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계속 건방진 그의 태도에 차 지부장의 안색도 달라졌다.
‘아니. 뭐 저런 무례한 놈이 다 있어? 지가 S급이면 다야? 반말이나 찍찍하고.’
S급이면 다였다.
그게 맞다.
대한민국에 3명밖에 없는 귀한 존재.
다른 나라에서 국빈대접을 하며 서로 데려가고 싶어 한다.
‘그래. 저놈과 계약만 따내면, 나도 더 높이.’
자기 출세가 달렸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가 다시 미소 지었다.
“하하. 솔직하시군요. 그것도 좋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그러지.”
딱 봐도 별 볼 일 없는 놈.
박민준은 그래도 그에게 궁금하고, 또 원하는 게 있으니.
일단 앉아서 저놈이 뭐라 하는지, 얘기나 들어볼까?
“김 팀장은 그만 나가봐. 여긴 이분하고 나만 있으면 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민준이 김 팀장이 나가는 걸 물끄러미 보더니.
지부장에게 물었다.
“저자를 왜 내보내는 거지? 나와 독대를 원하나?”
“그렇습니다.”
“뭐. 상관없지. 그럼 내가 먼저 말하지.”
“그렇게 하시지요.”
“헌터라는 거 나도 이제 할 수 있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김 팀장이 등록을 서둘러 준다고 했거든. 그거 지금 끝났냐고. 그래야 사냥할 수 있다면서?”
“아. 그 말이시군요. 14일 뒤면 다 됩니다.”
“뭐 그렇게 오래 걸려?”
“원래는 21일 정도 걸리는 걸 특별히 단축한 겁니다. 등급 검사는 여기서 하지만, 최종 승인은 본사에서 하는지라.”
“그래?”
“네. 전국에서 본사로 모이면 그 수가 많지 않겠습니까? 그걸 다 확인, 처리해야 하니. 빨라도 이 주가 걸린다는 거지요.”
결국엔 본사에서 처리하는 시간이 14일이라는 거군.
그렇다면 여기서 더 볼 일은 없다.
“이제 넌 내게 해줄 수 있는 게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군?”
“뭐. 그렇긴 한데. 혹시 다른 건 없습니까? 듣고 말씀드리지요.”
“없는데. 아! 있다.”
“그게 뭡니까? 어서 말해보십시오.”
지부장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상체를 기울였다.
“지난번에 보니까, 게이트가 미리 열릴 걸 알고 왔다던데. 그걸 어떻게 미리 아는 거지?”
“전국 각지에 게이트 탐지 센터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신호를 감지하고, 본부와 근처에 관련된 곳으로 전송합니다.”
“레이더 같은 거야?”
“그건 아닙니다. 일기예보 같은 개념이지요. 게이트가 생기기 전에 발생하는 주변의 변화를 예측하는 겁니다.”
게이트가 언제 어디서 열릴지 미리 알아내는 기술은 계속 발달하고 있었다.
인류 생존의 문제였으니까.
간혹 예측하지 못하고 게이트가 열리는 일도 있었는데.
그땐 대비하지 못한 만큼 피해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거 나도 미리 알 수 있나? 나도 가서 괴물을 사냥하고 싶은데 말이지.”
레벨업도 해야 하고, 실전 감각이 녹슬지 않으려면 괴물 사냥은 필수였다.
게이트가 열리는 곳을 사전에 알면, 괴물을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가 없을 테니.
상당히 유용할 터였다.
하지만, 지부장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개인에게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게이트 관리국과 게이트가 열리는 주변 헌터 길드에만 따로 통보됩니다.”
“그래? 그건 좀 아쉬운걸. 내가 S등급인데도 안 되나?”
“네. 예외는 없습니다.”
“정보 좀 얻자고 억지로 단체에 가입해야 하나? 웃기는군.”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지부장이 박민준에게 본론을 꺼냈다.
“마침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박민준 씨는 아직 소속이 없으시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건 왜 묻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요. 혹시 국가를 위해 헌신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나 보고 헌터 공무원이 되라는 건가?”
