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가 힘을 안 숨김-10화 (10/175)

10화

고민도 하지 않고, 박만용을 배신한 그였다.

“게이트 관리국 경기지부 박만용이란 늙은이입니다. 그가 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정보가 샜다면 거기일 줄 알았어.’

20년 만에 지구로 돌아왔다.

그가 만난 사람이라고는 괴물과 싸우기 위해 현장에 출동한 헌터 공무원.

그리고 경기지부 검사실 직원 몇 명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박만용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박만용? 어떻게 생긴 놈이야?”

“대략 60세 정도에 키가 크고, 뚱뚱합니다.”

설명을 들으니.

박민준의 기억에도 있는 남자였다.

‘아까 검사실에 있던 놈 중 하나구나.’

기동2 김철진 팀장이 그때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경고한 걸 박민준도 들었다.

‘나와 가족을 위해서라고 했었지. 근데 벌써 날 찾아오는 놈들이 생겨?’

내일 경기지부에 가서 박만용이란 놈부터 만나야겠다.

‘아니지.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겠네.’

그가 김정빈을 슬쩍 바라봤다.

흠칫.

잠깐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주작 길드 인사팀장이 몸을 떠는 게 보였다.

단단히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다.

저놈과 민감한 내부 정보를 주고받을 사이면?

선물과 돈도 그동안 몇 번 오갔을 테고.

앞에 있는 이 녀석이 그놈의 집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럼 물어보면 되겠네.

“그 인간 집이 어디야? 아니지. 네놈이 날 데려가라.”

“네?”

“박만용이란 놈의 집으로 안내해. 저 차로.”

“진심입니까?”

“왜 안 돼?”

“그 늙은이가 실력은 별 볼 일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5급 공무원이나 됩니다. 인맥도 상당히 넓습니다.”

한 마디로 그를 잘못 건들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걸 듣고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박민준이었고.

“그래서 그게 뭐? 그래서 그놈이 내 정보를 팔아먹어도 된다는 건가?”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짓을 하면 안 되지요.”

“알면 어서 안내해.”

“네. 그럼 제가 차로 선생님을 그 늙은이의 집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를 바로 따라가려던 그가 멈춰 섰다.

“안 가실 겁니까? 마음이 바뀌신 거면.”

“아니. 잠시만 기다려.”

그 말을 남긴 그가 집안에 들어가더니.

금방 다시 나왔다.

옷을 갈아입었나?

아니다. 옷은 그대로인데?

실은 그가 가족들에게 잠깐 손님과 어디 좀 다녀오겠다고 말한 것뿐이었다.

그걸 모르는 김정빈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집에서 뭘 가지고 나온 거지? 무기? 독? 아니면? 뭔지 몰라도 아마 끔찍한 게 아닐까?’

박만용에게 고통을 줄 무언가를 챙겨 나왔을 거라 믿었다.

‘망할 늙은이. 저런 인간이라는 걸 알면서 나한테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던 건가?’

미리 조심하라고 말이라도 해주지.

“가자.”

“네.”

김정빈이 서둘러 뒤쪽 차 문을 열었다.

탁!

박민준이 타는 걸 보고, 후다닥 뛰어서 운전석으로 향했다.

“최대한 빨리,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래.”

이미 박민준에게 압도당해 버린지라, 그가 평소 자랑하는 똑똑한 머리를 제대로 굴릴 수도 없었다.

아마 내비게이션이 없었다면, 박만용의 집도 기억나지 않았을 거다.

***

박만용이 사는 단독 주택.

무려 300평 규모에 정원도 정성껏 꾸민 이층집이었다.

“선생님. 도착했습니다.”

같은 수원이라, 박민준도 아는 곳이었다.

다만 그때는 건물이 거의 없었다.

‘예전엔 여기 논밖에 없었는데.’

여기서도 세월을 느낀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무슨 집이 이렇게 좋냐?

“별 볼 일 없는 놈이라면서? 이런 집에 살아?”

“그동안 뒤로 해먹은 게 많을 겁니다.”

“정보를 판다거나, 뇌물을 받아서 말이지?”

“맞습니다.”

“알았어. 잠깐 들어갔다 나올 테니까. 넌 여기서 기다려.”

“기다리라고요?”

자신이 말해놓고도.

순간 아차 싶었다.

박민준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또 말대꾸? 너 진짜 고통을 덜 맛봤구나?”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악!”

당황한 김정빈이 빠르게 손을 내저으며 고개까지 저었다.

그런 그의 필사적인 저항이 아무 소용도 없이.

