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S등급?!”
박민준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등급의 의미를 아직 잘 모르는 그와는 달리, 김 팀장은 아주 난리가 났다.
“이거 정말 놀랐습니다. 박민준 씨가 S등급이라니!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군요.”
다시 봐도 화면 가득 선명한 S등급 표시.
밑에 작은 글씨로 나오고 있는 스탯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봤으면 일반 각성자의 몇 배를 상회하는 숫자에 놀랐겠지만.
그보다는 역시 S등급이 나온 것 자체가 너무 충격이 컸다.
방에 들어와 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표정을 지으며 요란을 떨었다.
“우와! 세상에.”
“헉! S등급이라니?”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이건 말도 안 돼.”
“김 팀장이 누굴 데려왔다기에 혹시나 해서 구경 와봤는데. 정말 운이 좋군.”
“그러게 말입니다. 박 위원님 말이 맞는군요.”
그들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등급 검사를 받으러 온 신규 각성자도 아니었고.
‘여기 임원들인가? 별로 강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다면 저자들 역시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박민준이 김 팀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넌 아까 B급이라고 했잖아. 그럼 저 S등급이 얼마나 높은 거지?”
“S가 최고 등급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럼 나 혼자인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2명밖에 없습니다.”
“2명? 날 포함해서?”
“아! 당신까지 포함하면 이젠 3명이겠군요.”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말한 그와는 달리.
박민준의 표정이 썩었다고 표현될 정도.
그 정도로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김 팀장에게 물었다.
“그렇게 많나?”
“네?”
박민준의 말을 듣고 그가 깜짝 놀랐다.
‘저 인간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흥분한 김 팀장이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한국에 3명밖에 없고, 전 세계에도 그리 많지 않은 S등급인데요? 그게 많다는 겁니까?”
“당연하지. 나만큼 강한 놈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다.”
세상에.
저자가 지금 뭐라고 한 거지?
그래도 맞장구는 쳐 줘야 할 것 같으니.
“자부심이 대단하시군요. 그럴 만도 합니다.”
“난 내가 지구에 돌아오면 제일 강할 줄 알았다. 아니, 지금도 내가 제일 강할걸?”
아무리 S급이 나왔다고 해도 그렇지.
자기가 지구에서 제일 강할 거라고?
‘이건 또 뭐라고 답해야 하지?’
이젠 대답할 말도 생각나지 않는 김 팀장이었다.
그래도 감히 S급 각성자에게 허투루 대답할 수는 없으니.
그냥 그렇다고 계속 받아쳐 주자.
“아. 네. 그렇게 생각하셨었군요.”
“그래. 그런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이거 정확히 측정한 게 맞나?”
“물론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정확한 기계입니다.”
게이트에서 나온 기술과 인류의 과학이 융합된 무려 200억짜리 측정 기계.
그 비싼 가격 때문에 한국에도 몇 대 없었다.
그중 하나가 여기 경기지부 있었고.
“S보다 더 높은 등급은?”
“말씀드렸다시피 S급이 최대입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정말 그렇단 말이지. 흠.”
박민준이 생각에 잠겼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S급을 받고도 불만이 가득한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이가 없군. 인류 최강이라는 S등급이 나왔는데. 그게 정말 불만일 수가 있나?’
그가 자꾸 이런 식으로 말하자, 은근히 짜증이 난 김 팀장이었다. 부럽기도 했고.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여태 오류가 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아무래도 다시 확인을 해보는 게 맞겠습니다.”
“그렇게 해.”
김철진이 슬쩍 자리를 벗어나 내부 직원을 찾았다.
“박민준 씨 측정은 정확히 나온 겁니까?”
“네. 오류도 없고,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도 않으니. 그분은 분명 S등급이 맞습니다.”
“확실히 확인한 겁니까?”
“네. 기계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정말이지요?”
“그렇게 계속 절 못 믿겠으면 기계를 뜯어서 내부를 직접 확인해 보든가요.”
“그런 게 아닙니다. 너무 뜻밖이라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하긴. S등급이 나온 걸 보고, 저도 너무 놀라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검사실 직원에게 확인을 마친 그가 서둘러 자리로 돌아왔다.
박민준에게 설설 기면서 비위를 맞춰주는 경지지부 임원진들이 보였다.
“박민준 씨. 아니, 이젠 박 선생님이고 불러드려야겠네.”
“S급이라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박 선생. 하하하.”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조용한 제 사무실로 가시지요. 가서 차라도 한잔하시면서…….”
“무슨 소리입니까? 박 선생을 왜 당신 사무실로 모셔가? 당장 지부장님부터 만나 봬야지.”
“지부장님? 해외 출장을 가서 내일 돌아오신다던데? 당신은 임원이라면서 그것도 몰라?”
가끔 할 일 없는 임원들이 검사실에 놀러와서 신규 각성자의 검사장면이나 등급을 구경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 간혹 B등급이라도 뜨면, 서로 자기 밑으로 먼저 데려가려고 난리가 났었다.
C등급만 나와도 충분히 써먹을 만한 인재였으니.
그런데 이게 웬걸?
무려 S등급이 나와버렸다.
저 권력욕이 넘치는 인간들이 박민준을 봤으니.
저렇게 야단법석을 떨 만도 하지.
누가 뭐라 해도 S급은 한국에 2명, 아니 이젠 3명밖에 없는 최강의 헌터이지 않은가?
감히 자기들 밑에 둘 생각은 못 하면서, 박민준에게 잘 보여서 나중에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 드는 거였다.
그가 미래를 보는 눈은 없지만, 박민준이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 사람인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마 다른 나라에서 알게 되면 국빈대우를 해주면서 서로 데려가려고 하지 않을까?’
