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곤륜파의 경신법인 운룡대팔식.
구름 위를 헤엄치는 용처럼 허공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절기였다.
최대 8번까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고, 박민준도 방금 4번 허공을 발로 딛으며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괴물들이 훤히 보이는 곳까지, 몸을 높이 띄운 그가 손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쓸 듯이 휘둘렀다.
펑퍼버버버버버벅!
작은 폭발음이 연이어 폭죽처럼 울려 퍼지더니.
흩어져 도망치던 녀석들의 머리가 차례로 터져나갔다.
그걸 본 헌터와 구경꾼들이 입을 떡 벌렸다.
“방금은 또 뭐야?”
“설마 미리 폭탄이라도 설치해 놨던 건가?”
“아니. 그냥 맨손인 것 같았는데? 손에 리모컨도 안 보였잖아.”
“몰래 눌렀겠지.”
“그건 아니야. 그냥 저자가 염력 특성을 가진 게 아닐까?”
“염력? 그렇다고 저렇게 괴물을 죽일 수가 있어?”
아무리 염력술사 특성을 가졌다고 해도, B등급은 되어야 자기 몸을 공중에 간신히 띄울 수 있다.
그것도 하늘에 서서 가만있는 수준.
“A등급은 가능하겠지.”
“그럼 저자가 A등급 헌터라고?”
“아마도? 저 정도 실력이면 그렇지 않을까?”
“우리도 모르는 A급 염력술사가 한국에 있었나?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A등급 헌터 중 염력 특성은 대한민국에 한 명밖에 없다.
“그럼, 저 사람의 정체가 대체 뭘까?”
“갑자기 어디서 저런 자가 나타난 거지?”
박민준의 정체를 모두가 궁금해하는 사이.
그는 혹시 남은 괴물이 있는지, 건물 사이로 움직이며 주위를 살피기 바빴다.
근처를 전부 돌아다녔지만, 남은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 처리한 모양이네. 그럼 이제 돌아가자.’
괴물을 죽이면서 경험치가 늘어난 걸 확인했으니.
그걸로 레벨을 올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기뻤다.
‘진작 만렙을 찍었었는데, 겨우 이런 벌레 몇 마리 죽였다고 또 레벨이 오르는 건 욕심이지.’
지구에서 남은 시간은 많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또 성장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언제고 다시 만렙을 찍을 수 있을 거다.
그땐 지금보다 더 강해져 있을 테고.
***
박민준이 송하영 곁으로 돌아오고, 얼마 뒤 그녀의 동료들도 나타났다.
괴물을 박민준이 모두 처리해준 덕분에 옥상에서 바로 내려온 팀장 일행.
박민준이 활약할 당시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대신 지상에 남은 부하들이 횡설수설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괴물 녀석들이 있는 곳까지 수직으로 외벽을 올라갔습니다.”
“놈들과 싸우는 도중 하늘을 날던데요?”
“그자가 손짓할 때마다 괴물이 터져버렸습니다.”
“폭탄이 분명합니다. 플라스틱 소형폭탄을 미리 건물에 설치하고 그걸 터트렸을 겁니다.”
“아니라니까. 그자는 염력술사일 겁니다. 아마 B급, 아니지 A급이지 않을까요?”
한숨을 내쉰 그가 수하들에게 주변 수색을 명했다.
“남은 괴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왕이면 너희들이 말한 그 남자도 찾아.”
기관총을 든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팀장님. 제가 봤습니다.”
“뭐?”
“그 남자가 녀석들을 죽이고 주변을 살피더니. 마지막엔 저쪽으로 사라졌습니다.”
“어디? 왼쪽을 말하는 거야?”
“네. 왼쪽 맞습니다.”
“알았어. 그럼 아까 나하고 옥상에 올라갔던 인원만 따라와. 지금 바로 남자를 만나러 간다.”
“네!”
부하들의 말이 너무 허무맹랑하지만, 괴물을 처리한 건 사실.
그런 실력자라면 반드시 만나서 정체를 확인해야 한다.
영입할 수 있으면 최상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 또 이번 일 같은 변수는 없어야 할 테니까.
부하가 가리킨 방향으로 온 김 팀장은 어렵지 않게 박민준을 발견했다.