박민준이 다시 손을 썼다.

김정빈은 아까처럼 입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몸부림칠 뿐.

차가운 땅바닥을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한 그의 귀에 박민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녀오면 그때 풀어주지.”

‘그렇게 오래? 차라리 죽여줘.’

말을 할 수 없으니.

그런 생각이 상대에게 들릴 리도 없을 텐데.

갑자기 고통이 사라졌다.

‘세상에. 몸의 고통이 없다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그는 순간 다시 태어난 기분까지 들었다.

“여기서 기다려.”

박민준의 말에.

주작 길드 인사팀장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까 말대꾸할 때와는 달리.

박민준을 향해 직각으로 허리를 굽히며 배웅한 그였다.

“네.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선생님이 돌아오길 기다리겠습니다.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

퍽!

“누구냐! 누군데 나에게 이런 짓을!”

퍽!

“살려줘.”

퍽!

“제발. 그만!”

퍽!

잠에서 깬 박만용은 이유도 모르고 얻어맞고 있다.

퍽!

상대의 얼굴을 아직 확인하지도 못했다.

퍽!

고개를 들 사이도 없이, 상대의 발아래 계속 밟혔으니까.

퍽!

맞고.

퍽!

또 맞고, 그냥 계속 맞았다.

‘아이고. 죽겠네. 맞을 때 맞더라도 제발 이유라도 알자.’

나이를 먹긴 했어도 나름 각성자인 박만용이다.

그가 어떻게든 폭력에서 벗어나려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상대의 발길질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아주 교묘하게 그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통제했다.

몸의 고통은 또 얼마나 심한지?

마치 사람의 발길이 아니라, 쇠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퍽!

이젠 그의 목이 쉬어서 비명도 잘 나오지 않았다.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릴 뿐.

퍽!

웅크린 상태에서도 상대가 그의 온몸을 골고루 때렸다.

그래서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정말 이렇게 맞아 죽는 건가? 나 박만용이?’

박만용이 자신의 죽음을 느끼는 순간.

거짓말처럼 그에게 이어지던 발길질이 멈췄다.

고개를 들어서 상대를 확인하고 싶은데.

‘너무 맞아서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숨만 몰아쉬고 있는 그에게.

드디어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태 말 한마디 없이 때리기만 했었는데.

“기분이 어때? 모르는 사람이 불쑥 찾아와서 이유도 말하지 않고 때리니까 신나지? 재밌지? 즐겁지?”

그걸 들은 박만용은 상대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친놈이구나. 미친놈이 사람을 잘못 알고 찾아온 거야.’

애초에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

자신이 잘못 걸렸다고 착각했다.

‘그나저나 내가 소리를 꽥꽥 질렀는데 왜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 거지?’

의구심을 느끼던 그가 드디어 말할 힘을 모았다.

그리고 내뱉은 첫마디.

“누구냐? 내가 누군 줄 알고. 내가 어! 게이트 관리국 5급 공무원이야. 여기 경기지부 임원이라고! 네놈을…….”

그게 그의 실수였다.

웃음소리가 작게 들리더니.

“재밌네. 이 정도로 맞고도 그런 말을 하다니.”

“뭐?”

“그럼 더 맞자.”

또 밟히는 건가 싶었는데.

그의 몸이 뒤집히는 걸 느꼈다.

등을 땅에 붙이고 반드시 누운 자세가 되었다.

순간. 하관이 따끔한 것도 느꼈다.

그걸 신경 쓰기보다는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떤 놈이냐?’

눈을 가늘게 뜬 그가 상대를 바로 알아봤다.

‘어라? 저자는?’

새로운 S등급 헌터. 박민준.

저놈이 왜 나를?

설마 주작 길드에 정보를 팔아먹은 걸 알고?

김정빈 그 자식이 그걸 떠벌이다니?!

그건 그놈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 텐데?

그동안 정보를 팔아먹은 횟수가 무려 수십 번.

그중에 S등급은 당연히 없었다.

대신 A등급이나 B등급의 상급 각성자는 몇 명 있었다.

박만용은 새로운 각성자 등급 검사 결과를 몰래 빼돌렸다.

그중 쓸만하다 싶으면, 민간 길드나 외국에 돈을 받고 정보를 팔아 이득을 취했다.

여태 아무 문제가 없었고.

대신 그의 주머니가 아주 두둑해졌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이 저택이었다.

물론, 여기 말고도 빌딩이 또 있었고.

그래서 이번에 S등급 정보를 팔고도 별문제 없을 줄 알았는데.

