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영상 속 그자다! 그 사람이 분명해!”
주위 동료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누구?”
“김형. 지금 누굴 말하는 거야?”
“자네가 아는 사람이야?”
어서 말하라며 자신을 닦달하는 주변을 보며 그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 영상!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면서 거대 다발 거미를 죽인 사람 말이야.”
“아! 그 사람. 하지만 옷이 다른데?”
“이 멍청아. 그때 옷을 지금도 입고 있겠냐?”
“영상이 뚜렷하지도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확신해.”
“다들 정말 모르겠어? 그때 거미를 죽인 수법이 오늘하고 비슷하잖아?”
“어? 그러고 보니.”
“맞아. 그 사람이 손을 뻗으니까. 괴물이 터져 버렸지.”
그 대화를 엿듣고,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 영상을 본 사람들이었다.
“그래. 그거 나도 봤어.”
“그 사람이 분명해.”
“저분이 그때처럼 또 괴물을 죽이고 우릴 구해준 거야.”
“영웅이다!”
“새로운 영웅이야!”
***
그럼, 괴물에게 깔린 줄 알았던 박민준이, 어떻게 녀석의 위에 올라타고 있었을까?
그는 첫 번째 미타금강장으로 괴물의 몸에 구멍이 뚫었다.
사람 몇 명이, 아니, 열 명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고.
녀석의 몸이 떨어지는 순간.
박민준은 피하긴커녕, 오히려 몸 전체에 기를 둘렀다.
그대로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의 상처 부위로 파고들었다.
녀석의 몸속으로 들어간 뒤.
두근두근.
크게 박동하는 괴물의 심장을 찾았다.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하는 괴물이니. 아예 내부에서 조져야겠다. 그러면 이놈도 더는 재생을 못 하겠지.’
그렇게 내부부터 파괴하려고 두 번째 미타금강장을 펼쳤으니.
쾅!
강렬한 기운이 녀석의 심장을 단번에 박살 냈다.
단순히,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괴물의 몸속을 계속 헤집었고, 이내 머리까지 박살 내버렸다.
미타금강장이 만든 인공의 통로.
박민준은 거길 통해 괴물의 몸 밖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그게 괴물의 위에 올라탄 이유였다.
강기를 계속 몸 전체에 두르고 있었던 덕분에 괴물의 피와 살점이 그의 몸을 전혀 더럽히지 못했으니.
사람들이 보기에 그의 몸이 깨끗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영웅이다.”
“만세!”
괴물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은 지금 아주 난리가 났다.
환호하고, 미친 듯 춤추고, 서로 끌어안고. 우는 사람까지.
무적으로 보이던 엄청난 괴물의 죽음을 모든 사람이 기뻐하며 박민준을 찬양했다.
그의 정체는 몰라도 영웅인 건 확실했으니까.
그리고 오직 한 사람.
박민준만 이곳에서 차분했다.
뭔가를 보고 있는 듯.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
괴물과 혼자 싸우는 박민준을 도와줄 생각이었는데.
펑! 굉음과 함께.
엄청난 먼지 폭풍이 이지원 향해 몰아쳤다.
‘갑자기 뭐야? 저 큰 괴물을 멈추다니?’
놀란 그녀가 멈칫거리는 순간.
다시 두 번째 굉음이 들렸다.
동시에 또 흙먼지가 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눈을 가늘게 뜨고 억지로 뛰어가는데.
시야를 가리던 먼지가 회오리치며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어리둥절한 눈빛.
뭔지 몰라도 서두르자.
드디어, 이지원의 시야에 괴물이 다시 들어왔다.
‘근데 움직이질 않아?’
그러고 보니. 싸움의 소리나 비명도 사라졌다.
대신 들리는 건 사람들의 환호성.
그들 모두의 시선과 찬양이 모두 괴물 위로 향했다.
오산역 부근을 혼자 초토화한 괴물을 당당하게 두 발로 서서 밟고 있는 남자.
“박민준.”
***
괴물의 죽음을 확인한 박민준이 훌쩍 몸을 날렸다.