그렇게 국적을 버린 S급 헌터 이야기를 그도 들은 적이 있다.
심지어 A급 헌터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고.
자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강하고 새로운 헌터의 영입.
게이트가 열린 세상에서 그것만큼 정치인이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헌터 세계는 돈과 권력이 얼기설기 엮여있었다.
그가 요란을 떠는 임원진들을 제치고 박민준에게 말했다.
“박민준 씨. 여기 이분들 말고 당장 지부장님부터 만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째서?”
“어째서라니요? S등급 헌터로 확인되었으니. 지부장님을 만나 봬야지요. 그 뒤엔 대통령님도 봬야 할 겁니다.”
새로운 S등급 헌터의 탄생.
그것도 한국에서!
내가 설득하고 데려와 검사를 의뢰한 사람이!
어쩐지 헌터 역사의 한 편에 발을 담긴 기분이군.
살짝 흥분한 그와는 달리, 박민준은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은 그냥 보상금을 받고, 곧장 집으로 가고 싶은데.”
“네?”
“가족부터 만나고 싶거든. 그러니 준다고 했던 돈이나 줘.”
박민준은 자신이 S등급이라는 것 말고는 이미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결과만 확인할 수 있었다.
알파 시스템에서 베타 시스템으로 데이터가 이전되었지만.
‘결국, 최대 레벨이 상향된 것 말고는 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더는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
김철진 팀장은 바로 집에 가겠다는 박민준 때문에 당황했다.
“지금 말입니까? 등급 등록 절차를 마저 마치고, 지부장님도 만나보셔야…. 아. 그분은 내일 돌아오시지.”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그를 임원 중 하나가 나서며 타박했다.
“김 팀장. 사람이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융통성이 없다니요?”
“자네 눈에는 박 선생님께서 검사받고 피곤하신 게 안 보여? 오늘은 집에 바래다 드려. 그리고 내일 다시 모시면 되지.”
“그럼 저분에게 드릴 보상금은 어떻게 합니까? 결재를 받아야 지급이 되는데?”
“그건 내가 대신 결재하면 되지. 지부장님이 부재중일 때는 나도 보상금 지급을 결정할 수 있는 거 몰라?”
송일성.
저 빌어먹을 인간이.
누가 저 검은 속을 모를 줄 알고.
자기가 좋은 사람인 척 박민준에게 잘 보이고, 나만 나쁜 놈을 만들려고?
하지만 그는 다음 경기지부장에 거론될 정도로 이곳에서 입지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팀장에 불과한 자신이 저자의 말을 거역하긴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 고개만 숙일 순 없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부장님께 오늘 일을 전부 그대로 보고 올릴 겁니다.”
“그러든지. 뭐 하나. 어서 모시고 가지 않고.”
“알겠습니다. 대신 저도 임원분들께 당부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서 말해봐.”
“여기서 있었던 일은 당분간 절대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당연하지. 우릴 바보로 아는 건가?”
김 팀장의 입에서 “몇몇 분들은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바보들이 맞지 않습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도로 들어갔다.
“아닙니다. 그냥 걱정돼서 해본 말이었습니다.”
“우리도 다 알아. S등급 존재가 탄생했으니. 온갖 것들이 달려들겠지. 박 선생님이 얼마나 귀찮으시겠어?”
“맞습니다. 잘 알고 계시니. 이만 박민준 씨를 데리고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모셔다드리도록 하게. 내일 꼭 다시 모셔오고.”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어차피 다시 데려와서 지부장만 만나야 하는 게 아니었다.
이계에 다녀왔다고 했으니.
그 사실 여부를 다시 확인하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해야 할 거다.
검사부터 서두른 이유도 행여나 이계에만 존재하는 바이러스나 질병을 몸에 옮아 온 건 아닌지 확인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다행히도 결과가 깨끗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설마 각성 등급이 S일 줄이야.’
S등급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박혀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 밤새 생각날 것만 같다.
‘이거 큰일이군.’
슬쩍 옆에 선 박민준을 보고 그의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쳤다.
“뭐야? 왜 자꾸 흘겨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S등급 각성자를 이렇게 가까이 본 게 오랜만이라.”
헌터라면 모두가 꿈에 그리는 경지.
김철진도 B등급이라 강자에 속하지만, S등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래? 그래도 적당히 봐.”
“죄송합니다.”
피식 웃은 그가 김 팀장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물었다.
“농담이야. 근데 아까는 왜 그 인간들한테 내 정체를 숨기라고 말한 거야? 내가 언제 그런 부탁을 했었나?”
정체는 숨기는 일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박민준이었다.
‘잘났으면 그걸 자랑해야지. 왜 숨겨?’
내가 사기 쳐서 강해진 것도 아닌데.
이계에 다녀온 것도 그래서 안 숨겼다.
‘지금으로서는 남들이 못해본 걸 나 혼자 한 거잖아.’
거기서 살아 돌아온 게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운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 팀장은 그런 그의 마음을 예상도 못 했다.
그는 겸손이야말로 진정한 미덕이라고 여겼으니까.
“그건, 박민준 씨를 위해서 그런 거였습니다.”
“날 위해서?”
“네. 그렇습니다.”
서로 생각이 달랐으니.
당연히 이 정도로는 해명이 되지 못했다.
“좀 더 제대로 설명해 봐. 혹시나 하는 말인데. 날 두고 괜히 수작 부리는 거였으면 가만 안 둬. 널 아작내고, 여기도 다 때려 부숴버릴 거야.”
자길 향해 눈을 부릅뜬 그를 향해.
김철진이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