‘당사자인 저놈이 직접 찾아올 줄이야.’

그의 생각이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박민준이 손을 살짝 움직인 걸 보고 난 뒤.

엄청난 고통이 그의 전신에 휘몰아쳤으니까.

박만용이 순간 눈을 부릅떴다.

죽을 것 같은 아픔을 온몸으로 느꼈다.

아까 발로 밟힌 건 애들 장난이었다.

그의 근육과 관절이 멋대로 날뛰면서 이리저리 뒤틀리고, 전신의 혈관이 금방이라도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런 고통을 계속 느끼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

박만용이 두 번째 죽음을 느꼈다.

혀를 깨물 수 있다면 진작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정도.

그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고 싶어질 무렵.

“여기서 널 죽이진 않을 거다.”

그 말과 함께 고통이 사라졌다.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에게 박민준이 물었다.

“이젠 네 잘못을 알겠나?”

“물론입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감히 박 선생님의 정보를 팔아먹다니요.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박민준이 피식 웃었다.

어째서?

“내가 용서해주지 않았으면, 넌 진작 죽었어. 손 속에 사정을 둔 걸 감사히 여겨라.”

“맞습니다. 박 선생님 말씀이 전부 맞습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정말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박만용이 그를 향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럼 이제 날 귀찮게 한 보상을 해야지?”

“네? 보상이요?”

여태 얻어맞고 고통받은 사람은 자신인데?

정보를 팔아먹은 대가로 충분하지 않았나?

그걸로도 모자라 보상을 또 해달라고?

“방금 그 태도는 뭐지?”

“네? 제가 뭘?”

“지금 네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직도 스스로 잘못을 깨닫지 못한 것 같군.”

설마 또 고통을 주려고?

죽으면 죽었지.

그건 절대 또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알아서 성의 보여봐.”

“네네. 당연히 그래야지요.”

박만용은 그에게 적당히 돈을 건네고, 그걸로 끝내려 했다.

그런 생각으로 현금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뒤에서 박민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리 말하는데, 어지간한 물건으로는 안 된다는 것만 알아둬.”

“당연한 말씀입니다.”

부들부들.

박만용이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정말 귀찮게 구는군.”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그의 몸에 손가락을 톡 가져댄 박민준이었다.

순간 박만용이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서 기운이 넘쳐난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단지 손가락이 좀 닿았을 뿐인데.

이런 변화가 생기다니?

S등급 각성자면서 신비한 특성까지 얻은 건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런 거였어.’

원래 등급 검사 결과는 등급과 스탯만 나왔으니.

특성은 파악할 수 없었다.

현재 기술로는 그게 한계다.

“뭐 해? 네가 잘못했다고 느끼는 만큼 성의를 보여주라니까? 아니면 또 맞을래?”

단순히 말로만 위협하지 않았다.

엄청난 살기.

그와 동시에.

박민준이 그의 어깨를 건들었다.

“아악! 알겠습니다. 제발 이것 좀.”

박만용은 어깨 전체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껴졌다.

실제로 잘린 건 아닌지.

직접 자기 눈으로 보면서도 계속 확인해야 할 정도의 통증.

“명심해. 최대한 가치 있는 걸 내게 보여야 할 거야.”

“물론입니다.”

고통이 사라지고.

그는 더 이상 잔머리를 굴릴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가진 것 중 박민준을 만족시켜 줄 만한 게 뭘까? 를 고민했다.

박만용이 홀린 사람처럼, 벽으로 향했다.

그곳에 그의 가족도 모르는 비밀금고가 있었다.

‘원래 이건 다른 사람이 보면 절대 안 되는 건데.’

잠시 정신이 들었는지.

뒤를 힐끗 훔쳐본 그가 박민준과 눈이 마주쳤다.

다시 쏟아지는 엄청난 살기.

당장이라도 또 손을 쓸 것 같은 표정과 눈빛까지.

‘저 미친놈을 만족시키고 내가 살려면 이걸 열어야겠구나.’

그렇게 자신의 비밀 금고를 열긴 했는데.

박만용의 손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안에 보이는 금괴와 보석들.

전부 아끼는 물건이었다.

문서들도 잔뜩 보였고.

그걸 본 박만용이 남몰래 움찔 떨었다.

‘보석을 다 주더라도 이건 절대 안 돼.’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였어?”

흠칫 놀란 박만용이 서둘러 몸을 돌렸다.

“거기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박민준이 싸늘한 웃음으로 답했다.

“됐고. 옆으로 비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