몇 미터를 가볍게 뛰어내린 그에게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당연하게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영웅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생명의 은인에게 직접 감사를 전하기 위해.
또는 호기심 때문에.
박민준을 둘러싼 사람들이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정체가 뭡니까?”
“아까는 촉수에 당해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정말….”
“얼마 전 영상 속 거대 다발 거미를 죽인 사람도 당신이 맞습니까?”
“괴물은 어떻게 죽일 수 있었던 겁니까? 폭탄 같은 특수 능력입니까? 아니면 다른 기술?”
정신없이 떠드는 사람들을 상대할 마음이 없었다.
‘너무 요란스럽군. 이자들은 괴물에 익숙하지 않나?’
박민준이야, 지구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이번이 겨우 두 번째 괴물을 만나는 거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일상이지 않나?
궁금한 건 또 왜 그렇게 많은지.
괴물을 처리해 줬으면, 그냥 감사 인사나 하면 되는데.
대놓고 귀찮다는 표정을 지은 그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 그만 떠들고 다들 물러나라.”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는데.
주변 모두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다들 신기하다는 눈빛을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저 거대한 마치 무적과도 같았던 괴물을 죽인 사람의 말이 아니던가?
감히 그런 사람이 한 말을 여기 그 누가 거역할 수 있을까?
순간 조용해지더니.
모두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하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죄송합니다. 다 같이 말해서 그게 시끄러우셨군요.”
“저희가 너무 귀찮게 한 모양입니다.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굉장하셨습니다.”
“오늘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존경합니다. 오늘부터 당신이 제 롤모델입니다.”
“은인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다가오지는 않으면서 또 한 마디씩 떠들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다는 듯.
박민준이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있는데.
“좀 비켜주세요. 저 사람을 만나야겠어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관중들 뒤에서 들렸다.
“어? 이지원이다.”
“세계 최연소 S등급 헌터!”
“저분이 왜 여기에?”
“우릴 도와주려고 오셨던 건가 봐.”
“정말 예쁘십니다.”
“사랑합니다.”
“결혼해 주세요.”
박민준과 이지원을 사이에 두고 길이 열렸다.
서로를 동시에 마주 본 두 사람이었는데.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담담한 표정과 눈빛의 박민준.
싱긋 웃으면서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이지원.
“멀리서 봤을 때는 긴가민가했었는데. 정말 당신이 맞았군요.”
“왜 이렇게 늦었지?”
“중간에 길이 막혔어요.”
“그랬군. 네가 너무 늦어서 내가 나섰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이지원의 감사 인사를 받고 그가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그걸 본 사람들이 또 난리가 났다.
“저분이 이지원하고 아는 사이인가?”
“서로 친한가?”
“S등급한테 막 반말하는데?”
“그럼 같은 S등급?”
“우리나라에 S등급이 두 명밖에 없잖아?”
“우리가 아는 S등급이 저분은 아닌데?”
주위의 웅성거림 때문인지, 그녀가 박민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한 걸음 정도 사이를 두고 멈추더니.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나보다 먼저 여길 왔어요?”
“그냥 좀 빨리 뛰어왔다.”
“뛰어왔다고요? 그런데 차보다 더 빨리 왔어요?”
“다른 세상에서 배운 기술이다.”
“그거 정말 좋네요. 저도 가르쳐 줘요.”
“안 돼.”
“치사하네요.”
“가르쳐 주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시스템으로 익혔거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녀도 가지고 있는 각성자 특성.
그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냥 시스템에 의해서 자동으로 습득하고 사용할 수 있는 거니까.
딱히 가르쳐 주거나, 배우는 방법 따윈 없었다.
다시 뒤쪽에서 웅성거림이 느껴졌다.
“블루 썬더 길드다.”
“A등급 남길영이 나타났어.”
“오늘 무슨 날이냐?”
“이지원에 남길영까지”
뒤늦게 도착한 블루 썬더 길드장이었다.
그도 나름대로 A등급의 강자였지만, 앞서 등장한 이지원 때문에 호응이 무척 작았다.
‘쳇. 역시 이지원 때문에, 내가 묻히는 건가? 정작 괴물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시간만 낭비했군.’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인파를 뚫고 다가왔다.