“맞습니다. 박민준 씨 같은 훌륭한 분이 우리 게이트 관리국에 들어온다면, 대한민국의 위상이 드높아지고, 소속 직원들의 사기도 올라갈 겁니다.”
“그래서 돈은?”
“네? 돈이요?”
“내 연봉은 얼마나 줄 건데? 추후 필요한 장비나 인력 지원은 따로 해줄 건가?”
박민준의 질문에 지부장의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박민준을 경기지부 소속으로 두고 명령을 내리려 했다.
연봉도 대략 자기가 받는 것보다 10% 적은 수준으로 후려쳐서. 9억 정도?
S등급 헌터의 연봉으로는 너무 적은 액수였기 때문에 정확한 대답을 회피했다.
“돈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서 얻는 명성을 생각하시고, 그냥 저와 비슷한 연봉으로…….”
“넌 얼마를 받는데?”
“아. 그걸 공개해야 하는군요. 그게 말입니다……. 저는 돈보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지라. 그렇게 많은 돈을 받지 않고 일합니다.”
계속 정확한 연봉도 얘기하지 않고, 그마저도 조금 준다는 말을 그가 애써 포장했지만, 박민준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명성이나 봉사 따윈 됐고,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말하지.”
“그렇게 하십시오. 뭘 얼마나 원하십니까?”
“연봉 100억. 다른 사람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또, 활동에 필요한 지원은 당연히 별도. 괴물을 잡으면 그건 내 몫. 어때?”
“네?”
경기지부의 규모가 워낙 컸으니.
당연히 예산 100억이 없진 않다.
하지만 그걸 겨우 한 사람의 연봉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그런 지출을 멋대로 결정할 수 있는 지부장도 아니다.
‘예산이 빠듯한지라. 9억도 겨우 쓸 수 있는데. 뭐 100억?’
더 큰 문제는?
다른 사람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부려먹지도 못하는데 연봉을 왜 준단 말인가?
“그건 너무 과하신 것 같군요.”
“그렇다면 나도 더는 할 말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난 박민준이었다.
그걸 보고 얼이 빠진 차 지부장.
‘아니. 진짜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그가 어떻게든 상대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가시지 말고. 저와 잠시 대화를 더 나눠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간절한 그의 말에도 박민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당장 어제 만난 주작 길드의 인사팀장만 해도, S등급 헌터의 가치가 뭔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줬었기 때문이었다.
‘그놈이 날 위해서라면 100억 연봉도 아깝지 않다고 했지. 추가 지원도 아낌없이 해주고.’
하지만 민간 길드는 이익만 추구하는 곳.
딱히 그런 자들에게 휘둘릴 마음 따윈 없었다.
더욱이 어제 박만용으로부터 받은 보석이 상당히 많고, 그 가치도 전부 뛰어났으니.
‘당분간 돈에 쪼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지부장이 내건 조건을 들어본 뒤, 마음에 들면, 국가를 위해 헌신해볼 생각도 조금 있었다.
아니면, 정보를 포기하더라도, 그냥 프리랜서 활동을 하면서 헌터 일을 해도 좋고.
‘감히 내가 아량을 베풀어 기회를 준 것도 모르다니.’
높은 연봉을 원하는 건 당연히 돈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굳이 손해를 보면서 자기 스스로 가치를 낮춰줄 만큼, 국가를 위해 일해줄 마음이 없을 뿐이었다.
‘지구에서 제일 강한 내가 당연히 최고 수준의 연봉과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 와중에도 차 지부장이 그를 애타게 불렀다.
“박민준 씨. 제발 그냥 가지 마시고. 제 얘기를 좀 들어주십시오. 박민준 씨.”
계속 무시하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똑똑.
“지부장님. 부국장님께서 오셨습니다.”
“뭐? 부국장이 지금 여길 왜 와? 대통령님과 함께 해외로 간 게 아니었어?”
대통령과 게이트 관리국 국장은 지금 해외 순방 중이다.
그래서 새로운 S등급인 박민준을 겨우 지부장인 그가 먼저 만나고 계약하려는 야무진 생각도 할 수 있었던 거였고.