모두 괴물을 피해 대피한 상황이라, 눈에 쉽게 띄었다.
송하영 옆에 서 있는 낯선 남자.
“저자인가?”
“네. 아까 들은 인상착의를 보니, 그런 것 같은데요?”
고개를 끄덕인 팀장이 쓰러져 있는 강인석을 가리켰다.
“알았다. 그럼 너희는 우선 저 녀석이 살아있는지 확인해. 저 남자는 내가 알아서 하지.”
“네. 팀장님.”
강인석의 맥박과 상처를 빠르게 확인한 남자가 말했다.
“팀장님. 다행히 강 선배는 큰 상처를 입긴 했는데, 응급조치가 훌륭했던 모양입니다. 출혈도 이미 멈췄고, 호흡도 정상입니다.”
김 팀장이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능한 부하 하나를 잃을 뻔했군.’
강인석은 그의 팀에서 전투력이 강한 편은 아니다.
대신 팀장이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인성과 제법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신입도 그를 믿고 붙여놓은 거였고.
그가 속으로는 기쁘면서도 겉으로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다행이군. 그나저나 헬기는 언제 온대?”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망할 놈들. 뛰어와도 벌써 왔겠네. 헬기 도착하면 네가 책임지고 인석이와 함께 타고 병원으로 가.”
“네. 팀장님.”
죽은 줄 알았던 부하가 살아있는 걸 확인했으니.
이젠 송하영 옆에 있는 남자를 만날 차례였다.
“송하영 씨. 여기서부턴 내가 말하지.”
“팀장님? 언제 오셨어요.”
“자네하고는 이따 얘기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뒤로 물러나고.
팀장이 박민준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부하들 말로는 당신이 빌딩에 있던 거대 다발 거미를 모두 죽였다던데. 맞습니까?”
“내가 처리하긴 했는데. 왜? 그걸로 감사 인사라도 하러 왔나?”
김철진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감사 인사 따위를 하러 온 게 아니다.
정체가 뭔지 그걸 확인하려고 왔지만.
덕분에 부하들의 희생이 줄었으니.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맞긴 하겠군.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하들에게 듣기로 실력이 정말 굉장하시다고요?”
막 날아다닌다거나 가벼운 손짓만으로 괴물을 죽였다는 허풍은 직접 입에 담지 않았다.
그건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뭐 그게 대단하다고. 그냥 벌레 몇 마리 죽인 것뿐인데.”
실력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건가?
아니면 허세 가득한 자만인가?
‘뭐가 되었든 간에 별로군.’
속으로 박민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그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의 정체가 뭡니까?”
질문하면서 그가 소속된 곳의 마크를 찾아봤지만, 그런 게 보일 리 없었다.
당연히 박민준으로서는 내 이름을 묻는 건가 싶었고.
“나? 박민준.”
“박민준 씨였군요. 혹시 어디 소속입니까? 공무원은 아닌 것 같고, 혹시 수원의 블루 썬더 길드? 아니면 다른?”
“소속? 그런 거 없다.”
“소속이 없단 말입니까? 당신 같은 실력자가?”
간혹 프리랜서 헌터가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실력은 부족한데 눈이 너무 높아서 길드 가입을 안 하는 거였다.
아님, 못 하거나.
‘하지만 이자는 나보다 더 강한 것 같은데.’
애초에 괴물과 그는 상하 수직의 위치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놈들은 위에 있고 그는 밑에 있었으니까.
거의 일방적으로 농락당했었다.
그래서 미친놈처럼 이건 건물 저 건물 가리지 않고, 옥상까지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았나?
하지만 거대 다발 괴물이 지상에 있었다고 해도, 그가 4마리를 동시에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두 마리 정도? 무리하면 3마리까지.’
그런데 이자는 빌딩 외벽을 뛰어 올라가 6마리를 죽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폭탄은 아니다.
건물 주변에선 화약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으니까.
혹시 괴물과 상성이 좋았나? 그렇다면.
‘특성을 가진 B등급, 그게 아니라면 A등급 헌터.’
정말 좋은 특성을 가졌다면 한 등급 정도는 뛰어넘는 활약을 보일 수 있었지만, 특성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건 아니다.
S등급은 한국에 몇 없으니.