박민준과 이지원을 번갈아 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부국장님.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설마 혼자서 괴물을 쓰러뜨리신 겁니까?”
“아니요. 여기 이분이 혼자 괴물을 처리했어요.”
“네? 그게 사실입니까? 대체 이자가 누구길래?”
더는 대답하지 않은 이지원이었다.
뒤이어 도착하는 경기지부 헌터들을 보고, 소리쳤다.
“상황이 종료됐으니. 민간인과 부상자를 먼저 지원해요. 주변 통제하고 소독도 최대한 빨리 시작하세요.”
“네. 부국장님.”
“죽은 괴물 근처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요.”
“알겠습니다.”
“괴물에게 당한 부상자들은 한 곳에 격리하고, 응급환자만 따로 후송해요. 의료진과 감식반이 오면 먼저 바이러스나 감염 여부부터 확인하도록 하고요.”
“알겠습니다.”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은 다른 차원의 생물.
혹시 모를 바이러스 감염이나, 전염병 때문에 미리 조심해야 했다.
괴물이 저 녀석 한 마리만 나왔는지, 확인도 해야 했고.
혹시 중간에 알이나 새끼를 낳은 건 아닌지, 파악해야 했다.
이 모든 게 게이트 관리국이 하는 일 중 하나였다.
단순히 괴물을 죽이는 일 말고도 할 일이 무척 많았으니.
민간 헌터 길드였다면 사냥이 우선이라, 죽인 괴물을 가져가고 끝이었다.
민간인 구조나 지원은 대형 길드 말고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것도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생색내는 정도에 불과했으니.
원래는 게이트 관리국이 할 괴물 사냥을 자신들이 대신해준 것만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뻐기지 않으면 다행.
실제로 게이트 관리국에서 뒤처리를 다 해줬다.
경기지부 소속 헌터들은 오랜만에 민간 길드의 허세를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기뻐했다.
그들도 나중에 도착했기 때문에, 박민준이 아니라, 이지원이 괴물을 죽였다고 믿었으니까.
“마침 와주신 부국장님 덕분에 피해가 줄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방문해 주십시오.”
“존경합니다. 부국장님.”
헌터 공무원들의 말을 듣고 그녀가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내가 아니에요. 왜 다들 내가 나섰다고 생각해요?”
“그럼 누굽니까? 설마 블루 썬더 남길영?”
그가 S급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최상위 A등급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남길영보다 뒤늦게 현장에 온 경기지부 소속 직원들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망할. 그놈이 먼저 와서 처리한 거였나?’
‘이번에도 괴물을 잡은 생색은 블루 썬더와 남길영이 내고, 우리는 뒤치다꺼리만 하겠네.’
그들의 우려를 아는 걸까?
이지원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괴물을 죽인 건 남길영 씨가 아니에요. 그는 나보다 더 늦게 왔어요.”
“정말입니까?”
“네. 바로 여기 이분이 혼자 처리했어요.”
“이분이요? 누구시길래 6등급 괴물을 혼자?”
주변의 시선이 다시 박민준에게 집중됐다.
거기엔 블루 썬더 길드장 남길영은 물론이고, 다른 길드 사람들도 관심 어린 표정이 역력했다.
아직 계약이 안 된 걸 알면, 모든 인맥과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듯 보였고.
그걸 확인한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걸 여기서 내가 말해도 되나?”
위급한 상황에서 엄청난 활약을 해 버렸으니.
이번 일로 박민준의 실전 전투 실력은 공인된 것과 마찬가지.
전 세계에서 그를 주목할 것이다.
‘지금 내가 말하지 않으면, 당장은 아무도 모를 텐데. 아! 어차피 경기지부에 아는 사람이 몇 있구나.’
실제로 기동 2팀의 팀장과 송하영도 이 자리에 와 있었다.
그 둘은 박민준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부국장이 내린 임무를 수행하느라 바빠서, 그와 인사말도 나눌 수 없을 뿐이었다.
한편, 고민하는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고, 박민준이 대답했다.
“그걸 왜 네가 고민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