그걸 공적으로 내세워 승진할 생각이었는데.
그가 뭐라 대답도 못 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벌컥.
박민준이 문을 열어버렸다.
‘분명, 부국장이 왔다고 들었는데?’
상당히 젊은 여자가 문 앞에 서 있다.
그녀가 자길 빤히 살피는 박민준을 향해 싱긋 웃었다.
“박민준 씨? 만나서 반가워요.”
“네가 부국장인가?”
“네. 맞아요. 내가 게이트 관리국의 부국장 이지원이에요. 근데 절 몰라요? 진짜 몰라서 묻는 거예요?”
그녀는 헌터 공무원이지만, 한국 정말 잘 나가는 스타이기도 했다.
어리고, 능력 있고, 예쁘고 무척 강했으니까.
공무원이면서도 특별 혜택을 받았는지 광고도 자주 찍었고, 그래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아주 유명했으니.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를 보며 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인 박민준이 눈을 빛냈다.
“모른다.”
“아. 더 열심히 살아야겠네. 난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부 나를 알고 있는 줄 알았거든요.”
스스로 겸손 따윈 없는 박민준이라.
그녀 같은 젊은이? 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실력도 나쁘지 않았고.
“부국장이라 그런가? 나이에 비해서 넌 좀 강하군. 저놈과는 많이 달라.”
“그거 칭찬 맞죠?”
“그래.”
“고마워요. 근데 어쩌죠? 제가 보기에 당신은 별로 강해 보이진 않네요? 진짜 S등급 맞아요?”
하하하.
그녀의 도발에 박민준이 즐겁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돌연.
엄청난 살기를 뿜어냈다.
오직 한 사람.
이지원 부국장을 향해서.
몸을 흠칫 떤 그녀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금방.
아무렇지 않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휴. 사람을 얼마나 많이 죽여본 거예요? 당신 기운이 너무 끈적끈적하네요.”
“제법이군.”
그가 이지원에게 향해 기운을 더 쏟아냈다.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래도 억지로 여유를 부리는 모습.
“고마워요. 그래도 무서우니까 그만해 줄래요?”
박민준은 최선을 다해서 살기를 방출하진 않았다.
그래도 잘 버텼으니.
초절정 고수쯤 되려나?
‘어려도 제법 강단이 있다는 건가?’
이 또한 박민준이 좋아하는 무인의 자세였으니.
고개를 끄덕인 그가 살기를 거뒀다.
“그 정도가 S등급인가?”
“그 정도라니요?! 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S등급을 받았고. 세계 최연소 S등급이에요. 나름대로 아주 강하다고요.”
그녀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넘친다.
하지만, 박민준이 보기에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역시 어리군.’
내가 약해 보인다니?
그는 반박귀진의 경지를 이뤘다.
겉으로는 강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일반인이 보기에는 평범하거나 만만해 보일 정도.
‘그래도 저 정도 되는 강자가 날 전혀 몰라보다니. 부국장 정도 되면서 경험이 부족한 건가?’
자길 평가하는 듯한 상대의 눈빛을 보고, 오히려 빙그레 웃은 이지원이었다.
‘기운이 엄청났지만, 실전은 또 다르지. 그럼 나도 어디.’
각성하고 나름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자부했으니.
그녀는 자신이 살기로 기습당한 걸 갚아 주기로 했다.
“잠시 실례할게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의 손이 먼저 나갔다.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박민준의 어깨를 노렸다.
기습 공격을 받은 그였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벌레를 쫓아내듯.
툭!
가볍게 손바닥을 휘둘러 그녀의 공격을 쳐냈다.
다시 손을 쓸 생각이 없었는지.
“당신도 제법…….”
이지원이 다시 싱긋 웃으며 뭔가 말하려는데.
이번엔 박민준이 나섰다.
“나도 잠시 실례하지.”
“네?”
똑같이 경고한 그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아까 이지원의 공격이 훨씬 빨랐다.
‘뭐가 이렇게 느려? 이런 것쯤이야.’
그녀가 박민준의 공격을 가볍게 막으려 했는데.
‘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