그건 아예 처음부터 배제했고.
그가 잠시 생각하느라 대화가 끊긴 사이.
송하영이 불쑥 끼어들었다.
“팀장님. 이 아저씨는 헌터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소속도 없는 게 맞을걸요?”
“상사가 대화 중일 땐 멋대로 끼어들면 안 되지 않나? 자네는 아직 그런 것도 아직 모르나?”
“아. 네. 죄송합니다. 팀장님.”
그녀가 뒤에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박민준에게 말했다.
“정말 헌터가 아닌 게 확실합니까?”
“아니라니까. 그게 뭐가 중요한 거지? 왜 자꾸 물어봐?”
“그럼 거대 다발 거미들을 어떻게 처리한 겁니까? 무려 6마리였는데.”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별로 강한 녀석들도 아니던데.”
또 그 소리.
기껏해야 20대 초반인 것 같은데.
실력은 좋지만, 너무 건방지군.
“별로 강하지 않은 괴물이라니요. 녀석들은 4등급입니다. 그리 쉽게 볼 놈들이 아니란 말이지요.”
“4등급이고 뭐고, 난 몰라.”
“모른다고요?”
“그래. 너희가 약하니까 그놈들이 강하다고 느끼는 거겠지.”
모멸감을 느낀 김 팀장이 대화를 중단했다.
‘실력만큼이나 무척 건방진 젊은이군. 정보가 더 필요하겠어.’
이대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저자를 아는 듯 보이는 부하와 먼저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조금 있다가 저와 다시 대화를 나누도록 하지요.”
“귀찮게 또 기다리라고?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
김 팀장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올라왔다.
평소라면 그도 낯선 사람을 붙잡고, 질문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실력자가 누구인지, 또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지금 확실히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헌터 공무원인 자신의 임무 중 하나이기도 했고, 직감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왠지 이자를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아.’
그가 박민준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 다시 말했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좋아. 그렇다면 정말 잠깐만이야.”
“감사합니다.”
그와 조금 멀리 떨어진 팀장이 송하영을 가까이 불렀다.
“송하영 씨. 이쪽으로.”
“네. 팀장님.”
박민준이 하품을 하며 그 둘을 바라봤다.
둘이 작게 잠시 속삭이는 모습.
뭔가를 같이 보기 시작하네?
아까 그 대형화면을 가진 휴대폰이구나.
버튼이 사라지고 그 대신 화면을 누르기까지 하던데?
근데 저건 어떻게 접지? 그냥 저 상태로 펴서 다니나?
주머니에 넣기에는 너무 크지 않나?
박민준은 자신이 이계에 다녀온 사이에 지구의 기술 발전이 엄청 났다는 건 새삼 느꼈다.
그가 마지막으로 가졌던 휴대폰은 컬러가 아닌 흑백 화면.
그것도 화면이 숟가락만큼 작았었는데.
‘지금은 풀컬러로 나오고 화면도 저렇게 크게 만드는구나.’
그나저나, 자기들끼리 속삭이면 전혀 들리지 않을 거로 생각한 건가?
박민준은 자신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둘의 얘기를 엿듣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각성자도 아니라는 건가?”
“네. 이것 보세요. 저 사람 지문과 이름을 가지고 제가 직접 확인했다니까요?”
김 팀장이 화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등록 서류상 민간인이 분명했다.
“정말 비각성 민간인이군. 혹시 다른 기록은 없나?”
“아 참. 저 아저씨 가족이 20년 전에 한 실종신고도 있어요.”
“20년 전? 저 사람 지금 몇 살인데?”
그가 보기에 박민준은 이제 겨우 20대 초반.
그럼 아기 때 실종이라도 된 건가?
“아니요. 22살 때라고 하던데요.”
“뭐? 스물둘? 지금은 42살이라고?”
“네. 저 얼굴에 무려 42살이라니. 놀랍죠?”
“놀랍기보다는 이상하군. 저런 동안이라니.”
잠시나마 저자의 실력보다 20살은 젊어 보이는 얼굴이 더 부러운 김 팀장이었다.
부하의 다음 말을 듣고 바로 정신 차렸다.
“그리고 저 아저씨가 20년 동안 다른 세상에 다녀왔대요.”
“뭐? 다른 세상?”