준이 보여준 금괴 3개는 당장, 돈이 필요한 그녀가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좋아요.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요.”

“말해봐. 듣고 결정하지.”

“당신도 해진이처럼 내 검으로 수련하거나 괴물만 죽여야 해요. 그럼 팔게요.”

“거절.”

“그럼 나도 안 팔아요.”

“흥! 이 정도 금을 주는데, 검 한 자루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는 줄 아나?”

“그럼, 그거 가서 사세요. 그럼 되겠네요. 안녕히 가세요.”

분명, 돈이 필요한 얼굴과 눈빛인데.

그가 손에 든 금괴를 만지작거렸다.

‘이걸 보고도 검을 안 팔고 견뎠어?’

저런 고집을 가진 사람이 만든 검이라면.

오히려 더 가지고 싶어졌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 한국에서 자신의 마음에 들 만한 무기를 만들어 줄 사람은 찾기 힘들 테니까.

‘또 누굴 찾아 귀찮게 돌아다니느니. 여기서 승부를 봐야겠군.’

“나도 다시 제안하지. 금을 3개를 주고, 대신 네가 만든 검으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겠다.”

“그건 또 무슨 궤변이죠?”

“아무나 막 죽이지 않고, 반드시 죽을 짓을 한 놈들만 죽이겠다는 말이다.”

박민준은 그녀 때문에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저 그걸 달리 표현했을 뿐이었다.

그가 천마처럼 살육에 미친 사람이 아니었으니.

여태껏, 반드시 죽어 마땅한 놈들만 죽여왔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한편, 그의 말을 들은 이지현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상대가 많이 양보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상대의 손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저 금이 너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그렇다면 나도 좋아요. 당신에게 검을 팔게요.”

언제 고집을 부렸냐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민 그녀였다.

황금을 바로 달라는 건가?

“검을 먼저 보고 계산해야지. 물건이 내 마음에 안 들면 계약도 없는 게 되지 않나?”

“그건 그렇죠. 잠시만요.”

철컥!

입구로 달려간 그녀가 가게 문을 닫았다.

“이제 절 따라오세요.”

박민준을 데리고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제품을 진열해놓은 장소가 좁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래서 그랬던 거였군.’

이지현의 작업실 크기가 가게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기를 안 만든다고 했던 처음의 거짓말이 무색하게.

다양한 무기들이 벽에 잔뜩 걸려 있었고.

“너 정말 뻔뻔하군. 이래놓고 무기를 안 만들어?”

스스로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힌 그녀가 고개마저 살짝 숙였다.

“어쩔 수 없어요. 내 특성이 무기제조니까.”

“너도 각성자였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일반인처럼 약한데?”

“당연하지요. 난 대장장이 특성 가진 비전투 각성자잖아요.”

“뭐. 대장장이가 강할 필요는 없지.”

“아니요. 각성한 덕분에 어깨와 팔이 상당히 강해졌어요. 허리도 그렇고. 덕분에 저 많은 걸 나 혼자 만들 수 있었죠.”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무기 숫자를 보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네 말이 맞는 것 같군.”

“당연하죠.”

“그럼 이제 내가 쓸 검을 고르도록 하겠다.”

마음에 드는 검을 찾지 못하면. 제작해달라고 할 참이었다.

가까운 벽으로 다가간 그가 하나씩 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미 연검 팔찌를 보고 박민준이 감탄했었던 만큼 이지현의 무기 만드는 솜씨 상당했다.

‘그 영감탱이하고는 또 다르군.’

아주 잘 만든 검이면서,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섬세함이 느껴졌다.

검을 빼 들고 손가락으로 날을 건드렸다.

탕~

맑은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나쁘지 않군.”

하지만 그걸 고르지는 않았다.

겨우 이 정도 검으로는 금괴 하나 가치도 안 된다.

그 뒤로도, 어떤 검은 그냥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고, 가끔은 꺼내서 휘둘러보거나, 검날까지 꼼꼼하게 살피기도 했다.

이지현은 그가 생각보다 꼼꼼한 걸 보고 놀랐다.

그렇게 박민준이 무기가 걸려 있는 벽면을 거의 다 돌았다.

이제는 몇 개 안 남은 검을 살피던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검날을 두들겼는데.

틱!

앞의 검들이 냈던 맑은 음과는 달리, 소리가 아주 둔탁했다.

그걸 듣고 박민준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역시나 했는데. 설마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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